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꿈을 꾼다. 꿈은 일종 인류의 보편적인 심리현상이다. 
그러기에 왜 꿈을 꾸는지? 그리고 꿈과 현실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꿈의 래원은 현실이며, 다시 현실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꿈속에서 나타나는 인물이나 사물, 장소 등 원소는 대부분 우리 현실에서 보고, 듣고, 느끼거나 혹은 상상한 정보이다. 지나간 일에 대한 추억이나 그 어떤 갈망일 수도 있다. 

어떤 때에는 꿈 속에서 깨어난 후에도 꿈 속에서 나타난 원인이나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몽유도원도"에 깃든 역사이야기를 들 수 있다.

나는 가끔씩 예고없이 혼자서 어딜 갑자기 잘 가군 한다. 10월의 어느 주말도 사전에 계획에 없던 인사동에 있는 전시회에 갔다. 거기서 지인들을 만났는데 그리 멀지 않은 부암동에 직화구이 맛집이 있다고 해서 지인들과 부암동으로 갔다.
그런데 그 맛집에서 불과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무릉도원(武陵桃園)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식사후, 우리는 바로 무릉도원으로 갔다. 무릉도원은 조선초기 세종의 3남인 안평대군이 무계정사(武溪精舍)를 지었던 곳이다. 그 안에는 "몽유도원도"(진품은 일본 텐리대학교에 비장돼 있음.)와 그림에 찬문(讚文)을 남긴 21명 명사들의 명단도 적혀있었다. 그 당시에는 3백보(지금의 6백보에 해당됨.)나 되는 넓은 면적이었지만 지금은 50평도 되나마나해 보이는 너무도 간소한 곳이여서인지 찾아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安平大君)의 꿈이야기를 당대 최고의 화원인 안견(安堅)이 그린 그림이다. 
 
꿈에 안평대군이 박팽년(朴彭年)등과 복사꽃밭을 거닐었다는 내용이다. 
산 아래를 걷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되어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들어서게 된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던 터에 한 사람이 나타나 길을 알려 주었고, 그 길을 따라 계속 가다 보니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계곡을 지나자 복사꽃이 피어 있는 도원(桃園)이 나타났다. 꽃향기에 취해 이 곳이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을 때,그들 곁에 최항과 신숙주가 와 있었다. 네 사람은 함께 도원의 풍광을 즐겼고, 그러다가 잠에서 깼다.

안평대군에게 도원은 매우 긍정적인 메시지였다. 안평대군은 사저인 수성궁으로 안견을 불러 자신의 꿈이야기를 그리도곡 하였다. 안견은 사흘만에 그림을 완성하였고, 거기에 안평대군이 그림에 대한 설명을 담은 도원기를 쓰고, 박팽년은 "몽유도원도"의 서문을 작성하게 하였다. 그리고 당대 명사 21명의 찬문(讚文)도 덧붙였다.

 안평대문은 1450년(문종직위)무렵, 자신의 사저부근인 백악산 서북쪽 계곡에서 꿈에 본 도원과 비슷한 장소를 발견하고 거기에 무계정사(武溪精舍)를 지었다. 안평대군은 무계정사에 1만권의 책을 갖추고 강가에는 담담정(淡淡亭)을 지어 선비들과 함께 시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곳은 매서운 정치적 공격을 받기 시작하였고, 결국 계유정난(1453년 11월 10일) 이후, 수양대군(세종의 2남)이 반대파들을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하면서 안평대군, 박팽년, 성상문 등은 죽임을 당했다.

 "몽유도원도"는 문화사나 미술사적으로 중요하지만 거기 실린 면면들을 보면 안평대군의 엄청난 정치적 인맥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안평대군을 수양대군이 질투하고 두려워서 제거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 역사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사람은 죽어도 정신은 영원히 살아 있다.
  고려대 한 교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우리 나라 역사상 세종대왕을 제외하고 군왕이 아닌 신분의 인물로서 문화발전에 가장 다양하고 제일 괄목할 만한 기여를 한 분을 한 사람만 꼽으라면 아무래도 안평대군을 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안평대군은 영종대에 와서야 루명을 벗고 복권을 되찾으면서 "계유정난"은 재 평가를 받게 되었다. 
  수양대군은 무력으로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였다는 사실은 후대에 지속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탐욕과 권력욕에 눈이 멀어 도덕성을 잃은 정치는 장기간 지속되기는 취약하다. 무력의 수단으로 비록 권력을 장악했지만 결국에는 현대사에서의 전두환과 노태우처럼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

모든 일에는 조짐이 있다.
  만약 안평대군이 꿈에서 나타난 박팽년, 신숙주, 최항 이 세사람의 품성에 대해 현실에서 지극한 성실함으로 유심히 관찰했더라면 신숙주( 빨리 변질하는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반역자 신숙주에서 유래되었다고 함.)와 최항이 자신을 배신할 수 있는 조짐이 나오는 미묘한 시기를 잘 살필 수 있어 미리 알 수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는 "만약"이란 없는 것이다.

꿈은 분명 그 어떤 예시를 준다.

우리는 꿈을 통해 자기의 내심세계를 이해함과 동시에 그 어떤 깨달음을 얻고 잘 활용함으로써 보다 성숙한 인격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천숙 프로필 
흑룡강성 출생 
수필가.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동포문학 수필 최우수상 등 수상 다수.
수필, 수기 수십 편 발표.

메일 : qjh7230@naver.com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