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고 이튿날 머리칼을 쥐여뜯으며 나의 취중행태에 대해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귀가하다 아빠트 층계에서 넘어져 이마빽이 시퍼렇게 멍이 들던 날 그랬고 역시 귀가하며 층계를 오르다 대체 몇층까지 올라왔는지 헛갈려 1층으로 다시 내려갔다가 한층한층 세여가며 올라와 문을 두드렸는데도 안에서 낯선 남자의 “누구요!”하는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했던 날 그랬고 아침에 깨여나 휴대폰을 보며 전날 밤에 여기저기에 보낸 이상한 메시지를 보며 그랬고… 맑은 정신에는 절대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내뱉은 것이 이불 속에서 눈을 깜빡이며 떠올려질 때는 정말로 이불 속에 영영 그대로 숨어있고픈 심정이기도 했다.

그래도 친구들은 그만하면 약과라고, 별로 흐트러지는 모습 보지 못했다고 옆에서 슬슬 춰주는데 취해도 함께 취하고 망가져도 같이 망가지자는 그 심산 내 어찌 모르리오. 

아무튼 그렇게 골백번 후회하고 지어 금주(禁酒)까지 해볼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술맹세 개맹세라 했던가, 나의 음주활동은 쭉 이어져오고 있으며 후회스러운 취태도 간간히 보이고 있다. 어제는 감기중이라 방금 전까지도 찡그린 얼굴로 하루를 지내다 저녁 쯤에 한잔 하자는 련락을 받고는 언제 그랬냐 싶게 얼굴을 쫙 펴고 거절 한마디 없이 코노래 흥얼거리며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그 대가로 지금 이 시각 나는 고배를 마시고 있다. 감기증상이 가중해져 목이 꽉 잠기였고 아직 취기가 가시여지지 않아 머리가 빠개질 듯 아프다. 속으로는 또 ‘어제 나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는 말을 끝없이 곱씹으며 넉두리 같은 이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그만큼 술이 나는 너무 좋다. 평소 좀 차가운 표정이나 술상 앞에만 앉으면 실실 웃음을 흘리고 한둬잔 들어가면 이 세상 모든 원쑤들도 다 용서할 수 있으리만치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그러니 좀 취하면 또 어떠하리, 좀 실수하면 또 어떠하리. 항상 한점 흐트러짐이 없이 꼿꼿한 자세로 살아가기에는 이 세상이 그렇게 순탄치가 않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면 실수의 차원을 넘어 범죄를 저지르고 나라의 리익에 엄청난 해를 끼치는 사람들은 오히려 정신이 또릿하고 눈이 말똥하며 앞뒤 계산이 누구보다 밝은 사람들이 아니였던가!

물론 나도 술상에서 되도록이면 품위를 지키고 싶고 가끔은 격조높게 시도 읊으며 한껏 멋을 부리고 싶다. 하지만 시초부터 농촌 일터에서 막술을 배웠던 탓인가, 나의 음주풍격은 고상함 쪽으로보다는 자유분방한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나는 하향지식청년시절 생산대에서, 집체호에서 처음 술을 배우기 시작, 당시는 체질에 알맞는 주종(酒种)을 택해가며 여유롭게 대작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 아니였고 빼갈과 맥주마저 귀하던 세월이라 흔히는 싸구려 과일술을 많이 마셨는데 그것마저도 자주 마실 수 있는 형편이 못되였다. 어쩌다 회식이 있는 날이면 아침 우정 배를 곯리였다가 빈 속에 폭음했는데 술맛이 어떤지 음미할 새도 없이 그저 알딸딸해지는 기분에 취해 마셨던 것 같다. 당시 집체호에 조선족 청년이 넷뿐이였는데 한호실에서 생활한 우리는 날씨관계로 일을 못 나가는 날에는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며 그간에 쌓인 피로와 장기간 집을 떠나있는 울적함을 풀었다. 안주라야 빨래도 하고 세수도 하며 지어 발까지 씻는 다용도 대야를 쓱쓱 닦고 거기에다 배추와 무우 따위를 큼직이 뜯어넣고 화로에 끓인 달랑 ‘찌개’ 하나였지만 행복감만은 지금의 진수성찬을 마주한 것 이상이였다. 혹 가다 운 좋게 잉어 같은 생선 한마리 차례지는 날에는 마치 설을 쇠는 기분이였다. 고추가루를 얻어다 뿌리고 푹 끓인 ‘매운탕’에 술이 얼근하게 되면 대야나 그릇 같은 식기를 두드려대며 한동안 춤과 노래로 떠들썩거리다 그래도 흥이 주체가 안되면 동네로 나가 촌길을 한바퀴 휩쓸고 다녀와서야 꼬꾸라지군 했다. 비록 이처럼 힘든 나날 싸구려 술로 격식 없이 배운 술이긴 하지만 그때 먹었던 술은 집체호시절 나한테 커다란 위로를 주었고 어려운 나날을 버티게 했던 비타민 같은 구실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격’ 없이 습득한 음주여서 그런지 몰라도 누가 나보고 술맛이 대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지금도 지적으로 근사한 답을 줄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주변의 일부 술군들을 보면 혀끝을 살짝 대여보고도‘이건 로룡구(老龍口)다’, ‘이건 소금도(小金斗)다’, ‘이건 곡주(谷酒)다’하고 귀신처럼 알아맞추기도 하는데 그런 그들이 신기하게 느껴질 뿐이다. 언젠가 대학동창모임에서 그동안의 음주 풍격이라던가 습관, 표현 등을 기준으로 반급의 애주가들을 주선(酒仙), 술맛을 알고 마시는 부류(会喝酒的), 술을 막 마시는 부류(瞎喝酒的) 이렇게 세 등급으로 나누어 본 적이 있는데 나를 그 술을 막 마시는 부류에 귀속시켰음에도 별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반급의 두 친구가 주선의 영예를 차지, 그들 둘은 모두 빼갈패로서 아무리 업된 분위기에서도 정해진 량만 마시며 마구 흥분해하지 않고 언행에서도 분촌을 잘 장악했다. 가운데 부류도 주종에서 선호도는 있으나 적당히 섞어서도 마시며 기분에 따라 과음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지막 소위 술을 막 마시는 부류는 빼갈이든 맥주든 또는 양주든 가릴 것 없고 딱히 정해진 주량도 없으며 무슨 술이든지 맘껏 취하도록 마셔보자며 덤벼드는 친구들이 포함되였다.      

아무튼 공정성 여하를 떠나 그 ‘술을 막 마시는 부류’에 나를 귀속시켰지만, 혹자는 킥킥거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또 나름대로의 음주 ‘기준’이 있고 ‘철학’이 있음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내가 주장하는 바로는 술상에서 만큼은 좀 격식과 틀 따위를 버리고 자유스로운 분위기 속에 마음이 시키는 대로 술을 마시자는 것이다. 또 소주패라고 소주만 고집 부리지 말고 맥주패와 어울려 맥주도 한둬잔 섞어 마실 수도 있고 마시다 기분이 무르녹으면 자신의 주량을 초과할 수도 있는 것이고 좀 취하면 비틀거릴 수도 있는 것이고… 인간이 인간인 이상 어찌 하냥 기계처럼 한치의 차실도 없이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때론 좀 부족한 구석도 보이고 가끔은 일탈도 해보는 멋도 있어야 보다 진한 사람냄새를 풍기지 않을가? 술상에서만이라도 평시 감추고 살던 참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 너무도 가짜와 허위가 란무하는 것 같다. 모두가 자신을 최대한 포장하여 갑 속에, 틀 속에 숨어있지 않는가. 물건을 포장하면 가치가 상승할 수 있겠으나 사람은 포장이 과할수록 진실성이 떨어지고 믿음성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 알콜의 힘을 빌려서라도 가끔은 갑옷과 틀을 벗어던지고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 보임이 어쩌면 제대로 된 자신에 대한 ‘홍보’가 될 수도 있으리…   

그리고 나 스스로의 판단, 음주 후 좀 비틀은 거렸어도 지켜야 할 것은 그래도 지켰다고 한다면 자화자찬 내지는 망언으로 치부될가? 따지고 보면 노래방에서 화장실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 생면부지의 남들 칸에 잘못 들어가 버젓이 노래까지 한곡 시켜 부르다 뒤따라 들어온 선배님한테 슬며시 끌려나간 일까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별로 남한테 피해까진 끼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날 끌려나오면서 보니 몇몇 아줌마들은 입을 싸쥐고 웃기까지 하던데 오히려 즐거움을 더했으면 더했지 말이다. 좀 취해도 타인한테 피해를 주는 언행은 절대 삼가한다는 것이 내 마음속에 그어놓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이기도 했다. 술상에서 괜히 먼저 시비를 건다던가 남의 심기를 건드려 분위기를 깨뜨릴 수 있는 화제는 기피하고 되도록이면 남의 뒤담화에 가담하지 않는다. 술상에서 불량한 짓거리를 위한 작당모의나 부정부패를 위한 은밀한 뒤거래 같은 것은 감투가 없고 힘이 없는 나로서는 더더욱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아무리 한밤중이라도 귀가도중 로상방뇨 같은 격 떨어지는 행위는 벌이지 아니하고 귀가해서는 식구들과도 했던 말을 곱씹는 등 진상 표현을 자제하며 곱다라니 휴식 모드를 취한다. 이래도 나를 술을 막 마시는 그 말단 부류에 귀속시킬 수 있단 말인가?   

이쯤 지껄이고 나니 어제 마셨던 술도 슬슬 깨는 듯싶다. 취중진담이라 했던가, 이제 더 주절대면 내 이야기의 진솔도도 많이 삭감될가 저어된다. 

끝으로 딱 한마디만 부언하고 싶다. 술을 먹고 실수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술이라도 끊으면 된다. 구제불능은 누구보다 맑은 정신에 고약한 짓거리를 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수필 2

똘이 

 

   '똘이'는 얼마전 출생 둬달만에 우리 집으로 온 강아지 이름이다. 견종이 '비숑(鼻熊)'이라고 하지만 어쩐지 주둥이가 긴 등 여러 특징이 뚜렷하지 않고 대신 이상하게 한쪽 귀가 뒤로 잘 말리며 '싼'티 나는 모습을 보여주어 처음부터 나는 녀석의 '근본'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도 솜뭉치 같은 쬐꼬만 놈이 첫대면부터 발에 살살 감기며 하도 살갑게 굴어 여간 귀엽지 않았다.

    나도 전에부터 티비에서나 길 가다 보며 강아지가 귀엽다고 여겨오긴 했지만 우리 집 실내에서 직접 키우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비위생적이고 시끄럽고 비용 들어가고...리유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집사람은 더더욱 반대였다. 집청소를 하며 웬간한 물건은 버리기를 좋아할 정도로 거치장스러운 것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휴각이 개코 이상으로 발달하여 웬만한 냄새를 참지 못해 했다. 5년전 딸애가 친구가 일본 출장 다녀오며 기르던 애완견을 한주일간 부탁한다며 슬쩍 제 엄마의 의중을 떠봤을 때도 집사람은 처음 단칼로 거절했다. 사정이 딱하고 또 고작 한주일이라니 호기심도 작동하고 해서 내가 옆에서 바람잡이 하여 요행 데려오게 된 것이 우리 집과 애완견과의 첫 인연 혹은 인견연(人犬緣)이였다.

    그때 '해피'라고 불리던 녀석이 상대적으로 '고급' 견종이였는데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처음부터 '격'이 있게 행동하였다. 녀석은 첫날부터 대소변을 신통히도 가렸는데 낮에는 물론 한밤중에도 배변판이 놓인 화장실로 스스로 찾아들어가서는 볼일을 마치고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군 하였다. 식사는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끼 차례지는 사료를 먹고나서는 별로 보채지도 않았다. 저녁 우리가 티비를 보면 조용히 발녘에 붙어앉아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고 아침이면 앞발을 척 침대에 걸치고 사람과 눈맞춤을 하는 것으로 문안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하는 짓이 예뻐서인지 외모도 품위있어 보였다. 한주일만에 제집으로 돌아 갈 때는 정이 퍽 들어 저런 강아지라면 얼마든지 집에서 키울만 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였다. 

    근데 이번에 정작 맞이하게 된 '똘이'는 '해피'와 너무 달랐다. 녀석은 집에 들어서자 아무데나 대고 시원히 볼 일을 보았고 여기저기 다니며 무엇이나 주둥이를 들이대고 물어뜯지 못해 안달이였다. 후에 알고보니 그때 '해피'는 10개월쯤 되는 성숙견에다 훈련을 거친 터였어라 '똘이' 같은 아기견과 비교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였다. 그래도 나는 처음 이 두 녀석의 차이가 하나는 혈통이 순수한 고귀품종이고 하나는 '근본'없는 잡종 때문일 거라는 편견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 지어진 '똘이'란 이름이 '똘아이'와 비슷해서 똘아이처럼 노나 싶어 개명할가도 생각해봤지만 별 신통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그만 두었다.

   날이 감에 따라 녀석에게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점차 대소변을 여기저기에 비치해둔 배변지에 누기 시작했고 배변지도 혹시 몰라 여러 곳에 나두던 것을 한 장소에 고정하기에 이르렀다. 녀석은 배변지에 소변을 볼 때마다 격려의 차원에서 사료 몇알씩 주었더니 이젠 습관이 되여 주지 않으면 쪼르르 달려와 발을 핥고 낑낑거리며 왜 자기의 소변행위를 보상 않느냐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마치 누구를 위해 배설을 해주는 양 녀석의 그런 모습이 가소로우면서도 귀여웠다. 그러면서 녀석은 그래도 '행운아'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응당 받아야 할 대가를, 받아야 할 보상을 받지 못하고 억울한 삶을 살아가는 인생이 어디 한둘뿐인가! 

   녀석에게서 교정해주고 싶은 행위중 또 하나가 끌신 물어가는 버릇이였다. 집에 거실용, 주방용, 화장실용 끌신들이 따로 준비되여 모두 제 위치가 있건만 '똘이'가 온후부터 이 끌신들이 질서가 뒤쭉박쭉 되버렸다. 화장실용 한짝이 주방에 나뒹구는가 하면 주방용은 거실에 내팽겨져있었고 나머지 절반 이상은 '똘이' 둥지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녀석은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끌신 한짝을 주둥이에 문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힐끔힐끔 눈치를 보아가며 줄행랑을 놓군 했다. 그리곤 득의양양해서 마치 큰 사냥감이라도 하나 얻은 양 한쪽 구석에 엎드려서는 물고 뜯고 난리였다. 후에 그것이 이가 돋으며 간지러워서 하는 행위란 것을 알게 되였다. 처음 갓 와서도 그래서 입에 닥치는대로 물어뜯었었다. 

    시초에는 녀석의 '별난 집착'을 꼭 고쳐보겠다며 녀석이 끌신을 물어가면 빼앗아 제 위치에 도루 갖다놓으며 고성으로 훈계도 하고 가끔은 '체벌'로 한두대 쥐여박기도 했지만 녀석의 집착은 고쳐지지 않았다. 후에 사유를 달리해보니 그 끌신들을 꼭 위치들을 정해놓고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집착인듯도 싶었다. 약간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신은 신을 때 찾아 신으면 되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미물인 강아지를 변화시키기보단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모든 일을 자신의 립장에서 생각하고 뭐든지 자신의 편리를 우선 순위에 놓기에 앞서 한번쯤 상대방(그것이 인간이든 미물이든)을 먼저 배려하는 아량도 지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갖게 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돈 한푼 내지 않고 공짜로 안아온데다 생긴 모양새가 원 주인집에서 주장하는 견종의 특징이 선명하지 않아 녀석이 출신이 고귀하지 못하고 비천해서 아이큐가 떨어질 거라는 나의 의심과는 달리 녀석은 영특한 구석이 있었다. 녀석은 누구든 밖에서 방금 들어오는 사람에 한에서는 두길 세길 뛰여오르며 격하게 반기였고 집에서 외출하는 사람에 한해서는 그가 평소 자기를 가장 귀여워했던 사람일지라도 엉뎅이를 돌리고 앉아 자기가 한던 놀이에 열중하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가는 님 붙잡지 않고 오는 님 화끈하게 맞는다'는 녀석의 이런 '행위준칙'에 처음은 웬 영문일가 궁금했고 은근히 배신감마저 들었지만 꼼꼼히 따져보니 녀석 역시 리해타산에 밝았고 그 밑바탕에는 '실리주의'가 깔려있음을 알수 있었다. 출생 수개월의 짧은 견생(犬生)에 녀석은 벌써 '떠나는 님' 붙잡고 매달려봐야 코고물 하나 떨어지는 것 없고 그래도 '오는 님'에게 잘 보여야 개껌 하나라도 차례짐을 명확히 파악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견생이든 인생이든 처세술은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세상에도 '사람이 떠나니 차잔이 식는다(人走茶凉)'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끔 말썽을 일으킬 때면 저 녀석을 계속해서 거둬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다가도 인간에게서 흔치 않는 장점을 보여줄 때는 또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벗 삼아 한지붕 아래서 지내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인간들에게서 보기 힘들고 감추어진 진실한 모습들을 녀석들은 려과없이 보여주고 사람들은 또 그런 거짓없는 모습에 심신의 피로를 풀고 정식적으로 위안을 받지 않나 생각해본다. 

  내가 '똘이'를 보면 편안해지는 리유중 하나가 녀석이 '뒤끝'이 없다는 것이다. 가끔은 녀석의 과잉친절이 귀찮아 발로 툭툭 밀쳐내며 호의를 짓밟는 나의 '무례'에도 녀석은 앵돌아지지 않고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녀석은 집사람들이 휴식일이건 공휴일이건 상관없이 아침 사료먹을 시간이면 에누리 없이 거실 제 둥지에서 빠져나와 침실문을 빡빡 긁으며 늦잠자는 사람들을 깨웠다. 체면따위를 가리지 않고 본인 의사를 솔직히 표현하는 이 역시 녀석의 장점으로 꼽지 않을수 없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괜히 남사정 봐주다가 배를 곯으면 자신만 손해이니말이다. 

  처음 '똘이'를 두고 '근본' 없느니 '똘아이'니 막말을 하고 타견과의 공정성 떨어지는 비교를 함부로 한 것에 대해 요즘 슬슬 미안한 마음이 갈마들기 시작했다. 

   충분한 관찰과 기다림이 없이 속단하고 편견과 아집의 수렁에 쉽게 빠지는 행태 역시 인간의 추악한 모습중 하나가 아닌가 반성해보기도 하면서.

   ※《장백산》잡지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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