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의 독백 
 

마침내 그날이 왔다 
한 겹 한 겹 꽃 피는 일 보다도 
단단하게 풋열매 맺는 일 보다도 
더, 더 잘 익은 마음으로 떠나는 일 

어느 사내의 투박한 손길따라 
엄마 품에서 떨어지던 날 
나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고마운 엄마, 나 간다 
언젠간 엄마도 속이 텅빈 항아리처럼
바싹 말라들지도 몰라

엄마는 대답했다 
이쁜 내딸, 서러워 말어라 
세상은 다 그렇게 왔다가 가는거야 
그저 살아왔던 매 순간 순간을
처음처럼 호흡하며 기억하거라 

 
택배 
 
                           
엄마!
또 택배 보내셨네요
휘여진 허리 
툭 터진 옆구리 
헌신도장 꾸욱 박힌 택배상자
뚱 하니 나를 쳐다봅니다 

붕대마냥 칭칭 감긴 테잎 사이로 
엄마 닮은 무말랭이가
나를 보고 활짝 웃습니다 
골진 사이로 귀뚤귀뚤 
쓰르람 쓰르람 풀벌레 소리도 들립니다 

노란 단풍잎 편지도 
구수한 냉이 향기도 담으셨습니다 
아, 엄마는 고향의 들판을 통째로 보냅니다 

파란하늘 고추 잠자리 날아예고 
사과배 노랗게 익어갈 때에 
엄마의 지문 먹고 사는 여식도  
땡볕아래 엄마처럼 붉게 익어 갑니다

 
 

신발 
 

나는 항상 집 문앞 어두컴컴한 곳에서 
최전방 수호병처럼 
대기상태로 간택을 기다린다 

삐걱이는 문소리에 늘 가슴 뛰지만 
어디로 가느냐 
묻는이도 없고 대답하는 이도 없고 
가시밭길 돌부리에 채이고 
깨지고 부서지고 초라한 몰골로 
너덜너덜 헤져서야  
나는 비로서 눈물겨운 아픔을 알고 

이 몸 닳고닳아 저벅저벅 울면서도
그들과 같이 나침판 인생 속  
풍랑에 휩쓸면서 같이 뒹굴었지만 
생각없이 사납게 찢겨져서 
헌 신짝의 최후를 맞기도 한다 

나는 늘 땅에 코 박고 납작 엎드려 살지만 
그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기에 
그들이 내 몸 짓누르는 
무게라 생각하지 않는다 

 
할미꽃               
 

겨우내 겹겹이 둘러싼 무명옷들
꽃샘추위에 등 떠밀어 보내고 

휜 허리 질끈 동여매고 
지팡이 짚고 서둘러  
언덕 넘어 오신다 

봄햇살 마중 나와 등 굽혀 
다소곳이 인사한다   

북풍한설에 추웠노라고
종달새 불러 들여 
머리 위에 풀어놓고
양지짝에 홀로 앉은
머리털 희끗희끗한 할머니

오늘따라 더 초조해보임은
곰살맞은 할아버지 보고싶어서일까

동구밖 언저리에
봄바람이 실랑이를 벌인다

 
민들레 홀씨  
 

노랑 저고리 
어디다 벗어두고 

하얀 베보자기 
이고 지고 

꼬불꼬불 꼬불길 
영 넘어가느냐  

아프다 말도없이  
한 올 한 올 바람에 뜯겨 
야위여가지만 

너의 일편단심 
봄 오면 다시
산에 들에 수 놓으리

 
꽃병
 

누가 흘리고간  사랑인데 
내가 한아름 품어야 합니까?
사랑의 세레나데도 없이 
장미꽃 한 다발 가슴 속에 푸욱 안겨줄 때
영문 모를 즐거움에 
소녀처럼 설레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특별한 날 소중한 사람의 
사랑을 내 사랑인양 짝사랑 하며 
마음에 품고 잉태하고 맙니다 

한 서너날 쯤 지나서인가
양수물의 영양분 먹고 
해를 매단 햇빛에 세수하고 
참방참방 물장구 치던 아가들
곱디고운 얼굴처럼 홍조 띄울 때 
나는 여느 엄마들처럼 흐뭇하였습니다 

쉴새없이 부풀리는 
꽃들과 노닥거리다 보니 
어느새 물은 탁해지고 
흐드러지게 이쁘던 얼굴에 
검버섯 피어오르며 한 잎 두 잎 야위여갈 때 
떨어지는 꽃잎처럼 내 눈물도 수북하게 
발 아래 쌓입니다 

아, 멈춰버린 내 사랑 
또 떠나 보내야 하는 내 짝사랑 
누가 집 나간 넝마같은 
내 마음 언저리 꿰매여 줍니까?


 
나를 깨우는 기차소리

 

푹푹 쿡쿡쿡쿡
꼭 이맘 때면 나를 깨우는 저 기차소리 
철로를 꼭 붙잡고 큰소리로 통곡한다

길옆에 나란히 늘어선 야자수들
개선장군 맞듯이 잎새 휘휘 저으며 
팡파레 팡팡 쏘아올린다 

내 인생기차도 수많은 터널 지나서
고향 노래 타향 아리랑 부르며 
자그락 자그락 여기까지 왔는데.....

휘리릭 휘리릭
발에 못 박고 서서 가슴을 
붙잡는 어머니가 지나간다 

휘리릭 휘리릭
눈망울에 눈물 그득 담고
손 흔드는 아버지가 지나간다 

한 장 한 장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해바라같은 얼굴들 

아, 가고파라 
탯줄 묻은 내 고향으로 
아, 안기고 싶어라 
내 부모 형제들 품으로

기차가 다시 레일 밟고 돌아오듯이
나도 돌아가련다 

금의환향 귀향 아리랑 
노래 부르며 
나, 돌아가련다

 
마음으로 그려보는 봄
 

방안이 화안해졌다 
꽃이 핀다
봄이 온다

이랴이랴
아버지 정겨운 목소리 타고 
보글보글
엄마 된장국 끓이는 소리
아지랑이로 피어오르는

뱃쫑 뱃쫑
제 세상 맞은 종다리
구름 속에서 열리는
평화로운 봄 축제

엄마는 익숙한 듯 봄을 캔다
아버지는 잽싸게 봄을 심는다 

한하나 프로필 

길림성 교원 진수학교 연수
길림성 제1기 유사전업 교학능수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협회 중국지부회원 , 연변가사협회 회원  
연변일보 등 매체에 시 다수 발표
연변텔레비죤방송국TV매주일가 다수 발표 
연변텔레비죤방송국 2021년 TV매주일가 우수가요 10수에 당선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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