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나는 중국에 두고 온 딸애에게 생일선물을 부쳤다. 내가 중국을 떠날 때 소학교에 다녔던 딸애는 햇병아리같이 귀여웠다. 근데 일전에 안해가 부쳐온 딸애의 사진을 보니 어느덧 몸매가 늘씬하게 성숙했다. 제법 처녀 태가 엿보였다.

2002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연며칠 폭설이 내렸다. 극심한 교통체증이 발생했다. 근데 딸애의 생일이 코앞에 닥쳤다. 나는 폭설을 무릅쓰고 페어팩스 카운에 위치한 “TJ mix”로 갔다. “TJ mix”는 세계 각지에서 적재된 명품 패션을 전문으로 취급했다. 패션 가격은 시초보다 몇십 배의 헐값으로 판매되었다.

이날 나는 89달러를 주고 이탈리아산 암황색 코드를 선택했다. 카운터에서 결산을 끝내고 밖으로 향했다. 그때 화장실 근처에서 갑자기 어린애의 자지러진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4~5세로 보이는 백인 여자애가 울고 있었다. 얼굴에 시뻘건 손자국이 찍혔다. 엄마로 보이는 30대의 백인 여성이 울고 있는 어린애를 표독스레 쏘아보며 욕설을 퍼부었다.

백인 여성은 어린애를 무작정 밀치며 밖으로 향했다. 그때 경비원이 대뜸 그녀의 앞을 막아 나섰다. 얼마 후 경찰차가 들이닥쳤다. 경찰은 다짜고짜 백인 여성과 울고 있는 어린애를 차에 싣고 떠났다.

며칠 뒤 어린애를 구타한 백인 여성이 TV에 나타났다. 그녀는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6개월의 강제로동 징역과 3000달러의 벌금이 책정되었다. 3년 전에 그녀는 이미 이혼하였다. 어린 딸애는 6개월간 부득불 어린이 보호 센터에서 책임졌다.

미국은 법적으로 성인이 어린이를 구타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했다. 설사 부모가 자식을 구타해도 어김없이 법적인 제재를 받았다. 평소 어린이 구타 사건은 드물게 발생했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어린이를 구타하는 행위는 극히 적었다. 그러나 나는 쇼핑 몰에서 우연히 어린이를 구타하는 전경을 목격하였다. 신문과 방송에서 언급한 것처럼 극히 적은 특수한 사례가 아니었다.

법정에 나선 백인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홀로 딸애를 키우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딸애의 장래가 걱정되여 매일 10여 시간 일했다. 그러나 갈수록 늘어나는 경제적인 부담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다. 그날도 딸애가 갑자기 아무런 연고도 없이 트집을 잡았다. 나는 마침내 분통이 터졌다. 일순간 자제할 수 없었다. 얼김에 딸애의 볼따구니를 후려쳤다. 딸애한테 죄송하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며칠 후였다. 인디애나주에 거주하는 11세 소녀 마셜은 어머니와 함께 월마트로 갔다. 월마트에 도착한 후 마셜은 갑자기 화장실에 가겠다고 졸랐다. 엄마가 허락하자 인츰 분비는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어머니는 쇼핑 카를 끌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한식경이 지나도 마셜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화장실로 찾아갔다. 뜻밖에 마셜이 화장실에 없었다. 당황한 어머니는 월마트 안팎을 샅샅이 뒤졌다. 반나절이 지났다. 그러나 마셜은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기진맥진한 어머니는 뒤늦게 딸애가 실종되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날 마셜이 재학 중이던 사립학교의 나젊은 교장 윌리엄 비스도 같은 시간대에 집문을 나선 후 자취를 감췄다. 제보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그녀에게 평소 마셜과 비스 교장이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었는가고 질문했다. 일전에 딸애 마셜은 28세의 비스 교장을 흠모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러나 딸애가 겨우 11세였기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경찰은 마셜이 비스 교장과 함께 잠적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판정하고 급급히 수사에 나섰다.

근래에 10대 소녀에 대한 유괴사건이나 성범죄 사건이 자주 발생했다. 많이는 학교생활에 혐오감을 느낀 소녀들을 대상했다. 특히 편부모 가정에서 성장한 소녀들이 타깃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때로는 10대 소녀들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사랑의 도피 행각”인 경우도 많았다.

마셜은 아버지가 없는 편부모 가정에서 성장했다. 이날도 마셜은 평소 흠모했던 비스 교장과 엉뚱한 “밀회 약속”을 했다. 월마트에 도착한 후 화장실로 간다고 핑계를 대고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사랑의 도피 행각”을 저질렀다. 마셜은 고급 호텔에서 비스 교장과 즐거운 “사랑의 밀회”를 보냈다. 경찰의 수사 끝에 마셜은 다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왔다.

“무엇 때문에 어머니를 속이고 잠적했는가?”
마셜은 경찰의 질문에 흥분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미남형의 비스 교장과 함께 있을 때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로 느껴졌다. 나는 가장 인기 있고 섹시하고 대범한 여자로 인정받았다. 학우들의 이 같은 호평에 지금도 가슴이 설렌다. 앞으로도 계속 인기 있고 섹시하고 대범한 여자로 되고 싶다. 또다시 어머니의 간섭을 받고 싶지 않다.”

수사에 나선 결찰은 깜짝 놀랐다. 딸애의 어처구니없는 변명은 어머니의 가슴에 서리발치는 대못을 박았다. 그녀는 휘청거리는 다리를 가누지 못했다. 떨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했다.

“나는 미국의 대중문화에 비분을 갖고 증오를 갖는다. 텔레비, 영화, 잡지, 비디오를 통탄한다. 어린 소녀들에게 솔직한 사람으로 되라고 인도하지 않는다. 지성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무엇인가 성취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라고 고무격려하지 않는다. 도리여 소녀들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으로 되라고 부추긴다. 할리우드의 <노팬티>(외출 시 팬티를 착용하지 않는 행위) 스타처럼 뻔뻔스러운 사람으로 되라고 유도한다.

솔직히 나는 딸애의 <사랑의 도피 행각>에 얼굴이 뜨겁다. 그러나 엄마인 내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삐뚤어진 대중문화가 10대 소녀들을 기로에로 이끌었다. 이 같은 현상은 날 따라 심각해지고 있다. 나는 대중문화를 질책한다. 10대 소녀들의 도피 행각에 반드시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내가 거주한 주택 인근에 정갈한 산책로가 있었다. 도보로 20여분을 걸으면 짙푸른 잔디밭이 펼쳐졌다. 그곳에 아담하게 꾸려진 소학교가 있었다. 주변에는 이름 모를 나무들이 병풍처럼 빼곡히 둘러섰다. 숲속에는 가담가담 이쁘장한 나무의자가 놓였다. 휴식 날이 돌아오면 나는 책을 들고 종종 이곳을 찾았다.

이날은 아침나절부터 화창한 봄기운이 감돌았다. 때마침 휴식 날이었다. 나는 중역본 루소(罗素)의 저서 “인류의 지식”(人类的知识)을 들고 집문을 나섰다. 산책로를 따라 소학교 근처로 향했다. 서늘한 숲속에서 자리를 잡았다. 한창 독서에 열중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귀에 익은 중국 말이 들려왔다.

“好久没看到中文书籍啦, 能否让我看一下?”(오래도록 중문 서적을 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한번 볼 수 없을가요?)
60대로 보이는 동양인이 눈앞에 나타났다. 내가 분명히 중국어에 통한다고 확인되었는지 밝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의아쩍은 생각이 들어 중국어로 물었다.
“你是中国人吗?”(당신은 중국 사람입니까?)

60대의 남자는 머리를 끄떡였다. 성씨는 교씨(乔氏)였고 이름은 경룡(庆龙)이였다. 대만 출신이었다. 나는 대륙에서 왔다고 소개했다. 성씨는 조 씨(曹氏)라고 알려주었다. 그는 대뜸 “曹先生”이라고 호칭했다.

교경룡은 1950년대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연방 정부 교육부에서 30여 년간 교육사업에 종사했다. 2년 전에 정년퇴직을 하였다. 얼마 전부터 이곳 소학교에서 “기초교육에 대한 연구”에 진력하였다.

그는 중국 대륙의 교육 현황에 대해 이것저것 문의했다. 특히 개혁개방 이후의 교육 현황에 각별히 흥취를 가졌다. 1977년에 대륙에서는 대학교 입시시험제도가 회복되었다. 그 후 1980년대 대륙의 교육사업은 신속하게 발전했다. 특히 1990년대 대륙은 종합대학 건설에 각별한 중시를 돌렸다. 국가급 일류 대학 건설 항목인 “985공정”, 100개 중점대학 건설 항목인 “211공정”, 민영자본을 유치한 각종 전문학과 대학 등등 대륙의 교육사업은 거족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교경룡은 퇴직 후 미국의 기초교육 현황에 각별한 중시를 돌렸다. 근래에 “认识老文化, 发展新教育”(전통문화를 인식하고 새로운 교육을 발전시키자)라는 타이틀(标题)로 논문을 작성했다.

“저는 시초에 미국의 기초교육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었어요. 대만은 아직도 민국시기의 교육 습성이 잔존하고 있어요. 기초교육에서 학생들은 여전히 지나친 부담을 갖고 있어요. 그러나 미국의 기초교육은 개성을 강조해요. 학생들은 부담 없이 즐겁게 뛰놀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의 기초교육에 대해 호기심보다 걱정이 많아졌어요. 근심보다 실망감이 더 켜졌어요.

현재 미국의 기초교육은 근근이 지식의 전수에만 유념하고 있어요. 새로운 혁신이 없어요. 물론 극심한 취업 경쟁 때문에 필수적인 지식의 전수는 부인할 수 없지요. 그러나 고학력과 고임금을 교육의 유일한 목적으로 간주하지요. 화려한 명예와 막대한 재부를 교육의 유일한 실리주의로 추구하지요.

학생들은 향락과 탐욕의 심연에 빠졌어요. 사회적인 도덕 양성과 인성 양성이 추락되었어요. 중소학교에서 소름 끼치는 학교폭력이 심각한 상태로 비화했어요. 마약 행위, 매춘행위, 심지어 총기살인까지 범람했어요. 학생들의 인신 안전이 유례없는 위협을 당했어요.”

교경룡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90년대 미국은 10대 소녀들의 임신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연방 정부 교육부는 부득불 중소학교에서 반드시 갓난애 보호시설을 설치할 것을 강요했다. 학교 출입구에는 콘돔 자판기까지 설치했다. 그 후 10대 소녀들의 임신 비율이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마약과 폭력에 노출된 학생 수는 도리여 급속하게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엑스터시”라는 마약이 신속하게 범람했다. “엑스터시”때문에 고등학교 학생이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비극까지 발생했다.

2001년 3월 플로리다주의 고등학생 에드워드 카라 웨이가 교통사고를 유발했다. 인도를 지나던 7세 남자애가 차 밑에 깔렸다. 그러나 카라 웨이는 내처 앞으로 달렸다. 결국 추적하던 경찰에게 덜미를 잡혔다. 남자애는 3마일이 넘게 끌려가다가 끝내 숨졌다. 카라 웨이는 고의살인죄로 체포되었다.

“무엇 때문에 제때에 차를 뭠추세우지 않았는가?”
법정에 나선 카라 웨이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나는 호주머니에 있는 엑스터시가 발견될까 당황했다. 두려움 때문에 허겁지겁 뺑소니쳤다. 차 밑에 깔린 어린애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법정은 고의살인죄로 징역 12년을 언도했다. 그러나 카라 웨이는 술에 물탄 격으로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법정을 떠날 때까지 피해자 유가족에게 한마디 죄송하다는 말도 없었다.

같은 해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중학교의 여교원이 미성년자를 유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33세 여교원 태냐 조앤 해든은 15세 미성년자 리처드 페나를 차에 태우고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페나는 선생님과 함께 신나게 바다가를 내달렸다.
“너 라스베까스로 가보고 싶지 않아?"
그녀는 바다 구경에 들떠있는 페나를 유혹했다. 페나는 일말의 저항도 없이 순순히 따랐다. 그녀와 페나는 연속 4일간 호텔에 투숙했다. 그동안 수차례나 부정당한 성관계를 발생했다.

페나의 부모는 아들의 소식이 끊기자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라스베까스에서 페나를 찾았다.
“무엇 때문에 라스베까스로 따라갔는가?”
경찰의 물음에 페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태냐 선생님은 바닷가에서 섹시한 모습을 선보였다. 풍만한 젖가슴은 나를 몹시 흥분시켰다. 호텔에 투숙한 후 태냐 선생님은 알몸을 드러냈다. 나도 알몸으로 되였다. 태냐 선생님은 나와 함께 샤워했다.”

페나는 라스베까스로 갈 때 부모님에게 전화 통화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선생님에게 극구 제지당했다. 라스베까스에 투숙한 후 태냐는 집에 두고 온 애견이 걱정되었다. 그는 급급히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변호사가 태냐에게 질문했다.
“애견 때문에 오빠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무엇 때문에 페나 부모에게는 전화 통화를 하지 않았는가?”

"솔직히 페나 부모에게 전화 통화를 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나는 페나와 함께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좀 더 긴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일부러 전화 연계를 끊었다. 페나 부모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후회감은 갖지 않는다.”

태냐는 미성년자를 유괴했다. 게다가 부정당한 성관계를 발생했다. 법정은 징역 25년형 또는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었다. 피해자인 페나 부모는 법정에서 엄중하게 징벌할 것을 주장했다.

당시 사회학자 주디스 레빈은 “섹스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는 위험”이란 책을 출간했다. 저자 레빈은 이렇게 주장했다.
“나는 미성년자에 대한 성추행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압이 아닐 경우 무조건 미성년자를 피해자로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비현실적이다.”

“曹先生, 你知不知道美国有一种怪论?”(조 선생님은 미국에 이상한 괴설이 있는 것을 아십니까?)
교경룡이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나는 “괴설”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일시 종잡지 못했다.
“태냐 사건이 발생한 후 한때 이상한 괴설이 압도적이었어요. 섹스는 미성년자에게 성장의 일부분이다. 특히 미성년자가 성인의 가르침을 받는 섹스는 정당한 것이다. 실로 금시초문의 괴설이였지요.

1990년대 초부터 미국에서는 10대 미성년들이 성인을 섹스 파트너로 물색하는 현상이 나타났어요. 물론 지금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실로 되였지요. 참으로 믿기 어려운 <괴설>이지요. 미성년자들은 성인들 앞에서 더욱 섹시해 보일 것을 갈망했어요. 더욱 성숙된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어요. 그래야 보호받는 존재란 느낌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성인은 당연히 섹스에 경험이 있지요. 미성년자가 성인의 가르침을 받으면 오히려 성장에 이롭다는 주장이지요. 참담하고 민망하고 무식한 <괴설>이였어요.”

"교육의 역사를 소급해 보면 의무교육을 가장 일찍 실행한 민족은 유대인이었어요. 그러나 국가적으로 의무교육제도를 전면적으로 보급한 나라는 미국이었어요. 1647년 미국은 무릇 50가구 이상이 거주하는 타운은 반드시 학교를 설치하고 의무교육을 실시했어요. 누구나 평등한 교육을 받고 평등하게 경쟁하는 기회를 마련했어요. 현재 미국의 50개 주는 소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부 의무교육을 실시하였어요.

그러나 근래에 중소학교에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어요. 운동을 잘하는 학생은 날 따라 많아졌어요. 반면에 읽기와 쓰기에 익달한 학생은 날 따라 줄어들었어요. 물론 미국의 기초교육은 대만, 일본, 한국처럼 고학점을 추구하지 않지요. 그러나 미국의 기초교육은 광란적으로 운동에 집착했어요. 다만 육신이 발달한 건장한 어린이에 만족했어요. 이는 교육의 근본적인 목적을 상실했어요.

육아교육을 살펴보면 쉽사리 파악할 수 있어요. 모유를 먹이고 잡병을 예방해 건실한 어린이로 키우는 것은 육아교육의 기술적인 문제였어요. 그러나 선량하고 착실하고 성실한 어린이로 키우는 것은 육아교육의 근본적인 목적이지요.

세상의 어머니들은 당연히 갓난애를 건실한 어린이로 키우려고 집착하지요. 그러나 건실한 어린이가 반드시 착한 성품을 소지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다년간 미국의 기초교육은 기술적인 측면에만 집착했어요. 도덕과 인성 양성의 근본적인 목적을 상실했어요.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아직은 답을 찾지 못했어요. 실로 유감스럽네요.”

나는 교경룡의 차분한 목소리에 빨려 들었다. 조리가 정연한 이야기에 감탄했다. 매번 휴식일 때마다 나는 이곳에 찾아와 조용히 독서했다. 어린애들은 짙푸른 잔디밭에서 아무런 구애도 없이 마음껏 뛰놀았다. 참으로 자유롭게 성장했다. 그러나 자유로운 성장의 리면에는 또 다른 기로가 숨어있었다. 교경룡은 나에게 그 기로를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교경룡의 예리한 통찰에 다시 한번 손뼉을 치며 탄복했다.

교경룡은 루소의 저서 “인류의 지식”을 빌려줄 수 없는가고 청들었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그는 선뜻이 책을 받았다. 그러나 적이 실망했다. 중역본 “인류의 지식”은 간체자(简化字)였다. 근데 교경룡은 번체자(繁体字)에 익숙했다.

교경룡은 이렇게 말했다.
“간체자는 번체자에 비해 획수가 적기에 확실히 배우기가 훨씬 쉽다. 근데 어떤 간체자는 획수가 지나치게 적어 중국 상형문자의 전통적인 의미를 다분히 상실했다. 이점이 참 아쉽다.”
교경룡은 적이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일리가 있다고 느껴졌다.

“曹先生, 后会有期”(조 선생님, 이후에 다시 만납시다.)
교경룡은 친절하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나는 그의 뒷모습이 가물가물 사라질 때까지 내처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나는 한식경이 지난 후 집으로 향했다. 문뜩 “TJ mix”에서 봉착했던 전경이 또다시 새삼스레 떠올랐다. 무가내로 울어대던 백인 여자애. 표독스레 욕설을 퍼붓던 백인 여성. 경찰차에 끌려가던 모녀의 모습이 도무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조광연(曹光延)

길림성 연길시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변텔레비전방송국에서 기자, 편집으로 근무.
1999년~2005년 미국에 체류. 
소설, 수필, 기행문, 실화문학 다수 출간.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