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

 

없다
눈 닦고 봐도
흔적 없다

카랑카랑한 하늘
새벽 4시 20분
금방 지워진
한 조각 그림

퀭하니 바라보다
띄운 무심했던 실수
20분이 토하는
후회의 반성

24시간 지난 후 
이 점에서 다시 봐도
있을 수 없는 풍경
엄청난 시간의 기다림

놓쳐 버린

어디 갔니

 

 
 얼굴

                          

얼에 담긴 
솔직한  사연들

낭비한 시간 속에
이젠 익숙함도 무뎌
오가는 허풍에 거품 물고

건강했던 모습도
세월에 찌든 간판으로
누렇게 뜬 몰꼴

뼈대 없이 밀려간 시간 속에
전철 타고 카드 찍고 
가게 가고 결제하고 

그렇게 그렇게 살아온 
한물간 연륜의 반사경

 
 

                        

한 달에 
몇 번 잘린 뼛조각
층집 높이 넘었겠지

그동안
마디마디 옹이 맺힌 삶
한 모퉁이 둥지 틀고
가꾼 풋 자식들

뙈기밭 내려놓고
타향 땅 건너설 때
무거웠던 발길
중지 튕겨 점괴도 봤었지

얼떨결 가버린 고왔던 손
뚜렷이 자리 잡은 한 자락검버섯
내리 뻗은 명(命)금도
손목까지 다았는데

두 팔 높이 드니
낮 서른 하늘 다일 듯
어느 날 조용히 놓고 갈 

고운 별 두 송이

 
 

    둥지

                          

기억 속에 잠겨둔
보금자리는 
늘 불안합니다

허한 바람이 잡은
차디찬 문고리
밥 짓는 내음 풍기듯
허기 불러옵니다

주소도 문패도 여전하고
드나들던 문 익숙한데
낯선 외로움이
처량하게 마주합니다

가족 그리워
다시 찾아온다면
아픈 기억 툴툴 털어
모닥불에 던지렵니다

애달픈 둥지는
널브러진 먼지 안고
고독으로 웁니다

 

 저 여인

                           

퍼드나무 숲 속에
서 있는 
저 여인 궁금하다

햇볕에 늘어 말리는
매미의 눈물 
등으로 가린
그 앞모습 보고 싶다

한 세상 짙은 녹음
소용돌이치는데
마주한 세상 무엇이 안타까워 
등 돌려 서 있을까

푸른 숲 평화로움이
저 여인 속내라면 
무르익는 이 가을도 
곱게 물들 텐데

한가닥 저녁노을 잡고 
자지러지게 우는
저 매미의 속내을

당신은 아는가 

 
 

 퇴근길

                           

누군가 따라옵니다 
뒤 돌아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 뒷 따라오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 못 잊을 얼굴을 
되뇌고 또 되뇌면서
긴 터늘 어둠 속에 숨겼습니다 이 몸을

가쁜 숨결 진땀에 흠뻑 젖은 몸
문을 열고 들어서다
또 깜짝 놀랐습니다 
여직 그이가 절 기다리고 있었군요

커튼을 치며 바라본 달
빙그레 웃는 모습도
꼭 그이를 닮았습니다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는 
그리움입니다 

 
 

은방울꽃

                       

낮고 펑퍼짐 한 
거늘 진 곳

풀꽃 꽃대가 
입집 사이 비집고
한 뼘 몸체를 일으킨다

꽃대에 매달린 망오리
달음박질하는 봄의
진 풍경을 열람하는가

생김새도 색깔도
특별한데 없건만
돈독한 청아함 그 자체다

작다고 무시하지 마라
봄의 귀밑머리에 매달린
그 그윽한 향기는

이 세상을 
달갑게 품으리

 

 무제

      

넘쳐야 할 
그 어떤 자본도 없는데
도(度)를 넘었군

모난 조각이
인격인 줄 모르고
저지른 실수

허심 했어야 할  
존재를
곤혹 속에 넣었으니

세상은 누구나 지켜야 할
겸손이 건만
스스로 조이는 목덜미

신명금 프로필 

무역회사에서 퇴직.
재한동포 문인협회 이사. 문학지에 시 다수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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