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6일 오후 서울시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중국 국경절 축하 행사장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을 만났다. 홍범도 장군 동상 이전 논란 국면에 마음이 상했을 텐데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필자는 이 회장에게 "홍범도 장군 동상 이전 논란은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나, 이번에 한국의 청년들이 이종찬 회장 공개서한을 읽고 역사공부를 제대로 했으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국가원로로서 정치와 국정에 대해 걱정하는 마음이 크다는 말을 했다. 그의 말대로 지금 한국 정치는 국가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화와 타협이 본질인 정치는 실종되고, 상대를 악마화하고 죽이려는 전쟁만 난무하는 실정이다. 지진에 진앙이 있듯이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대통령실이 있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7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를 받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그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결국 검찰의 영창 청구가 무리했다는 말이다.

검찰은 유력 대선후보였고 지금은 국회 제 1당 대표인 이재명 대표에 대해 지난 1년간 검찰력을 총동원해 수사했으나, 결과적으로 법원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검찰의 이같은 과잉수사가 검찰의 독자적인 판단이라고 믿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통령제 하에서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범죄혐의자로 규정하는 순간 검찰은 하이에나가 될 수 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가 각종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는 피의자이기 때문에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인 듯 하다. 그의 생각은 일견 일리가 있으나,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 당원의 70%가 넘는 지지를 받은 당 대표라는 점과 지난 대선에서 불과 0.73% 차이로 낙선한 경쟁자였다는 측면은 간과했다. 싫든 좋든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나는 것은 의무이자 국민의 명령인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영삼 총재를 만났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과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민주당 내에서 이재명 대표의 당권은 더욱 강화되었다. 친명계가 당을 완전히 장악했고, 당원들의 이 대표 지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 대표로서는 전화위복이고, 여권은 역풍을 맞은 셈이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나친 친미(親美) 친일(親日)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에 부닥치고, 북한에게는 출구를 열어주었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은둔해왔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필요한 것을 얻고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복귀했다. 반면 한국은 이같은 흐름을 제어할 별다른 외교적 수단이 없다. 

26일 중국 국경절 행사장에서 만나 기념사진을 찍은 이종찬 광복회장과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오른쪽)
26일 중국 국경절 행사장에서 만나 기념사진을 찍은 이종찬 광복회장과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오른쪽)

윤석열 대통령이 그토록 믿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도 갈수록 흔들리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각종 수사를 받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비해 9%나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내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 되고 그의 케미(chemi) 친구인 김정은과 직접 대화한다면 한국 안보는 그야말로 패싱당하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반도국가이자 분단국가인 한국이 특정 진영과 과도하게 밀착하는 것은 안보 리스크를 키울 뿐이다.

북한은 적인 동시에 함께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할 동족이다. 야당도 정치적 경쟁자인 동시에 국정의 동반자이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이제 야당과 대화하고, 중국ㆍ러시아ㆍ북한과도 대화하기 바란다. 그것이 국익에 부합하는 길이고,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길이다.

필자/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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