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휴

 

자갈치 수다 떠는 소리에
갈매기가 방아쇠 당기고
총 맞고 혼미한 시간이
바위에 누워 심호흡한다

싱싱한 바닷바람이
소풍 나온 햇볕을
벌거숭이 모래밭에 펴놓고
허겁지겁 핥기 시작한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태양의 그림자 지나간다

서산이 빨다가 만 하루 삼키고
이빨에 끼인 기억 저만치 튕겨낸다

내일의 추천메뉴는
양다리 걸치기

 

2. 직업병

 

밤 갉아 먹으며
돋아난 뾰루지가
벌레가 낳은
시간 잡아먹고
배알이 뒤집혀
가려움 토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새벽의 노크 소리
지하철 바퀴에 깔린 채
신음소리 낸다

출렁거리는 젖가슴
방아 찧는 소리에
게으른 아침이
눈 비비며 일어났다가
현기증 앓는다

근지러운 하루가

남의 집 담장 긁기 시작한다

 

3. 죄와 벌

 

벌들아, 너희 죄를 묻노니

수줍게 웃는 꽃에 다가가
사랑하는 척 발 演技로
날 저물도록 꿀물 빼돌리기 하렷다

사람들아, 너희 죄도 묻노니

화분 털어 뒷문거래하고
땀으로 장만한 벌집 들쑤셔
입술에 꿀 바르기가 일상이렷다

벌들은 꽃에 빨대를 꽂고
꿀 먹은 사람들은 손시늉만 하니

잘 먹고 잘 살자고 한 일
무슨 죄이고 
또 누구를 벌하리오

 

4. 어느 여인의 성공담

 

타다만 부지깽이 휘저으면
식구들 하모니가 시작된다
그녀는 막후 지휘자

꺼져가던 욕망에 부채질하여
꿈속의 요정 춤추게 한다
그녀는 무명 마법사

구수한 된장국과 감자 눌은밥
언제 먹어봐도 그 맛이 일품이다
그녀는 숨은 요리사

약손으로 아픈데 만져주고
만병통치 김치유산균 발명했다
그녀는 동네 다박사

식지 않는 솥뚜껑 하나로
지구와 함께 평생 달렸다
그녀는 무면허 운전기사

마침내 성공했다 
그녀는
고칠 수도 없는 잡병들을 만들어 냈다

 


5. 하루야

 

너를 앞에다 두고
핸드폰 만지고
티브이 쳐다보고
다른 사람 생각하고

바보처럼 시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아

아침에 눈 뜨자마자
햄버거 먹고 싶고
캐러멜 마키아토 홀짝이고
혼자 밥 먹기라도 괜찮아

다이어트 그런 거 하고 싶지는 않아

가물거리는 저녁노을 등에 업고
희미해지는 너의 뒷모습
붙잡아 두고 싶었던 발걸음 소리

모처럼 집착하고 싶지는 않아

하루야
하루야
나의 하루야

너는 왜 이렇게 무정한 거니

 

 

6. 뒷도

 

세상살이 윷놀이던가
모냐, 윷이냐 뒷도이더냐
엄니는 밥상을 밀어놓고
색 바랜 사진만 뒤적인다

혼자 가는 세월아
입 다물고 굿이나 보든지
그래도 지지리 억울하면
좋은 말이나 선물하고 가든지

하늘 높이 윷 던지고
어이하면 울 엄니 안 아플까
주문 한번 짠하게 걸어본다
뒷도, 뒷도만 하게 해도!

 


7. 아, 주님이여

 

메마른 광야에
마법의 잔 기울였다
잠자던 짐승이
악연의 사슬 끌고 나온다

거친 숨 몰아쉬며
자기 허울 집어삼키고
부푼 몸집 뒤틀며 발악한다

천길만길 치솟는 서릿발
하늘 끝까지 찌르고 나서야
한 줌의 먼지 남기며
허공에 물컹 주저앉는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우물 안 판도라에 갇혀서
새어 들어오는 쪽빛으로
구겨진 비단옷 다린다

 

 

8. 千年等一回

 

전생의 웬쑤는
깊은 궁에 몰래 기생하다가
섣달 보름날 달이 뜰 무렵
더는 못 참겠다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소금 맛을 알고 나서부터
갖은 끼 부리기 시작하더니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있는
억겁의 기억 더듬으며
그녀의 가슴을 탐했습니다

그녀는 열 손가락을
하나씩 깨물었습니다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가
얼마나 더 아파야만 하는가
묻고 또 물었습니다

마지막 한 방울 젖까지
다 빨아먹고 나서야
웬쑤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제야 사랑의 참맛을 알았노라고
이제부터 진심으로 충성하겠노라고

제명당한 하늘 신들이
간만에 구경거리 생겼다고
북 치고 징 치고 신바람 났는데
이날이 그 날인 줄 알고
그녀는 꽃신 신고 떠날 채비 합니다

보살같이 고운 얼굴이
소리 없이 말합니다
다음 생에는 너의 딸로 태어나
네가 나한테 했던 것처럼
아니, 아니
되로 받고 말로 주리

 


9. 계급장

 

아랫목 따스한데 두고
담요 살짝 덮어주어야만
구수하게 발효하는 청국장처럼

삶는 것도 모자라서
밟히고 주물리고 두들겨 맞아
못생긴 메주가 숙성되어가는 된장처럼

매운 시집살이 맛보고 나서
돌아가신 친정엄마 그리워하며
고추 빻아 눈물로 버무린 고추장처럼

장독대에 갇힌 시간
하염없이 새까맣게 태우다가
다 떠나고 남겨진 진한 간장처럼

안주인은
그렇게 진급한다.

 


10. 억수로 잘한기라

 

길 감시롱 
한눈 팔다가
고마 찰싹
괴인 물을 밟아 삣따

간밤에 누기 오줌 갈긴기라
아이므 어마이가 눈물 흘렸거나
노숙자가 침으 마이 뱉았거나

근디 그기 문제가 아이고
가게 앞에서 파리 쫒던
아재 바지가랭이 젖어삔기라

두눈으 새똥그랗게 부릅뜨고
야 임마, 쫌! 걍 앞만 보라카이
함서 삿대질 해쌌는디

아재요, 쟈꾸 열렸습니더

음마, 시방 머라카노

아재가 남산문이 열린줄 알고
허겁지겁 거시기르 움켜잡는디

아이요, 고기말고 요기~
그라믄서 돈가방 쟈꾸
짜아악~ 쟁가줬데이~

김경애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장 겸 대표, 한국디카시인협회 중국동포디카시연구회 지부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재외동포포럼 이사, 중국 애심여성 민족공익발전기금회 이사, 동북아신문 부사장.  
2019년과 2020년에 한국국보문학 수필과 시 신인상 수상 및 등단. 중국 제4회 애심여성컵 은상, 동포문학 대상, 향촌문학 대상, 민족공훈 대상, 일본 카라즈컵 가작상, KBS 한민족방송 감사패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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