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늙음을 아득히 먼줄로 안적이 있었다. 그런데 돌연 나에게서 젊음은 벌써 먼 옛날이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며칠 전 내가 버스역에서 줄을 서는데 한 청년이 “할아버지 먼저요( 老爺子先來)”하며 순서를 양보 했다. 그런데 오늘 물건을 부치러 우정국에 갔더니 젊은 직원이 또 나더러 “할아버지 이쪽으로요(大爺到這裡來) 라고 안내했다. 젊은이가 뭐 틀린 말을 한 건 아닌데 괜스레 습관이 안 되고 귀에 약간 거슬렸다. 마음의 연령은 아직 하늘의 별도 딸 수 있는 한창 나인데 그새 실제 연령이 벌써 할아버지(老爺子, 大爺)라 눈앞이 캄캄하고 등살이 싸늘했다. 젊은이들 눈엔 내가 진정 할아버지로 보인다? 몇 해전만 해도 “큰 삼촌(大叔)”이였고 그땐 큰 삼촌(大叔)이란 말도 듣기가 거북했었는데 어느 새 벌써!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졌다. 

(기실 우리 할어버지는 내 나이에 이미 증손자를 보았었지만…)

몹시 당황하여 어슬렁어슬렁 집에 돌아와 거울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머리카락은 희끗희끗 반백이 되였고 머리는 벗어져 대머리가 되였으며 게다가 이마엔 주름이 밭고랑이지, 윗 눈꺼풀은 푹 드리워 키를 뒤집어쓴 듯 했고 그 안에 참새 눈은 정기를 잃고 누르무레한가 하면 아래 눈두덩은 축 늘어져 주머니처럼 되였으며 생기 없는 얼굴엔 검버섯이 더덕더덕 낙서를 했다. 더욱이 장관인 것은 배가 암캐구리처럼 불룩하여 만삭이 된 임신부 같았으니 여하튼 꼴불견이 따로 없었으며 어디를 보나 세월이 스쳐간 흔적이 역력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경악의 순간이였다. 노화란 이런 것인가? 그간 거울을 안 들여다본 건 아닌 데, 그렇다고 거울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 더구나 아닌 데! 그렇다면 문제는 정녕 거울을 들여다 보는 눈에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기본상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만 보았던 것이다. 

이상은 겉면에 불과하다. 사실 몸이 한 해 한 해가 달라 생각같이 령민하지 않고 가끔 허리와 무릎에 통증이 오며 오장륙부와 오감이 죄다 닳아지고 무뎌져서 이전 같지가 않다. 이도 성한 것이 몇 대 안 되고 배는 좀만 차갑게 건사해도 탈이 나고 간이 나빠졌는지 술도 조금 입에 대면 얼굴이 잔나비 엉덩이가 돼버리고 심장이 약해졌는지 좀 움직이면 숨이 차고 페가 망가졌는지 계절이 바뀔 때면 기침이 떨어지지 않지 삶이 괴롭다. 눈은 침침해 잘 보이지 않고 가는 귀가 먹어 잘 들리지 않지 병원에선 이 것도 먹지 말라 저 것도 삼가라고 경고하지 살맛이 없다. 50대엔 미처 몰랐는데 60대가 되고 보니 50대가 그리워진다. 한 10년만 젊었으면 범이라도 때려 잡을 텐데!… 아쉬워서 쓸데 없는 호언장담을 해본다. 기대가 클수록 낙심도 크다고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나는 마치 속고 사는 것이 인생의 참 모습인양 항상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자기기만과 착각속에서 살며 남이 다 늙어도 자신만은 늙지 않는 줄 알았다. 일엽장목불견태산(一葉障目,不見泰山)이라 했 던가 황량미몽(黃粱美夢)꼴이 되고 만 셈이다. 우리를 요로코롬 老爺子(영감), 大爺(할아버지)로 만든 장본인이 세월이기나 한 것처럼 청춘을 돌려달라고 호소도 하고 저주도 해봤다. 마치 어른이 철없는 애가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을 때 돌을 때리며 달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였다. 돌이 무죄인 것과 마찬가지로 세월도 죄가 없다. 불지 않으면 바람이 아니 듯 흐르지 않으면 그 것도 세월인가? 시계가 고장나면 시계바늘이야 멈추겠지만 세월이 고장나면 세상 전체가 멈춰버린다. 우리는 오히려 세월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사실 세월과 인생은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난형난제(難兄難弟)다. 세월이 우리 청춘을 도둑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거마리처럼 세월에 찰딱 들러붙어서 세월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산 것이다. 세월이 인생 열차라면 우리는 곧 역사장하(歷史長河)의 한 구간을 잠깐 탔다 내리는 과객에 불과한 것이다. 누가 언제 어느 역에서 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돌아보면 나와 동행했던 친구중에 오늘 아침에 떠오르는 붉은 해를 보지 못 하는 이들이 족히 한 다스는 되는 것 같다. 소년에 자살해 죽고 청년에 가스 중독에 죽고 중년에 고기를 잡다가 폭사하고 뇌경색으로 급사하고 정년퇴직을 앞두고 당뇨병에, 심장병에, 암에 시달리다 죽고…. 한 땐 름름하고 떴떴한 촌간부로 공무원으로 은행일군으로 활약해 뭇 사람들의 우상이였고 친구들이 얼마나 우러러 보고 부러워들 했었는데! 그들은 老爺子(영감), 大爺(할아버지)가 돼 보지도 못 하고 그만 하차를 하였다. 그러니 자기의 집에서 편히 쉴 수 있고 미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으며 정갈한 물을 마실 수 있고 시원한 공기를 호흡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고 가끔 친구를 만나 한담도 나눌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하차한 그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가? 금전? 직위? 명예? 어쩌면 집어치워라, 다 부질없는 짓이다! 삶에 비해 돈과 직위, 명예는 한낫 게임일 뿐 건강이야 말로 목적이며 살아있음이야 말로 승리라고 목 놓아 외칠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세계 인구 중 65세를 초월하는 사람이 근근히 8%라니 100명 중에 92명은 65세를 맞지 못 한다는 말이 된다. 

자고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인무백세수(人無百歲壽)라 했다. 고왕금래 아무리 뛰여난 인물도 늙지 않는 인생 없고 죽지 않는 인생 없었다. 진시황은 자기의 지고무상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려고 만세를 부르고 장생불로약을 구하러 백방으로 갖은 수단을 다 쓰며 버둥댔으나 고작 49세밖에 살지 못 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한나라 황제 류륭(汉殇帝刘隆)은 태여난지 백날만에 즉위하여 만세를 불렀으나 8개월만에 몹쓸 병으로 강보에서 죽었다. 세상엔 장생불로약이란 없으며 만세 또한 잠깐 떴다 지는 무지개같은 것이다. 그후 력대의 제왕들은 저 생에서나 영원하려고 국고를 털어 자기의 능(陵)부터 건설하였지만 그 규모가 크든 작든 역사가 증명하다 싶이 그 아름다운 꿈은 모두 산산이 박산나고 말았다. 

이 세상에 고정불변한 채 영원히 지속하는 것은 없다. 시간과 공간이 무한한 것은 우리가 그 것을 증명할 방법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어제의 오늘은 분명히 오늘의 오늘이 아니다. 기원 2019년도 지나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인간에겐 이미 얻은 것은 보이지 않고 잃은 것에만 연연하는 어리석음이 있는 것 같다. 내려놓고 비우면 번뇌가 자연 살아지는 것을 세월은 간단한데 도리여 사람이 복잡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미 하차한 이들을 보아서라도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가자. 창문을 열면 바람이 들어오지만 마음을 열면 행복이 들어온다. 

일전에 읽었던 좋은 글중에서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선생의 글 한 단락을 여기에 적어보도록 한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것이며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으라는 것이지요.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만 먹고 소화불량 없게 하려함이고 걸음거리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지요.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 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랍니다. 정신이 깜박거리는 것은 살아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고 지나온 세월을 다 기억하면 아마도 머리가 핑 하고 돌아 버릴 거래요.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하라는 것이랍니다. 

바람처럼 다가오는 시간을 선물처럼 받아들이면 된다지요... ”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렸다. 생각을 바꾸면 앞이 트이고 모든 것이 맑고 밝다. 젊으면 젊음의 우세가 있고 늙으면 늙음의 우세가 있는 법. 여름에는 여름 옷을 입고 겨울에는 겨울 옷을 입어야 편하고 맵시있는 것 처럼 젊은이는 젊은 티가 나고 늙은이는 늙은 티가 나야 제 격인 것이다. 해가 동해에서 떠서 서산에서 넘어가는 것은 누구도 개변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이다. 

하지만 꿈이 있는 한 나이는 없다. 젊게 산다는 건 겉이 늙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젊음의 자신감과 도전정신 그리고 삶의 열정을 잃지 않고 진취적인 정신으로 시대의 보조를 따르며 사는 것이다. 잘 늙은 로인은 청춘보다 더 아름답다 하였고 곱게 늙으면 나이는 먹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는 것이라 했다. 일소일소(一笑一少)일노일노(一怒一老)라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될수록 유감은 적게 만족은 많게, 하루를 살아도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보자! 

늙음은 익어가는 것, 나는 오랠수록 향이 진한 한 잔의 오량액(五糧液)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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