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디큐어의 추억


그녀의 바다는 엄지 발가락에
바른 패디큐어에서 시작됐다
파란 물결과 반짝이며
부서져 내리는듯한 금빛 모래

처음에 파란 색으로 칠하고
다음은 금빛 펄로 칠하고
그다음은 무색으로 코팅한
엄지의 추억은 지워질 줄 몰랐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그녀가
나만 믿어하는 아찔한 손길에
몸을 맡겨 물고기가 되던 그 순간
바다도 그녀의 것
그도 그녀의 것,
이 세상 전부가 그녀의 것이였다

여름, 가을을 지나면서
잘라져나간 발톱의 크기만큼
그녀의 바다는 점점 작아졌고

마침내는 겨울비가 오는 소설에
소설속의 이야기 같았던 마지막
한 단락을 뭉텅 잘라내고나니
그녀는 푸른 바다를 잃었다

하얀 낮달이 창백한 그녀의 뭍은
저 멀리 밀물이 밀려올 소리에
고요히,고요히 숨죽이고 귀를 강군다

다시 한번 바다라는 이름으로
푸르고싶은 욕망만이
바다보다 더 진하게 출렁이는데
썰물이 빠진 뭍엔 하얀 소금밭이
많고많은 눈물의 밤을 저장했단다

 

작은 웅뎅이의 고백


내 마음은 이미 젖을  대로 젖었다
비야, 더는 내 창을 노크하지 말거라

네가 나에게 준 고운 파문 동그란 행복을
난 차마 거절할 힘이 없단다

네가 오는 소리마저도 곱게 보듬어안는  나는
네가 없는 날의 긴 허무와 공허속에 말라갈거다

나에게 미친 방출대신 고요함으로 있게 해줘
가슴 쥐어뜯으며 흐르는 흙탕물이 되긴 싫단다

나는 그냥 평범한 한각 땅이고 싶단다
어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품을 수 있는
따뜻한 가슴으로...

어느날인가 푸른 싹 하나 돋으면
그것이 내 사랑의 증표인 줄 알고
곱게곱게 쓰다듬고 가거라

제발 더 이상 나에게 
미친 방출(放出)을 주지 말거라

 

참나리꽃


황홀핫 날개짓에
심장이 멈췄던 그 순간
벌써 네것임을 예감했다

두 얼굴이 포개지는  
숨막히는 시간속
세상에 온 이유는 확실해졌다

꽃잎을 곱게 감아올리고
꽃살 촉수로 삼아
꽃대에 묶인 몸  한스러워하며
아픈 날개짓을 시도한다

네가 잠깐 머문 뒤로
꽃이였던 적이 없었다
너를 닮은 날개짓 
너를 향한 피터지는  
날개짓속에
오늘도 또 날개가 부서져내린다

이 생에 너한테 닿지 못하면
내 생엔 꼭 나비로 태어나
네 옆에 나란히 설 수 있겠지

착각같은 숙명일지라도
머리 숙여 간절한  기도속에
오늘을 견딘다

후끈 달아올라 느슨하게
누워있는
어느 오후 시골길옆에

가냘픈 꽃대만  남아가는
아픈 하느작거림이
더없이 슬퍼보인다고
지나던 나그네의
발걸음도  멈추는데
언제면  네 눈속에  
내 모습뿐일수가 있을까

 

  편두통

 

그가 내 오른 쪽 머리에
문을 내고있다
티끌같은 꽃씨로
달콤한 향기로 
숨구멍에 산소처럼
스며들더니

어느샌가 내 안에
넌출 한마디 생길 때마다
뿌리내릴수 있는 넝쿨식물로
우썩우썩 자라서
내 행동과 생각을 지배하는
싱그러운 주인이 되더니
갑자기 그 거대한 몸을
끌고 떠나간단다

떠나기 위해서 큰 문이
필요하다고
그가 날마다 내 생살을
깎는다
물처럼 출렁이며
머리속에 날아드는 
연장의 깎음질속에
저도 몰래 머리에 손을
얹으며 입에선 아파 하고 
비명이 새어나온다
머리  한쪽이 문짝이 되어 
덜컹거리며  삐꺽댄다

조만간, 

온 몸까지  욱신거리며
아플것 같다 

 

하나의 몸짓일  뿐


눈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등 돌렸다고 생각하지 마라
등 돌리는 것을 
반목이라 생각하지 마라
가끔은 서로의 눈을
쳐다보기보담
등에 등을 기대고
소리없이 너를 읽음도
행복이라고
한없이 지치고 힘든 날
네 앞에 미소로 필수 없는 날
내 맘이 네 등에 기대어
쉬어갔노라 고백하고 싶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돌아선 몸짓이라  생각마라
돌아선 몸짓은 굳이
이별이라  생각하지 마라
가끔은 돌아서
온 몸이 촉각이 되어
네 사랑을 미소를 노래를
마음 가득 담아다
꽃으로 피운단다
한없이 슬프고 외로운 날
입만 벌리면 울음 될것 같은 날
너라는 꽃밭을 배회하며
향기 가득 머금고 나도 한송이 
꽃으로 웃게 되더라

아직 발자국소리
멀어지지 않은 한 
등돌림은 반목이 아니다
이별이 아니다
내가 너에게 가는
하나의 몸짓일 따름이다


      바람

         

求道의 길위에
그렇게 많은 것은
필요하지 않아

눈에 보이는 헛된  허상
빈 껍데기들속에
버리고 버린
숨결 하나!

너의 고향은 하늘인가
아니면 바다인가,
땅인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몽실몽실 흰 구름
띄워주고
잠들지 못하는 바다를
연주하고
땅위의 모든 생명들을
춤추게 한다

흔들리는 모든 것의 
뒤에 섰다가
앞서고 싶은 날엔
모든 것은 파멸의
이름으로 남음에

참회와 속죄의 마음으로
새로운  길 따라
묵묵히 수행의 길위에
다시 선다

억매이지 않고 가는
자유의 길위에
그림자 하나 남기지 않음
해탈이라며
오늘도 숙였던 머리 
다시 드는 
기도의 이름
바람이여

   

      섬

                
많고 많은 인해중
작디작은 점일망정
네 시선을 
네 마음을
훔칠수 있음에
행복이었단다

내 가슴엔 
바람이 일고
꽃이 피고
새들의 노래로 넘쳤지

언제부터인가 
네 눈길도 
네 마음도
멀어져가고
물빛 그리움속에 갇힌
죄수가 되였단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묵묵히 섬이 되어가는 일
망망대해속에
잊혀지지 않으려
조그마한 얼굴 쳐들고
몸부림치는 일
조각조각  모래알로
부서지는 아픔속에
흰 돛단 배 기다리는 일

오늘도 출렁임 속에 
또 하루를 버텼다

허순금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시 수십편 발표, 동포문학(4호)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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