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갇힌 호랑이를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동물원이나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우리 안에 갇힌 호랑이를 보면
나는 가끔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산중의 왕으로 바람을 가르고 질주하며
포효소리에 뭇짐승들을 떨게 했던 맹호가
갇힌 운명에 체념하고 길들여지며
빼앗긴 자유생명의 왕국을 꿈속에 그리며
구경꾼들 앞에 꿇앉아 무기력히 졸기도 하다가
좁은 우리 안을 초조히 맴도는 호랑이를 보면
그 세월 철창 속에 갇혔던 아버지모습이 떠오른다
우물같이 깊은 우수와 한이 서린 푹 꺼진 두 눈에
꺼칠한 수염에 피골이 상접했던 아버지모습이

일찍 해방직전에 일본 도쿄의대를 나와
그 시대 유망한 청년 대학교수였던 아버지가 
유도와 격투기 유단자였던 아버지가
목단강지구 민족씨름 일등 하셨던 아버지가
옛날 60도 고량주를 사발로 단숨에 마시고 하여
술 원수(元帅)라는 별호만큼 호탕하셨던 아버지가
홀로 불량배 무리를 보기 좋게 쓰러 눕혀 
한때 주먹세계에도 이름을 날렸던 아버지가
범보다 가혹한 눈먼 정치투쟁에 연타를 당해
일락천장 지옥으로 떨어지신 아버지

일류우파로 몰려 6년간 옥살이하고도 
시골 농촌으로 추방돼 <노동개조> 당한 아버지
동란시기엔 온갖 죄명을 들쓴 잡귀신으로 몰려 
농촌생산대 외양간에 짐승처럼 감금되어 
매일같이 군중비판투쟁대회에 끌려나가 
조리돌림 당하며 피 터지게 구타당한 아버지

수십 년 사람에게 비인간적인 박해를 받고도
술과 사람을 그토록 좋아하셨던 아버지
당신을 물어먹고 해친 사람조차 미워할 줄 모르는 
세속을 초탈한 천사같이 착하셨던 아버지
농촌 마을 사람들에게 반평생 <의료봉사>하시며
당신을 무함한 사람의 병도 극진히 치료해주시며
인간에 대한 용서를 몸으로 가르쳐주신 아버지
그러나 당신은 평생 얻어맞아 골병이 들어
명예회복을 앞두고 단명으로 가신 비운의 사나이
세상 호인으로 남아호걸로 이름 높았던 
용맹한 호랑이 같고 순한 양 같았던 아버지

광란과 야만의 세상은 바뀐지 오래여도
지금도 우리 안에 갇힌 호랑이를 볼 때면 
나는 가끔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사나이중에 진정 사나이셨던 아버지
우묵한 눈으로 세상을 말없이 바라보시던
꺼칠한 수염에 피골이 상접했던 아버지모습이 
눈앞에 아프게 아프게 떠오른다
             

그대의 소가 되고 싶다

 

소가 되어서라도
그대 곁에 남아 살수만 있다면
난 사랑의 아픈 멍에를 목에 메고
그대의 소가 되어 살고 싶습니다

그대의 고운 손에 코를 꿰여
그대가 이끌고 모는 데로 
어디든지 순순히 끌려가고 순종하는
그대의 충직한 소가 되고 싶습니다

무거운 수레에 그대를 태우고
언덕길도 진펄 길도 신나게 끌며
그대가 던져주는 꼴을 맛나게 먹으며
운명의 고삐 그대 손에 꼬옥 쥐인 채
그대의 매서운 회초리에 얻어맞아 
엉덩이가 멍이 들고 살가죽이 터져도
붉은 피를 줄줄 흘릴지라도
그대의 한마리 소로 살고 싶습니다

무궁무진 넘쳐나는 황소 힘 
오직 그대만을 위해 다 바치며
기진맥진 쓰러져 죽을 때까지...
   

 

 낡은 벽시계 
            
             
언제 멈췄는지 벽시계가 죽었다
고물이 된 낡은 시계가 수명을 다하고
언제 숨졌는지도 모르게 
소리도 없이 조용히 죽었다

엊저녁까지 탈 없이 가던 시계
여러 가지 디지털 시계가 많은 요즘
이전보다 덜 필요한 존재가 되어
아직 살 여력이 얼마 남았는지 
아픈 심장이 언제 멎었는지
집안사람들 아무도 몰랐다 

날마다 식구들에게 새 아침을 열어주고
밤이면 재충전의 힘을 주입해주며
하루 일과를 빠짐없이 안배해주던 시계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바른 한 자세로
시간 오차 없이 정확히 가던 시계
예고도 소리도 없이 숨을 거뒀다
하건만 슬픈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간다

간밤에 소리 없이 가신 이웃집 어머니

 

       사랑탑


유람객들이 구름처럼 흐르는 
천하절승 계림산수의 망부석에 
누군가 짓궂게 ‘바보석’이라 써놓고
돌 같은 바보여서 돌이 된 여자란다

천백 년 열녀의 상징으로 
사랑의 미담으로 세상에 전해진 
눈물겨운 사랑의 전설이
거친 세월의 풍토에 형체를 잃고
구시대 구닥다리 전설로 된지도 오래다

최첨단 과학문명의 요즘 시대에
천 년바위 망부석은 바보석으로 각인되고
정조관념은 물 먹은 모래성이 되어
사랑과 성이 쉽사리 분가하는 세월에
사랑과 혼인은 식탁 위의 꽃병이 되어

이 땅의 흔들리는 사랑탑은
더욱이 <이별족>의 사랑탑은
벼랑산 절벽 위에 위태로이 서있다
금방 무너져 내릴 듯이...  
 

   눈을 바꿔 볼 수 있다면

 

나의 눈과
그대의 눈을
한 번만이라도 
서로 바꿔 볼 수 있다면

내 눈에 비치는
내 삶의 의미가 된 
그대의 모습이
그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대가 한번 볼 수 있게요

그래서 나도
그대의 고운 눈에 비치는
경이로운 세상풍경과
촌닭 같은 내 모습을
한번 볼 수 있게요

그대와 나
우리 둘의 눈을
서로 한 번만이라도
바꿔 볼 수 있었으면

 

   얼굴

 

한평생 
목 위에 걸고 사는 
무거운 십자가

손바닥만 한 탈-
얼굴에 먹칠하지 않으려고
얼굴을 단장해 빛내려고
얼굴 쳐들고 살려고

사람마다 한평생
육신을 짓누르는
천근만근 얼굴 목 위에 달고
고행자 되어 사는 인생
죽는 날까지 숨 가쁘다

 

이성철 프로필 

흑룡강성 상지시 야부리조선족중학교 교사,
연변TV방송국 드라마번역부 편집, 기자 역임

全国汉语短诗大赛 3등상
[동포문학] 시 우수상, 료녕신문 ‘기원컵’ 시 우수상
KBS방송 북방동포 체험수기 특별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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