2023년 한국디카시인협회 중국동포디카시연구회(지부) 디카시 전시 작품

 

1)문인석/ 이동렬

홀笏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매일 천 년의 비바람 속을
오가고 있습니다

이제 아시겠죠
당신이 누구신지를

 


 

2) 길/ 박계옥

왼다리 오른다리
왼발 오른발, 참 잘 맞는 궁합

어디로 가느냐 묻지도 않고
척척 따라주며
끊임없이 나누는 흙 묻은 이야기

 


 

3)명창의 기품/ 이준실

몰입하여 목청 가다듬는 시간
무대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드팀없이 반듯하고
올올이 곧은 자태

 


 

4)쉼터/ 이초선

창窗이 없어
구름 한 장 담지 못해도
바람은 벽이 되어
쉬어 가라 하네

 


 

5)꽃바람 불면/ 김선애

비스듬히 누워 있는 
네 몸에 
휘청거리는
내 마음 기대고 싶다

 


 

6)다둥이 엄마/ 황정혜

통통 젖살이 올라
말갛게 웃음 짓는 아가들
 
입덧도 몸살도 다 잊었다

 


 

7)추석(秋夕)/ 신명금

저 그리움
둥글게 여물었군

타향 천리 널 보니
얼기설기 스쳐가는 옛 추억들

 


 

8)엉겅퀴꽃 서정/ 한하나

나도 가시 돋친 말 할 줄 알아
나도 연지 곤지 바르면 예뻐

화나면 내뱉던 엄마의 레퍼토리

내 나이 가을녘에 들어서서야
그 참뜻 알아 버리고 목놓아 울었다

 


 

9)필사 (筆寫)/ 김순자

옹알옹알
젖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시어 

엄마 아빠 맘마 
엄마가 받아 적는 푸른 시

 


 

10)우정 스케치/ 정정숙

똑같은 옷 차림 떴다 하면 
시골 한 모퉁이 환했지

티격태격하여도
딱 붙어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껌딱지 삼인방 

 


 

11)모정/ 장문영

꺼질 줄 모르는 작은 불꽃
그대가 있었기에
나도 따뜻한 사람일 수 있었습니다

 


 

12)간이역/ 이해란

 주춤하는 사이
성큼 다가선 계절

해가 솟으면 다시
길 떠나야지

 


 

13)일출/ 박화순

바다와 육지, 하늘이 뜨겁게 포옹한다

밝고 화사한 웃음으로
건강, 희망, 사랑, 행복일랑 가득 싣고 오신다

저기 동쪽으로부터

 


 

14)悟/ 김경애

오, 이제야 알았다
몸통을 찌르던 크고 작은 가시들이
삐뚤어진 나를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15)정착/ 최춘란

 무심코 내려왔더만
느낀 게 있더라
버거웠던 이름들이
욕망이라는 것

 


 

16)스페이스 워킹/ 이광일

 영화필름처럼
추억은 늘 기억의 창공에 걸려
우주를 걷고 있다

 


 

17)붉은 숨/ 심송화

뜨겁게
깊게
한 겹 한 겹 토해냈더니
시린 추위도 비켜간다

 


 

18)눈먼 사랑/ 이영매

훌쩍 자라
자신보다 더 큰 새끼
아직도 탯줄 놓지 못한 안간힘이
뿌리 뽑힐 듯 그 무게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다

 


 

19)동주로드/ 박춘혁

룡정을 건너 연세로
연세를 넘어 영혼의 터로

구불구불한 시인의 언덕 지나
한 점 부끄럼 없는 저 하늘에
끝없이 펼쳐지는 새로운 길

 


 

20)본능에 충실하는 것/ 김성옥

콘크리트 바닥이든 틈서리든
어디나를 막론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21)현실/ 김단

그저,
날개를 접었을 뿐인데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22)가을 진주/ 김춘자

가슴마다 햇빛 품었다
비바람과 폭우도 품었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이리도 알알이 빛나는가

 


 

23)신생아/ 오영실

세상살이는 처음이에요
함께 걷는 계절

잘 부탁해요

 


 

24)이루지 못한/ 최기건

모기불 피워 놓고
별을 세며 꾸던 꿈

칠순 문턱 베고
꿈속에서 꿈을 꾼다

 


 

25)탈/ 신현희

해바라기인 척하기는
동생이 눈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요즘 세상

 


 

26)먼길 오시는/ 김성애

그리움으로 점들이 물결칠 때면
아버지는
부르튼 발로 별을 딛고 오시겠지

초롱불 하나
길목에서 서성이는 저녁

 


 

27)맑음 주의보/ 한미나

어제를 돌려내어
널었다

햇볕 묻은 자리가
홀가분한 오후

내일도 빨래가 되고 싶은

 


 

28)정년/ 김춘산

익은 것은 내려앉는다

햇살과 바람을 다 품은 나이 예순
더는 가지나 가지 위 하늘에
미련이 없다

 


 

29)아버지 꽃/ 함향

거름 가득 채워주면
햇살님이 빙그레 웃어주고
사랑을 먹고 사는 나
행복에 젖어 웃음꽃 피우네

 


 

30)동반자/ 박만해

진드기로 만신창이가 된
연약했던 숨결
세월속 한 쌍의 꽃나무로 탈바꿈되어
화사한 일생을 그릴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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