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철  (경제학박사, 여행 작가, 동북아신문 객원논설위원)

이남철 여행작가
이남철 여행작가

고대 그리스어인 형제(Adelphós)와 사랑하는(Philos)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미국 필라델피아는 펜실베이니아 주(州)의 최대도시이며 미국 북동부에서는 뉴욕시 다음으로 큰 도시로 미합중국 역사상 최초의 수도(1790~1800)이다. 2023년 기준 시 자체 인구는 약163만 명이며 광역시까지 포함하면 610만 명으로 인구에서 전(全) 미국에서 6위를 차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펜실베이니아 주의 주도(주정부 수도)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지만 주도는 해리스버그(Harrisburg)이다. 필라델피아는 뉴욕과 워싱턴 D.C.의 거의 중간 지점에 위치에 있다.  뉴욕에서 필라델피아의 거리는 467마일(747 km)이다. 

 

필라델피아는 1682년 영국 출신 퀘이커 교도 윌리엄 펜(William Penn)이 영국 왕 찰스 1세의 승인을 받아 정착한 뒤 펜실베이니아 주의 중심 도시로 형성되었다. 필라델피아는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인 도시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경주시와 같은 도시로 연중 많은 중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도 유명하다. 1776년 7월4일 독립 기념관에서 독립 선언문이 채택되고 1787년 9월 헌법 초안이 작성되었다. 독립전쟁 기간 내내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운동의 중심지가 되어 날로 번창하였다. 1787년 헌법회의 대표단이 인디펜던스 홀(Independence Hall)에서 역사적인 미국 헌법에 서명한 뒤 필라델피아는 1790년부터 1800년까지 미국 연방 수도로 자리매김하였다. 
필라델피아에서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 명소 대부분이 역사가 서린 도시 중심부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1776년 미국이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곳으로 유명한 자유의 종(Liberty Bell)이 있는 국립 독립역사공원(Independence National Historical Park)은 넓이 18헥타르(약 5만4,350평)이며 20여개 건물을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미국 독립선언서와 헌법이 미국 역사에 갖는 중요성과 세계의 법조인들에게 준 영향을 고려하여 독립 기념관 건축물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미국 국립 역사기념물로 지정된 건축물이기도 하다.
필라델피아에는 실내 푸드 코트인 리딩 터미널 마켓(Reading Terminal Market), 리튼하우스 광장(Rittenhouse Square), 세계 정상급 컬렉션을 소장한 필라델피아 미술관(Philadelphia Museum of Art), 영화 ‘로키’로 유명한 계단, 강변에 조성된 아름다운 스퀼킬강 공원(Schuylkill River Park) 등이 있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미국 독립기념관은 미합중국 탄생의 요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1776년에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것도, 1781년 13개 식민지를 통합하는 미국 연합 규약이 비준된 것도, 1787년 5월에서 9월까지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주재한 논의 끝에 미국 기본법의 토대가 된 연방헌법이 제정된 것도 모두 독립기념관에서였다. 독립기념관 건물은 앤드루 해밀턴(Andrew Hamilton)이 설계한 것으로 필라델피아 코먼웰스(Commonwealth)의 의사당으로 사용되었다. 1753년 완공된 이 건물은 2,080파운드(943㎏)의 종을 걸려고 했던 첨탑을 가진 수수한 벽돌 건물이다. 그러나 종은 두 차례나 금이 가 특별 누각에 옮겨져 보관되었다. 현재 첨탑에는 다시 주조한 종이 걸려 있다. 독립기념관의 중요성은 그 건축적 설계가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가 형성된 곳으로서 미국 역사에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닌 문서들을 입안하고 토론한 곳이라는 데 있다.

자유의 종(Liberty Bell).
자유의 종(Liberty Bell).

국립 독립역사공원을 거닐면서 초대 조지 워싱톤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 현장을 동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았다. 많은 방문객들이 그 앞에서 묵념을 하는 모습에 필자는 숙연함을 느꼈다.
필라델피아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 발간, 독립협회 결성, 독립문과 독립공원을 건립하며 조선 민중과 지배층에 처음으로 주권 재민의 독립 정신을 고취시켰던 서재필 박사의 활동 무대였던 곳이다.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55년의 세월을 보냈다.미국 최초 상·하의원 개최와 1793년 3월4일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 과 1797년 2대 대통령 존 아담스의 개회식 기념사를 한곳. 

필라델피아는 ‘세계 벽화 수도(Mural Capital of the World)’라고 불릴 정도로 벽화가 유명하다. 이곳의 벽화는 하나하나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민자들이 몰려들면서 벽이 낙서(Graffiti)로 넘쳐나던 시절, 필라델피아 시장은 낙서처럼 보이는 그래피티 대신 벽화를 그리는 프로젝트를 1984년 시작했다. 1996년부터 ‘뮤럴 아츠’(Mural Arts)라는 프로젝트로 본격화되었고 지금은 4,000개가 넘는 ‘괜찮은’ 벽화를 가진 도시가 되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벽화 전문가인 제인 골든이 합류하면서, 새로운 시도가 이어졌다. 주민들을 참여하게 하고 예술성 높은 벽화를 만들었다. 벽화를 중심으로 지역 사회가 뭉쳤다. ‘치유의 벽’ 프로젝트는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예술을 통해 마음을 표현하게 함으로써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길을 마련했다. 제인 골든의 슬로건 ‘예술이 삶을 구원한다’(Art Saves Lives)는 희망이 실현된 작업이었다. 2007년 영국 찰스왕세자 부부가 구경하는 바람에 유명해진 두 시간짜리 벽화투어도 있다.

필라델피아 벽화회는 연방정부, 시정부, 시티즌은행, 골드만 자산 등과 각종 기업의 참여, 비영리재단 등의 지원, 개인 기부금, 프로그램 운영 수입 등을 활용하여 수준 높은 작품으로 완성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필라델피아의 벽화 관광 수입은 최근 연간 11조원 규모의 경제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필자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리딩 터미널 마켓’(Reading Terminal Market)을 찾았다. Reading, 도서관인가? 상호만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시장은 1893년 문을 열었으며 필라델피아가 성장하면서 사람이 몰려들었고 자연스럽게 농산물을 사고파는 노점이 들어섰다. 길거리에서 농산물을 사고팔자 안전과 위생 문제가 생겼고, 야외가 아닌 실내 시장이 필요해져 리딩철도회사의 지붕이 있는 차고에 리딩 터미널 마켓이 탄생했다.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은 필리 치즈스테이크이다. 리딩 터미널 마켓에서 치즈스테이크 맛은 말로 형언할 수 없도록 맛이 있었다. 치즈스테이크는 핫도그 장사였던 팻 올리비에리(Pat Olivieri)가 1930년에 발명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핫도그를 변형해서 만든 이 음식을 한 택시 운전사가 처음 주문해서 맛을 본 후, 올리비에리에게 핫도그는 그만 팔고 스테이크 샌드위치만 팔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늘날 치즈스테이크는 그 자체가 관광 상품이 되어 맛을 보고 비교하려고 찾아 드는 관광객들을 위해 온종일 영업하는 유명한 가게들도 많다. 시장 안에 샌드위치로 유명한 ‘디닉스’(DiNics)는 미국 트래블 채널에서 2013년 미국 최고의 샌드위치로 선정한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얇게 썰어 구운 돼지고기를 긴 빵에 넣고, 잘게 다진 브로콜리 등 채소를 올려 만든 디닉스 샌드위치, 생각만 하여도 군침이 돈다.

필자는 미국 독립기념관 주위의 역사적 유적지 구경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보람을 만끽했다. 선각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심과 역사적 유물을 잘 관리·보전하는 행태를 교훈 삼을 만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아쉬운 마음도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이념 갈등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들을 자기 이념의 틀에 맞추어 평가하는 부족한 사고방식은 안타깝고, 그런 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라델피아 주정부, 시민단체, 연방정부의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협동의식과 합리적인 역사의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그들 간에도 많은 갈등과 혼란이 있지만 선진 민주 국가답게 대화를 통한 정책 수립과 집행을 시도하고 있다. 벽화도시로 만들어 많은 경제적 이득을 확보하는 정책은 우리나라 행정가, 정치가들이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필라델피아 사회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세계적인 벽화도시로 명성을 얻는 현실이 부럽기도 하다. 우리 언론에 잦은 외유성 해외출장이라는 비판을 이제 그만 받지 말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해외출장을 통해 정책을 착안하길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필자는 필라델피아 탐방 중, 오고 가면서 차안에서 함께한 딸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정치인들의 비판에 동행한 딸이 “아빠도 한때 정치인이 아니었나요?”라는 말에 정신이 반짝 들었다. 지금까지 행했던 나의 사회 활동에 대해 반성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내가 사회를 위해서 조그만 일이라도 할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필라델피아에서 뉴욕으로 오는 차안에서 내내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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