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가의 말(马)

청명 날 친구의 가족과 함께 바다 가를 찾았다. 무더운 열기 아래 피서막 안에 갇혀있는 금빛 말 한 마리가 내 시야에 안겨온다. 초원에서 아침 이슬 풀을 뜯어먹으며 여유롭게 자연을 만끽해야하는 말이 무슨 인연으로 열대지방의 바다 가에서 그 혹독한 땡볕 아래 서있어야만 할가. 은연중 말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어쩌면 나의 영혼도 말처럼 졸고있었는지 도 모른다.


저 말은 낮에 달리면 천리, 밤길은 팔 백리를 달리는 천리마 소질을 갖고 태어났는지 도 모른다. 다만 백락과 같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한낱 바다 가의 풍경을 장식해주는 사진사의 부속물로 전락되고 만 것이다.


순간 졸고있는 말 너머 하늘가의 흰구름속으로 《삼국연의》에 등장하는 류비를 업고 깊고 넓은 강을 단숨에 헤엄쳐 건너 추격자들을 따돌린 적토마, 관우가 죽은 후에 풀과 물을 먹지 않고 스스로 굶어 죽은 적토마가 눈앞에 떠오른다.


무더위때문에 몸의 털을 거의 전부 인위적으로 깎고 맨 살갗으로 바다 가를 마주 향해 서있는 저 말, 저 말은 설사 적토마, 적토마 같은 명마이 거나 로마식도(老马识途―늙은 말이 길을 안다) 사자성어 이야기에 등장하는 늙은 말과 같은 슬기와 지혜를 겸비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초원을 누비는 말로서의 평범한 삶을 살았을 텐데 타의에 의해 어느 날부터는 말의 기능들이 점차 퇴화 되고있었다.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 더니 대학교 때까지 먼 곳을 떠나보지 못했던 나는 일년 사시절 영상 온도의 열대지방에 내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였고 호적까지 옮겨왔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점차 모든 것에 적응해가고 자리를 잡았던 어느 날, 남편과 멀리 떨어져 딸과 나 둘만 이곳에 남게 되였다. 하루 사용하는 언어의 5%도 되지 않는 우리 말을 사용하면서 가끔 버스에서, 길에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한 아파트에 살고있는 이웃들을 만나는 것보다 더 기뻤던 것은 단순히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렸을 때 미꾸라지국을 끓일 때면 엄마는 항상 채마 밭의 맵고 얼큰한 고추와 내기를 넣어 국 맛을 냈다. 국물이 목구멍을 넘기는 순간 세상에 이보다 더 맛있는 것이 있을 가고 완전히 그 맛에 매료되었다. 이젠 고향을 떠 난지도 강산이 두 세번 변하는 세월이 흘렀으니 예전의 많은 습관들이 사라 진지 오래다. 고향에서는 온돌 가마 목에서 베개만 베고 누워도 낮이건 밤이건 바로 잠에 떨어지지만 여기서는 밤 10시,11시가 넘지 않으면 눈이 말똥말똥해져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다. 음식도 엄마 손에 길들여졌던 음식 맛보다 인제는 현지인들처럼 담백한 맛에 길들여져 있다.


3년전 시어머님 생신을 맞아 고향에 발길을 돌린 적이 있다. 고향은 자주 찾아 뵙지 못해 모든 것이 낯설었다. 고향의 모든 것은 더는 내 기억 속의 고향이 아니었다. 시골의 시멘트 길은 땅을 숨쉬기 힘들게  했고 2메터를 넘는 담장은 더는 이웃집 병아리가 드나들던 울 바자가 아니었다. 멀리서 보면 아담하게 보이는 시골집 벽돌집이 가까이서 보면 주인 잃은 적막감이 돌고있었다. 과도한 농약 사용으로 강가의 물고기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도시화 개발로 논밭이 줄다 보니 비가 올 때면 들을 수 있던 개구리소리마저 가뭇없이 사라졌다. 내 마음속에 화석처럼 잠들어있는 유년시절 우리 집 소의 워낭소리, 뚜벅뚜벅 길을 걸을 때 땡그랑 낮으면서도 맑고 투명한 워낭소리는 전설처럼 사라 진지 오래되었다.


내 기억 속의 고향은 사막의 신기루 마냥 실제 존재하지 않는 허영 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존재하지 않는 기억 속 고향의 모습을 마음속에 꽁꽁 새겨두고 고향이 그리울 때면 마음속 고향의 보자기를 풀어헤치고 향수를 달랜다.


보이지 않는, 잃어 져가고 있는 것들속에서도 나는 되도록이면 우리의 고유한것들에 집착한다. 서양음식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딸 애한테 우리의 고유한 입맛인 된장국을 끓여주고 딸애를 데리고 한식 관에 가서 냉면도 함께 먹고있다. 처음에는 냉면을 얼마 먹지 못하던 딸애는 이제는 나보다도 빨리 냉면 한 그릇을 비운다. 김치찌개, 떡국, 무김치를 먹으면서 음식문화로나마 잃어져가고있는것들을 딸애에게 전수해 가고있고 연변 축구에 열광하면서 다시 한번 민족을 떠올리고 비록 거북이 속도일지라도 우리 말을 딸애에게 가르치고있다.


얼마전 주방구석에서 오래동안 먼지를 뒤집어쓰고있던 떡메가 빛을 보게 되였다. 시집의 떡메를 집에 가져온 후 단 한번도 찰떡을 쳐 본적이 없었지만 어느 날에는 벼 모내기 시절 논두렁에 앉아 콩고물에 버무려진 찰떡을 먹던 생각이 굴뚝같이 솟아올라 찹쌀을 하루 밤 물에 불렸다 가마에 찐 후 두 손으로 떡메를 들었다. 모든 색상을 수용하는 흰색의 찰떡을 먹으면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있는 고향 생각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떡메가 잘 익은 찹쌀과 마찰할 때면 손에 힘주어 마음속의 그리움을 털어냈다. 공기 속으로 전파되는 떡메 소리와 함께 그동안 현실 속에서 잊혀져 가고있는 모든 것들이 생생히 되살아나고 우리 말과 우리 글에 배고픈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달라졌다.


얼마전 시골 할아버지가 파는 두부 사러 골목길로 들어섰다가 아파트 1층에서 입을 짹짹 벌리며 먹이를 찾는 새끼 제비의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고향으로 떠났어 야 할 제비가 왜서 여기 강남에서 새끼 낳고 대가족을 데리고 알콩달콩 살아가고있을 가. 봄이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가을이면 추운 겨울을 피해 강남으로 날아가는 제비이다. 그런데 강남의 제비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 강남에서 둥지를 틀고 대가족을 거느리고 살아가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제비가 오늘은 저 한가족일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모든 강남의 제비가 고향으로 가지 않고 어쩌면 나처럼 강남에서 정착하고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향의 제비 없는 앞날을 보는 것만 같아 너무 슬펐다.


바다 가의 산산이 흩어진 모래알처럼 고향과 떨어져 우리의 고유한것들을 잃어가고 있는 나, 인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 자가용의 사각지대처럼 우리 말이라고는 거의 사용할 수 없는 언어의 사각지대에 살면서 언어 일부가 야금야금 잊혀져 가고있는 현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미국인 사라(梭罗)가 쓴 불후의 명작 《와얼덩후(瓦尔登湖)》에 등장하는 빈 도끼 하나만으로 《와얼덩후》에서 2년 남짓한 인간의 원초적인 삶의 체험을 적은 글을 다시 떠올려본다. 사라의 말처럼 어쩌면 인간은 단지 먹는데 필요한 음식과 자는데 필요한 집만 필요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추구하는 물질적인것들은 다 사치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본연의 모습을 떠나 물질적인 비본질적인것들을 추구하면서 살고있다.


바다 가의 저 말은 자신을 희생한 대가로 주인에게 무한한 재부를 창조해 주고있다. 그러면 고향을 떠나 사는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저 무더위 땡볕 속의 말처럼 이제 다시는 졸지 말아야겠다. 최선을 다해도 잃어져 가고있는 민족의 혼을 놓치지 않기 위한 날개 짓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계수나무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그루 토끼 한 마리
 산새도 아니 놀고 돛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내가 계수나무를 알게 된 것은 어릴 적 엄마가 들려주셨던 동요 이야기에서 였다. 이 동요는 유년시절 내가에서, 산에서, 뜰에서 친구들과 함께 뛰놀며 불렀던 노래이다. 요즘에는 달을 쳐다보면 초생달, 보름달, 그믐달 정도로밖에 인지가 안되지만 개구쟁이 시절에는 달만 쳐다보면 달 속 계수나무 아래에서 절구를 찧는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달 속에서 혹시나 동요처럼 진짜 계수나무 아래에서 토끼가 뛰어나오지 않을까 무척 마음을 졸이며 호기심이 동해서 달을 쳐다 보았었다. 


영하 이삼십도의 북방의 겨울은 뼛속까지 얼어 들도록 엄청 추웠지만 얼음강판에서 썰매 타기에 열을 올리느라 혹한에도 목도리에 성에가 가득 낀 채로 별로 추운 줄 몰랐었다. 썰매 타기에 지친 몸을 끌고 썰매 끈을 어깨 위에 메고 어둠과 함께 집으로 향할 때면 온몸의 탕개가 탁 풀려 있었지만 하늘에 걸려있는 달 속 계수나무가 환하게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어 너무 좋았다. 


내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 집까지 나를 바래다 주는 달 속 계수나무를 쳐다보며 놀음에 지칠 대로 지쳤건만 환상적인 동화 속 계수나무 아래 토끼 이야기는 나에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주었고 그 덕분으로 놀음에 탐해 지친 몸은 별로 피곤한 줄도 몰랐다. 달 속의 계수나무는 나에게 상상과 꿈을 심어주는 나무였다.


어렸을 적 계수나무에 대한 나의 인식은 단지 달 속의 계수나무에만 그쳤다. 계수나무가 어디에서 성장하는지도 몰랐고 으뜸 가는 향기를 주는 계화 꽃을 피워낸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하긴 내가 태줄을 묻었던 곳에 계수나무가 자라지 않으니 모를 법도 하였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계수나무가 자라는 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강산이 바뀌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팽이 돌듯 바쁜 일상에 묻혀 계수나무와의 인연은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달 속 계수나무 아래 토끼의 동화 이야기는 직장생활에 파묻혀 살아야했던 나의 삶 속에서 사라져갔고 단 한번 본 적도 없는 계수나무도, 베개 옆에서 엄마가 들려주었던 동화 이야기도 완전히 나의 삶에서 잊혀져 갔다. 


머리로만 알았던 엄마의 희생과 사랑을 내 몸으로 생명을 잉태하고 배 아프게 출산하여 애를 키우면서 진심으로 느꼈지만 바쁜 직장생활때문에 남들처럼 잘해 주지 못해 마음속으로는 늘 애에게 미안한 감이 들었다. 내 손으로 애를 키우고 직장생활도 동시 병행하면서 하이힐조차 한번 신어보지 못했던 나에게 있어서 어느 날 스스로 선택하였던 할당된 많은 자유로운 시간은 애에게 미안한 감을 보상해줄 시간이 되어 무척이나 기뻤다. 형언할 수 없는 어깨 위를 누르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바다 가를 훨훨 날아 예는 갈매기 마냥 내 마음은 자유로 왔다. 


그러나 그 고민 없는 기쁨은 잠깐이었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엄마라는 존재만으로 나는 만족할 수가 없다. 나의 가치를 찾을 수 없음에 때때로 찾아오는 방황과 나약함의 그림자가 내 곁에서 서성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마음은 우울해져가고 자신감을 잃어갔다.


우연인지 아니면 필연인지 어느 날 은은한 향기에 끌려 아파트 공중 화원 계수나무앞에 마주선 나는 나무가지 사이에 피어난 계화꽃들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에 그만 취해버리고 말았다. 은은한 듯 강렬한 향기를 맡으면서 자연이 주는 싱그러움과 상쾌 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별로 보잘것없는 나무 같지만 그 향이 주는 향연만은 향속의 향들 중 최고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동년 시절의 엄마가 들려주었던 달 속 계수나무아래의 토끼에 관한 동화 이야기 속의 계수나무가 조용히 나의 생활에 다가왔다. 


계수나무는 오밀조밀하게 계화꽃을 수없이 많이 피워 연한 향으로 천지를 뒤엎는다. 꽃은 작고 볼품없지만 그 어떤 꽃 향기에도 뒤지지 않는다. 각종 음식에 향신료로 첨가해서 사용하는데 잎에서 뿌리까지 버릴 것이 없을 정도로 인정받고 년중 꽃이 피며 향기가 진하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꽃이기도 하다. 계화꽃은 정말 작지만 앙증맞고 사랑스럽고 그 향기는 무엇보다도 달콤하다. 계수나무에서 떨어져서 난무하는 계화꽃들은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는 향기이며 함께 누리도록 보내주는 행복이며 향연 일지도 모른다. 


한동안 쨍하고 뜨는 해를 보고도 그 아름다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시들시들 해져가던 나의 마음은 바람에 방향없이 이리저리 흩날리는 갈대 마냥 바람에 허우적거렸다. 그 바람같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나의 마음은 때때로 계곡과 산꼭대기를 넘나들며 방황하고 있었다. 이제 더는 나 자신을 내 마음속에 가두어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싶지 않았다. 일년 사시절 피었다 지고 졌다 다시 피는 계화꽃을 바라보며 나의 현재는 잠깐 저 계화꽃처럼 지는것일뿐 희망의 새싹을 잉태하느라면 나도 언젠가는 다시 필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자연의 많은 꽃들이 피고 지는 시간이 부동하 듯 나에게 있어서 가시와도 같은 방황과 아픔 이야말로 내 삶을 더 값지게, 보람차게 꽃피울 수 있는 밑거름으로 나도 이런 방황과 고독을 자양분으로 더 예쁜 꽃들을 언젠가는 피워낼 것이라고 자신을 달래고 또 달랬다.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지천명의 나의 삶을 돌이켜보고 나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길이어서 좋았다. 글쓰기는 거울같이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일러주었고 내가 여태껏 보지 못했던 삶의 값진 도리를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자연의 순리대로 계절에 관계없이 피고 지기를 거듭하며 끈질긴 열정으로 자연에 향기와 아름다움을 주는 계수나무의 계화꽃을 바라보면서 내게 삶이란 피고 지고 거듭하기를 반복한다는 도리로 언제든지 열심히 산다면 그 어떤 환경에 처해있든지 그 삶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삶임을,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었으며 산다는 것은 희망을 잃지 않는 일이라는 햇빛보다도 빛나는 성찰로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었다. 


계화꽃을 바라보며 희망을 잃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 나선 나에게 어느 날 행운은 다가왔다. 나도 저 계수나무의 계화꽃처럼 언제나 꿈과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산다면 내 생애 어느 날에는 예쁜 꽃으로 피어나 달콤한 향기를 대자연에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백마 산에서 아름다운 새 출발을 꿈꾸며

잔잔한 일상에서 새 출발을 하면서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새로운 삶의 의의를 발굴하면서 살아가는 시간들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상이다. 그래서 늘 새로운 출발을 꿈꾼다.

 

주말에 해발 1,256메터의 혜주시 백마산을 다녀오기로 계획하였다. 뭇 산 흰 돌들의 모양이 흰 말과 같다고 붙여진 이름 백마산,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격으로 가파른 벼랑들의 유혹에 못 이겨 기쁨 반, 설레 임 반으로 뒤척거리다가 험난하고 가파 로운 수많은 돌 바위들과 벼랑들을 톺아 오르면서 산정에 오르는 짜릿한 경험을 만끽하고 싶었다.


사람 인(人)자와 산(山) 두 글자가 합치면 이루어지는 선(仙), 선의 사전적 의의는 비범한 사람, 범속을 초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스스로 산인이라고 자칭한 제갈량, 삼국연의에 등장하는 초선차전(草船借箭) 이야기, 짚 더미를 쌓은 작은 배 20척을 이끌고 조조 진영에 다가가 화살을 쏘게 하여 10만대에 달하는 화살을 획득했던 제갈량의 범상한 지혜는 산에 많이 몸을 담그고 있으면서 나온 지혜가 아닐 까고 생각해본다. 그래서 산과 많이 접촉하느라면 선의 의미를 어쩌면 이해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산이 더욱 친절하게 다가온다.


출발해서 한시간반만에 도착한 백마산, 산 입구로 통하는 길이 개발되지 않아 반시간 동안 걸어서 입구에 도착하였다. 4월이라고 하지만 영상 31도의 날씨에 바람 한점 없이 찜통같은 수림을 반시간쯤 오르고 나니 발바닥에 불이 붙는 것 같아서 신발을 벗어 버리고 싶었다. 계속해서 가파른 대나무 숲을 오르면서 옷은 이미 흠뻑 젖어 들기 시작했고 들쑥날쑥한 큰 돌 바위들은 손발이 모자라 무릎까지 써가면 서야 오를 수 있었다. 


한시간쯤 올랐을까 끝내 설레이며 꿈꾸던 10 메터짜리 벼랑 앞에 흥분으로 마주섰다. 수직으로 하늘 향해 솟은 벼랑, 발 디딜 곳이 마땅하지 않았고 바위가 매끌매끌해서 전신의 힘을 발바닥에 주어야만 미끄러지지 않고 벼랑에 발을 붙일 수 있었다. 두 손으로 밧줄을 꼭 잡고 한걸음, 두 걸음 생애 처음으로 험한 벼랑을 간신히 올랐을 때 말로서는 이루다 형언할 수 없는 그 기쁨, 그것은 자신과 자연에 대한 도전의 성공에서 오는 기쁨이고 희열이었다.


계속하여 가파른 돌 바위들과 벼랑을 톱아 오르내리면서 하나, 또 하나의 산정들을 경험하였다. 눈앞에 펼쳐지는 흰 돌 바위, 기암괴석과 하늘 높이 울창하게 뻗은 대 나무숲, 천태만상의 모습으로 자연은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자신을 우리한테 보여주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평평한 곳, 점심을 먹고 잠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했다. 혼자서는 오를 수 없는 바위, 앞에서 손가락을 걸고 당겨주어서야 겨우 많은 곳들을 톺아 올랐다. 쉬었다 가다를 반복하면서 산정에 올랐을 때는 오후 2시, 산에 오르는 데만 5 시간 반이 걸렸다. 산정에 올라서야 백마산은 산행 경험이 있는 사람만 가능한 산행이라는 뜻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 것 같았다.


푸르른 산을 사방으로 둘러보았다. 산은 나한테 잘 왔다고 묵묵히 말을 걸어온다. 자연과 교감하면서 높은 곳에서 멀리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향수하는 순간만큼은 행복한 순간이고 두고두고 꺼내 볼만한 멋진 추억이 되는 순간이다. 망망하게 펼쳐진 대자연은 봄에서 여름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어 검푸름을 선물하고 있었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산밑까지 도착해야 하기에 바로 하산을 시작하였다. 산행 로정이 길어서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물이 모자라거나 얼마 남지 않았고 휴대한 과일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손을 내밀면 선뜻 내어주는 팀원들의 고마운 그 마음, 서로 익숙한 사이는 아니더라도 함께 산행하는 시간만큼은 서로를 내어주고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시간이다. 갈증에 목이 타는 듯이 말랐을 때 넘겨받은 눈물 겹도록 고마운 한 알의 사과, 평생 그렇게 맛있는 사과는 백마산에서 처음으로 먹어 보았다.


하산하면서 산을 따라 형성된 백분주(白盆珠) 저수지가 아름다움을 빛 뿌리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울울창창한 밀림과 대숲을 지나고 많고 많은 밧줄을 타고 내리면서 때로는 헛발을 디딜 때도, 밧줄에 허공 매달릴 때도 있었지만 곁에서 늘 조심하라고, 힘내라고 일러주어서 힘이 되어 하산에 성공하였다.


등산하는데 다섯 시간 반, 하산하는데 다섯 시간, 왕복 총 18km 거리,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용케도 소화해낸 자신에게 스스로도 감탄이 갔다. 산과 많이 접촉하면서 높은 곳에 올라 낮은 곳을 많이 보느라면 삶의 현실 바닥에서 깨우치지 못하는 것들을 어느 순간 깨우치게 된다. 산을 찾는 이유는 결국 자연과 접촉하면서 자신을 깨우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산행이 힘들어서 다시는 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산에 몸 담고 있는 힘든 어느 순간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모습을 찾아 어느 날 또다시 산을 찾게 된다.


살다 보면 누구나 어떻게 더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 것인가 고민하고 노력하고 애쓴다. 단 삶의 무게때문에 주어진 것에 자신을 순응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지만 산행은 두발로 걷는 만큼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삶의 한 조각으로, 힘들지만 나의 의지에 따라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는 삶의 편린들을 엮을 수 있는 것이다. 책 만권을 읽고 만리 길을 걸으라는 말이 있다. 이제 남은 인생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풍부히 하고 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면 이 또한 멋진 인생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오늘도 다음 번 아름다운 새 출발을 꿈꾼다.

김금단 프로필 

연변대학 졸업. 

연길시 5중학교 교사 

현재 광동성 혜주시 무역회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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