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한 뼘 키 
헐벗은 몸 
수행길에 꽂혔구나

평생을 
저며내는 
뼈 깎는 여정인데

묵묵히 
감내하는 삶 
한 순 간의 반딧불

 

 엄마

 

들녘의 
배고픔을 
가슴에 담고 서서

작은 산 
등에 업고 
더 큰 산 기다리나

날마다 
주먹구구로
계산하는 가마솥 

 
 입추

 

노각이 
하늘 보며 
콧노래 부르는데

매미가 
시샘 났나 
요란한 애원소리

시원한 
바람 한 줌에 
돌아오는 기러기

 
   메뚜기

 

넓은 들 
한가운데
신나게 뛰는구나

무엇이
간절해서
눈뜨고 기도할까

앞뒷발 
휘도록 뛰도
새 먹잇감 신센걸

 
  고향 들녘

 

동구밖
누런 들판
백노라 농익는가

논코물
말라더니
미꾸리 풍년이라

해거름
통발고기에
밤을 새운 들녘아

 

  락타 

 

산 하나 
짊어지고 
울리는 방울소리

깊숙이
남긴 자국 
새로운 길이였나

지우고 
묻으며 가는 
끈질김에 고달픔

 
茉莉花(재스민) 

                

우윳빛 
잔 별인가 
유난히 예쁘구나

미소로 
반겨주는 
애틋한 내 친구야

네 향기
넘치는 아침
취해버린 이 발길

 

    쑥

 

연녹색
뾰족뾰족 
내밀고 나왔구나

살며시 
잡아보니 
내 손도 물들기에

한 움큼 
뜯은 네 향기
저녁상에 올렸지

 
할미꽃

 

자줏빛 
저고리에 
푸른색 치마 입고

그 누굴 
기다리나  
외로운 새색시야

이 봄날
흰머리이고
하루볕이 서럽군

 
  나팔꽃

 

살며시 
내민 줄기 
어리광 부리는가

아침해 
피어날 때 
제 자랑 신났구나

급하게 
휘감지 마라 
담쟁이를 닮아 봐

 
 진눈깨비

 

헤매며 
날리는 게 
눈인지 눈물인지

한기로 
쏟아붓는 
술 취한 노숙 잔가

행인들 
분주한 길에 
발목 잡는 못난 놈

 

    섣달

 

섣달은 
썩은 달로 
결혼도 못하는 달

쌀쌀한 
날씨어서 
찾아간 고향인데

정답게 
반기는 대문
따뜻한 정 아랫목

 

 고향산

 

사방을 
병풍처럼
마을을 품고 서서

남북 쪽 
허리 끊고 
길내주고 눕었구나

봄이면 
하얗게 피는
배꽃(梨花) 마을 내 고향
 

신명금 프로필 

중국 서란시 출생, 무역회사에서 퇴직.
재한동포 문인협회 이사. '연변일보', '도라지' 등 문학지에 시 다수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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