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나는 395번 고속도로 입구에 자리 잡은 주유소로 향했다. 이날따라 주유소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큰길과 인접된 지역을 사람 키가 족히 넘을 검은 천으로 가렸다. 큰길과 주유소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던 광경이었다.

나는 불현듯 가슴이 섬뜩했다. 조심조심 주유소에 들어섰다. 직원이 당장 차에서 내리라고 지령했다. 나는 지령에 따라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직원이 가게 뒤편을 가리켰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분부대로 그쪽으로 피신했다. 손님 10여 명이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누군가 한국말로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무서워서 어떻게 살아요? 글쎄 시퍼런 대낮에 멀쩡한 사람을 쏴 죽였다지 않아요. 어제 페어팩스 카운에서 주유를 하던 여성이 갑자기 날아온 총탄에 맞아 당장에서 숨졌대요. 텔레비에서 이 사건을 보도했어요. 경찰은 주유소에 당장 보호책을 강구하라고 독촉했어요. 텔레비 보셨어요?”
30대의 한국인 여성과 50대의 한국인 남자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한국인 남자가 말했다.
“권사님은 신문 안 보셨나 봐요. 요즈음 흑인 경찰이 연 며칠째 묻지 마 연쇄살인을 저질렀어요. 범인은 워싱턴 경찰청에 근무했대요. 근데 무슨 연고로 얼마 전 사직했대요. 지금 10대 조카를 이끌고 도처에서 총기사건을 저지르고 있어요.

벌써 6명이 살해됐어요. 그중 4명은 주유소에서 대기 중이던 손님이래요. 지금 애난데일 지역뿐만 아니라 인근의 주유소도 모두 자구책으로 검은 천을 드리웠어요. 이건 워싱턴 경찰청이 호소한 안전대책이래요.”

나는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주유가 끝나자 찬바람같이 씽-하니 주유소를 빠졌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부랴부랴 “한국일보”를 찾았다. 이날따라 “한국일보”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매장으로 향했다. 때마침 안사장님과 마주쳤다.

“사장님, 혹시 오늘 한국일보 보셨어요?”
“아직 봇 봤어. 근데 갑자기 신문은 왜 찾어?”
“뭐 급히 확인해 보려고요. 오늘 한국일보 배달 왔어요?”
“배달 왔어. 문밖에 놓인 걸 조 실장 사무실에 갔다 놓았어. 왜 신문 못 봤어?”
“글쎄요? 사무실에 없어요.”

그때 장나연이 “한국일보”를 들고 나타났다.
“미스 장, 그거 오늘 한국일보 맞어?"
“네, 맞아요. 조 실장님도 알고 있었어요? 요즈음 이상한 묻지 마 총기살인사건이 생겼어요. 진짜 너무너무 무서워요.”
장나연이 “한국일보”를 내밀었다. 나는 대뜸 탑 기사에 시선을 모았다.
“흑인 경찰 무차별 총기 살인”

탑 기사는 이런 내용을 수록했다.
뉴멕시코 출신의 흑인 경찰 루돌프 와그너는 올해 35세였다. 그는 1개월 전 백인 우월주의자로 악명 높은 워싱턴 경찰청장과 충돌이 생겨 경찰직을 사직했다. 그 후 16세의 조카와 함께 버지니아주, 워싱턴 DC, 펜실베이니아주 등지에서 연쇄살인을 저질렀다. 범인은 현재 검은색 승용차에 총기와 탄알을 숨겨두고 무차별 총기살인을 감행하고 있다. 이미 백인 4명, 동양인 1명, 스페인 혈통의 남성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용의자로 지목된 루돌프의 살인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용의자는 이미 10여 일간 무차별 연쇄살인을 조작했다. 이는 사회 불만 증세에 대한 위축된 심리를 극단적으로 표달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문뜩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사장님, 혹시 전에두 이런 살인사건 생긴 적 있어요?”
“글쎄- 여태껏 이런 끔찍한 살인사건은 없었던 건 같은데-”
"저도요, 이런 묻지 마 살인사건을 목격하기는 처음이에요."
장나연이 한 마디 끼어들었다.

"미스 장은 미국서 중학교를 다녔다면서- 그럼 미국 사정 잘 알 건데- 전에는 이런 연쇄살인사건 없었어?”
“연쇄살인은 없었어요. 전에는 학교에서 총기사건이 자주 발생했어요. 다행히 제가 중학을 졸업할 때까지 우리 학교는 총기사건이 없었어요. 근데 1년 후 총기사건이 발생해 10명인가 15명인가 죽었어요. 용의자는 한국이민 4세대(四世)였어요. 당시 경찰과 한 시간이 넘도록 대치하다가 결국은 총기로 목숨을 끊었어요.”

이날 “코레아 쇼핑”은 평일보다 한 시간 앞당겨 가게 문을 닫았다.
“사장님, 내일도 앞당겨 클로즈(关门) 하는 게 좋을 상 싶어요.”
나는 직원들의 안전이 걱정되여 이렇게 간청했다.
“거참, 조 실장 생각 잘했어. 아무튼 안전이 첫째여.”

이날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 곧바로 텔레비전을 틀었다. 주유소마다 검은 천을 드리운 화면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조금 후 워싱턴 경찰청장이 나타났다. 현재 범인에 대한 추적을 다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밤중에 주유소를 찾는 사람은 각별히 안전에 주의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여성은 단독으로 주유소 출입을 삼가하라고 권고했다.

그 뒤 한동안 신문과 방송은 매일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보도가 끊기지 않았다. 그러나 용의자로 지목된 루돌프와 그의 16세 조카는 새벽이슬처럼 가뭇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코레아 쇼핑”은 연 며칠간 뒤숭숭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오찬 시간에 직원들이 한곳에 모여 뭔 이야기를 신나게 주고 받았다. 이날 사모님도 좌석에 동참했다.

“사모님, 30만 달러래요. 30만- 세상에- 그 할미 복이 넝쿨째 떨어졌어요. 우리도 당장 맥도날드 가봐요. 혹시 30만 달러 땡잡을지도 모르잖아요?”
장나연이 혀를 나불거리며 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너 요즈음 교회서 기도 잘하고 있어?”
사모님이 책망 어린 눈길로 장나연을 주시했다.
"안 그래도 요즈음 기도 열심히 드려요. 혹시 나한테도 복덩이가 떨어질지 모르잖아요.”
“미투 미투(나도 나도) 빨리빨리 30만 달러-”
갑자기 커리칭카가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는 영어와 한국어를 뒤섞어 말했다. 한옆에 있던 아브라이뚜르함이 커리칭카의 옷깃을 당기며 자리에 앉으라고 재촉했다.

이날 사모님과 장나연이 주고받은 이야기는 얼마 전 리치먼드에서 발생한 커피 소송사건이었다.

70여 세의 백인 할머니 마리아 이사 베르는 이날도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부근의 맥도날드로 찾아갔다. 마리야 할머니는 여느 때와 같이 햄버거와 커피를 사들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 그는 밤새 바싹 마른 목을 추키려고 떨리는 손으로 조심조심 종이컵을 들었다. 요즈음 자꾸 손맥이 풀려 무엇이나 꽉 틀어쥐지 못했다. 마음이 급할수록 손떨림이 더 심했다.

그는 가까스로 뜨거운 커피가 담긴 컵을 입가로 가져갔다. 그때 깜빡 잊어버렸던 생각이 떠올랐다. 집에 두고 온 애견 피디에게 아침밥을 주지 않았다. 그는 종이컵을 식탁에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바로 그때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갑자기 종이컵이 한편으로 기우뚱 쏠렸다. 순식간에 마리야 할머니의 허벅지가 뜨거운 커피 벼락을 맞았다. 마리야 할머니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9.11”구급차가 부랴부랴 마리야 할머니를 병원으로 호송했다.

검진 결과 마리야 할머니는 허벅지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맥도 날드 가게는 마리야 할머니에게 치료비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초에 마리야 할머니는 선뜻이 동의했다. 별다른 요구사항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변호사직에 종사하는 아들이 이일을 알게 되였다. 그 후 마리야 할머니는 뜻밖에 법정에 나섰다.

평소에 마리야 할머니는 생일날이거나 크리스마스 때라야 비로소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아들이 갑자기 찾아와 맥도날드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자고 떠들었다. 아들의 소송 리유는 매우 간단했다. 사람이 먹는 커피가 허벅지에 중도 화상을 입혔다. 그렇게 뜨거운 커피를 삼키면 입안과 목구멍도 엉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맥도날드는 천천히 식혀서 먹으라는 경고문도 없었다. 그러니 반드시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아들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마리야 할머니는 단연히 법정 소송에 나섰다.

법정에서 피고인 측의 변호사가 이렇게 질문했다.
“사건 발생 시 손에 쥐고 있던 컵은 뚜껑이 씌었는가?"
“손이 미끄러워 종이컵이 허벅지에 떨어진 것이 아닌가?”
“여기에 찬물이 담긴 종이컵이 있다. 이 컵을 위로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을 수 있는가?”

마리야 할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물컵을 잡았다. 그러나 기력이 쇠잔해 마음같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물컵이 똑바로 서지 않았다. 피고인 측의 변호사는 쓰러진 물컵을 가리키며 단도하게 말했다.
“허벅지 화상은 완전히 원고의 부주의로 인해 인기 되였다. 피고 측은 배상금을 지불할 그 어떤 법적인 의무도 없다.”

“맥도날드는 반드시 원고에게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법정의 판결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손님에게 파는 커피는 반드시 적당한 온도를 보장해야 한다. 그러면 설사 원고의 부주의로 허벅지에 떨어져도 중도 화상을 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맥도날드는 화상을 인기할 수 있는 뜨거운 커피를 팔았다. 그러므로 법적인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근래에 맥도날드가 심각한 비만을 초래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 매스컴은 “미국인의 건강을 해치는 쓰레기 음식”이라고 비난했다. 맥도날드를 상대로 수많은 소송사건이 제기되었다. 맥도날드는 실추된 기업의 이미지를 바로잡기 위해 부득불 마리야 할머니에게 30만 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마리야 할머니는 아들에게 변호사 비용을 지불하고도 20여만 달러의 거금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어느 날 아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뜻밖에 마리야 할머니에게 이렇게 강요했다.
“맥도날드 회사에서 받은 보상금 중에서 얼마를 아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겠는가?”
“아직 유산으로 남겨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마리야 할머니는 별다른 생각이 없이 대답했다. 아들은 대뜸 언성을 높였다.
“만약 1달러의 유산도 받지 못할 경우 유산상속법에 의해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겠다.”
마리야 할머니는 한식경이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소송 만능주의”는 미국의 “법치주의”문화를 가장 극명하게 말해준다. 어린이가 놀이터의 미끄럼틀에서 상처를 입으면 부모는 어김없이 소송을 제기한다. 법정은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즉시 미끄럼틀을 철거하도록 판결한다.

환자가 두통이 심할 때 의사는 한두 알의 아스피린을 처방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도리여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검진을 요구한다. 설사 환자가 동의하지 않아도 앞으로 닥칠 “의료소송”때문에 언제나 만단의 신중을 보장했다. 근래에 라스베까스는 산부인과 의사를 찾기가 힘들었다. 이곳의 산부인과 의사는 80% 이상이 “의료소송”을 당해 부득불 타곳으로 떠났다.

어느 날 나는 “한국일보”를 들고 집주인 공 씨 아저씨를 찾았다.
“편집장님, 혹시 한국일보의 옥세철 논설실장님을 아세요?”
“이곳 미주본사의 옥세철 실장님을 그러세요?”
“네, 그분 맞아요.”
“잘 알고말고요. 그분의 요청으로 미국 이민을 왔어요.”
“그러세요. 혹시 그분이 언제 미국으로 이민하셨는지 아세요?”
“딱히 준확한 시간은 모르겠어요. 아마 <88올림픽> 이후로 기억되는데요.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묻지요?”
공 씨 아저씨는 두 눈에 커다란 의문표를 떠올렸다.

“혹시 그분 미국 이민을 하게 된 이유를 아세요?”
“글쎄요? 한국은 <88올림픽>을 시점으로 부정부패가 극심했어요. 특히 올림픽 개최를 위해 당시 대대적인 철거운동(拆迁)이 있었어요. 국민들은 매일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거리에 떨쳐나섰어요. 그러나 정치와 손잡은 깡패들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도처에서 강제철거를 감행했어요. 당시 옥세철 론설위원님은 한국의 부정부패를 통탄하는 목소리를 높였어요. “88올림픽”이 결속된 후 아마 미국 이민을 결정한 것 같아요.”

“미국은 무엇 때문에 소송 만능주의가 범람하는가?”
일전에 옥세철 론설실장이 집필한 문장이었다. 그는 이렇게 지적하였다.
“소송 만능주의 리면에는 이른바 남의 탓이라는 일종의 이기 주의가 숨어있다. 라스베까스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찾기 힘든 원인은 단순했다. 불임에 시달린 여인들이 자신의 잘못을 산부인과 의사에게 돌리고 이익을 챙겼기 때문이다.

의사는 두통이 있는 환자에게 싸구려 아스피린을 처방할 수 없었다. 환자는 두통의 원인을 의사의 잘못된 검진 결과로 밀어붙이고 이익을 챙겼다. 의사는 항시 의료소송이 두려웠다. 마리야 할머니의 커피 소송사건도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인기 되였다.

미국은 1960년대 민권 운동 시기부터 창의적으로 법리(法理)를 해석했다. 결과 이른바 정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허다한 이정표적인 법정 판례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른바 소송 만능주의가 만연되는 사회적인 부작용을 야기했다."

나는 공 씨 아저씨에게 물었다.
“편집장님, 미국은 모든 소송이 법정 판결을 기준으로 하지요. 그러면 법정 판결은 언제나 절대적으로 공정하다고 단언할 수 있지요?”
“물론 그렇지요. 미국은 법치주의 나라지요. 절대적인 인권과 절대적인 평등. 절대적으로 공정한 경쟁과 공정한 법치는 미국의 령혼이지요.”

공 씨 아저씨가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조 기자는 언제 애난데일로 옮겨왔어요?”
“2001년 4월에 왔어요.”
“그러면 혹시 티머시 맥베이 사건을 알고 있어요?”
“언젠가 신문에서 맥베이 사건에 관한 기사를 읽어본 것 같아요.”
“2001년 5월. 테러범 티머시 맥베이는 감방에서 독극물 주사를 주입받고 공개처형되었어요. 당시 주류 언론은 갑론을박으로 요란하게 떠들었어요.”
공 씨 아저씨는 티머시 맥베이 사건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티머시 멕베이는 “악마의 령혼”으로 불렸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흉악한 테러범이었다. 오클라호마 련방 청사를 폭파해 무려 168명의 무고한 생명을 죽였다. 그는 65년 만에 재차 회복된 공개사형제도에 의해 33세의 죄수로 공개처형되었다.

당시 수백 명의 피해자 유가족들이 폐쇄회로 TV(闭路电视)를 통해 공개처형 현장을 지켜보았다. 멕베이는 차분한 표정으로 독극물 주사를 주입받았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다. 나는 내 령혼의 지휘자이다.”
멕베이는 이 말을 남겨놓고 의식을 잃었다.

멕베이는 공개처형 전날에 드디어 희생자 유가족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민을 탄압하는 연방정부를 용서할 수 없었다. 오클라호 마 련방 청사 폭파는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 그러나 목숨을 잃은 168명의 생명은 내가 책임질 수 없다. 내가 아닌 연방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나는 사형제도가 두렵지 않다. 나는 죽는 그날까지 죤 브라운(1800년대 미국의 흑인 노예해방론자)과 같은 자유 투사로 살아왔다.”

1936년 컨터키주(肯塔基州)의 오웬 보르에서 22세의 흑인 성폭행범 러이니 베시아가 교수형으로 공개처형되었다. 18개월 후 컨턴키주는 공개사형집행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했다. 그 후 미국에서는 공개사형집행이 점차적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악마의 령혼” 티머시 멕베이는 공개처형되었다. 지난 수십 년간 사라졌던 공개사형제도가 65년 만에 또다시 부활했다.

공 씨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구약성서>의 율법에 따르면 살인자는 그 죄를 자신의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고 규정되었어요. 이것이 기독교를 신봉하는 서구사회의 사형제도의 출발점이었어요. 그러나 형벌의 근본적인 목적은 범죄에 대한 교정에 있어요.

만약 살인자가 반드시 목숨으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면 이는 <구약성서>의 율법에 맞지요. 그러나 형벌의 근본적인 목적에는 어긋나지요. 이는 살인자가 목숨으로 죗값을 치르면 범죄를 교정하는 기회를 영원히 상실하기 때문이지요.

1970년대를 전후로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국가는 이미 사형제도를 폐지했어요. 물론 미국도 부분적인 주에서 이미 사형제도를 폐지했어요. 그러나 현재 38개 주는 의연히 사형제도를 집행하고 있어요. 지금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비율은 67%로 통계 되였어요. 이는 5년 전의 77% 찬성률에 비해 이미 10%가 줄었어요. 그러나 2001년까지 이미 715명의 살인범이 공개처형되었어요.

맥베이가 공개처형된 후 CNN, ABC, NBC, CBS, FOXTV 등 5개 방송사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등 주류 언론은 사형제도에 대해 열띤 논쟁을 전개했다.

“멕베이를 극형에 처한 것은 흉악범에 대한 법의 정당한 경고였다. 사회악을 제거하는 정의의 실현이었다."
사형제도에 대한 찬성론자의 주장이었다.

“사형제도는 결코 범죄 해결의 종국적인 대안이 아니다. 미국이 주장하는 인권보호에도 어긋나는 문명사회의 치욕이다.”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론자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반대론자들도 “악마의 령혼” 멕베이는 공개처형 외 달리 적당한 형벌이 없다고 인정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맥베이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가령 맥베이가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의 생명을 제거하는 것은 정의를 수호하는 유가족과 사회악을 증오하는 시민들에게 위안을 줄 것이다. 법과 정의를 보존하려면 반드시 맥베이를 공개처형해야 한다. 맥베이의 죽음은 <악마의 령혼>을 제거한 정의의 승리였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지는 맥베이의 죽음에 대해 판이한 주장을 내세웠다.
“멕베이는 유년 시절에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지 않았다. 그는 엇갈린 증언도 하지 않았다. 유죄인가 무죄인가에 대해서도 전혀 의심을 갖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168명의 생명을 죽였다고 자백했다. 맥베이의 죽음은 사형제도의 집행이 결코 살인범죄를 금기시할 수 없다는 철같은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는 “양심의 선언”이란 칼럼(专栏)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사형제도는 무고한 사람을 공권력으로 죽이는 과오를 범할 개연성이 있다. 1973년 이후 미국은 무려 90여 명의 사형수를 무죄 석방했다. 이는 사형제도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함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하게 증명했다.

사형제도는 이미 부도덕한 제도로 인증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유권자의 과반수가 의연히 사형제도를 지지하고 있다. 만약 찬성론자의 주장대로 사형제도가 범죄 예방의 방안이라면 미국은 벌써 범죄도 폭력도 없는 천국으로 되였을 것이다.”

오코너 대법관의 예언은 정확하였다. 맥베이가 공개처형된 후 미국은 의연히 도처에서 살인범죄가 난무하는 “공포의 지옥"이었다. 2001년 가을, 컨터키주의 78세 백인 남자는 "노인 아파트 리스(租约) 갱신 문제”로 인근의 주민들과 충돌이 생겼다. 백인 남자는 당장에서 총기를 발사해 1명이 숨지고 2명이 구급차에 실려가는 참사를 저질렀다.

이해 겨울 로스앤젤레스 외곽지역에서 친모를 살해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한인 이민 4세대인 15세 소년 로버트 김은 카지노 도박 자금 때문에 어머니와 충돌이 생겼다. 그는 총기를 들고 잠든 어머니와 여동생을 살해했다.

해변도시 몬트레서도 참사가 발생했다. 40대의 백인 여성이 생후 7개월에서 9세까지의 다섯 자녀를 뜨거운 욕조에다 익사시켰다.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남편은 즉시 경찰에 신고하였다.

“구약성서”의 “창세기 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야훼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었다. 콧구멍에 생명의 입김을 주입하니 사람으로 되여 숨을 쉬였다. 그러나 아담(adam)을 거들어줄 짝이 없었다. 야훼 하나님은 아담이 깊이 잠든 후 갈빗대를 뽑아 여자를 만들었다.

영어 단어 “man”(맨)은 남자를 뜻한다. 동시에 사람인 아담(adam)을 뜻한다. 그러나 영어 단어 “woman”(우먼)은 여자를 뜻하지만 사람은 뜻하지 않는다.

기독교 문명의 역사는 창세기초부터 남자와 여자의 생명에 불평등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미국이 선호하는 법과 정의, 자유와 평등, 인권과 민주는 이 같은 불평등의 기틀 위에 세워졌다. 중세 유렵의 암흑시대에 나타난 이른바 “마녀사냥”의 종교재판은 사회적 불평등의 죄악이었다. 미국 여성들이 1920년대에 비로소 선거권을 취득한 것도 사회적 불평등에 뿌리를 두었다.

유대인의 생활철학인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유대인 랍비들이 한자리에 모여 심오한 철리를 논쟁했다. “야훼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인간을 창조할 때 오로지 아담 한 사람만 창조했는가?”

랍비들은 몇 날 몇 밤을 논쟁하고 드디어 이런 결론을 내렸다.
“야훼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으로 아담 한 사람만 창조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가? 만약 유일한 인간인 아담을 죽이면 결국은 모든 인간을 죽이게 된다. 야훼 하나님은 이 같은 위대한 진리를 가르쳐 주었다.”

중국에는 공자가 제자 연회에게 “삼팔은 이십삼”이라고 가르친 고사가 있다.
어느 날 연회는 장터에서 얼간이 천장수가 “삼팔은 이십삼”이라고 억지를 쓰는 것을 목격했다. 연회는 천장수에게 “삼팔은 이십사”라고 알려주었다.

천장수가 연회의 팔을 끌어당기며 떠들었다.
“삼팔은 구경 이십삼인가? 아니면 이십사인가? 공자한테 가서 물어보자.”
장터에 모여든 손님들이 손뼉을 치며 천장수를 응원했다.

신바람이 난 천장수는 연회를 보고 내기를 하자고 졸랐다.
“만약 삼팔은 이십삼이 아니면 당장 내 목을 자르라.”
약이 오른 연회도 당당하게 나섰다.
“만약 삼팔이 이십사가 아니면 당장에서 머리 위의 관을 벗어 주겠다.”

공자는 천장수와 연회가 찾아온 사연을 귀담아들었다. 그리고 대뜸 “삼팔은 이십삼”이라고 잘라서 말했다. 천장수는 포복절도하며 손뼉을 쳤다. 연회는 별수 없이 머리 위의 관을 벗어 넘겨주었다. 한편으로 “선생님이 혹시 연로하여 셈을 혼돈한 것 아닌가?”라고 의심했다.

공자는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가 삼팔은 이십사라고 말하면 천장수는 어김없이 목을 잘라야 한다. 그래 너의 머리 위에 놓인 관이 천장수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이냐?”
순간 연회는 크게 깨달았다. 그 후 평생토록 공자 곁을 떠나지 않았다.

춘추시대의 공자는 “인의”(仁义)로 백성을 다스리라고 권장했다. 그러나 상앙은 “仁义不足以治天下”(인의로 천하를 다스리기는 부족하다)라고 주장했다. 한비자는 “儒以文乱法亡国之言”(유교 학설은 글로써 법을 어지럽히는 망국 지언이다)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상앙은 능지처참을 당했고 한비자는 옥중 자결의 비운을 당했다.

지난 수천 년간 중국은 여전히 “王子犯法与庶民同罪”(왕자가 법을 범해도 서민과 함께 처벌한다)라는 “법치 사상”이 보존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법치 사상은 근근이 왕자에게만 미쳤다. 천하에 군림한 천자(天子) 즉 제황(帝皇)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시경>>(诗经)의 <<소아 ∙ 북산>>(小雅 ∙ 北山) 편에는 “普天之下莫非黄土”라는 문구가 있다. 이는 “하늘 아래 왕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라는 “황제 독존”(皇帝独尊)에 대한 찬미였다. 제왕의 지고한 권력은 만천하를 호령했다. 중국의 역대 제왕은 하늘 아래 인간 세상에 군립한 신성한 천자였다. 중국의 “법치 사상”은 부득불 제왕의 지고한 권력에 굴종했다.

한자(汉字)가 창제된 후 “선군 덕치”(善君德治)는 언제나 “폭군 법치”(暴君法制)보다 앞자리를 차지했다. 공자는 “주나라”(周朝)의 공덕을 본받기 위해 “극기복례”(克己复礼)를 주장했다. “ 주나라”(周朝)는 “선군 덕치”(善君德治)를 창도했기에 800여 년간 강산을 보존했다. 그러나 “폭군 법치”(暴君法制)로 통일 제국을 이룩한 “진나라”(秦朝)는 불과 16년 만에 강산을 빼앗겼다.

어느 날 나는 사무실에서 서류작성에 몰두했다. 갑자기 장나연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뛰어들었다.
“실장님. 폴리스(警察) 왔어요. 폴리스-”
뒤미처 검은색 방탄 쪼기를 착용한 흑인 경찰이 나타났다. 당장 가게 문을 닫으라고 호령했다. 연쇄살인 용의자 루돌프가 방금 조지아대학 근처에서 백인 여성을 사살하고 도주했다.

"코레아 쇼핑”부근의 교통은 이미 통제되었다. 그러나 안전을 대비해 부근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반포했다. 전신 무장한 경찰들이 오가는 차량을 엄밀하게 단속했다.

오늘따라 안사장님은 야외촬영을 나가 매장에 없었다. 사모님은 장나연의 손을 잡고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10여 명의 직원들이 어느새 우르르 사무실로 모여들었다. 나는 직원들에게 가게 문을 닫으라고 지령했다. 흑인 경찰의 지령에 따라 직원들을 안전지대로 피신시켰다.

용의자 루돌프는 펜실베이니아주의 시골에 잠적했다. 이틀 후 경찰의 추적을 받아 치열한 총격전을 벌렸다. 결국 루돌프는 현장에서 격살되였고 15세 조카는 체포되었다.

어느 날 나는 중문판 “세계일보”에서 “독일고전철학과 정신생활”이란 문장을 읽었다. 저자는 북경대학의 지은가영(陈嘉映) 교수였다. 문장은 이렇게 지적하였다.
“비판적 기능을 가진 이성은 독일 계몽주의 사상가에 의해 새로운 전변을 가져왔다. 즉 이성 자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국왕의 절대적인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이성 자체의 절대적인 권위는 또 어디에서 오는가?”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에게 가장 자비로운 존재는 종교였다. 그러나 가장 사악한 존재 역시 종교였다. 종교는 인간에게 “천당”을 선물한 자비로운 존재였다. 동시에 “지옥”도 마련해 준 사악한 존재였다. 인간은 “이성”의 가르침이 있기에 죽어서 “천당”으로 가려고 희망한다. 그러나 인간의 “사악한 탐욕”은 “지옥”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놓았다.

이것은 “종교”의 비극인가? 아니면 “인간리성”의 비극인가? 미국은 “법치주의”를 신성시했다. “소송 만능주의”를 부르짖었다. 죽어서 “천당”으로 가려고 “지옥”의 문턱에서도 주저없이 주님에게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는 “인간리성”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면 주님은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천당”으로 가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지옥”으로 가라고 할 것인가? 주님은 구경 어떻게 공정한 판결을 내릴 것인가? 이는 “법치주의”의 비애인가? 아니면 “소송 만능주의”의 비애인가? 

나는 부질없는 생각에서 깨여났다. 고개를 들어 저멀리 흘러가는 뜬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조광연(曹光延)

길림성 연길시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변텔레비전방송국에서 기자, 편집으로 근무.
1999년~2005년 미국에 체류. 
소설, 수필, 기행문, 실화문학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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