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1950년 2월 미국 위스콘신주(州)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Joseph R. McCarthy)가 폭탄 발언을 했다.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매카시의 발언은 이후 수년간에 걸친 '공산당 색출 마녀사냥'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는 음주운전 등으로 정치적 궁지에 몰리자 공산당 색출 캠페인을 벌였고, '미국판 문화대혁명'에서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고통받았다. 그 중에는 찰리 채플린도 있었다. 수년간의 조사에서도 공산주의자 명단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매카시는 1954년 정계에서 추방됐다. 정치 경쟁자를 '빨갱이'로 모는 매카시즘(McCarthyism)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21세기 대명천지에 그것도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에서 신종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고 있다. 육사는 소련 공산당 전력을 이유로 내세워 홍범도 장군의 동상 이전을 추진하고, 광주광역시가 추진하는 정율성 공원 계획도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처리수로 하자는 해괴한 말들이 나오고 후쿠시마 오몀수 방류를 반대하는 세력은 졸지에 공산당이 되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70%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데 그러면 이들도 공산당이거나 또는 공산당에 동조하는 게 된다.

이 신종 매카시즘의 중심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그는 지난 1일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일 협력 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는 윤 대통령의 분노와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증오가 느껴진다.

필자는 김대중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5년동안 모셨다. 그래서 대통령의 분노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대통령제, 그것도 한국 처럼 제왕적 대통령제를 하는 나라에서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국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이 '공산당 척결'을 외치면 행정부 각 조직들은 앞다투어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공산당 척결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하고 추진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국방부에서 벌어지는 독립운동가 동상 이전 소동이다. 군내 일부에서는 해군의 반대를 무릅쓰고 '홍범도함'으로 명명된 잠수함의 명칭 변경을 주장한다고 한다. 군함의 이름은 한번 정하면 바꾸지 않는다는 군의 전통적 관례를 벗어난 엉뚱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반공 몰이는 국론을 분열이키고 국정 동력을 불필요한 이념갈등으로 소진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는 모든 지표에서 빨간불이 켜졌고, 청년들은 좌절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과 정부가 과연 철지난 이념몰이에 몰두하는 것이 온당한 것이냐는 비판이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다.

집권후 단 한번도 야당 대표와는 대화하지 않은 채 일본 총리와는 협력을 외치는 대통령을 지켜보는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윤 대통령의 반공 몰이에 대해 야권만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런식으로 가다가는 중도층이 이반하고 내년 총선이 어려워진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 등 비주류들도 윤 대통령의 과도한 이념 공세를 비판하고 있다.

대통령은 외로운 자리다. 30%대의 지지도는 치아로 치면 풍치가 들어 이가 흔들리는 것을 의미한다. 절반이 넘는 국민들이 자신을 비난하면 역대 대통령들은 해외 국빈행사를 자주 만들었다. 해외에서의 환대가 위로가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와의 대화'에 몰입했다. '나는 욕을 먹더라도 역사에 남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경우 대부분 임기 후반부에 국정 동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역사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특이하게 임기초 부터 '역사와의 대화'를 하고 있다. 이는 아무래도 힘겨운 집권과정과 근소한 표차, 낮은 지지율, 여소야대 국회상황 등이 배경인 듯 하다. 거기에 더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국민들이 인정해주지 않느냐"는 섭섭함도 느껴진다. 

대통령은 국민통합의 리더십을 구현해야 한다. 과격한 이념에 매몰될 수록 지지도는 떨어지고 소수파 수장으로 전락한다. 치솟는 물가에 취업걱정으로 결혼조차 꿈꾸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철지난 반공타령이 무슨 감흥을 주겠는가? 윤 대통령이 평정심을 되찾아 경제와 민생에 집중하고, 야당과도 대화하는 '국민의 대통령'으로 돌아오기 바란다. 그 자신을 위해서도 국민을 위해서도 그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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