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이종찬 광복회장은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1867~1932)의 손자이다. 그는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가산을 정리하고 6형제와 전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등 일생을 독립에 헌신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다. 1936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이 회장이 평생을 독립정신을 선양하는 데 바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지난 5월말 광복회장에 당선되자 많은 이들이 환영했다. 대를 이은 애국심과 국정 경험을 바탕으로 광복회를 바로 이끌고 독립정신 선양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전임 김원웅 회장의 문제에다 이 회장이 윤 대통령의 절친인 이철우 연세대 로스쿨교수의 부친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그와 여러모로 인연이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함께 일하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인연도 있다. 곁에서 지켜본 이 회장은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이다. 육사 16기인 그는 1971년 중앙정보부에 들어가 기조실장을 했고,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 위원을 거쳐 민정당 창당에 관여했다. 이후 11, 12, 13대 국회의원을 민정당에서 14대 국회의원을 민자당에서 했으니 골수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후 인수위원장을 거쳐 김대중 정부 초대국정원장이 되자 시중에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곁에서 지켜본 그는 권력욕 때문이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의 간곡한 설득과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 위기상황에서 헌신하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한 것일 뿐이었다.

대한민국 독립세력을 대표하는 이종찬 광복회장이 화를 냈다. 최근 육군사관학교가 교내에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 등 독립군 영웅 5인의 흉상을 옮기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불같이 화를 낸 것이다. 그는 지난 27일 국방부 장관 앞으로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 "민족적 양심을 저버린 귀하는 어느 나라 국방장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국방장관 자리에서 퇴진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한 길임을 충고한다"고 사퇴를 요구했다. 아울러 "독립영웅 다섯 분의 흉상을 없애고 그 자리에 백선엽 장군 등의 흉상으로 대치한다면 우리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분(백 장군)은 일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일제에 충성하는 길도 마다하지 않고 선택했지만 당신이 철거한다는 다섯 분의 영웅은 일신의 영달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라를 찾기 위해 생명을 걸고 시작했다.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고 강력 경고했다.

그러자 수도방위사령관, 합참차장을 지낸 3성장군 출신인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육사 37기)은 28일 자신의 SNS에 "대한민국 정체성을 저버린 광복회장이야말로 판단하실 능력이 없다면 즉각 사퇴하라"고 받아쳤다. 보수진영 내부에 자중지란이 일어난 것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후 우리 사회는 극심한 이념전쟁을 벌이고 있다.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 조차도 이념의 틀속에서 판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과거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계열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을 역사에서 지우고 우익 또는 친일 인사들이 새롭게 영웅으로 부활하고 있다. 때를 만났다는 듯이 극우적인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인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과거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을 보는 듯 하다.

여권내에서 조차 이같은 흐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SNS를 통해 항일 독립전쟁의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 씌워 퇴출시키려고 하는 것은 오버해도 너무 오버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인 김병준 한국경제인협회 상임고문도 지난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국정 운영 철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 '윤심'만 좇는 당의 모습이 윤석열 대통령을 (이문열 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주인공 '엄석대'와 같은) 독재자로 보이게끔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국가 위기 상황이다. 올해 경제성장율 전망치는 1%에 그치고 있고, 수출과 가계부채, 고용 등 모든 경제 부문에 빨간 불이 켜졌다. 이런 상황에서 극우세력들은 물 만난 듯이 연일 이념전쟁에 나서고 있다. 내년 총선을 노리는 보수 정치인들은 이에 부화뇌동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 이전은 '역사의 부관참시(剖棺斬屍)'이다. 자랑스러운 독립운동사에 대한 모욕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이념전쟁의 뿌리에는 윤 대통령이 있다. 그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무능한 권력은 항상 이념전쟁에 몰두했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