룡의 잠언, 하늘을 우러러 

제1괘 건위천(乾为天)

 

생각나면 광풍과 폭우를 불러오는 날까지
바다밑에 몸 감추고 숨죽이고 살았네
바다가 놀이터인양 여유로이 헤염치는 고래들이며 
하늘이 제집인양 자유자재로 날아예는 
갈매기떼들을 볼 때마다
세상에 얼굴 내밀고 싶은 생각 굴뚝같았네
때를 기다려 모든 욕망 이겨내며
감히 아프지도 못한 세월 세월이
그대로 아프고 아픈 순간 순간이였네
시간의 흔적마저 잊혀질가 할 무렵
몸집이 제법 커지고 힘도 생겼다싶어
바다우에 헤염쳐나와 세상 향해 조용히 눈인사 했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계절따라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고만고만하게 주어지는 것들에 만족했네
받은것만큼 누군가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어느날 하늘에 미쳤네 
드넓은 하늘을 주름잡는 동안은 황홀했네
그뿐이였네. 하늘 아래 출렁이는 밀물과 썰물사이 
내려앉는 해살이 예사롭지 않았네 시선이 따가웠네
정상에 올랐어도 앞서지도 뒤서지도 말고
나타나지도 드러내지도 않고 주위를 이끌어야 함은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 되여서야 깨달았네
그 순간 하늘이 웃고 있었네 
다행이였네 진정으로 하늘 우러러 

2019년 “도라지” 2기


땅의 침묵, 말을 버리다

 제2괘 곤위지(坤为地) 

 

고개 들면 보이는 아득한 저 하늘은
내 은밀한 마음세계의 거울이네
아침 저녁 시시각각 일어나는 풍운조화 보며
서리 내리면 곧 겨울이 다가오는 것처럼
모든 섭리는 거스를 수 없음을 알았네
하늘의 무언의 계시에 따라
봄비 내리면 새싹 틔우고
봄바람 불면 봄 꽃 피워 올리고
때로 광풍이 휘몰아치면 허리를 굽히기도 했네
불평 불만 버리고 말문을 닫았네
기쁨은 기쁨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주위를 의식 않고 혼자 감내했네
물이 넘쳐 감당하지 못했던 기억을
뼈에 사무치도록 간직하고
마음에 내키든 내키지 않든 모든 것을 수용했네
좋은 것이 따로 없고 나쁜 것이 따로 없었네
서로 서로 닮아갔네 평화가 깃들었네.

   2019년 “도라지” 2기

 

바다가 하늘을 바라보며

-제10괘 천택리(天泽履)

 

바다가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우 아래의 바른 리치를 깨달았네

내 자신이 서야 할 자리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켜
항상 겨울날 얼음우를 걷듯 
조심조심 몸을 움직였네

어딘가로 가는 길에 생겨나는
귀해지고 싶은 생각들은 
평소 내 본분이 아님을 자각하고
풀 뽑듯 뽑아버렸네

내 눈에 보이는것들과 
내 귀에 들리는것들까지도 
진상이 아닐수 있다는 느낌에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대했네

하는 일에 주어지는 것이 많을수록
두려움에 두려움을 더해
자성(自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네

우 아래의 바른 리치가
지극한 선에 닿아 있음을 
바다가 하늘을 바라보며 깨달았네

  2019년 “도라지” 3기

저 산 저 하늘

- 제26괘 산천대축(山天大畜)

 

아직도 가슴속깊이 간절함이 남아있다면
아늘아래 저 산들을 보아라
봄 여름 가을 겨울 산 산들을 바라보아라
간절함이 아니라도 언제나 풍요로운
저 산 산들을 바라보아라

그래도 가슴속깊이 간절함이 피말린다면
고개 들고 저 하늘을 보아라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늘 하늘을 바라보아라
없는듯 비여있어도 그들먹하게 차 있는
저 하늘 하늘을 바라보아라

끝끝내는 가슴속깊이 간절함이 사라지기까지
하늘아래 저 산들을 바라보아라
고개 들고 저 하늘을 바라보아라
눈감고 바라보아라
저 산, 저 하늘을!

2019년 “도라지” 4기

 

끝없는 아득함

   --서탑 111

 

태원가와 서탑가와 장강가는
쭉 한 길이나
태원과 서탑과 장강으로 나워져서
그 가운데가 서탑가다
태원가나 장강가에 서서
서탑가를 바라보면
시작과 끝이 아닌
시작과 시작 
끝과 끝이다가
서탑가에 들어서서
태원가나 장강가를 바라보면
태원가도 보이지 않고
장강가도 보이지 않고
서탑가의 끝없는 아득함뿐이다

   2020년 장백산 제6기 발표

 

심양이 내 고향 다름 아니네

   ---서탑 119

 

집안 량수란 두메산골이 고향인 나는
바다가 그리워 바다가 진황도로
밥터를 옮겨 한동한 전전했으나
훈민정음과 된장맛이 그리워
고향마을과 진황도의 중간지역인 심양에
숙명이듯 잠터를 정했네
아침 저녁 밤낮으로
한술 밥 위해 아득바득하는 와중에도
서탑 골목시장에 
우리 말 메주내음 피여나
이곳이 고향이듯 정이 흘러도
집안 량수란 두메산골은
부모님 계셔서 자주 찾았네
그러다가 어머니 명을 달리하고
아버지 어머니 따라 세연을 접은 뒤로 
집안 량수란 두메산골 찾는 일 줄어들다가
아주 오랜만에 찾은 어느날
내 시선은 고향 산천에 흐르나
내 생각은 서탑 거리들에 미치고 있음을 자각하고
내가 태여난 곳이 아니여도
내가 뿌리박고 자식과 함께 살아가는 곳도
고향 다름 아님에 생각이 미쳤네
서탑이 숨쉬는 심양이 내 고향 다름 아니네

   2020년 장백산 제6기 발표

 

종점없는 종착역

   -서탑138

 

평안도 경상도 함경도
말(言)들의 장마당

서동 아닌 북과 남
그 변두리 넘나드는
종점없는 종착역

사람이 사람을 안고 사람의 둥지 만드는
세월이 세월을 품고 세월의 연장선 긋는.

      2021년 장백산 제2기 발표

 

탁여항, 서탑전통시장은

   -서탑167

 

시부대로 탁여항(琢如巷)은 지금껏
아는 사람 별로 없으나
서탑전통시장은 예나 지금이나
모르는 사람 별로 없다

남쪽끝에서 북쪽끝까지 
통거리가 전통시장인 탁여항
오랜 항해끝에 드디여 정착한
질펀한 터, 투박해서 정다운
거대한 항구, 부닥친 흔적 넘친다

서탑이 심양의 풍경이라면
지난 흔적 가시기 전 
새라새로운 흔적 덧쌓이는
시부대로 탁여항, 서탑전통시장은
풍경속 낡은 절경이다

2021년 장백산 제5기 발표

 

서탑을 품은 심양사람으로

   ---서탑193

 

젊었을 적 고향을 떠나 심양에 발붙히고
직장 밑바닥에서 딩굴던 나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말을 듣고
한동안 참으로 당황했었다

먹고 살기가 절박해 당황함을 가슴 깊숙이 감추고
아등바등 몸을 내던진 세월 지나
심양 토박이들 보다 더 심양 사람같다는 말을 듣는 요즘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불평을 토하던 사람들이 생각나
미안함을 감출길 없다

박힌 돌을 보지 못했거나 보지 않았거나
어쩌면 보이지 않았던 그 세월속에
내가 누군가에게 아픔이 되였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내 가슴속에 서탑이 우뚝 자리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나는 서탑을 품은 심양사람으로
태여나 자란 고향 집안을 더더욱 잊지 못한다.

      2022년 장백산 제2기 발표

 

5분의, 그 거리

   ---서탑 211

 

심양 서탑에 가보면
"금강산"에서 "태백산"까지 가는데
5분도 걸리지 않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릉라도"에서 "울릉도"까지 가는데도
배 탈 필요없이 5분이면 족하다
서로 서로 아득하기만 하던 안타까움이
지척에 모여 서러움에 반가움에 울다가
때 없이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정다운
5분의, 그 거리
심양 서탑에서 5분의 거리는
산 넘어 바다 건너 지구 끝까지 가는
무한(無限)의 거리다.

2023년 문학문학 제9기

거리

 

사람과 별의 거리는 
하늘처럼 
멀고 가깝다

내가 별을 쳐다볼 땐
아득히 머얼고

눈감고 별을 생각할 땐
참으로 가깝다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별처럼
멀고 가깝다

내가 다름 사람 쳐다볼 땐
별처럼
가깝고

눈감고 다른 사람 생각할 땐
별처럼
머얼다.

 

틈과 하늘

 

틈이란 아주 작은 것이나
하늘에도 틈이 있다는 느낌에
온 몸이 오싹했다

하늘은 그예 무한한 것이나
틈에도 하늘이 있다는 각성에
온 몸 역시 오싹했다

하늘 아래 틈이나
틈 속의 하늘이나
결국은 하나라는 현실에
온 몸을 맡겼다

하늘 아래 내나
틈 속의 내나
실상은 하나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온 몸 맡길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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