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아침 나는 종전같이 라디오를 틀어놓고 출근길에 나섰다. 심사장님의 부탁을 받고 알링턴 카운의 “코레아 쇼핑”매장으로 향했다. 라디오의 “토크 프로”(聊天节目)는 돈낀도넛을 언급했다. 식재료에 설탕을 지나치게 가첨해 쉽사리 비만을 초래한다. 노인들은 건강식이료법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특히 설탕 섭취량을 최소한 줄여야 한다.

차가 한창 달리고 있을 때 갑자기 “토크 프로”가 중단되었다. 뒤미처 아나운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입수한 소식입니다. 뉴욕 맨해튼(曼哈顿)의 쌍둥이 빌딩에 2인용 경비행기가 추락되었습니다. 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조종사의 불찰로 인기된 사고였습니다.”

잠시 후 “토크 프로”가 다시 이어졌다. 아침부터 괜스레 이상한 기사를 제보한다며 싱거운 웃음을 토했다. 라디오나 텔레비의 “토크 프로”는 종종 엉뚱한 기사를 조작했다.
나는 “토크 프로”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매장으로 향했다. 새로 작성된 샘플 목록을 확인했다. 서류를 작성해 중국 거래처로 팩스를 발송했다.

그 후 395번 고속도로를 타고 워싱턴 DC로 향했다. 갑자기 라디오에서 포토맥 대교의 교통이 통제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워싱턴 DC로 향하는 차량은 일률로 알링턴 국립공원을 에돌아가라고 안내하였다. 포토맥 대교의 진입로는 이미 밀려온 차량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차가 조금 더 달리니 붉은색 스톱(停止) 싸인 간판이 나타났다. 교통경찰의 지휘하에 차량들은 서서히 “유턴”(返回) 방향으로 차머리를 돌렸다.

저 멀리 포토맥 강변에 자리 잡은 국방부 청사가 눈에 뛰었다. 웬일인지 청사 근처에서 삼단 같은 연기가 타래쳐 올랐다. 나는 어리둥절하여 주위를 살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다급한 경적소리가 들렸다. 얼른 후시경을 감시했다. 평복 차림의 백인 남자가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 로고가 박혀있는 증서를 내들었다.

나는 섬뜩한 느낌이 들어 대뜸 차머리를 한옆으로 틀었다. 앞쪽에 줄 서 있던 차량들도 줄줄이 길을 내주었다. 백인 남자는 곧추 포토맥 대교로 향했다. 그 뒤로 경찰차가 줄지어 따라갔다. 나는 앞에 대기하고 있던 차량을 따라 오던 길로 돌아섰다. 게시판의 시계는 이미 오전 10시에 가까웠다.

갑자기 핸드폰의 호출 신호가 울렸다.
“조 실장, 지금 어디여?”
안사장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교통이 통제되여 되돌아가고 있어요. 아마 회사에 조금 늦게 도착할 것 같아요.”
“조 실장은 별일 없는 거지. 지금 흑인들이 죄다 길거리에 나와 떠돌고 있어. 영 이상한 분위기여.”

“왜요? 뭔 일이라도 생겼어요?”
안사장님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확실한 상황 파악은 알 수 없어. 근데 방금 방송에서 들었어. 뉴욕 쌍둥이 빌딩에 정체 모를 비행기가 추락됐어. 조 실장은 못 들었어?”
“글쎄요- 경비행기가 사고로 추락됐다고 하던데요-”

알링턴 국립공원과 워싱턴 DC를 연계하는 도로도 이미 통제되었다. 나는 부득불 다시 안사장님을 호출했다.
“사장님, 지금 교통이 차단됐어요. 회사로 갈 것 같지 못해요. 어떻게 할까요?"
“조 실장, 방금 매장을 클로즈 했어. 직원들도 전부 집으로 돌려보냈어. 조 실장도 당장 집으로 돌아가.”
안사장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매장은 왜 클로즈 했어요?”
나는 대뜸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안사장님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일순간 오리무중에 빠졌다. 재차 안사장님을 호출했다. 그러나 도무지 련락이 닿지 않았다. 나는 차머리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하루 종일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나는 “9.11테러”의 참사 현장을 일일이 목격했다.
오전 8시 45분경. 대형 여객기 한 대가 갑자기 뉴욕 맨해튼의 쌍둥이 빌딩 세계무역 청사를 덮쳤다. 빌딩 윗부분이 순식간에 시커먼 연기로 휩싸였다. 10여 분 후 또 다른 대형 여객기 한 대가 남측 빌딩을 덮쳤다. 삼단 같은 연기가 타래쳐 올랐다. 검은 연기 속에서 아츠러운 비명이 터졌다. 탈출구를 찾지 못한 생존자들이 돌멩이처럼 창밖으로 튕겨 나왔다. 순식간에 죽음의 공포가 덮쳤다.

두 대의 대형 여객기가 무엇 때문에 갑자기 쌍둥이 빌딩을 덮쳤는지 누구도 몰랐다. 사고였는가? 아니면 실수였는가? 오전 9시 30분경에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이 갑자기 TV에 나타났다. 공포에 떨고 있는 국민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미국은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정체 모를 두 대의 비행기가 미국에 테러를 감행했습니다. 테러리스트(恐怖分子)가 미국을 공격했습니다.”

오전 9시 40분경 또 다른 여객기 한 대가 국방부 청사를 덮쳤다. 순식간에 짙은 화염이 솟았다. 다시 20여 분이 흘렀다. 맨해튼 상공에 갑자기 하늘땅이 맞붙는 요란한 굉음이 울렸다. 111층의 쌍둥이 빌딩이 붕괴되었다. 30억 파운드의 거대한 폐철 더미로 무참하게 무너졌다. 미국의 모던(现代)이 붕괴되었다. 미국의 “재부”가 붕괴되었다. 70여 개국 3000여 명의 생명이 참혹하게 땅속으로 매장되었다.

다시 40여 분이 흘렀다. 또 다른 여객기 한 대가 백악관을 목표로 돌진했다. 그러나 목표물을 빗나갔다. 피즈 버그의 외곽지역에 추락했다. 순식간에 시뻘건 화염이 여객기를 덮쳤다.

신(神)의 뜻이었다. 백악관은 유일하게 “9.11테러”에서 살아남았다. “9.11테러”는 미국을 경악시켰다. 세계를 경악시켰다. 미국은 왜 “9.11테러”의 타깃(目标)으로 되였는가? 테러리스트는 악마인가? 유령인가? 누가 미국을 저주하는가? 삽시간에 세계 방방곡곡에서 의문의 눈길이 날아왔다.

이날 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다시 한번 TV 연설을 하였다.
“국민 여러분, 오늘 테러리스트가 우리의 삶과 자유를 무참하게 공격했습니다. 우리의 부모와 형제, 친구와 이웃이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참혹한 테러 피해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사무치는 슬픔과 억제할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혔습니다.

비열하고 야비한 테러였습니다. 살인마의 미친 광기였습니다. 미국을 혼돈과 퇴보로 끌어가려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는 분명히 실패했습니다. 미국은 의연히 성조기가 나부낍니다. 거룩한 신(神)은 미국을 보호했습니다.

이 시각 슬픔에 잠긴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동심의 세계가 파괴된 모든 어린이를 위해 기도합시다. 생명을 위협받은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합시다. 다 같이 거룩하신 하느님에게 기도를 드립시다."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는 언제나 주님이 계시거늘 무서울 것이 없어라.”

부시 대통령은 TV 연설을 계속 이어나갔다.
“오늘의 미국은 세상에서 가장 밝은 자유와 가장 평등한 기회의 땅으로 되였습니다. 테러리스트는 자유와 평등을 저주했습니다. 그러나 추호의 의심도 없습니다. 미국은 서슴없이 복수의 총칼을 뽑아들었습니다.

미국은 반드시 테러리스트를 추적하여 응징할 것입니다. 테러 배후의 조종자와 보호자로 나선 국가나 정부도 거침없이 탄압할 것입니다. 미국은 자유와 정의를 영원히 수호할 것입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함께 다시 한번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립시다.

위대하고 거룩하신 주님이시여, 평화와 정의를 수호하는 미국을 보호해 주세요. 악령과 공포를 몰아오는 테러리스트에게 저주를 퍼부어 주세요. 저주를 퍼부어 주세요.”

미국은 온 나라가 눈물을 머금고 거룩하신 주님에게 성스럽게 기도했다. 그러나 무적 국가 미국의 신화가 처참하게 무너졌다. 미국의 철통방 위에 구멍이 뚫렸다. 신변안전이 잔인한 테러를 당했다. 60년 전 하와이주의 진주만이 가미카제 특공대의 공습을 당했다. 60년 후 “9.11테러”가 미국 본토를 공격했다. 미국은 단연히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9.11테러”당일 안사장님은 갑자기 로스앤젤레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심사장님이 당장 매장을 클로즈 하라고 지령했다. 상황이 긴박하니 즉시 지령을 따르라고 맺고 끊었다. 안사장님은 곧바로 가게 문을 닫았다. 이날 부근의 차이나 푸드와 세탁소를 비롯한 크고 작은 업소들도 분분히 영업을 중단했다. 그러나 흑인 집거구에 위치한 강 사장님은 여전히 평일처럼 마켓을 오픈했다. 이날 오후 갑자기 한무리의 흑인 폭도들이 마켓을 덮쳤다. 닥치는 대로 훔치고 약탈했다. 강 사장님은 또 한 번 억울하게 큰 봉변을 당했다.

“9.11테러”가 발생한 후 나는 이곳 정황을 심사장님에게 상세하게 말씀드렸다. 중국 거래처와의 전화, 팩스 등 일체 통신이 연몇일째 전부 끊긴 상태라고 알려주었다. 심사장님은 로스앤젤레스도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워싱턴 DC와 알링턴 카운 매장의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9월 15일. 나는 비로소 회사에 출근할 수 있었다. 백악관, 국회의사당, 국방부 청사 등 지역의 교통은 여전히 통제 상태였다. 이날 안사장님, 사모님, 몽골 직원 2명도 매장에 나왔다. 사모님의 소개로 얼마 전부터 카운터를 보던 60대의 한국인 여성 최 집사도 보였다. 아르바이트를 뛰던 대학생들은 모두 출근하지 않았다. 카운터 전담인 장나연도 보이지 않았다. 장나연은 “9.11테러”당일 매장을 떠난 후 여태껏 소식이 끊겼다.

이날 “코레아 쇼핑”매장에는 평일과는 달리 찾아오는 흑인 손님들이 매우 드물었다. 우리 일행은 뒤숭숭한 마음으로 매장을 지켰다. 나는 안사장님과 상의하고 당분간 저녁 6시 전에 매장을 클로즈 하기로 결정했다.

오후 16시경에 뜻밖에 장나연이 매장에 나타났다. 그는 성조기(美国国旗)를 한 아름이 넘게 갖고 왔다.
“사모님, 우리도 빨리빨리 매장에 성조기를 걸어놓아요.”
장나연이 사모님을 독촉했다. 나는 의아쩍은 생각이 들었다.
"미스 장, 성조기는 독립기념일 때만 걸어놓는 것 아니야?"
“맞아요, 실장님. 근데- 이건 목사님의 부탁이에요. 사모님, 일단 성조기부터 걸어놓아요.”

사모님, 최 집사, 몽골 직원은 장나연을 따라 매장 밖으로 향했다. 이곳저곳에 닥치는 대로 성조기를 걸어놓았다. 나는 안사장님과 함께 주차장에서 직원들의 자가용에 성조기를 동여맺다.

관습에 따르면 미국은 매년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전후로 며칠간 성조기를 내걸었다. 그러나 “9.11터로”이후 도처에서 성조기가 나붓겼다. 달리는 승용차는 물론 연방정부청사, 공항, 샤핑 몰, 맥도날드, 편의점, 마켓 등등 공공장소에 성조기가 눈송이처럼 나붓겼다. 심지어 길거리의 포스트에도 성조기가 꽂혔다.

문화다원주의를 갖고 있는 아메리카합중국에서 성조기는 애국심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성조기는 아메리카합중국의 절절한 애국심을 표달했다. 그러나 사실상 성조기의 이면에는 “9.11테러”를 감행한 이슬람에 대한 강렬한 복수심이 숨어있었다.

성조기가 나부낀 후 뉴욕에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승용차를 운전하던 백인 남자가 길거리에서 우연하게 팔레스타인 여성을 발견했다. “내 나라를 파괴한 이슬람에 대한 보복이다.” 백인 남자는 소리 높이 웨치며 그녀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미시간주에서는 어느 날 정체 모를 차량이 갑자기 이슬람 신도의 집 앞에 멈춰섰다. 차 안에서 백인 남성 2명이 하차했다. “이슬람은 당장 미국에서 물러가라”라고 소리치며 무자비한 총탄을 퍼부었다. 워싱턴 DC의 이슬람 사원에 수많은 신도들이 모였다. 어느 날 흑인 청년이 무작정 사원에 폭탄을 던졌다. 10여명의 이슬람 신도가 당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슬람에 대한 미국인의 분노와 복수는 또 다른 테러를 불러왔다. 미국은 삽시간에 무시무시한 테러의 심연에 빠졌다. 이슬람 신도들은 분노와 공포로 부들부들 떨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반인종주의 “3K 당”(美国民间排外团体)의 그림자가 재생했다.

“국제 테러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공동 조치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
러씨야 푸틴 대통령의 명확한 주장이었다.
“중국정부는 언제나 모든 종류의 테러를 반대한다.”
장쩌민 국가 주석도 분명하게 중국의 입장을 밝혔다.
“일본은 <9.11테러>희생자에 대한 구호와 복구작업에 긴급 지원팀을 파견하겠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도 선뜻이 나섰다.

유럽에서는 영국이 선참으로 총력을 다해 테러와의 전쟁에 나서겠다고 확고한 의지를 표달했다. 심지어 이슬람 문화권의 시리아, 리비아, 이란, 쿠바 등 국가들도 “9.11테러”에 대해 서슴없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2001년 10월 7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타깃으로 맹렬한 “반 테러 전쟁”을 발동했다. 부시 대통령은 TV 연설에서 이렇게 천명했다.
“반 테러 전쟁은 악의 세력을 제거하는 성스러운 전쟁이다. 이슬람에 대한 그리스도의 새로운 심자군 원정(十字军远征)이다.”

역사 이래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는 이미 1000여 년의 기나긴 충돌과 갈등이 지속되었다. 이슬람과 그리스도의 분쟁의 초점은 이른바 “일신교 신앙”이 근원이었다. “다신교 신앙”과 달리 “일신교 신앙”은 절대로 타 종교 신앙을 수용하지 않았다. 세계를 언제나 내 것이 아니면 남의 것이란 “2원론”으로 해석했다. 불행한 것은 이슬람과 그리스도는 줄곧 종교 전도를 신성한 의무로 간주했다. 이교도에 대한 정복을 통해 신성한 종교 전도를 실현하려고 시도했다. 이슬람교의 “지하드 전쟁”(圣战)과 그리스도교의 “십자군 원정”(十字军远征)은 모두 종교 전도를 목적으로 하였던 “일신교 신앙”의 충돌이었다.

사회학자 새무얼 헌팅턴(塞繆尔•亨廷顿)은 1996년에 “문명의 충돌”(文明的冲突)이란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저서에서 이렇게 지적하였다.
“21세기에 인류 사회는 새로운 충돌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20세기에 보편화 되었던 부동한 의식형태와 부동한 경제제도로 야기된 충돌의 요소로 해석할 수 없다. 21세기에 인류사회의 최대 분쟁과 최대 충돌은 각이한 문명 지역 간의 각이한 문화적 차이로 인기될 것이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부동한 문명 간의 새로운 충돌이 갈수록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미시적인 차원에서 폭력으로 치달을 단층선은 이슬람과 인접한 정교도와 힌두교, 아프리카와 서구 그리스도 문명권에 놓였다. 그러나 거시적인 차원에서 폭력적인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과 이슬람의 편협함, 그리고 중국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것이다.”

“9.11테러”가 발생한 후 새무얼 헌팅턴은 “뉴욕타임스”지에 “목적론적인 일신교 신앙의 위기”란 칼럼을 등재했다. 그는 “일신교 신앙의 위기”에 대해 이렇게 지적하였다.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는 역사를 시종일관 목적론적으로 파악했다. 그러므로 기타 지역의 문명권이 역사를 순응적이고 정지적인 상태로 간주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오늘날 이슬람과 서구가 또다시 충돌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권력과 문화의 근본적인 물음에 귀결되었다.
“누가 세계를 지배해야 하는가?”
“누가 타인을 지배해야 하는가?
“누가 타인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가?”
“'일신교 신앙'은 이 같은 문제에서 상호 간에 추호의 양보도 없었다. 결국 폭력적인 충돌 위기로 치달았다.”

오사마 빈 라덴이 조작한 테러는 분명히 백악관, 국방부 청사, 세계무역 청사를 타깃으로 공격했다. 이는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미국의 재부가 이슬람 문명권의 가장 큰 위협이란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했다.

냉전시대가 결속된 후 미국은 줄곧 비서구 사회에 미국식 민주와 제한된 정부, 인권보장, 법치주의 등등 서구 중심의 가치관을 강요했다. 심지어 비서구 세계에 새로운 사회제도를 구현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슬람을 대표하는 반서구 문명권은 세계 제패를 꿈꾸는 미국의 야망과 강경하게 맞섰다. 그러므로 “9.11테러”는 피할 수 없는 역사의 필연적인 결과였다.

“반 테러 전쟁”이 개시된 후 미국의 언론은 “주전론”과 “반전론”으로 양분되였다.
“미국은 붕괴된 국가 자존심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상처받은 국민의 정서는 끝까지 위안을 받아야 한다. 국가 안전은 견결히 담보 받아야 한다. 테러리스트는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정의는 영원히 수호해야 한다.”
“주전론”은 “반 테러 전쟁”을 “정의의 전쟁”으로 승화시켰다.

“미국은 종교 간의 증오와 갈등이 얼마나 큰 파괴력을 야기하는지를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강자가 아닌 약자도 능히 세인을 경악게 하는 파괴력을 과시할 수 있다. 미국이 안전을 담보 받으려면 반드시 강자와 약자 간의 충돌을 피면해야 한다. 반드시 복수를 포기해야 한다. 미국이 복수를 선택하지 않으면 테러와의 전쟁도 있을 수 없다.”
“반전론”은 “테러와의 전쟁”을 극명하게 비난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강경한 “반전론”을 주장했다.
“미국의 보복은 이슬람 나라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했다. 미국은 세계적인 분노와 증오의 먹구름을 테러 전쟁에 동참시켰다. 테러는 마땅히 지탄받아야 한다. 미국의 분노는 당연히 분출구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분노가 해소되면 무력적인 보복도 피면할 수 있다.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궁극적인 가치는 사랑과 평화임을 시종 명기해야 한다.”

“뉴욕타임스”지도 견결히 “반전론”을 주장했다.
“미국은 역사상 최악의 테러를 당했다. 그러므로 테러리스트를 응징하는 무력행위를 정의를 위한 전쟁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분노는 결코 정의로운 전쟁으로 승화할 수 없었다. 복수심을 불태운 이기적인 전쟁은 여태껏 정의로운 전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지나온 전쟁사기 입증한 위대한 진리였다. 전쟁이 진정한 평화를 창조한 선례는 역사 이래 한번도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출근길에 교통이 차단되여 국회의사당 근처에서 부득불 차를 멈춰세웠다. 이날 범세계화 운동가들이 대규모 “반전시위”를 전개했다.
“아랍인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테러를 방지하려면 겁주는 행위부터 중단하라.”
“폭력으로 폭력을 해결할 수는 없다.”
"아프가니스탄을 타도하지 말라. 패권을 휘두르는 제국주의를 타도하라.”
시위 행렬은 수천 명에 달했다.

이날 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갑자기 TV에 나섰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반 테러 전쟁”을 발동한 후 여태껏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이날 TV 연설에서 “9.11테러”는 반드시 미국의 선조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단호하게 일갈했다.

“지난 수백 년간 미국은 인디언 원주민을 잔혹하게 학살했다.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를 참혹하게 유린했다. 미국은 이 역사적인 죗값을 마침내 <9.11테러>의 타깃으로 갚게 되였다. 미국은 절대로 전쟁으로 테러를 해결할 수 없다. 도리여 테러 지원국에 빈곤을 줄이는 교육을 지원하는 것이 전쟁보다 값싼 해결책이다.”

요즈음 최 집사는 초조한 심정으로 안절부절못했다. 올해 23세의 아들이 지난해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참군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미군 기지에서 봉사했다. 얼마 전 아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혹시 아프가니스탄 전선으로 이동할 것 같다고 전했다. 최 집사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사모님의 손을 붙잡고 아들의 평안 귀가를 위한 백일기도를 드리자고 애타게 졸랐다.

이해 11월 26일은 추수감사절이었다. 사모님은 직원들을 위해 큼직한 칠면조(火鸡) 구이를 마련했다. 나는 직원들과 함께 신나게 칠면조를 시식했다. 갑자기 카운터의 전화별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장나연이 뛰여가 전화를 받았다.
“집사님, 전화 받으세요.”
장나연이 최 집사를 독촉했다. 그러나 최 집사는 한자리에 굳어버렸다. 장나연이 재차 독촉했다. 그제야 뒤늦게 카운터로 향했다. 조금 후 최 집사가 다시 돌아왔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모님의 두손을 움켜쥐고 힘껏 흔들었다.

“사모님, 우리 아들 별일 없대요. 크리스마스 휴가철에 돌아온대요. 이게 다 백일기도 덕분이지요. 사모님, 진짜 진짜 감사해요.”
최 집사는 목이 메어 흐느꼈다. 크리스마스에 때 아들이 돌아오면 푸짐한 파티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2002년 구정이 지난 후 갑자기 최 집사가 보이지 않았다. 요즈음 교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현역 군인으로 봉사하는 아들을 위해 절에 들어가 부처님을 공양하였다.

2003년 3월 19일 깊은 밤.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발동했다. “이라크 전쟁”이 폭발했다. 바그다드 상공에 갑자기 시뻘건 화염이 타래쳐 솟았다. 칠흑같던 밤하늘이 순식간에 대낮같이 환히 밝았다. “CNN TV”방송은 바그다드 공습을 실시간 생중계했다. 그러나 “ABC TV”방송은 이라크 이민자들이 공포에 떨고 있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으로 이미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9.11테러”를 조작한 오사마 빈 라덴은 여전히 사살하지 못했다. 미국은 “악의 세력을 제거한다”라는 새로운 명분을 내세웠다. 핵무기 사찰을 거부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부를 제2차 “반 테러 전쟁”의 타깃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대 이라크 전쟁은 사실상 세계 평화와 안전을 파괴한 비정의적인 무력침공이었다.

지난 1945년 “연합국 헌장”이 미국에서 출범했다.
“각국의 주권은 모두 평등하다. 그 어떤 국제적인 분쟁도 반드시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 어떤 국가든지 절대로 무력적인 수단으로 타국의 영토와 주권을 침범할 수 없다.”

그러나 국제 평화를 도모하려는 연합국의 종지와는 상관없이 지난 수십 년간 세계 곳곳에서 부단히 전쟁의 총성이 울렸다. 특히 강대국이 발동한 전쟁은 세계 평화와 안전을 무참하게 유린했다. 1950년대의 조선전쟁이 그러하였다. 1960년대의 베트남 전쟁이 그러하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중동전쟁 역시 그러하였다.

“USA Today”(今日美国) 주간지는 “누가 전쟁을 발동할 수 있는가?”라는 논설에서 이렇게 지적하였다.
“전쟁은 오직 주권국가만이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연합국은 영원히 전쟁을 결정할 수 없다. 가령 연합국이 전쟁을 결정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래도 오직 주권국가만이 갖고 있는 군대를 갖지 못했다. 그러므로 전쟁을 실행할 군사적 능력을 소실했다. 세계 평화와 안전을 담보할 능력을 상실했다. 전쟁을 발동한 강대국을 향해 <꼼짝 말라, 내가 너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하겠다.>라고 담보할 수 없었다.”

“9.11터로”이후 연합국은 미국의 안전에 대해 아무런 보장도 해줄 수 없었다. 미국은 “연합국 헌장”을 묵살하고 대 이라크 전쟁을 발동했다. 10년 전 미국은 지중해 지역에서 “걸프전”을 발동했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군대를 호랑이가 토끼를 내쫓듯 하루아침에 쿠웨이트에서 내쫓았다. 10년 후 미국은 “대 이라크 전쟁”에서 독안에 든 쥐를 족치듯 사담 후세인 군대를 여지없이 부숴버렸다.

“어떤 전쟁이든 모두 성전(圣战)이어야 한다.”
미국의 전쟁영웅 맥아더 장군의 "전쟁관"이었다. 전쟁은 언제나 선과 악의 대결이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전쟁이든 필연코 성전이어야 한다. 미국이 발동한 “대 이라크 전쟁”은 “악의 세력을 제거하는 성전”이란 정의감을 가첨했다.

“그러나 유럽의 프랑스와 독일은 줄곧 미국의 패권을 아니꼬운 눈길로 지켜보았다.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은 자국의 이익만 챙기는 비정의 전쟁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불량 국가는 이라크가 아니라 미국이라고 비난했다.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다. 아침나절에 안사장님과 사모님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웬일인지 사모님은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전날 사모님은 교회에서 최 집사의 아들을 위해 단체기도를 했다.

최 집사의 아들이 얼마 전 이라크로 파병되었다. 어느 날 깊은 밤중에 전투임무를 수행했다. 총탄이 빛발치는 전쟁터에서 문뜩 이라크 어린이를 발견했다. 선뜻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때 땅에 떨어진 수류탄이 오폭되여 나 젊은 생명을 잃었다.

“뭐요? 최 집사 아들이 죽었다고요?"
나는 일순간 쓸쓸한 비애에 젖었다. 문뜩 최 집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게 다 백일기도 덕분이지요.” 사모님의 두 손을 붙잡고 환한 웃음을 짓던 최 집사의 모습이 눈앞에 석연했다.

 

조광연(曹光延)

길림성 연길시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변텔레비전방송국에서 기자, 편집으로 근무.
1999년~2005년 미국에 체류. 
소설, 수필, 기행문, 실화문학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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