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기대하지 않은 사물이나 사람에게서 잔잔한 감동을 느낄 때가 많다. 내가 마란타과(竹芋料)에 속하는 ‘파랑죽우(波浪竹芋)’라는 꽃을 사올 때만 해도 그저 집안에 록색식물을 배치하기 위한 의도에서였다. 별로 해빛을 많이 쬐이지 않아도 되고 물만 주면 된다니 실내 관상용 화분으로는 딱이였다. 그런데다 이 꽃은 어딘지 모르게 먼 남국의 이국적인 풍치를 풍기고 있는 것 같았다. 잎의 겉과 뒤가 푸른빛과 자주빛으로 되여있어 빛갈부터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우를 향해 쭉쭉 뻗어오르는 톱날 같은 잎사귀들은 어딘지 모르게 힘찬 기상을 나타내고 있어 보고 있으면 막연한 희망 같은 것을 기대하게 했다. 관상용 꽃이라고 생각했으니 애초에 꽃을 피울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저 마란타과에 속하는 이 꽃을 꽃은 피우지 않지만 장식용으로 많이 놓는 스킨답서스(绿萝)나 비슷한 류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온 지 3년째 되는 이 꽃은 벌써 두해째 꽃을 피우고 있다. 그것도 숨어서 말이다. 잎을 뒤져보지 않으면 꽃을 피우고 있는지를 감감 모르게 뿌리 부근에 몰래 숨어서 피고 있다. 처음 꽃이 핀 것을 발견한 것은 물을 골고루 주려고 무성하게 자란 잎들을 제끼다가였다. 뿌리 부근에 뭔가 노오란 빛갈이 있는 것 같아 뭔가 싶어 살펴봤더니 앙증맞을 정도로 잔잔한 꽃송이들이 무더기로 피여있지 않는가. 작지만 힘있는 노오란 꽃송이들은 촉촉한 모습으로 활짝 피여나 웃고 있었다. 마치 숨박꼭질하다 들킨 어린아이들마냥 나를 보고 까르르 웃고 있는 듯, 저도 몰래 “어머, 꽃!”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 마란타과가 꽃을 피우다니! 너무나 신비하고 경이로웠다. 왜서인지 순간 온몸에 전률이 일면서 가슴이 먹먹하도록 뭉클해났다. 누군가와 이 감정을 향유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아 인차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영문도 모르는 친구에게 다짜고짜로 “꽃이 폈어. 그것도 숨어서 말이야.”하면서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나는 이 꽃이 왜 이렇듯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는지 생각해보고 있다. 꽃들의 피여나는 모습은 각이하지만 대부분은 가지나 줄기 우로 뻗어올라 피여나기에 쉽게 사람들의 눈에 띄운다. 이 꽃처럼 뿌리 부근에 눌러앉아 피여나는 꽃은 많지 않다. 하기에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느끼는 의외의 경희(惊喜)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혹은 몰래 숨어서 피워올린 그 겸손함 때문인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이 대답에 마음은 석연치 않다. 무엇일가, 무엇일가를 생각하다가 드디여 머리를 탁 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리듬에 따라 피워올린 꽃의 진지한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였다. 작지만 특별히 힘있어 보였던 꽃송이들, 조금만 다쳐도 물기가 흐를 듯한 촉촉한 꽃송이들은 분명 생명의 힘을 자랑하고 있었다. 외계와는 관계없이 오롯이 자신만의 생리에 따라 때가 되면 꽃을 피우는 그 진지함, 곧게 자라나 풍치를 풍기는 멋진 잎과는 달리 구석진 뿌리 주위에서 누가 보든 말든 열심히 꽃을 피워가고 있다. 바보스러울 만큼 고집스러운 그 강대한 생명의 힘, 그 힘에 순간 전률을 느꼈고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세월의 두께가 높아질수록 나는 생명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언젠가 철령시조선족문화관을 찾았을 때 김관장이 뜬끔없이 “서선생님은 후회하지 않습니까?”하고 물어서 흠칫했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김관장의 뜻인즉 자기가 살아온 날들을 후회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것이다. 자기는 몇번을 자신에게 물어보아도 단 한번도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봐도 그 분은 그럴 것 같았다. 문화관을 돌아보는 내내 나는 속으로 느끼며 탄복하였다. 크지는 않지만 정말로 정갈하고 아담하게 마련된 문화관을 돌아보며 알뜰한 주부의 집안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문화관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인상은 별로 할 일이 없는, 안일한 일터로 생각하기가 일쑤다. 그런데 김관장은 이웃집 아줌마처럼 내가 갔을 때에도 손에 풀을 가득 묻히며 자신들이 출연할 탈을 직접 만들고 있었다. 그 문화관에는 역시 나처럼 문화관이 안일한 일터로 생각하고 조동되여 온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면서 민족문화를 고양하고 발전시켜 많은 분들이 말없이 나서주고 있어 고맙다고 하는 것이였다. 자신은 내세우지 않고 탈춤이며 민담이며 판소리에 적극 응해 나서는 사람들을 거론하며 고마워하는 김관장을 떠올리며 나는 숨어서 피던 우리 집 꽃을 떠올렸다. 크다고 멋있는 것도 아니고 높다고 귀한 것도 아니다. 작지만 혼신의 힘 다해 진지하게 대한다면 오늘날의 김관장처럼 자신만의 하늘을 열지 않았을가.

그날 나는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마음으로는 자꾸 작아지고 있는 자신을 초라하게 바라만 봐야 했다. 후회를 안하고 산다는 것은 나에게는 사치이며 거짓말이다. 돌아온 먼 뒤안길을 바라보면 그 땐 그랬을 걸 하는 유감을 늘쌍 하게 된다. 보이는 것들이 정작 눈앞에 닥쳤을 때는 보이지가 않았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진지하게 대했던 일들은 후회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똑똑한 척, 현명한 척 시대에 편승하며 해왔던, 꾀를 부리며 해왔던 일들이 하나같이 얼룩진 그림으로 내 눈앞에 나타나 있다. 주어진 섭리에 충실하며 진지하게 모든 것을 대할 때만이 생명의 가치는 빛을 뿌리는 것 같다. 자신에 대한 진지함은 바로 강한 생명의 힘이며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는 생각이다. 

 

수필 2 

천상에 보내는 편지

 

엄마, 올해도 아카시아꽃은 벌써 진지가 오래입니다. 지천으로 물들었던 록음도 이젠 차츰 지친 빛을 띠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저께 저녁에는 산책을 하다 찌르레기소리도 들었습니다. 립추가 지났으니 선선한 가을의 내음새가 아침저녁으로 풍겨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봄이 오면 봄이 왔나 보다, 가을이 가면 가을이 지나가나 보다 하며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던 제 마음에도 살짝살짝 나비가 날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엄마한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엄마, 엄마를 보내고 난 후 나는 노래를 잃은 새처럼 웃음을 잃은 사람이 되여있었습니다. 세상은 나와는 멀리 있는듯 점점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만나지 못해 안달을 떨었던 사람도, 나가지 못해 조바심을 탔던 마음도 모두가 무의미해졌습니다. 책의 글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귀에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봄바람이 살랑거리기만 해도 못 견디게 살아나던 감성도 잊고 산 지 오래됩니다. 엄마가 살아계실 적에 엄마 곁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지 못한 제 자신이 한스러워 길을 가다가도 저 먼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흘리군 합니다. 그곳에 혹시 엄마가 있지 않을가 싶어서. 사무치게 엄마가 그립습니다. 이 못난 딸이 곁에 있어 엄마의 손을 놓지 않았다면 엄마는 저 멀리 다시는 오지 못할 그곳으로 떠나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픈 이 가슴을 두드려봅니다.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 저는 해마다 나이만 먹어갔지 철은 들지 않았습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여 살아가고 있었지만 진정 가정에서 엄마라는 나무가 감내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친정에만 가면 그 시간은 오롯이 나만의 쉬는 시간이였습니다. 푹 자다 깨여나보면 엄마는 동그라니 앉아서 잠자고 있는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엄마한테 딸은 바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한, 바로 그런 거였습니다. “힘들 텐데 좀 더 자.” 엄마가 나한테 제일 많이 한 말이였습니다. 돌이켜보니 내가 엄마한테 효도한 게 아니라 엄마한테 떠받들려 살았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기타 남매들이 집 떠나 멀리 있으면서 엄마 보러 오지 않는다고 투정만 했습니다. 엄마가 떠난 후 엄마와 함께한 나날들이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고 값가는 것임을 뒤늦게야 깨달으며 형제 남매 중에 엄마와 가장 가까이서, 함께한 날들이 가장 많은 내가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세월이 앞으로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엄마의 목소리, 엄마의 모습, 엄마의 자리, 엄마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엄마를 만나 오손도손 아기자기하게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아득하여 도무지 답이 없을 것 같은, 풀리지 않는 일들을 어떻게 처리할가 고민하고 방황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엄마가 돌아가신 뒤 일어났을가, 엄마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가를 생각하다가 아, 이런 일들이 지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엄마 생전에도 무수히 일어났고 어쩌면 엄마 생전에 이런 일들이 수없이 많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기설기 얽힌 복잡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어찌 오늘만 일이 있고 어제는 일이 없었겠습니까? 그 모든 것들을 엄마는 말없이 넓은 품으로 감싸안으며 안으로 삭이고 또 삭였을 겁니다. 엄마라는 이 바다에는 사랑과 인내, 관용과 베품, 희생과 용납만이 존재한 듯싶습니다. 하기에 엄마가 있는 곳은 언제나 한 가족의 중심이며 가족들 마음속의 메카였습니다. 가령 우리가 사는 지구에 중심이 있다면 그곳은 바로 엄마가 있는 곳일 겁니다. 

엄마, 난 엄마가 떠나간 후의 그 썰렁했던 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엄마를 기리자고 엄마가 머물었던 고향집을 팔지 않았습니다. 여느 설날과 마찬가지로 비행기로, 렬차로, 택시로 우리 형제자매들이 전국 여러 곳에서 그곳에 모여왔습니다. 집도 그대로고 사람들도 그대로고 빠진 사람이라곤 엄마 뿐인데 어째서인지 내 마음엔 한겨울 차가운 바람이 일고 있었습니다. 난방은 잘도 돌고 있는데 나는 추워서 떨기만 했습니다. 엄마가 계셨다면 이 마음을 인차 알아챘을 겁니다. 그리고선 “니 춥나? 옷 더 껴입어라.”하며 이불을 꺼내다 덮어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이는 찬바람을 보아내는 사람은 없는 듯했습니다. 내 얼굴에 띄우고 있는 웃음만 보았을 뿐. 어쩌면 겉으로는 아닌 척해도 우리 형제자매들의 모든 마음에 삭풍이 불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형부는 이야기합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언니는 침대에서 일어나다가도 넘어지고 화장실 가다가도 실신했다고. 큰 올케는 말합니다. 큰 동생이 밤만 되면 밤하늘을 바라보며 말없이 담배만 태우고 있다고. 작은 올케는 말합니다. 작은 동생이 지하실에 들어가 엄마의 사진을 보며 홀로 락루하고 있다고. 우리 형제자매들은 이렇게 부동한 곳에서 엄마를 잃은 아픔에서 헤여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엄마는 엄마만이 아닙니다. 엄마는 우리들의 뿌리이며 우리들의 령혼이며 우리들의 신이였습니다.

엄마를 보내는 날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조문하러 온 엄마의 친구분들께 오히려 담담히 말했습니다. “우리 엄마 꽃을 무척 좋아하시더니 이렇게 아카시아꽃이 피는 따스한 날에 떠났어요. 엄마는 꽃길을 가고 있을 거예요.” 아마도 모두들 엄마가 갔는데 딸은 별로 슬퍼하지 않네, 하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타인들이 어찌 슬픔에 마비된 나의 이 표정 뒤로 몰려오고 있는 찢어지는 아픔의 심연을 알겠습니까. 엄마의 령정사진 앞에서 나는 맥이 풀려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풀어지는 다리에 힘을 주어 서 있으려고 해도 자꾸 비여진 자루처럼 풀썩풀썩 내려앉기만 했습니다. 모두들 슬픔에 잠겨서 돌봐주는 이 없었습니다. 나는 엄마를 바라보았습니다. 엄마의 눈은 령정사진 속에서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그래, 너 또 힘들지? 앉아있어.” 엄마가 가고 나서야 나에게는 엄마가 없구나, 엄마는 생전에 나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구나 하는 마음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가령 이 세상에 진정 이승이 있고 저승이 있다면 나 엄마따라 저세상 가서 다시 엄마의 딸로 태여나 오손도손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할 이야기도 너무나 많습니다. 아마 엄마도 물어볼 말이 끝이 없겠지요. 그 때 엄마를 만나면 다시는 엄마를 홀로 놔두고 놀러 다니지 않을 겁니다. 

엄마 어떤 스님이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미 오지 못할 강을 넘은 사람을 잊지 못하고 계속 슬퍼하면 그 령혼이 안착을 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배회하고 있다고요. 그래서 이 딸은 엄마를 보내주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습니다. 허나 엄마한테 너무나 많은 유감을 남겨서, 딸로서 한 일이 너무나 적어서 이 딸은 오늘도 이렇게 엄마를 불러봅니다. 엄마,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며칠 전에 우리 동네에 있는 어머니들이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고 얼싸안으며 “이렇게 살아있으니 만나게 되는구나.”하는 말을 들으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엄마도 저 어머니들처럼 이곳으로 나들이 한번 오시면 얼마나 좋을가 하구요. 엄마, 맑은 바람이 가볍게 부는 날 바람 타고 한번 이곳으로 놀러 오세요. 엄마와 함께 하얀 아카시아향기를 맡으며 손잡고 걷고 싶습니다. 

엄마, 보고 싶습니다.

서정순 프로필 

중국 요녕성 심양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변작가협회 회원. 요녕성조선족문학회 이사, 수필분과 주임. 수필집 《흰눈이 내리면 그리움도 내린다》(2010년 출간), 한중시집 《시의 소통, 경계를 넘어선 만남》(2009년 번역),《문학명작열독지도》(2012년,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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