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조선말 표기법으로 되어있습니다.

조선언어문화진흥회에서는 해마다 "9월 2일 ‘조선언어문자의 날’ "을 맞이하여 국내외 사회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나와 조선어’ 에 관한 수기를 공모하고 있다. 관심 있는 사회인과 학생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엄마 품에 안겨 처음 배운 말이“엄마”였고 조선족 중소학교를 다니고나서 조선족 중고등학부에서 사범교육을 받고 조선어문전업을 전공하면서 37년째 조선어문교직에서 재직 중이니, 나의 삶은 조선어를 떠나 론할 수 없는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 그 수많은 날들중에서 내가 조선말과 조선글을 가르치는 조선어문교사로서 감동받고 주변에 감동을 주었던 나날들이 있었다.

2018년 10월말 어느날, 교사 회의가 있는 날이였다. 월말 회의라 관례대로 각 부문 령도들이 그달 공작을 총결 짓고 다음 달 계획들을 발표하였다. 중3 졸업학년 두개 학급 조선어문학과 교수를 맡고 있었던 나는 령도들의 발언을 무심코 흘려듣고 있었다. 졸업학년의 중심공작은 고중 입시를 위한 학업이였기에 학업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행사는 나와“무관”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교장선생이 11월 중순에 진행될 조선어 역할극활동에 대해 발언을 하는 도중 나는 소스라쳤다.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말이 들려왔기때문이다. 역할극활동에 중3 두개 학급도 참여하라는 것이였다.

회의 결속후 교장실을 방문했다. 웬 영문이냐고, 졸업 학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학업이 아니냐고, 현재까지 중3에 한해서는 줄곧 모든 활동에서 배제해주는“배려”를 해주지 않았냐고, 다른 학급에서는 학기초 계획대로 역할극을 련습한지 이미 한달이 훨씬 넘고 요즘은 막바지 리허설과 도구준비를 다그치고 있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나에게 예고도 없이 웬“폭탄선언”이냐고. 나의 련발질문을 잠자코 듣고 있던 교장선생이 입을 열었다.

 “리선생,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연극준비는 어려울테니 경연에는 참가하지 말고 집체 시랑송을 준비해서 올리면 어떨까요? 아시다시피 근 몇년간 학생수도 줄고 학급도 감소되다보니 이번 활동에 참여하는 연극도 적고 내용도 단조로워요. 참여가 중요하잖아요.”

    무슨 말을 더 하랴. 교장선생의 말에 리해도 갔다. 근년 들어 조선족학교마다 학생 수가 줄고 있어 학교운영에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였다. 우리 학교도 례외가 아니였다. 이미 대회에서 공포한 결정이라 취소하기도 딱한 일이였다.

밤잠이 오지 않았다. 

 ‘집체 시랑송인들 어디 쉬운 일인가? 중3은 일분일초가 금싸락같은데 무슨 시간을 리용해 련습한단 말인가? 참여 안하면 몰라도 참여한다면 어찌 최고급 학년이 어수선하게 무대에 오른단 말인가?’ 

장밤 몸을 뒤척이며 생각을 굴려봐도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고 밤이 깊어 갈수록 정신은 더 말짱했다.

 ‘내 학생들이 어설픈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게 할 수는 없어. 내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 애들도 원치 않을 거야. 이제라도 준비하자. 무엇을 무대에 올리지? 3대 고전인‘심청전’,‘춘향전’,‘흥부놀부전’그리고“백설공주”,“신데렐라”등 유명 동화들은 이미 기타 학급에서 준비 중이고… 위인들 형상을 올려 볼까? 아, 윤동주! 안중근!’ 

벌떡 일어나 앉으며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이튿날 모든 일을 제쳐놓고 극본을 썼다. 시간이 촉박하므로 한 학급에서 명장면 한장면씩만 연기하기로 했다.〈별의 시인 윤동주〉란 제목으로 윤동주시인이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심문 받는 장면과〈민족 영웅 안중근〉이란 제목으로 안중근의사가 할빈역에서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하는 장면을 무대에 올리기로 작심했다. 두 학급 모두 남학생 수가 적어 주요인물 몇 인물을 남학생 인원수에 맞춰 설정했다. 윤동주의 시〈쉽게 씌여진 시〉,〈새로운 길〉, 안중근이 장거를 앞두고 쓴 시〈장부가〉그리고 안중근의사의 어머니가 최후를 앞둔 옥중 아들에게 쓴 편지를 녀학생들의 집체 랑송과 랑독으로 연극 중간에 넣음으로써 두 학급 전체 학생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연극에 참여할 수 있게 극본을 작성했다.

대본이 나온 다음 두 학급 조선어문 과대표더러 제비를 뽑아〈별의 시인 윤동주〉,〈안중근〉을 선택하게 했다. 

다음은 남학생들에게 극중 인물들을 배치해야 했다. 

 〈별의 시인 윤동주〉를 선택한 1반에서는 기질적으로 윤동주시인 형상에 접근한 박병량에게 윤동주 역을 시켜보니 딱이였다. 키가 훤칠하고 듬직한 류광욱에게는 송몽규 역을, 키가 작고 통통한 김흠에게는 일본형사 역을 맡겼다. 

 긴장한 련습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긴박한 학업중에도 잘 따라주어 자투리 휴식시간을 리용해 대본을 외우고 시를 외우고 연기를 련습했다. 무대 리허설은 막무가내로 조선어문수업시간을 점했다. 따로 점할 시간이 없었다. 아래 학년들은 학생수가 적어 한학급으로 편성하였기에 다른 조선어문교사들은 연극 하나에만 신경을 쓰면 되였지만 나는 짧은 시간 내에 두 연극을 책임져야 하니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앞뒤로 뛰여다니다 보니 며칠 안지나 체중이 2키로나 빠졌다. 

 ‘다이어트도 되고 일거량득이네.’  

 홀로 쿡 웃었다.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였다. 

 〈별의 시인 윤동주〉연극에 족쇄와 수쇄가 필요했다. 현지 상점과 인터넷 쇼핑몰을 뒤졌으나 마땅치 않았다. 머리 회전이 빠른 녀학생 리미선이 아이디어를 냈다. 검은색 테프로 만들어보자고 했다. 만들어보니 신통했다. 손목 발목을 안 죄고 비용도 절감하는 굿 발상이였다.

 〈안중근〉연극에는 복장이 난제였다. 극중 환경이 겨울 할빈역 플랫홈이라 극중 인물들이 검은색 코트를 입으면 좋을 듯싶은데 검은색 코트가 있는 애는 없었다. 골머리를 앓는 중인데 학생들이 이튿날로 다 해결됐다고 했다. 부모에게 검은 코트의 용처를 얘기 했더니 선뜻 갖춰주겠다고 하더란다. 

 모형 권총, 캡 모자, 중절모, 지팡이 등 연극에 필요한 도구들을 교사 췬에 올려 도움을 청했더니 주변 교사들이 너도나도 나서 해결해주었다.

 연극이 순리롭게 준비되여 가던 중, 정식공연 이틀을 앞두고 돌발상황이 일어났다.〈안중근〉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수행하다가 총알을 먹는 역을 맡은 민병길의 숙모가 사망하였다. 병길이에게 엄마나 다름없는 숙모였다. 연기 분량이 많지 않지만 대역을 시킬 남는 남학생이 없었다. 집체 시랑송에 참여하는 녀학생을 한명 떼서 남장을 하게 하여 시켜볼까 고민중인데, 정식공연 전날 리허설 현장에 병길이가 나타났다. 부석부석한 얼굴, 충혈된 눈… 남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다가가 병길이를 안아주고 녀학생들은 엄지를 내밀며 박수를 쳐주었다.

  드디어 정식 공연날이 되였다. 

 학생들은 준비한대로 열연했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족쇄를 찬 손으로 책상을 치며 교활한“일본형사”의 유도심문에 맞서 신랄하게 반박하고 따지며 침략자의 추악상을 까발렸고 녀학생들은 윤동주시인의 나라를 잃은 괴로움과 새날에 대한 갈망을 애잔하게 읊었다. 

    ……

  륙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쉽게 씌여진 시」부분

 저항 시인의 절규에 관중들은 숨을 죽였다. 

  “탕! 탕! 탕!…”

 원쑤를 저격하는 통쾌한 총소리가 울렸다. 이토 히로부미 일행은 가을바람에 수수단처럼 쓰러졌다.

  “코레야 우라!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안중근”의 웨침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관중석에서 우뢰같은 박수가 터졌다.

   “옳은 일을 하고 받는 처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거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은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사형 선고를 받고 부모 먼저 마지막 길을 떠나야 하는 불효를 저지른데 대한 죄책감을 담은 아들의 옥중 편지에 안중근의사 어머니의 회답편지는 구구절절 비장하면서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영웅의 어머니 역시 비범한 인물이였다.

 공연이 결속되였다. 성공적이였다. 

 불운의 시대를 살았던 윤동주 시인의 예민한 문학적 감수성, 억울한 죽음, 새날에 대한 열망, 죽음을 초개같이 여긴 안중근 의사의 영웅적 기백, 용맹과 치밀함으로 이뤄낸 장거, 영웅 어머니에 대한 경의를 학생들은 몸과 마음으로 표현해 내였다.

 “리선생, 안중근 의사의 만세 삼창을 들으면서 가슴이 먹먹하고 벅찼어요.”

  교장선생의 말이였다.

 “리선생, 조선족 사람중에 윤동주와 같은 시인이 계시군요.”

 평심에 참여한 한족교사가 옆에 앉은 조선족교사의 도움을 받아 윤동주시인에 대해 알게 됐다며 말을 건네왔다.

 “안중근 어머니의 편지 랑독을 듣는데 눈물이 났어요. 위대한 어머니예요.”

 아이들의 공연을 보러 온 학부모의 말이였다.

 학교에서는 계획에 없던 특별상을 중3 두 학급에 발급했다. 

 교실에 가보니 환희의 도가니였다.

  “와, 생각밖에 상장 탔다. 상장 탔어!”

  “선생님, 이번 활동이 지금까지 가장 의미 깊은 활동이였어요.” 

   “윤동주 시인, 안중근 의사 두 인물,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겁니다.”

   “우리 학급 연극이 최고였어. 춘향전, 심청전, 흥부놀부전… 너무 많이 봤잖아.”

   “백설공주, 신데렐라… 우리한텐 유치해.”

    ………

긴장, 흥분, 감동의 련속이었던 활동이 끝나고 나니 밀린 3주간의 교수진도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그런데 학생들이 금방 마음을 가라앉히고 학업에 마음을 붙이는 것이였다. 시인과 영웅의 형상이 학생들의 학습과 생활에 긍정적 역할을 한 모양이였다.

이듬해 2019년 7월, 학생들은 고중입시에서 우리 지역 조선족학교중 조선어문학과 1등의 성적을 따내였다.

  잊을 수 없었던 감동의 나날들은 이미 3년 전 추억으로 되였다.

지난 해 12월의 어느날, 모 대학교에 입학해 재학중인〈별의 시인 윤동주〉연극 제비를 뽑았던 2반 조선어문 과대표 정선아한테서 련락이 왔다. 대학 동아리모임에서 윤동주의 시를 중국어로 랑송하고 싶은데 번역이 잘 안된다고 했다. 나는 윤동주 시집 중국어 번역본《별 헤는 밤(数星星的夜)》을 소개해주고 번역 고수가 번역한 윤동주의 시 몇편을 인터넷에서 찾아 넘겨주었다.

며칠전 집 근처에 새로 개업된 불고기집에서 안중근 역을 맡았던 학철이를 만났다. 방학간을 리용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학철이는 워낙 자신감이 부족한 학생이였다. 학업성적이 좋지 않아 고중에도 겨우 붙은 학생이다. 그가 고중학업을 끝까지 견지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고중을 졸업하고 괜찮은 기술학원에 입학했다. 학철이는 깍듯이 인사를 하고나서 의젓한 모습으로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고 있었다. 가게 사장에게 학철이를 잘 부탁한다고 했더니 눈치 빠르고 일을 잘한다고 칭찬을 했다.

조선어는 나의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키워주는 자양분이였고 우리의 시인 우리의 영웅은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는 등대이다.

나의 골수와 령혼에 새겨진 조선어여, 영원하라!

/朝鲜语言文化之魂

이준실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협회 중국동포디카시연구회(지부) 회원
‘동북아신문’에 디카시 해설 연재 중
시, 디카시, 디카시 해설 수십 편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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