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마른 명태를 씹듯이 
빈정대며 오는 겨울비에 

어깨를 추스려 올려도
나이들면 처지는 남자들 키처럼 
주눅 든 겨울

고드름 한줄이라도 걸어두려고
안깐힘을 쓰나
찬바람조차 훼방을 놓아 
뜻대로 되지 않는다 

눅눅한 허공만 남았다
꿋꿋했던 어제는 다 지나간 이야기라고 
비웃으며 멋을 내느라 
팔자걸음 하는 겨울비 

후줄근 해졌던 겨울은 
밤새 잠꼬대 하는 비를 
차겁게 얼궈놓고 
우뚝 일어 선다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던 
철부지 비
건방진 팔자걸음 거두고 
공손히 두손잡고 바라본다 
다시 털고 일어난 겨울을 

 

달리는 자동차들


달리다가 갑자기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다

차라리 잠깐 쉰다고 생각하자 
억지로 가다보면 
벌금 딱지를 받기 마련이다

네 바퀴가 둥글어도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는 감정은 
벼랑으로 떨어질수 있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것이
생각만큼 슬픈 일은 아니였다 

브레이크 걸었던 마음에
다시 시동을 건다 
멈춘다는건 끝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작이였다 

이럴 때 떠오르는 한마디
혀에도 브레이크를 달자
내 뱉을때  남이 상하지 않도록 

 

단풍

 

날염한 첫날 이불이다 
새 각시의 보조개 단으로 넣고
새 신랑의 웃음 바탕으로 넣었나

불타는 안방
펴 놓은 첫 날 이불
산 하나 덮는 순간이다

바람도 불이 되였나
타오르는 노을까지
마지막 빛을 이불섶에 놓고 가고  

청실홍실 늘이던 
어제날의 이야기도
세월에 삭아내려 

한번도 안 가본 길 떠난다
한잎 또 한잎 

 

된장찌개


뚝배기에서,
처음 만났다 
된장, 감자, 호박, 두부.....

서먹서먹하게 떠 있는 사이로
된장이 스르르 녹으며
서로에게 스며든다

딱딱하던 얼굴들이
차츰 부드러워지고
앞다투어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낸다

보글보글 지글지글
나는 누구냐
너는 누구냐

서로 문드러지며
어우러져가는 맛 

내가 사라지고
네가 사라지는 동안
새로운 그 무엇이 되어간다


 

눈석임물

 

오래동안 꿍져 두었던 마음
한겹한겹 풀며 
늘여놓는 넉두리에 
멧새가 귀를 쫑긋한다

친구와의 오해 
아들의 사춘기
남편의 잔소리
꾹 참았던 이야기 

해빛이 내 심장을 쳐
산기슭으로 내려오며 
푸른 하늘 바라보다 
씨익 웃는다 

흘러가면 그만인 것을
끙끙 앓기도 오래 앓았다 

흥얼거리는 노래소리에
산꿩도 옳소 옳소 하며
박수 쳐주며 날아간다 


 

자목련

 

애도 학교 가고
남편도 출근했다 

양말 챙겨주고 책가방 매어주며 
급했던 시간 지나 
뜨거운 물로 끓인 커피잔 들고 
후 내쉬는 숨 

꺾으며 다가오던 햇빛도
그림자 던져주던 나뭇가지도
스쳐 지나가며
멍한 나를 엿본다 

아주 붉지고 않고
그렇게 희지도 않은 
자주빛 목련꽃이 
나는 좋다


 

알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깜깜한 세상에서 헤매이다

한방 얻어맞고
사정없이 내리꽂히다가
새롭게 맞이한 세상

가을이라고 한다
봄도 모르고
여름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눈 못 뜨고 있을 때 
꽃들도 다가 왔었고 
햇빛도 온몸 달구며 지나갔단다 

세상을 알게 될 때는 
이미 가을이었다
 

배고동소리

 

간다고 간다고
붕붕 울리는 배고동 소리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잡아끄는 바다의 울음소리

가기 싫다고 
안 가겠다고 
발버둥치는 소리
왜 가야만 하는 건지 

다시 올거라며
잡아끄는 바다의 손길 뿌리치지만
언제 또 올지 몰라
붕붕 울부짖는 소리

길 떠나는 나그네의 설음
다시 올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절규 
떠나가는 배
잡지못하는 바다

배는 그렇게 떠나가고
눈물 닦으며 바다는
지나간 배길을 지운다 

배고동소리는 다시 울리지만
기다리는 배는 돌아오지 않는다

작가와 문학 2023년2월11일 


 

두번 피는 월계화(月季花)

 

얼마나 그리웠으면
피를 토하며 갔다가 
또 다시 찾아왔을까 

담장에 기대어
멀리 바라보며
감았던 마음 풀고 푼다

비 속에서 파르르 떨며
그 이름 다시 불러보지만
들려오는 건 자지러진 매미소리 뿐 

하늘을 물들이며 놀던 해도 
보기가 안쓰러워
훌떡 산을 넘는다

달도 알고
해도 아는데
오직 너만 모르는 기다림

아닌 척, 가시를 치켜세우며 
잊었다고 말하지만 
또 다시 뚝뚝 떨어지는 붉은 피


 

갈대 

 

새처럼 가벼워도 
날 수는 없어 
허옇게 세어가는 머리 

그래도 날고 싶어 
몸을 한껏 흔들어 본다 
온몸이 삐걱거린다 

뒤 안 돌아보고 
날아가는 청둥오리떼 바라보며 
다시 또 이 악물고 퍼덕거린다 

한평생 날 수 없어도 
꿈은 버릴 수 없는 갈대

박수를 쳐 주는 
바람 덕분에
멈추지 않는 날개짓 

이해란 프로필 

1965년 룡정 출생, 1987년 길림대학 화학학과 전공 졸업. 
<연변문학 >, <송화강 >, <도라지>, <장백산>, <청년생활>, <연변녀성>, <료녕신문>, <연변일보>등 잡지와 신문에 시와 수필 발표 
한국 <작가와 문학 >, <오늘의 가사문학>에 시 발표 
현재 대련 거주,  회사 사장.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