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몽타주 

 

뇌출혈에 걸린 하얀 세계 신음에
안락사 주사하던 고드름 증발한다.
달이 보던 적외선 망원경 속에
설 한 살 촉에 찔린 나무의 절규가 사라지고
몇 송이구름 떼 모여 속닥거리더니
못생긴 외모를 다 갖춘 슈빌로 변하여
빛살 삼키다 너무 뜨거워 뱉어낸다.
칠색 무지개 예쁜 포물선 위에
동동 매달린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
알 수 없는 이집트 고대 문자로
얼기설기 엉켜진 풀숲을 검색하며
즐겁게 산책하는 태양의 미소
공중에서 정지 비행하는 말똥가리
어둠 속 암살자의 눈빛으로
바람을 키질하여 바스락 소리만을 골라낸다.
종달새울음 거미줄에 걸려 넘어지자
요염한 살구꽃이 깔깔깔  웃는다

 

 연결고리

 

여명의 피 빨아 화험하던
안테나 맑은 날씨를 예보한다
펌프로 길어 올린 흑토의 숨결로
움튼 나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바람
종달새 목청을 진열대 세우려고
녹색 내음을 대패질하던 계곡은
하프 튕기며 흐름의 선율을 편집하고
꽃사슴 몸뚱이서 탈출한 흰점의 집합들이
한점의 북극성 장기를 따 훔쳐먹고는
천수관음의 천궁을 유람한다.
미인계 왕관을 딴 
진달래꽃 지키는 피뢰침에
줄행랑놓는 마른번개
변성 수술 거절하는 민들레 향기가
담벼락 허물어 하늘을 늘인다

 

 바위의 명상


움튼 풀싹을 움켜쥔 이슬
여명의 꿈을 읽으며
점으로 축소된 태양을 핧는다
초서로 갈겨 쓴 
바람의 언어들이
산마다 녹색 옷 재단하고
백양나무 몸매에 박힌
공작새 꼬리의 눈알들이
걸음마 타는 연두색 냄새를 지켜본다
잠에서 깬 청설모는
지난해 감췄던 개암을 찾다가
기억을 상실하고
몇 조박 푸른 하늘이
침팬지의 가벼운 몸동작으로
월계화 웃음 속에서 뛰어논다

 

등산길

 

손바닥에 새벽 숨결 펴놓고
이슬 얹혀 쌈 싸 먹는 나팔꽃
잠자리 앉혀놓고 자주색 노래를 토한다
태양의 빛 골고루 발려진
여러 혈통 나무 잎새마다
고독이 빠져나가 그네 뛰고
우산 속에 속마음 감춘 버섯들이
빗방울의 소망을 베낀 수첩을 들고
눈 지그시 감고 외우고 있다
두상에 흰머리 재배하고는
뺑소니쳐버린 세월의 유령들이
바위 속에 숨어 묵비권 행사하고
아침노을이
활활 타오르던 산마루가
이름 묻지 않고 시원히 껴안는다

 

 옛터


계곡의 숨결로 세워진 울바자
곤충울음들 부딪히며 뛰놀고 있다
민들레꽃으로 피어난 소녀가
꽈리 물고 뿜어낸 개구리타령 귓전에 맴돌고
가위 바위 보가 익숙한
이 빠진 별명들이
텅 빈 까치둥지 안에서 흰 수염으로 늙어가고
달걀에서 부화한 김삿갓 옛말
덜커덩 달구지 소리에 묶여 있다
등잔불에 그을린 메주 냄새가
조상들의 해골 만지며 눈물 흘리는 듯... 
돼지가 장작개비 무너뜨리던 마당 가에는
꼬리 젓는 황둥개 유령이
텅 빈 고향을 사수하는 가운데
참새들의 증손들이 짝짓기에 분주하다
누구세요? 낯선 주인들의 물음은
나의 이름은 빛에 녹아버린 뒤였다
아 고향의 옛터여. 

 

닭띠의 밤

 

달빛이 가슴에 퍼지자
그리움 사념을 앗아가는 고요
여윈 숨결만 어둠에 부딪힌다
벌레 먹은 나뭇잎 앓음 소리 들리고
피곤한 삶의 희망 접히고
분신자살하는 별지…. 
정적을 구멍 뚫는 반디 불빛이
검둥개 짓는 소리에 파묻히고
겨울에 예약했던 초록색 웃음들이
지저분한 상처로 다가선다
차츰 달을 삼키는 구름이
늙을 줄 모르는 침묵을 깎아
차고 더움을 모르는 고독의 마네킹을 빚는다
음산한 바람, 비가 오려나 보다
소리 없이 떠나버린 여인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아 중년의 산책은 쓸쓸
하기만하다

 

    몽   유

 

짝짓기하려는 낮달
태양의 뒤꽁무니를 바싹 쫓고 있다
빙 둘러앉은 적설들이
찬바람에 샤워하는
소나무 파란 침엽에 엄지손가락 내밀고
늙은 느티나무 보청기 건대로
회전하는 그림자 발소리 듣는다
총망히 세상 뜬 띠동갑 골회함이
미리 죽는 연습을 하도록 재촉하고
살아온 숨소리 새겨진
도미노 골패가 쓰러지는 끝점에서
나의 첫 울음소리
세월의 발원지로 솟아나고
한 무리 무게의 참새들이
쓰러뜨린 쑥대에서
씨앗들의 미래를 말끔히 쪼아 먹는다

 

    들국화

 

먹장구름의 외침을 털어버린
골짜기 고요가
물까치 울음에 짜라 당 깨지고
산의 무게를 허리에 띠고
살진 계곡이 뚱긴 적 뚱긴 적 흐른다
소낙비에 뒤통수 얻어맞던, 
강풍의 파도를 타고 서핑하던 
근육질 뽐내는 수리 개 한 쌍
수양버들은 세종대왕 수염으로 하느작 하느작
그 밑에서 ㄱㄴㄷㄹ 를 배우던
제비 새끼들 적도 이남으로 떠나버리고
단풍 든 노란, 빨간 색깔들이
살진 꿩 울음소리를 차고 빼앗는 게임을 하고
허공에 빈소를 차린 들국화 한 송이
술 석잔 부어놓고
죽기 전 자기에게 추모하며 흐느낀다

 

마가을의 모형도

 

임종에 다다른 계절
마지막 눈물을 흘리는
우레의 처절한 외침…. 
찬바람 패거리들은
을씨년스런 허공을 얼구고 있다
갑의 금메달 시상대에 오르려고
샅바를 맨 빨간 단풍 색깔들이
판가리 씨름하고
기러기 편대가 투하한
석별의 문안이
서리맞아 기침을 짖는다
암컷을 독점하기 위해
피 터지는 격투를 벌이던 장수풍뎅이
빙점에 얻어맞아 딸꾹질로 굳어지고
거울 보던 찔광이 열매들은
아직도 립스틱이 모자란다고
태양 향해 발버둥을 치며 트집을 잡는다

 

 청명 날

 

검은 저기압에 짓눌린 마음
인젠 빌릴 수도 꿔올 수도 없는
엄마라는 이름 앞에
수십 명으로 분신된 내가 절을 올린다
값싼 수의 대신
길고 느린 통곡을 감싸고 영별한 엄마
바지에 도꼬마리 매달린 채로
갈대 베어 연필 사 주던 엄마
절구에 돌피 빻아 도시락 챙겨주던 엄마
꼬깃꼬깃 이불을 여며주던 엄마
봉분 지키던 소나무 한 그루
무당으로 둔갑하여 굿을 날라고
씀바귀는 저음의 추도곡을 뿜어낸다
갑자기
가난하고 불쌍하던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 아장아장 품에 안긴다
어부바 자장자장
하지만 예쁜 치마를 사줄 수 없고 
색과자도 먹여줄 수 없어 흑흑흑  꺼억꺼억…. 
아 불쌍한 엄마…. 
그 가난한 품에 다시 안기고 싶어 흐느낀다
옹근 나 세계였던 엄마
묘지 곁에 세워진 자가용차는
물안개 속에 파묻힌다…. 

 

  고독의 배경

 

우레 소리 울림은
구름의 뒤 뜨락이다
맑은 하늘에 흠뻑 젖은 민들레
산란한 이별의 씨앗들
땅 골라 제멋대로 면접하고
세월 포탄에 실려
떠나버린 그녀의 뒷모습은
영혼의 멀미
인색한 바람은
마련된 골화함 속에
미세먼지마저 저장하고
집 잃은 방언들이
통역사를 끼고
텅 빈 가슴의 뒷문으로 드나든다

정두민 프로필 

1979년 6월 교육사업에 종사, 연변작가협회 제7,8기 민족문학강습반 수료. 심양사범학원, 대학전과 졸업. 1983년도에 처녀작 발표. 연변작가협회회원, 연변동북아문학예술협회회원, 재한동포문인협회회원. 중국 동북3성 각종문학잡지와 시문간행물에 시 100여 수 발표. 2017년1월 정년퇴직. 이상화문학상 시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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