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귤

 

바가지 물이 하도 그리워
박 귤로 억지로 만들었더니
하늘과 구름이 한목에 목을 메어와
그만 꺼억꺽 꺼억꺽
기러기 노래를 불렀어

 

6월이 오는 소리

 

봄날이 여름으로 흘러
바람 소리에서 바닷소리 들리면
등롱꽃 향기 데롱데롱 맡다가
문득 밀려오는 풍입송에
송진 향기 어린
너의 손이 생각난다
6월을 맞아
바닷소리에서 비행기 소리 들리면
갈매기와 파도의 내음 맡다가
가슴을 두드리는 고동 소리에
잊혀진 봄날이 보름달처럼 차오른다
이제 6월이 가면
푸르름들은 저만치 물러나 서 있을 테고
우린 두 손 내밀어 산새를 불러보리라


 

노을소



호숫가 언덕진 곳
난 여기 엎드려 있겠소이다
꽃이 피고 꿀벌이 붕붕거려도
이름 모를 내음들이 코를 간지럽혀도
한 눈 팔지 않고 엎드려 있겠소이다

단 고개는 들고 있겠소이다
이제 노을이 종소리처럼 피어오를 테니까

난 여기가 좋아 엎드려 있겠소이다
구름이 몰려오고 폭우가 덮쳐도
천둥번개가 수면을 갈라도
난 잠자코 엎드려 있겠소이다

단 목은 빼 들고 있겠소이다
이제 노을이 부채처럼 펴질테니까 

난 그저 엎드려 있겠소이다
꽃이 지고 나비가 가도
제비와 잠자리가 꼬리를 감춰도
난 숨죽이고 엎드려 있겠소이다

항상 고개는 들고 있겠소이다
이제 노을이 울음처럼 온누리에 차오를테니까


그래도 개않다

 

눈 내리는 날엔
아무래도 개않다
아무런 나무라도 개않다
같은 값이면 잎이 좀 남아있는 나무였으면 좋겠지만
뭐 가로등이라도 마다않겠다
조용히 서서 첫눈을 다 맞을 수만 있다면

첫눈처럼 처음처럼의 나가 되지 못해 약간 서럽겠지만 그것도 개않다
오래도록 첫눈과 마주할 수 있다면
그러다가 코에 불이라도 나면 선물로 삼겠다

그런데 이 고장 첫눈은 봄을 닮았다
바로 사라진다
그래도 개않다

최유학 프로필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조선언어문학학부 부교수. 
저서 <박태원의 문학과 번역>(2010. 신성출판사) 등.
국내외 학술지에 20여 편의 논문 발표.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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