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벚꽃이 필 무렵이면

                                             

4월은 나에게 잔인한 달이다.  4월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 나는데 그 중에는 벚꽃이 절정을 이룬다. 벚꽃을 보면 5년 전의 아픔이 고스란히 기억의 빗장을 열고 튀어 나와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 무거움의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가벼워지고 있지만, 아직도 그때의 아픔이 복사한 듯이 고스란히 머리에 남아 있다.

5년 전 4월의 어느 날 나는 병원으로부터 유방암진단을 받았다.

그때가 마침 벚꽃이 가득 피어 있을 무렵이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병원에서 진단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창밖으로 보이는 벚꽃은 나에게 슬픈 풍경이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나는 순간 가장 가까운 남편부터 내 주위 모든 사람들 한 명 한 명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자괴감에 들었다. 내 인생의 수레바퀴는 어디서부터 잘못 돌아간 걸까?!

한번쯤은 이렇게 글로서 이 힘들었던 시간들, 이겨냈던 시간들을 돌이켜 보고 싶었다.

5년의 투병생활이 없었다면 삶과 죽음에 대해서 지금처럼 많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시간들을 받아들이고 지나왔기에 나는 오늘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보람찬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 고민해 보게 되었다. 아픔만큼 성숙해진 그 시간들, 5년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암,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암진단을 받는 순간,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지 않았던 죽음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인생 다 못 살고 이렇게 곧 가는 건가… 나의 아픈 육신과 함께 두려움과 공포가 순간순간 나를 찾아왔다. 과연 누가 죽음 앞에서 담담해지고 초연해질 수 있을까?…

항암 2차를 마친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데 머리카락들이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베개수건 위에 떨어졌다. 치료 끝나면 다시 자란다는 누군가의 귀띔도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다. 처음 겪는 일에 나는 또 한 번 억장이 무너졌다. 동네 미장원에서 삭발하는데 어디서인가 꾸역꾸역 모여든 슬픔의 조각들이 비수처럼 마음을 찔렀고 나는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려야 했다.

정상세포까지 죽게 만드는 강한 항암제 때문에 다른 기관들이 기능이 떨어져 신장내과, 안과, 내분비내과 등 다른 분과들을 전전하면서 나는 8차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부친상, 그리고 이 세상과 저 세상

그해 6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걸려온 한통의 전화, 부친의 사고 소식이었다. 어딘가 다쳤을 거라고 생각하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아버지는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설상가상, 청천벽력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나와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너무도 갑작스레 당한 일이라 기가 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유언 한마디 못 남기고 간 아버지, 사고 직전 고통스러웠을 그 끔찍함, 그리고 못난 자식 도와주려고 일하러 나갔다가 당한 사고라는 생각이 두고두고 나를 괴롭게 했다.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아버지와 같이 한 마지막 모습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투병중이라는 이유로 마음껏 슬퍼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다.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 다는 것을 왜 자식들은 항상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일까.

아버지는 떠났는데 장례식을 마칠 때 까지도 아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납골당에 모시고 날이 갈수록 상실감이 마음을 파고 들었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생각과 내 힘과 노력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절망으로 다가왔다. 순간순간 마음에 찾아오는 그리움과 아픔은 몇 년 동안 마음을 힘들게 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에 헤어져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때서야 나는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와의 모든 추억과 기억은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데 정작 사랑하는 아버지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한줌의 재로 하늘나라로 긴 여행을 떠나셨다.

 

수술, 그리고 방사선 치료

항암 중에 아버지를 보내고 나는 또 투병과 치료를 이어가야 했다.

가슴 전절제를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나는 수술을 포기할 거라고 했다. 설득하려는 가족과 의료진을 피해 도망 다녔다. 게다가 전절제를 대비한 복원수술로 성형외과 진료를 받아야만 했는데 성형외과 의사를 마주하고 설명을 듣는 순간 견디기 힘든 슬픔 때문에 오열 속에 뛰쳐나오고 말았다. 여자에게 가슴이 갖는 의미는 얼마나 큰 것일까……건강할 때는 소중한 줄 몰랐던 가슴, 가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생명이라는 의료진의 세 번의 설득으로 결국 수술 받기로 했다.

어머니와 남편의 배웅 속에 수술실로 향했다. 그 시각,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 지……수술 전 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아 주었다.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어머니, 미안합니다……”한마디만 겨우 내 뱉었다. 건강하게 낳아준 몸을 잘 간수 못한 죄스러움, 그리고 두려움 등 복잡한 감정이 마음에 가득했다.

수술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느끼는 죽음 같은 외로움, 이대로 갔다가 못 나올 것 같은 두려움, 그 곳은 수술을 하기 위한 통로가 아니라 죽음으로 향하는 통로 같았고 수술 전 마취를 하는 순간, 내 육신은 이미 온전한 내가 아니었다. 마취로 긴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수술 전과 수술 후의 나로 달라져 있었고 인두 같은 수술자리가 흉터로 남았다. 간절함 때문일까, 성공적으로 마친 부분 절제수술로 나는 건강과 한발자국 다가갔다.
30여일 매일 매일 진행된 방사선 치료로 피부는 거멓게 어두워져 갔고 그때의 치료 후유증으로 아직도 피부에 가끔 상처가 나곤 한다.

 

새로운 삶, 새로운 시작

못살 것만 같던 괴로움, 그리고 슬픔, 그리움들이 시간 속에서 쌓이다가 허물어지고 또 쌓이다가 허물어지기를 5년, 쓰나미처럼 다가오는 그리움 속에 나는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보고 싶으면 보고 싶은 대로 그렇게 세월을 살았고 이제는 고인이 남기고 간 추억으로 살지만 그리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모든 것 또한 지나 가리라” 라는 말이 있다. 세월이 약이라 더니 죽을 만큼 힘들었던 그 순간도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무디어지고 옅어지고 연해져 갔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던 그 순간들이 지나고 이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삶을 마주하게 되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리라. 또한 내일도 오늘처럼 살리라. 그 하루하루를 모아 모아서 후회 없는 삶을 살리라. 이 순간 떠오르는 한마디 “견딤의 크기와 깊이가 쓰임의 크기와 깊이를 결정한다.”나는 이 지구 위에서 어떤 쓰임으로 남을 수 있을까?

5년의 투병생활로 나는 좀 더 성숙된 자세로 내 인생을 마주하게 되었다. 살다 보면 심각한 상황이란 없다. 심각한 것은 바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가짐의 빛깔이리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인 것처럼 살자.

올해에 피어날 벚꽃들은 어쩐지 찬연하게 아름다울 것만 같다.

                                                                  2017년 1월, 내곡동 자택에서

 

  2. 마당 쓸기
 

마당에 툭- 감이 떨어진다. 익기 시작한 감은 떨어지는 순간 깨여져 주황색 속살이 터져 나온다. 마당에 감 세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해마다 이맘때면 감나무 잎과 함께 감이 마당에 떨어진다. 이 계절이 되면 우리 부부는 일상 중에 한가지 일이 추가된다. 바로 마당 쓸기 이다.

마당에 자라고 있는 감나무가 모두 세 그루이다. 나무가 크기 때문에 매일 한번이나 두 번은 마당을 쓸어야 한다. 주인집 내외가 2층에 살고 우리가 1층에 사는 데 어찌 생각해보면 마당을 사용하는 사용료 같은 거라고 해 두자. 가끔은 귀찮을 때도 있다. 아직은 낮에 더위가 있어 반팔이나 반바지를 입고 일 하면 모기가 물기에 잠시 잠깐이라도 모기향은 필수로 피워 놓고 쓸어야 한다.  

가끔 우리집에 놀러 오는 지인들은 산이라는 자연경관과 마당, 텃밭을 가지고 있는 것에 부럽다고들 한다. 물론 얻는 것이 많다. 마당에서 식사도 하고 차 한잔 하고 음악 듣고 수다 떨고……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로 식탁이 풍성해지고 봄, 여름, 가을을 자연속에서 지낸다는 것 역시 축복이다. 하지만 불편한 것도 감수를 해야 한다. 오래 된 주택이다 보니 화장실, 욕실도 밖에 있고 여름이면 벌레의 습격에 항상 대비를 해야 하고 장마철에는 습기와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은 게 있기 마련, 여름의 불편함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기다려질 때면 다 잊으니 또 한 해를 보낼 수 있는 면역력을 그때 키우는 것 같다.  

언제 마당을 쓸어봤을까…시골에 살 때는 어린 시절이라 쓸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기억에서 잊혀 진 마당 쓸기를 한국의 서울에서 체험하고 있으니 기분이 묘할 때가 많다. 우리집 청소 담당은 남편인지라 대부분 그이가 쓸지만 그래도 가끔은 비자루를 들게 된다. 대충 쓰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쓸고 난 후의 기분이 좋아진다. 사르륵사르륵 소리 내며 비자루의 끝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쓸려가는 낙엽, 그 낙엽을 보며 청소의 즐거움과 가을이라는 계절과 단풍이라는 색채도 느껴본다.  
가을에 많은 사람들은 수확을 생각한다. 자연속의 많은 현상이 그리 말해주기 때문이다. 봄에 파종을 하고 가을에 수확을 하듯 우리네 인생도 젊을 때 뿌리고 나이 들어 거두어 들인다. 그런데 나는 요즘 마당을 쓸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굳이 가을이 수확의 계절이여야 만 할까......농작물같이 익는 농사는 그렇다 쳐도 마음속에 가을은 내가 마음 먹기에 따라 또 다른 시작일수도 있을 것이다.  

마당을 쓸면 낙엽으로 덮였던 공간이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난다. 새로운 모습이라 기보다 낙엽이 내려 앉기 전 모습이 리라……그래도 그 시간 그 공간은 한번뿐이니 새로운 모습 일수도 있을 것이다. 마당을 쓸며 내 마음의 먼지도 쓸어 본다. 빗질 한번에 마음 한번 쓸고 빗질 두 번에 마음을 두 번 쓴다. 누군가에게 담았던 서운함, 미움, 원망 등을 쓸어내고 용서와 이해를 그 자리에 담아 본다. 마음이 편해진다. 미움의 상대가 변한 건 아니고 변한 건 내 마음뿐인데 마음이 행복해진다. 마음을 청소하며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내일을 시작한다면 가을은 또 다른 시작인 것이다.  

항상 스타트가 늦어 막바지에 힘을 내 일등을 쟁취했던 학창시절 백 미터 달리기가 생각난다. 출발이 좀 늦으면 어떠하리…출발이 늦다고 자신을 원망하기보다 목적지를 바라고 더 힘을 내 뛰어가면 될 것이다. 모름지기 우리 마음 또한 시작과 과정, 결과라는 것은 내가 정하는 법, 이 가을에 수확다운 수확을 못했다면 새로운 시작으로 출발선에 서 보자.  

가끔은 하늘도 쳐다 보고 코스모스 보며 잠시 쉬어 가기도 하자. 내 방과 몸을 깨끗이 하듯이 마음도 비워서 깨끗이 해 보자. 비우고 희망, 믿음, 사랑을 담아 보자.  

늦은 기상을 하고 문을 여니 오늘도 먼저 마당에 낙엽이 반겨준다. 쓸어달라는 듯이 누워 있다. 그 낙엽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가을은 가을인데 이 가을이 작년의 가을은 아니고…마당 쓰는 나도 작년의 내가 아니다. 내가 오롯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마음뿐, 오늘도 마음을 청소하며 시작하자……. 

가을비가 내린다는 예고에 맞게 하늘이 무겁게 내려 앉았다. 비가 내리기 전에 마당을 쓸어야겠다. 나에겐 매일 매일이 시작이다. 그 시작을 마당 쓸기부터 시작하자…

감나무 잎이 다 떨어질 때까지 마당 쓸기는 계속된다.  


                                                                2017년 10월 10일 내곡동 자택에서

  


3. 장마비와 그리움


올해 장마는 비의 양 보다는 우기가 집중되어 있고 맑은 날에는 폭염이 기승인 특징이 있다. 나는 출근하면 네 시간 정도 혼자 일을 한다. 요즘은 한낮에도 비가 많이 내려 일 하는 사이, 밖에 내리는 비를 보며 그리움에 마음을 잠시 적시곤 했다.  그리움은 외로움이고 추억이다. 여러 가지 빛깔을 가진 그리움은 장마철이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파고 든다. 

며칠 전, 시댁 쪽 어른 한 분이 돌아가셨다. 나에게는 시 외숙모이다. 시댁과 3키로미터 떨어진 마을에 살고 계셔서 시골을 오가며 많이 들려 나도 잘 아는 분이다. 문방구를 운영하시던 외삼촌 부부, 정이 많으신 외숙모는 우리를 만날 때 마다 늘 펜과 노트 등 문방구 중에서 필요한 거 가지고 가라고 정을 주셨고 우리 부부는 방문 때마다 두 분이 받지 않을 용돈을 어디든 숨기느라 눈치싸움을 하곤 하였다. 몇 년 전 시외삼촌도 갑자기 돌아가셨고 그후 외숙모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울산에 사는 큰 아들네로 이주를 하셨었다. 그 뒤로는 한번도 뵙지 못하고 치매가 좀 있으셔서 요양원에 계신다는 소식만 인편으로 듣던 중이었다. 

시골로 어머님을 뵈러 가면 어머님은 외숙모와의 이야기를 해 주셨다. 유난히 사이 좋은 시누와 올케로 살아 오신 두분, 어머님은 외숙모와 전화 통화를 하는 데 당신을 알아 보지 못하더라면서 속상해 하셨다. 

문상을 가서 입관식을 지켜 보는 데 원래도 말랐던 고인이 더욱 말라 있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그 분의 인생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남편으로부터 들은 일화로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 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시댁 뿐만 아니라 친정에도 외숙모님이 계신다. 외숙모라면 어쩐 지 엄마와 언니 사이 같은 묘한 친근감이 있다. 난 사춘기시절부터 외숙모를 참 잘 따랐고 요리 중에 몇 가지는 지금도 마음 속에 남아 있어 종종 외우곤 한다. 나의 외숙모도 시집을 와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 한국에서 외숙모를 재회하면서 챙겨 드리느라 했지만 죄송한 만큼 너무 소소한 거라 늘 마음이 걸렸었다. 나의 외삼촌도 갑자기 뇌출혈도 몇 년 전 돌아가시고 외숙모는 지인 소개로 재가를 하셨다. 요즘은 통 소식을 모르고 있어 답답하던 차에, 시외숙모님의 사망소식은 더욱 슬프게 다가 왔고 친정 외숙모생각이 더욱 많이 났다.

40대중반부터일까, 주변에 세상을 하직하는 사망소식이 자주 들려 오고 나도 문상 가는 일이 많아졌다. 세상은 그렇게 윗 세대가 세상을 하직하고 새로운 세대가 다시 그 자리를 메우면서 그렇게 살아지는 건데 문상 가는 일은 늘 낯설고 마음이 힘든 일이다. 

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아버지, 외삼촌, 사촌오빠, 시외삼촌부부 그리고 또 다른 분들, 너무나도 소중한 인연들과 작별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임종을 지켰던 적은 한번도 없다. 나를 이 세상에 보내준 아버지의 임종도 못 봤다. 그런 사실이 나를 더 아프게 하기도 했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맺었던 인연은 그렇게 어딘 가 훌쩍 떠나 듯이,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 듯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갔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부터 죽음으로 향해 간다. 출생은 인생의 시작이고 죽음은 인생의 끝이다. 당연한 이 과정을 내 자신이 청춘일 때는 잘 모른다. 그러다 중년쯤 되어 내 주위에 소중한 인연들이 나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할 때 비로소 다시 명확해진다. 인생 전체 기간을 돌아 보면 되는 일 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고 많은 순간은 아픔과 고독을 같이 하지만 우리는 이 생에 많은 미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내 노력이 세월속에서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을 까 하는 희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근 몇 년 간 우울증이 찾아 왔다. 갱년기를 맞이하면서부터 이다. 처음으로 겪는 심신의 변화에 너무 당황하고 놀랍고 억울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나도 이제 또 다른 인생의 시작점을 향해 가는 데 마음은 그런 신체의 노화속도를 못 따라 가는 듯해 신체와 마음이 싸우면서 우울해 지는 듯했다. 이 것 또한 인생의 한 과정인데 그러한 사실을 받아 들이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요즘에는 진취적으로 살고 싶어서 늦게 나마 운전면허증 취득도 도전하고 이런 저런 목표를 재 설정하고 노력을 하려고 한다. 

인생은 그냥 살아 지는 게 아니고 살아 내는 거니까. 나의 인생을 더 밝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노력하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고인과의 제일 좋은 작별을 그분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비록 이제 볼 수는 없지만 그분과의 추억은 늘 나에게 생생하게 살아 있는 거니까. 

올해 장마도 이제 곧 끝날 듯 하다. 장마가 휩쓸고 간 텃밭을 다시 정비하여 가을 대비를 하듯이 내 인생도 새로운 준비와 도전을 해야 할 듯싶다. 

내년 장마가 오면 나는 또 누군가가 그리울 것이다. 

                                                                                           2022. 7. 14

송 연옥프로필:

1973년 중국 흑룡강성 출생, 필명 송이. 흑룡강조선족작가협회 회원, 흑룡강신문 산동 지사에 근무. 중국조선족북방문단 제1회 흑토문학상 수상,2017년 한국 설원문학상, KBS방송 한민족방송 우수상 다수 수상,  2019중국”효사랑”글짓기공모 특별상 수상, 2022년 동포문학 수필부문 최우수상 수상, 현재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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