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요일이다. 아침부터 명선이는 서둘러 설거지를 끝내고는 머리를 감느라 화장을 하랴 분주히 서둘렀다. 남편의 고향친구 철석이네 딸 결혼식에 가야 했다.

참, 이게 얼마만의 서울 나들이냐?  괜히 신바람이 나서 콧노래가 절로 났다. 남편 기호도 벌써 옷을 갈아입고 괜히 집 안팎을 들락날락 서성대며 부산스럽다.

망할 놈의 코로나 이후로 일년 반 동안 경기도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 서울 근처에도 안가다 보니 친구들 얼굴도 잊어 먹게 생겼다.

마지막 친구 모임인 19년 년말 송년회 때 모여서는 ‘5학년’이 된 기념으로 이제 남은 하루하루를 즐겁고 신나게 살자는 인생 목표를 세우고 의기투합하여 새해에는 1박2일로 어디 펜션이라도 얻어 좋은 추억 만들어 보자고 새해 모임계획까지 거창하게 세웠는데 그것도 무산됐다.

모임은커녕 회사 ㅡ 집 ㅡ 회사, 이렇게 두 점 사이만 토끼처럼 왕복을 한 지도 어언간 일년 반이 되여 갔다.

처음엔 회사에서도 단속하지만 겁도 나고 해서 진짜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TV에서 시키는 대로 회식도 일체 안하고 방콕만 했다. 그런데 이제는 코로나에 내성이 생겼나 보다. 마스크 끼고 조심하면 괜찮겠지 하고 마음의 탕개가 풀어졌다. 오래동안 외부활동을 못한 보상 심리도 생겼고 고향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며 찐하게 술 한잔 하고 싶어졌다.

“여보, 아직 멀었 소? 늦겠 소 참.”

“다 됐어요, 보채기는, 자기도 오랜만에 친구들 얼굴 볼 생각하니 조바심 났네요, 호호 …… 다 됐어요, 아직 안 늦은 데 뭘 그리……”

“가서 술 한잔 하려면 차를 두고 버스 타고 지하철 갈아타고 가야하는데 버스 기다리는데 시간 많이 걸릴 수도 있 구 ……”

“다 됐어요, 가요, 가.”

명선이는 헤라 쿠션의 퍼프로 얼굴에 잡티 부분을 한번 더 눌러주고 화장을 마무리했다. 매일 마스크를 끼고 다니니 화장해도 눈 위로는 보이지도 않고 마스크에 화장품 묻는 것도 귀찮고 해서 옛날에 매일매일 화장 곱게 하고 출근하던 습관이 무색하게 요즘은 스킨 로션만 바를 때가 많았다. 갑자기 풀 메이크업을 하려니 화장이 뜨면서 잘 먹지도 않는다.

화장을 하는 내내 친구 미영이 얼굴이 떠올랐다. 작년에 결혼 날짜 받았다고 전화를 주며 “뭐부터 준비를 해야지? 정말 준비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하고 기쁨 반 걱정 반 너스레를 떨던 친구다. 그 날이 바로 오늘이다.

코로나 판국에 무슨 결혼식을 올린다고 그러냐고 하겠지만, 코로나 유행 전부터 결혼 말이 오갔는데 코로나가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다.

작년 5월로 예식장을 잡았다가 10월로 미루고 다시 새해 1월달로 변경했는데 3차 대유행조짐이 있어 또 식을 못 올리게 됐단다. 이제는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예식장의 통보가 와서 울며겨자먹기로 형편 껏 하기로 했단다.

어찌 보면 신랑신부들이 젤 불쌍한 피해자들이다. 평생을 두고 잊지못할 행복하고 뜻 깊은 날에 많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하는데 코로나로 의도치 않게 된서리를 맞았으니까.

코로나 때문에 자꾸 결혼식이 미뤄지자 미영이는 속상하다고 자주 전화를 해왔었다. 솔직히 남들은 아들딸 다 시집 장가 보내도 그렇게 내숭을 떨지 않더니 만 친구는 좀 유별난 것 같았다. 특히 결혼식장에 혼주로 앉는 게 무슨 벼슬자리를 얻는 것처럼 유난히도 생색을 냈다. 

“그건 모르는 소리, 내 처지에 혼주 자리에 앉는게 얼마나 영광인데 얘? 그건, 내가 철석 씨와 살면서 내가 할 도리를 다했다는 말이 아니야? 더욱이 의붓어미로 자식한테 당당히 인정을 받고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리고 친구들이랑 세상 사람들한테 내가 인정받고 평가 받는 자리라고 생각된다. 내가 너무 극성맞고 유난스러운 가? 호호.”

아무튼, 미영이는 말을 해도 똑 부러지게 해서 마음에 들었다. 특히, 남편들 사이 꽤 친하게 지내다 보니 코로나 전에는 부부동반으로 자주 만나 술 파티도 열고 같이 여행도 다니곤 했다. 친구네 집에 숟가락 몇 개가 있고 사발 몇 개가 있는 것까지 서로가 환히 알고 있을 정도다.

제 남편 흉을 보다가도 남편들이 어리둥절해서 다가오면 아닌 보살 손뼉을 치며 능청을 떠는 사이가 됐었다. 다 같이 딸을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미영이 마음 이자 자기 마음 같았다.

혼주가 된 친구가 빨리 보고싶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친구 모임도 자주 있고 대림이나 구로의 예식장 같은데 서도 자주 만났었는데, 세월이 하도 수상해 이젠 얼굴 본지도 한참이 됐다. 

오늘 가면 예쁜 한복입고 메이크업까지 받아서 예쁘게 단장했을 미영이를 생각하며 명선이도 갖고있는 옷들 중에서 제일 비싸고 좋은 옷을 골라 입고 길을 나섰다.

두 사람이 서둘러 신도림 역 부근에 위치한 예식장에 도착해보니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 각자 여러 가지 색상의 마스크를 낀 채 큰 예식장 홀에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것 같았다. 더는 방구석을 못 참고 이 기회에 콧바람이나 씌우려는 심산들인 것 같았다.

사상 유례없는 마스크 행색들이지만 이 일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이들 습관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마스크 안 끼면 허전할 지경이다.

중국에 있을 때 매일 만나고 부딪치고 하면서 정겹게 지냈던 고향마을 반가운 분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도 담소를 나누었다.

여기저기서 놀란 소리가 터졌다.

“어마 야, 누군가 했네.” 

“마스크 끼니 못 알아 봤소!”

명선이는 미영이를 찾아 사람들 틈 사이로 분주히 눈길을 옮겼다. 미영이는 아마

이런 날은 무척 바쁘겠지 싶으면서도 손잡고 직접 축하라도 해주고 싶어서 신부대기실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신부대기실에는 하얀 드레스를 곱게 받쳐입고 부케를 든 신부가 검은 정장을 입은 예식장 직원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하객들과 한창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신부님만 마스크 벗고 다른 분들은 벗으면 안돼요. 신부님도 사진 다 찍었으면 마스크 쓸게요”

“손 님~!  마스크 끼셔 야 해요, 이러다 보건소 직원 분들 오시면 큰일나요!” 한 친척이 마스크 벗고 사진 찍으려 다가 직원한테 야단을 맞는다.

이게 무슨 일인지…… 평생을 두고두고 간직할 소중한 결혼식 사진들이 마스크로 도배됐다. 휴~, 먼 훗날 그땐 그랬었 단다 하면서 옛말 하는 날이 오겠지?

신부대기실에서 미영이를 못 찾은 명선이는 다시 홀로 나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신랑 신부 축의금 받는 곳으로 눈길을 돌리다가 자기 눈을 의심하 듯 다시 자세히 봤다.

분명 양복을 입고 꽃을 단 남편 친구 철석이 옆에 분홍색 한복 저고리를 곱게 입고 서있는 사람은 철석의 아내 미영이가 아닌 다른 여자였다. 세상에나,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명선이는 마침 담배 피우러 1층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신랑을 발견하자 그를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가서 목소리 죽여 물었다.

“자기야, 철석이 옆에 저 여자 누구야?”

“아, 저 여자~ 철석이 본처 지 누구겠어, 당신은 첨 보겠네, 애가 어려서 이혼 했으니……” 

명선이는 갑자기 머리를 한 매 맞은 듯 뗑 해 났다. 그럼 미영이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서 미영의 번호를 찾아 눌러보니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명선이는 이 시각, 그 어딘가에 외로이 있을 미영이의 마음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아무리 미영이가 철석이와 재혼을 한 사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 것 같다.

뭐, 다 그렇고 그런 사연이 있어서 자기 혼인을 끝까지 지키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새로 만난 인연들은 서로 늦게 만난 게 한스러울만큼 금슬이 좋지 않았던가! 그들은 기호와 재혼을 해서 알콩달콩 살고 있는 자신도 부러워 늘 항상 롤 모델 삼고 싶을 만큼 다정한 잉꼬 부부였다.

 

서로 각자 딸을 데리고 재혼한 기호 네 부부와 달리 철석이 네는 철석이 딸 하나뿐이었는데 불임이었던 미영이는 철석이 가 데려온 딸애를 지극정성을 다해 키웠었다.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이다 보니 온갖 정성을 다해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 키웠었다. 딸도 엄마엄마 하면서 팔짱 꼭 끼고 쇼핑도 다니고 영화 구경도 다니는 여느 친 모녀 사이 부럽지 않게 보였었다.

명선이는 누구한테 머리 하나 얻어맞은 듯 너무나 큰 충격을 먹었다. 한편 미영이에게 알 수 없는 동지 의식이 생겨났다. 이건 너무 불공평했다. 이럴 수가 없지 않는가!

   명선이는 무거운 마음으로 결혼식장에 입장을 했다. 옆테이블에서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철석이 처는 안보이네.”

“오, 집에 있대, 딸애가 글쎄 지 엄마 혼주 앉힌다고 십여 년 만에 연락했대, 피 줄이 무섭지 머”

“암만 잘해주면 뭐해 잘 키워줘 봤자, 그래도 낳아준 엄마 찾는데……이 결혼식도 철석 이네가 다 해주는 거라고 하던데, 쯧쯧.”

……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명선이는 남편한테 조용히 물었다.

“자기는 철석이네 결혼식 보니 어때?”

“뭐가?”

코로나 때문에 예전의 동포들 관행이었던 결혼식의 기본3차-부페,노래방,중국식당 코스는 싹 취소되고 뷔페 서도 방역 수칙을 지켜야 해서 멀리 쩍 떨어져 앉는 바람에 혼자서 한잔 마신 것 가지고는 영 성에 차지 않아 서운하던 남편 이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앉아서 아내가 무슨 생각하는지는 조금도 관심이 없나 보다. 어쩌다 서울까지 와서 1차로 끝나는게 못내 아쉬워서 “옛날 같으면……” 하고 술에 간이 동동 뜰 때까지 먹고 마시던 옛날 생각을 하고있을 것이다.

“뭐 긴 뭐 겠어요, 철석이 본처가 혼주 자리에 척 앉아있 구 미영이는 집에서 혼자 있는 거 말이지”

“아니 혼주 앉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 애 친 엄마인데……그리 구 미영이도 그렇지, 뭐 안 오구 그럴 거까지 있어, 다들 사정 모르는 것도 아니 구 굳이 그렇게 까지 할 것 있나?”

명선이는 한 지붕아래 살면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서늘한 찬 바람 한 오리가 명치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럼 남편의 딸 지혜도 결혼식 때 제 친 엄마를 불러 혼주 자리에 앉힐까? 그럼 난 결혼식에 참가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 내 딸 은수가 결혼할 때는? 지긋지긋해서 그림자도 보기 싫은 전 남편이랑 나란히 앉아 사위의 절을 받아야 하나? 그때 이 사람은 어디에 있고?

명선이는 아직은 딸애들이 학생들이라 생각해 본적 조차 없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에 TV를 보는데 MBN의  ‘속풀이쇼 동치미’ 에서 재혼 가정의 자녀 결혼식에 혼주로 누가 앉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연예인들이 열띤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2021.  5. 

 

 

장문영 프로필

중국 흑룡강성 벌리현 출생

재한동포문인협회 사무국장

<장백산><청암 문학><지필 문학>등 잡지에 소설, 시 발표

한국문예작가회 제9회 백일장 차상

2023 국제 가이아 환경문화대상 문학 부문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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