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새
 

잎새에게도 귀가 있다 
얼굴이 붉게 물들 때
땅이 이름 불러주면 
치마폭을 감싸쥐고 
미련없이 뛰어내린다

땅이 왜 부르는지 
누가 알려준 적도 
물어본 적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거역하지도 않는다 

뭉쳤다가 흩어졌다가 
다시 뭉쳤다가 
뒹굴뒹굴 구르다가 
흩날리다가 
밟히다가 
채이다가 

볼품없이 찢기우고
가슴 사이로 
바람이 제 집인 양 들락거린다 

파묻혀 썩게 될 
흙냄새를 맡으면서도 
호젓하게 갈 일이란다 
온몸이 산산히 부서져도 
뿌듯하게 갈 일이란다 

◎ 연변문학 2023년 4기 발표

 

첫눈 
 

얼마나 사무쳤기에 
온 몸 부르르 떨며 
맨발로 떠다니나요

심술궂은 바람의 성깔에 
미친 듯이 춤사위 펼쳐가며 
허공을 헤매이다 헤매이다 

가까스로 산에 들에 
나뭇가지에 내 어깨 위에
깃털처럼 천천히 내려앉더니
소리없이 녹아버리는 순간,

가슴이 잔잔히 젖네요
눈시울이 뜨거워지네요

◎연변문학 2022년 8기 발표

 

 칡넝쿨
 

차마 서러워 말 한 마디 못하고 
눈물 삼키며 살아온 
길은 수천 갈래
허나, 허공을 향해 칭칭 감아올라야 하는
그것은 숙명이거늘 
밟히고 베이며 손발이 피투성이 되어  
이 악물고 한 발 두 발 기어오른 날들 
나무도 바위도 
고맙게 등을 내주었다
미안한 것은 나로 인해 그들이
목이 졸리고 숨 제대로 못 쉰 채
희생 당한다는 것
그러나, 알리라
청산이 소리쳐 부르면
뻐꾸기도 불러와 노래하게 하고
쉬어가는 나그네의 머리 위에
수실같은 꽃을 피워 
근심 풀어주며 살았노라고
말하리라 

◎연변문학 2022년 2기 발표


 

 낮달 
  

초가집 댓돌 위에 
다소곳이 놓인 
흰 코고무신 한 컬레 

모진 세월 속에 
뒷마당 올망졸망 장독대 
속 깊은 토장은
하루하루 곰삭혀 익어가고 

앞마당 가로지른 빨랫줄에
사시장철 떠드는 참새소리에도 
님 오시나 귀 쫑긋 세우는 여인 

키재기 옥수수 무성한 텃밭에서 
하염없이 사립문 바라봐도 
먼 산 위엔 어디론가 흘러가는 
흰구름 몇 점뿐 

할머니 손톱눈 같은 낮달이 
백양나무 가지끝을 돌아와
빨랫줄 위에 걸린다

◎연변문학 2022년 2기 발표 

 

두견새
 

두견화 꽃잎
붉게 물든 
산자락에 
달빛도 붉게 물들고 

두견새 
구슬픈 울음소리 
새색시 옷고름도 
붉게 물든 밤

물소리는 천리를 가고
맷돌은 
돌고 또 도는데

입술 꼭 깨문 
새색시, 
두견새는 
소리높이 울었다

◎  송화강 2022년 1기 발표 


  雨后 
 

처서 즈음에 한 바탕
하늘이 울고 간 자리 

안색이 밝아진 먼 산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온다 

숙연한 자태로 서 있는 
말끔한 나무들의 눈빛사이

강물은 아쉬움 훨훨 털며
바다로 엄살해간다

가을바람 엉덩이 물어놓고 
말없이 사라진 헐떡임

폈다 지는 꽃잎처럼 
더위도 스스로 갈 때를 아는가 보다

◎    송화강 2022년 1기 발표 


 아버지 생각 
 

다리 지나 
강물 건너 
저 멀리 앞산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사는
산비탈로 갔습니다.

숲이 무성한 산밭 아래
키재기 하는 쑥부쟁이 엉겅퀴 망초꽃들 
황페했던 땅이
그들 차지였습니다.

하나, 둘, 셋......
좌우로 출렁이는 옥수수를 
나는 세이면서 

황무지 개간한다고 
새벽부터 곡괭이 둘러매고 나섰던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아롱아롱납니다.

옥수수들은
바람부는 대로 흔들며 
저만의 부르스를 추었습니다
아버지따라 수년간 배웠는데 
아직도 흉내 못내면서... 

◎ 한국 오늘의 가사문학 2021년 30기 가을호 발표 

 

방황
 

파아란 하늘 저 흰구름은 
바람 타고 두둥실 
어디로 흘러가나

드넓은 세상 속 
광활한 저 지평선 위에
여러 갈래 길들이 많지만 
내 갈 길은 어디에 

바람이 불어온다
풀꽃들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풀꽃들이 힘을 주어 
뒷발꿈치 들어보나 꿈쩍 않는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는
어디에 둥지를 두고
날으는 걸까

심송화 프로필

연변대학 정치학과, 장춘공대 영어학과 졸업
재한동포 문인협회 회원 
한국 디카시인협회 중국지부 회원 
연변문학 등 간행물에 시 발표. 동북아신문 등 온라인 신문에 디카시 발표
제2회 중국 한글사랑 디카시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
동포문학 13호 디카시부문 우수상 수상 
제6회 경남고성 국제한글 디카시공모전 대상 수상 
현재 서안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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