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익어가는 소리

요즘은 날이 갈수록 가을을 재촉하는 분위기다. 조석으로 감겨드는 서늘한 기운과 한낮의 부풀어 오르는 따뜻한 열기에 우리네 산천초목은 속살이 익어가는 소리로 분주하다. 시리도록 파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 천고마비의 가을이 왔구나 하는 벅찬 감동과 함께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스럽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본격적으로 완연한 가을이 시작된다는 백로가 지난지도 이슥하다. 요즘 나는 가을이 익어 가는 길목에서 아름답고 풍요로운 가을 풍경에 흠뻑 빠져있다. 빨갛고 노랗고 하얗게 물들어가는 가을의 미소는 다양하다. 천하의 품위를 자랑하는 산마저 가을 앞에 푸른 정기를 바치고 울긋불긋 단풍에 물들어가는 깊은 사연을 저 산곡간의 맑은 물소리가 말해주고 있다. 갈바람에 곡식들이 소리치며 영근다더니 여기저기서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가을 향기가 물씬 풍겨온다. 황금전야에 곡식들이 익어가는 바스락 소리 저 소리는 분명 드팀없는 계절의 알람소리일 것이다.

자연이 연주하는 교향곡에 맞춰 산간에는 맑은 물소리가 끊임없는 가락을 연주하고 가을 들녘에는 풀꽃 향기에 나비들의 춤사위가 한창이다. 산기슭 군락지엔 해맑은 구절초가 기분 좋게 가을 하늘을 향해 손을 쫙 펴고 저기 은빛 날개를 세운 억새들이 바람결에 춤을 추고 있다.

어딘가에 몸을 숨겼다가 가을에야 비로써 초연하게 꽃대를 솟구쳐 올라 온 코스모스는 결코 뒤늦게 세상구경을 하려고 목을 빼든 철부지가 아니다. 가냘프긴 해도 속세에 물들지 않은 청순미가 살아있고 종족번식의 숙명을 이루려는 다부진 숨소리가 있다.

여기 고삭은 담장 밑에 거칠게 뻗어나간 호박넝쿨에는 벌써 떡메로 내리쳐도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떡 호박이 덩그러니 버티고 있는가하면 아직도 한쪽에는 꽃도 피우지 못하고 지쳐가는 철없는 호박꽃 때문에 길게 늘어진 줄기에서는 우리네 정한을 담은 아리랑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사랑하는 연인은 코고는 소리마저 음악처럼 들린다는데 이 벅찬 자연의 숨소리가 어찌 정답지 않으랴? 봄이 왔다고 겨우 눈을 뜨고 꼼지락 거리던 저 순하고 연한 것들이 초봄의 꽃샘추위와 여름의 장맛비에 부대끼고 병충해와 온갖 천적들과 싸우면서 인고의 보릿고개를 넘어 이처럼 탱탱 익어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기특하다.

이렇듯 결실과 추수가 어우러진 풍요로운 이 가을에 우리는 살아온 한해의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진지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수 없다. 저마다 성숙을 위한 담금질에 분주하건만 교만에 빠진 우리는 아직도 계절의 뒤안길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지나 않는지 한번쯤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세월이 너무 빠르다고 푸념하지 말고 다그쳐 마음의 빨래를 해야 하겠다. 세파에 얼룩진 때 묻는 영혼을 맑은 물에 헹구고 펑펑 두드리고 쫙쫙 쥐어짜서 가을볕에 말려야 하겠다. 그리고 내친김에 창고 정리도 알뜰하게 해야 하겠다. 내 영혼의 가장 자리에 틀고 앉은 얌체족들을 몰아내고 순하고 착한 마음을 담아야 하겠다. 마음의 부자가 진정한 부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는 내 가슴속 한 자락에 멋진 방앗간 하나 지어놓고 떡방아 찧는 소리 쿵쿵 울리고 싶다. 그리고 인정의 떡 사발에 사랑의 떡고물을 듬뿍 얹어 우리네 이웃들에게 돌리면서 마음 하나만은 넉넉하게 살고 싶다. 

가을은 가진 걸 웃으면서 내려놓을 줄 아는 멋쟁이 신사다. 요즘은  마음을 비우고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는다. 시냇물이 촐랑대는 풍수 좋은 시골에  아담한 집을 지어놓고 초야에 묻혀 닭 개짐승 키우고 채소랑 곡식이랑 심어놓고 온갖 새들의 노래와 들꽃들의 이야기와 곡식들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진풍경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문을 나서니 선들 가을바람이 나를 한 없이 설레게 한다. 무엇에 망설이는가? 오곡이 넘실대는 들녘으로 나가보자! 곡식이 영글어 가는 소리는 가을이 익어가는 자연의 참소리이거늘 나가서 우리네 삶의 진실을 일깨워주는 대자연의 야무진 생방송을 들어보자! 계절의 한계를 인정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삶의 자세를 되새겨보자!

만물영장인 우리 인간에게 가을은 자연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사색의 계절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내 영혼이 익어가는 소리를 듣고 싶어 저물어 가는 서산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나는 허무와 상실이라는 감성의 수렁에서 벗어나 남은 세월 시기와 질투가 없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멋진 가을남자로 살아가고 싶다. 내 인생에 가을이 끝나는 그날까지! 


상생의 낚시  

낚시 초보인 나는 낚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고향은 작은 벌방 마을이었다. 그 시절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논밭이나 논도랑에 물고기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물속에 들어서기만 하면 녀석들이 종아리를 툭툭 건드리기도 했다.

여름방학이면 개구쟁이 친구들이 개울로 몰려가 물장구치고 맨손으로 수풀을 더듬어 물고기 잡던 추억이 눈앞에 떠오른다. 가끔 연못을 찾아 호기심 낚시를 할 때도 있었다. 버들치 모래무치 붕어와 같은 어종들도 있었지만 제일 많이 잡히는 것이 미꾸라지였다. 재미로 하는 낚시라 낚은 물고기는 “네 엄마 찾아가라”하고 물속에 던질 때가 많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낚시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나온 뒤에도 낚시와는 별 인연이 없었다. 불철주야 공사판을 뛰어다니는 나에게 언제 흐르는 강이나 출렁이는 바다에 낚시 줄을 늘여놓고 세월의 낚시를 즐길 여유가 있었겠는가? 이런 나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은 작년 여름 휴가였다. 아마도 공사판에서부터 내 체질에 알맞은 사우나로 직장을 바꾼 덕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의 단골손님이자 낚시애호가인 아는 형을 따라 인천 대부도 부근에서 망둥어 낚시를 하게 되었다. 숭어가 뛰면 망둥어도 뛴다는 우리말 속담은 많이 들었지만 망둥어 낚시는 난생 처음이었다. 

오후 4시쯤 되어 광활한 갯벌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허접한 대나무 끝에 매달아놓은 낚시에 망둥어가 펄떡 펄떡 올라올 줄이야 망둥어는 눈보다 냄새로 미끼를 판단하는 것 같았다. 흐린 갯벌 바닷물에 미끼를 던지기 무섭게 입질이 온다. 신났다. 한 번에 세 마리까지 올라 올 때는 정말로 덜덜덜 손 떨림에 가슴까지 짜릿짜릿하다. 난 비로써 낚시에 중독성이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낚시를 무지 좋아하는 한 낚시꾼의 이야기다. 어느 날 설치다 보니 그만 가장 중요한 미끼를 집에 두고 왔단다. 오던 길을 돌아 부랴부랴 집에 돌아가 출입문을 여는 순간 이게 웬일인가? 바람난 마누라가 외간남자를 끌어들여 그 짓을 하고 있었다. 화가 치민 낚시꾼이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부라리며 던진 말이 또한 가관이다. “너 이년들 꼼짝 말고 있어 내 낚시 끝나면 돌아와 보자” 

물론 누군가 웃자고 지어낸 과장된 이야기 일수도 있겠지만 낚시 재미에 빠지면 그 만큼 헤어 나오기 힘들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현대문명의 발전과 인간 삶의 질적인 향상으로 그 옛날 오직 생계의 수단이었던 낚시가 어느덧 취미의 레저스포츠로 정착했다. 아는 형의 경우를 봐도 민물고기는 입에 대지도 않으면서 잉어낚시를 고집한다. 먹지도 않는 물고기를 낚는 것은 취미 욕망 집념 인내와 성취로 이어지는 짜릿한 흥분을 위해서일 것이다. 그 쾌감을 높이기 위해 많은 낚시꾼들은 잉어와 같은 대어낚시를 할 때 일부러 가는 낚시 줄을 쓴다고 한다. 이렇듯 낚시는 인간만이 즐길 수 있는 짜릿한 스포츠가 아닐까 싶다. 

오늘 일하면서 문득 내가 하는 사우나 일도 일종의 낚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보통 5분을 더 할애해 손님한테 서비스를 제공한다. 요놈의 야무진 서비스가 쉽게 말하면 맛있는 미끼인 셈이다. 보다 알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마사지 서적들을 탐독하고 잘한다고 소문난 업소를 찾아가 몸소 몸으로 받아보면서 실력을 키우기도 한다. 그리고 화장실 휴게실 흡연실 같은 곳에 마사지의 효능효과와 건강속담을 액자에 넣어서 벽에 붙여 놓았다. 소위 향기로운 미끼를 던지고 낚시 줄을 외연까지 길게 늘이는 전략이다.

물고기낚시는 인간의 일방적 승리로 승패가 갈리지만 사우나 낚시는 쌍방이 모두 승자가 된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하면 상생의 낚시인 것이다. 작업이 끝나고 손님이 일어나면서 와~ 시원하다! 최고라고 엄지를 내밀거나 음료수나 팁까지 얹어 줄때면 낚시할 때 가슴에 짜릿한 흥분이 올 때와 다름없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 비록 팬티 한 장으로 돈버는 직업이라 조금은 천하게 보일지 몰라도 정성과 배려가 오가는 사우나에도 나눔의 예술이 있고 더불어 사는 문화가 있다. 가는 정 오는 정에 세월이 갈수록 누구의 말처럼 물이 반 고기반이다. 물었다고 즐겁고 물렸다고 즐거운 바늘 없는 상생의 낚시 이 어찌 행복한 낚시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한 상생의 낚시터에 연연하면서 평화로운 마음으로 세월의 낚시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착각

어쩌면 내 삶의 터전에 느닷없이 피고 지는 무지개 같고 아지랑이 같은 착각 때문에 요즘 더욱더 세상사는 맛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착각” 이라는 웃기는 우화 한편이 떠올라 생각나는 대로 한줄 적어보려고 한다.
소위 동물의 짝짓기 계절이라고 하는 5월의 어느 날 어느 호수가 야자 나무아래서 처녀 코끼리 한마리가 호수위에 뒤덮인 파란 연꽃잎을 바라보며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이때 물 쥐 한마리가 코끼리에게 다가와 뭘 그렇게 유심히 바라보고 있냐고 물었다. 수컷 물 쥐는 발정이 정수리에까지 사무친 녀석이기도 했다. 연꽃잎을 먹고 싶다는 코끼리의 말에 물 쥐는 엉큼한 속내를 감추고 코끼리에게 말했다. 내가 연꽃잎을 많이 따다주겠으니 대신 나의 어떤 요구도 들어줄 수 있냐고 말이다. 천하의 코끼리가 한줌도 못되는 물 쥐 앞에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당연히 약속은 이루어졌다. 그래서 물 쥐는 열심히 연꽃잎을 따오고 코끼리는 위험한 연못에 들어가지 않고도 잘 먹을 수 있었다. 행복한 만찬이었다. 배부른 코끼리는 식곤증도 오고해서 자리에 누워 쉬려고 했다. 이때 물 쥐가 다가와 약속대로 내 사랑을 받아달라고 했다. 덕분에 배불리 먹었고 약속은 약속인지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물 쥐는 처녀 코끼리 엉덩이에 붙어서 최선을 다해 꿈속에서도 그리던 그 소망을 이뤄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이때 야자나무위에서 놀던 원숭이가 이 광경을 보면서 너무도 어이없고 황당하여 배를 끌어안고 웃다가 장난기가 발동하여 야자열매 한 개를 따서 나무 아래로 던졌다. 정수리를 얻어맞은 코끼리가 “아가”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자기 행위에 몰두하던 물 쥐가 말했다. “조금만 참어 처음엔 다 그렇게 아픈 법이여” 이때 풀잎에 붙어 남몰래 훔쳐보던 하루살이가 한탄했다. “세상에 살다 살다 오래사니 별꼴 다보네”
작년 가을에 아들 녀석이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 보러 온다며 서울에 왔다. 옹근 4년 만에 이뤄진 부자상봉이었다. 녀석이 엄청 커있었다. 세월이 정말 빠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안고 어린 시절을 살아온 나는 애한테만큼은 모든 정성을 쏟아 부었다. 유치원에서부터 한국에 나오기 전까지 줄곧 학부형주임으로 열심히 뛰었고 자식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어느 모로 봐도 손색없는 훌륭한 아버지임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녀석한테 넌지시 물어보기에 이르렀다. “아들아 너 소학교시절에 아버지에게서 받은 가장 깊은 인상이 무엇이니?” 헌데 아들놈은 웃기만 하고 말을 아끼는 것이었다. 말을 안 해도 알 것 만 같았다. 녀석이 4학년에 다니던 때였다. 훈춘시제5소학교 학부형주임의 명의로 교내운동대회 개회식에 연단에 올라 축하연설을 하게 되였다. 운동장에 줄지어선 1200여명 학생들 속에서도 내 아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때 아빠의 얼굴을 보면서 행복에 겨워 반짝이던 그 맑은 눈빛을 나는 오늘까지도 잊지 못하고 살아오는 터였다. 녀석의 입에서 영락없이 그 구수한 말이 나오리라는 기대감에 마음은 벌써 푸른 하늘의 꽃구름처럼 둥실 떠 있었다.
허나 녀석이 하는 말이 기가 막혔다. “아버지가 새벽에 소래에다 토하던 일이 제일 생각납니다.” 헉! 이럴 수가 졸지에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 머쓱한 나머지 머리만 긁적거렸다. 사실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 시절 나는 공짜 술에 취해 밤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잘난 남자가 잘 나가는 줄로 착각하고 살았다. “앉으나 서나 당신생각”에 한잔 하고 “당신 아닌 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많고 많다”며 한잔하고 “가지 마요 가지 마요”하는 간지러운 응석에 또 한잔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공짜에 부푼 배를 드러내고 차갑게 자다보니 그 “위대한 공짜”를 삭히지 못하고 거꾸로 엎드려 토하곤 했다. 공짜 술에 웃고 공짜 술에 우는 착각에 중독된 망각의 세월이었다.
착각이란 한마디로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실제와 다르게 본다는 의미일 것이다. 알고도 모를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착각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때 인민공사가 이 세상 최고의 지상 낙원인줄로 착각하고 살았었다.
요즘 나는 한 가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다. 어느덧 지천의 나이가 되였건만 아직도 마음은 파랗게 살아있고 갈수록 온갖 욕념이 가슴속에서 꿈틀대니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만약 이것도 착각이라고 한다면 나는 당당히 가슴에 안고 싶다. 착각은 자유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 같은 민초에게 이러한 착각마저 없다면 산다는 것이 허무하고 삭막하지 않겠는가. 남한테 피해를 주는 착각이나 실수는 피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착각이 두렵다고 무조건 포기하거나 김빠진 풍선처럼 주눅 들고 싶지는 않다. 내 소유의 작은 울타리를 넘어 무궁무진한 영혼의 세계를 향해 힘찬 날개를 펴고 싶은 지금이야말로 인생의 전성기가 아닌가하는 내 나름의 행복한 착각에 빠져있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고 한다. 감성동물인 인간에게 아름다운 착각은 행복의 조미료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즐거운 까치가 되어 가을 숲에서 “착각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오 기수 프로필 

1960년 중국 길림성 훈춘시 장성자 촌에서 출생
전 훈춘시 정부 공무원 전 훈춘시 방송국 편집 기자
현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초가집, 연정, 정겨운 그 소리, 어머니 꽃 성에꽃- 등 수필상 다수 수상
수필집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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