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일 아침, 우리 일행 11명은 청도북 기차역에모여 고속 열차를 타고 제남 공항으로 출발했다. 전례없던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삼년 넘게 묶였던 발이 풀리면서 세계의 지붕-시짱으로 여행을 떠나는 나의 심정은 자못 셀레고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나는 간밤 잠을 설쳤고 아내는 새벽부터 간식을 만든다고  바삐 돌아쳤다

제남 공항에 도착하여 타지역 관광객들과 합류하면서 28명으로 구성된 관광단이 무어졌다. 대기실에서 탑승시간을 차분히 기다렸다. 점도록 지나 제남-라싸행 항공편 연착 알림 방송이 들려왔다. 현재 라싸는 강풍이 불어 여객기가 정상 착륙할 수 없으므로 오늘은 사천성 남충南充시공항에 먼저 착륙하여 하루 묵고 이튿날 아침 7시에 라싸로 출발하기로 했다.

                     
세계대협곡ㅡ아로장포대협곡(雅鲁藏布大峡谷)

남충(南充) 공항을 이륙한 여객기는 세 시간의 비행을 거쳐 라싸 공항에 착륙하였다. 우리 일행은 라싸의 모 호텔음식점에서 간단히 식사하고 또다시 린즈(林芝)시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올랐다. 린즈시는 서장 동남쪽에 위치한 도시인데 평균 해발이 3100미터이고 아로장포강의 하류에 있으며 장족 위주로 여러 민족이 집결해 살고있는 지역이다. 린즈시는 인도양 계절풍의 영향으로 여름엔 서늘하고 겨울에도 춥지 않으며 기후가 습윤하고 우량이 총족하며 일조량이 충족하고 낮과 밤의 온도차이가 크다고 한다. 봄에는 기온이 낮고 건조하고 여름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습도가 높으며 가을에는 서늘하고 청명하고 겨울에는 기온이 좀 낮긴 하지만 눈이 적다. 특수한 지리 위치와 기후로 말미암아 린즈는 서장의 "강남"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를 실은 버스는 어느덧 라싸 시내를 벗어나 린즈구역에 들어섰다. 듬성듬성 애기풀이 자라고 있는 라싸의 산야와는 달리 녹음방초 우거지고 맑은 강물이 흐르는 땅을 질러 달리노라니 마치 동화세계에 들어선 듯 하였다.

400여 킬로미터의 로정을 다섯 시간을 달려 드디어 린즈시 정부 소재지에 도착하였다. 린즈는 장족어로 “태양의 어좌”, 즉 태양이 떠오르는 곳이라는 뜻이다. 린즈 지역은 평균 해발이 3100미터로서 시짱에서 제일 낮은 곳이며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린즈의 울창한 숲과 강들은 사람 손을  타지 않아 태초의 자연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정토(浄土)”이다. 린즈는 설산이 산맥을 이루고,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아름답고 다채로운 자연 풍광을 이룬 곳이다. 협곡 사이로는 니양하, 파룽장포강,아로장포강 등 여러 갈래의 강이흐르고 강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촌락과 늙은 측백 나무,세차게 내리꽂히는 폭포수, 파도처럼 설레는 숲 등으로 매력 넘치는 풍경을 연출해 “시짱의 스위스”라고도 불리운다. 아스라한  설산과 얼음 덮인 강, 울창한 밀림, 고한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설련화를 비롯한 꽃들, 아열대 지방의 대표 과일 바나나와 종려 열매 등 풍부한 생태 자원으로 린즈는 ‘고원 생태박물관’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소와 양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지상 낙원’이 바로 린즈의 대표적인 이미지이다.

이틑날 아침 7시, 우리 일행은 아로장포대협곡을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아로장포대협곡은 히말라야(喜马拉雅)산맥과 횡단(横断)산맥, 념청당구라(念青唐古拉)산맥의 회합처에 위치해 있다. 아로장포강은 히말라야 북쪽비탈 빙천에서 발원하여 라싸, 린즈 등 27개 현시를 경유하며 흐르는데 길이는 무려 2057킬로미터이고 류역 면적은 24만 제곱킬로미터이며 린즈시 묵탈(墨脱)현에서 출경하여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거쳐 인도양으로 흘러든다. 해발이 7782미터로서 린즈시 경내에서 가장 높은 산인 남가파와산봉(南迦巴瓦峰)을 에돌아 말발굽형으로 흘러 아로장포대협곡을 형성하여 장관을 이룬다. 린즈시 구역에 국가 5A급 자연풍경구가 두 곳 있는데 아로장포강 자연풍경구가 그중 하나이다.

아로장포강 풍경구 입구에 도착하니 벌써 관광객들로 붐비었다. 몇 몇 장족 자시(총각)와 줘마(처녀)들이 신나게 장족춤을 추면서 관광객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흥이 난 나와 친구도 율동에 맞추어 한참 동안 장족춤을 따라췄다.  

아로장포강이 흐르는 언덕을 따라 관광객들은 삼삼오오거닐며 눈앞 절경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강물은 때로는 용솟음치다가 때로는 유유히 흐르면서 운치로움을 자랑한다. 강심 깊이는 족히성인 키 한 길만큼은 될 것 같았다.

“야-, 아-” 감탄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로장포강 협곡 너머로 산맥 한줄기가 가로놓여 있었다. 가이드의 소개에 따르면 린즈시 제일봉 남가파와봉인데 세계에서 15번째로 높은 산봉이란다. 우리가 서있는 위치가남가파와산 산봉을 볼 수있는 최적의 위치란다. 기복을 이룬 설산들이 키돋움하는 가운데 삼각형 모양으로 뾰족하게 솟아오른 봉우리는 운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남가파와산의 봉우리를 볼 수 있는 날은 일년에 며칠 안된다고 한다. 우줄우줄 기복을 이룬 설산을 거느리고 서있는 모습이 마치 나체의 여인이 누워있는 것 같다하여 이곳 사람들은 “옥녀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계 각국 산악인들이 등정을 도전했지만 성공한 사람이 몇 사람 되지 않는다. 1992년에 중국-일본 연합등산팀원 11명이 이 산의 정상에 올라서서야 신화는 끝내 깨지고 말았다.
      
       푸르른 하늘은 옥빛이요
       하아얀 설산 빙산도 가관일세
       녹음이 우거진 원시림 헤치고
       흐르는 저 강물 쪽빛으로 물들어
       여기는 사계절이 공존한다오

고원의 성호(圣湖)-바송춰(巴松措) , 양줘융춰(羊卓雍措)

린즈시에서 첫날밤을 묵고 일어나니 왼쪽 뒷목이 당기면서 목을 돌리려고 해도 잘 돌릴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잠을 잘 못 자서 그러려니 하고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내도 밤잠을 설쳤는지 얼굴이 부석부석했다. 다른 팀원들도 정도부동하게 고통을 호소하였다. 가이드는 산소 결핍으로 인한 고원 반응이라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고원 반응에 점차 적응하기 위해서 시짱에서 해발이 제일 낮은 린즈시에 내려왔던 것이다. 평균해발이 2980미터인 린즈에서 적응이 어렵다면 해발이 더 높은 곳에서 감당해낼 수 있을지 근심이 태산 같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7시에 또 하나의 국가 5A급 풍경구 바숭춰(巴松措)에 가려고 버스에 올랐다. 린즈지구 궁부장다(工布江达)현과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파하강(巴河) 상류의 깊은 협곡에 위치한 바숭춰는 시짱 동부에서 규모가제일 큰 언색호(堰塞湖)중 하나이다. 바숭춰 풍경구에 도착한 우리는 협곡사이에 있는 호수에 내려갔다. 장족 자시가이드가 손님들에게 하다를 목에 걸어주며 반겼다. 장족이 손님을 맞이하는 특유의 예법이다. 주변이 설산으로둘러 싸여 청산 속에 자리잡은 바송춰의 모양은 조각달같고 물은 맑디맑아 옥빛을 띠어 밑바닥까지 보일 정도였다.호심 왼쪽에 위치한 작은 섬 하나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장족 자시 가이드가 호심도(湖心岛)에 깃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 옛적에 바숭춰 호반에 아기자기 사랑하며 살아가는 부부가 있었다 영준한 남편은 자시(扎西)라 하고 아릿다운 아내는 줘마(卓玛)라고 했다. 자시는 날마다 산을 넘나들며 사냥을 하였고 줘마는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밭일을 하면서 풍의족식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름이 차공(次翁)이라는 국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바숭춰 호수에 놀러 왔다. 호숫가를 산책하고 있던 차공이 구성진 궁부(工布)민요소리에 끌려 다가가보니 호숫가에서 줘마가 노래를 부르며 빨래를 헹구고 있었다. 순간 차공은 줘마의 미모에 홀딱 반해버렸다. 차공은 감언이설로 꼬드겼지만 줘마는 추호도 동요하지 않았다. 차공은 강제로 줘마를 왕궁에 입궁시켰다. 차공은 재물로 유혹도 하고 공갈협박도 가했지만 줘마는 왕비로 되는 걸 견결히 거부하였다.

차공이 줘마를 왕궁에 데려온지 어언 삼년이 지났다. 갖은 수단으로 줘마의 마음을 돌려 세우려던 시도가 실패하자 차공은 탕개를 늦추기 시작했다. 어느날, 왕궁을 탈출한 줘마는 아껴 입던 하늘색 비단옷을 입고 고향인 바숭춰 방향으로 말을 타고 달렸다.

바숭춰 호숫가에 당도하여 남편이 보이지 않자 줘마는 대성통곡했다. 기실 줘마가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시는 사냥을 제쳐놓고 줘마를 찿아 떠났던 것이다. 허나 이에 대해 감감 모르고 있던 줘마는 삼 년이란 세월을 기다리다 자신이 변심한 줄로 여기고 자시가 부부의 연을 끊은 줄 알고 고요한 호수에 뛰여들어 자결하였다. 줘마가 입은 하늘색 비단옷이 물에 비껴 그 뒤로 호숫물은 더욱더 푸르러졌다고 한다.
 

한편 자시는 무수한 산과 령을 넘나들며 줘마를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실망한 나머지 고향으로 돌아왔다. 줘마가 호수에 뛰여들어 자결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자시도 줘마와 백년해로하지 못하고 혼자 사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서슴없이 호수에 뛰어들었다. 그 뒤로 호수에 섬이 하나 생겼는데 그게 바로 호심도라고 했다. 이리하여 자시와 줘마는 영원히 갈라지지 않고 사랑하는 한쌍이 되었다고 한다. 줘마와 자시의 사랑을 기리기 위하여 관광객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전설 속 주인공에게 선사한 하다가 호수 언덕에 수북히 쌓여 있었다. 나와 아내는 바숭춰와 호심도를 배경으로 더없이 소중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호숫물처럼 마음도 파랗게 물드는 것 같았다... 

6월 6일, 린즈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라싸에서 100여 키로미터 떨어진 산남(山南)시에 있는 양줘융춰(羊卓雍措)로 향했다. 양줘융춰는 해발이 4998미터로서 시짱에서 나무춰(纳木措), 마팡융춰(瑪旁雍措)와 함께 3대 성수로 불리운다. 버스가 라싸시 구역에 들어서면서부터 도로 양켠으로 늘어선 산들은 바위와 돌로 엉성한 가슴을 드러냈고 모뉴들이 띠염띠염 자란 잔디풀을 한가로이 뜯고 있었다. 버스는 가파로운 산비탈 구간길을 라선식으로 한참이나 톺아 오르더니 드디어 양줘융춰 정상에 도착하였다. 양줘융처 비석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여념없는 사람들, 그 뒤로 초록색 옥빛 물결을 담은 듯한 호수, 주차장 옆 산자락에 아직도 녹지 않은 설산, 민족 복장을 입은 장족 친구들이 라이브로 부르는 청장고원 노랫소리, 흔히 볼 수 없는 한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방불케하였다.
 
“옥녀봉이다!” 아내가 환희에 찬 목소리로 나의 어깨를툭 쳤다. 과연 양줘융춰의 설산 산봉 너머로 거대한 남가파와산이 일목요연하게 안겨왔다. 아로장포 대협곡에서 안개에 가리워 흔상 못한 옥녀봉의 진면모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렀다. 
        
         호수에 하늘이 내려 앉았나
         하늘이 호수를 삼켰 버렸나
         하늘땅 어디를 봐도
         파아란 쪽빛으로 물들었는데
         엄마 품에서 노닐던 하얀 금토끼(?)
         상아탑 찾으러 저 산 넘어가네
          
대조사(大昭寺)와 포탈라궁(布达拉宫)

6월 7일 아침 7시, 식사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오래전부터 고대하고 갈망했던 대조사와 포탈라궁을 참관하러 떠났다. 출근 고봉기라 라싸의 중심거리는 몹시 붐비었다.  

대조사로 가는 바쿼거리(八廓街)에 들어서니 벌써 전통 복장 차림을 한 장족친구들과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법석이었다. 마침 오늘이 참배를 드리는 날-수요일이라 신도들이 평소보다 많을 것이라 했다. 우리 일행은 바쿼거리 코라를 따라 장족인들의 생활, 문화, 종교, 신앙을체험하기로 했다. 코라란 장족어로 어떤 주위를 도는 순례의 길을 말한다.

장족들이 대조사를 거듭 찾는 이유는 이곳에 영험한 석가모니 불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나라 문성공주가손챈감포에게 시집 올 때 가져 온 세계 유일의 석가모니 등신불(실물 크기의 불상)이 포탈라궁에 있다고 한다. 이등신불은 석가모니 12세 때의 모습을 본따 만든 불상이라고 한다. 7세기 초, 33대 왕 손챈감포(581ㅡ649)는 부족들을 통합하고 수도를 채탕에서 라싸로 옮기고 불교 중심의 왕좌를 세움으로써 장족을 통일시키고 시짱을 문명화시기키 시작했다. 손챈감포는 강력한 군주로서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추앙 받으며 당나라 태종의 딸 문성공주와네팔 국왕의 딸 티슨을 황비로 맞았다고 한다. 통일을 위한 화친을 실행했던 것이다.

아침해가 어느덧 중천에 걸려 정수리를 뜨겁게 내리쬐었다. 25도라고 하지만 고원의 태양은 더 뜨거웠다. 라싸의 평균 해발이 3650미터이니 그럴 법도 하지 않을까? 하지만 신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곁눈 한 번 팔지 않고경배에 전념했다. 오체투지로 삼보일배하는 신도들이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불경이 들어 있는 마니차를 돌리면서 6자 진언을 외우면서 중얼건린다.

옴마니밧메홈, 옴마니밧메홈... 

많은 사람들이 “시짱에 가보지 못한 것은 평생 유감이다”고 말한다. 허나 나는 바쿼거리 “하늘길”을 걸어 보지않고는 라싸에 가봤다고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점심 식사후 우리는 마지막 여행 코스인 포탈라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조사와 포탈라궁은 장족의 영적인 성지이다. 포탈라궁은 7세기 초 손챈감포(松贊幹布)가 시짱을 통일하고 라싸에 도읍을 정하고 강대한 토번(吐蕃) 정권을 수립한 뒤 641년, 당나라와 화친하기로 결심하고 당태종의 조카딸인 문성공주(文成公主623~680)를 황비로 맞으면서 마포일산(玛布日山) 정상에 건축한 궁전이다. 포탈라궁은 면적이 35만 제곱미터이고 실제 사용면적은 13만 제곱미터인데 방이 999개이고 높이는 115.7미터로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대 궁전이다.

우리 일행은 포탈라궁에 이르러 순번대로 입장을 기다렸다. 가이드 해설에 따르면 포탈라궁에 들어가려면 5~7일 전부터 실명제로 예약을 해야 하는데 예약 순서와 시간 및 인원수를 제한하는데 하루의 방문인원을 5000명으로 공제한다고 한다. 포탈라궁은 순수 목재, 석재, 흙으로건축하였는데 과도하고 무리한 중량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포탈라궁은 20분마다 한번 씩 관광객을 입장시키며 인원수도 제한하기에 우리 여행단도 두 조로 나뉘어 한 조에 14명씩  입장했다. 

포탈라궁 안은 촬영을 금지한다. 목재와 석재, 흙으로 지은 궁전은 수차례의 지진을 견뎌냈다. 

두시간 동안 포탈라궁을 참관하면서 장족 인민들의 슬기로운 지혜에 감탄했고 시짱의 중심 불교의 총본산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기입된 이유를 알게 되였다.

7박 8일의 여행을 마치고 제남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랐다. 기복을 이룬 청장고원 대설산이 내려다 보인다. “시짱이여 잘 있으라, 다음엔 세계 최고봉-주무랑마봉에 도전해 보리라!”라고 나는 속으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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