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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 말은…… 
그러니까, 내 말은…… 
이 모든 걸 굳이 당신에게 이해시킬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내가 남겨져야 한다면 그게 당신이었으면 합니다. 별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지금처럼 당신이 가만히 나의 얘기를 들어주셨으면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왜 꼭 나여야 한다는 거죠? 내심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길 가다 잠깐 몇 번 얼굴 마주쳤던 기억 외에는 딱히 인사를 나눠 본 적이 없는 이 ‘낯선’ 사람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왜 꼭 나여야만 했는지, 그것보다 그녀가 무슨 얘기를 내게 들려줄지 더 궁금했다. 혹시 미친 여자 아니야? 잠깐 의심도 했었지만. 하긴 요즘 시대에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어련하다는 듯이 나와 그녀는 예감할 수 없는 눈빛을 서로 교환하면서 얼음이 다 녹아버린 커피 위로 달처럼 떠 있는 실내조명을 내려다보았다. 어색해서. 어딘지 모르게 많이 불편했다. 그녀는 커피잔 깊은 곳에 찾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듯, 뚫어지게 그 곳에 열심히 초점을 맞추었다. 목적 없이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을 나는 하나의 그림 속 후경 처럼 스케치하였다. 눈초리의 잔잔한 떨림까지도 내가 곧 듣게 될 그녀의 한 줄 되는 얘기의 일부처럼 파르르 숨 쉬는 것 같았다. 어쩌면 저 여자 지금 그 속의 파문 하나 하나를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 하나 하나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면서, 또는 그 사이 사이로 뒤엉킨 긴장감을 섬세하게 풀어나가면서 …… 이 낯선 여자의 흔들리는 눈초리를 둘러싸고 나로서는 짐작 가는 추측이 여러 가지였지만. 어쩌면. 어쩌면 이 모든 것에 긴장감으로 채우고 의미를 부여하고 기록하고 있는 사람은 나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오늘의 일기 속에 담아야 할지, 그냥 흘려보내야 할지 고민했다. 만약 오늘이, 훗날의 추억 속으로 그녀가 들어오는 이유가 된다면 그녀를 어떤 걸음으로 등장시킬까 생각하면서 온갖 수사의 창고를 뒤적였다. 아마도.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시작이 될 수 있는 저만의 수사가 아니었을까. 모르는 일이다. 쓸데없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이 상황은 오래된 기록부책에 기록된 한순간의 자살 충동도, 헛된 욕망에서 야기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에 존재하는 것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일종의 이념일지도 몰라. 살고 싶어서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했던 어떤 유의 따뜻한 윗목 같은 것 말이다. 
  
지금 하게 될 이 이야기는 5번 염색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게 정리 된 듯, 그녀는 나에게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웃는 입꼬리마저 어색하게 처져있어 조금은 수줍어 보이기까지 하였다. 아니, 수줍음보다 슬픈 분위기가 주엽(酒靨) 속에 잔잔하게 베여 자신의 그림자를 유토피아처럼 내려다보는 나르키소스의 저주 걸린 얼굴 같았다.  

지금으로부터 29년 전이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기억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생후 3개월 쯤이었고, 마침 꽃샘추위가 한창인 봄날이었습니다. 집이 가난했다는 것은 내가 나이를 한참이나 더 먹은 뒤에야 알게 되었지만, 처음 기억을 갖게 되었던 것도, 가족들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던 것도, 그래서 극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도, 모두 그 때였고 가난함 때문이었습니다. 모유 수유도 그 때까지였습니다. 입안으로 쓴 젖꼭지가 물릴 때 처음으로 뜬 눈 안으로 화면이 뜨면서 인식이 자라났으니까. 그 때, 내 앞의 세상은 흑백의 세상이었습니다. 나는 울었고 가족들은 우는 나를 보고 다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얼굴로 웃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왜 그 곳에 있고 내 앞에 선 사람들은 또 누군지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이 세상에 잘못 들어선 건 아닐까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때 그 심정과 기분은 지금도 가끔 찾아오곤 합니다. 공포를 느낄 때, 그리고 무리 속에서 공황에 시달릴 때, 하지만 내가 그런 것을 느낄만한 이유는 딱히 없었습니다.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전생에 나는 무엇이었을까. 혹시 전생의 내가 또 다시 “나”로 되기 위해 1억광년 쯤은 애를 쓴 건 아닐까. 그 때가지 기억과 인식들은 끈질기게 나로 다시 태어나려고, 분해된 나를 다시 조합하려고, 먼지들이 서로를 열심히 찾아다녔을 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어렸을 때, 동네사람들은 모두 나를 예뻐했습니다. 선생님들은 낭독대회 때마다 주제를 주셨고 춤을 추는 무대 위에선 늘 중심 자리에 서게 해주셨습니다. 오빠들은 나만 괴롭혔지만 늘 나에게만 아이스크림을 사주셨습니다. 친구들이 많았고 친구들이 많이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이 마냥 귀찮기만 했습니다. 선생님의 제안을 들은 이튿날부터 늘 감기로 학교를 쉬었습니다. 저 멀리서 오빠들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피해 다녔습니다. 친구들이 찾아오거나 나를 집으로 초대할 때마다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혼자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릴 때는 혼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혼자의 놀이였지만 역할은 다양했습니다.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을 많이 키워보았습니다. 프로그램도 “동물의 왕국”을 제일 즐겨보았습니다. 소학교 2학년 때였던가. 치타와 표범을 구별할 수 있었고 하이에나는 비열한 동물이고 코끼리와 고래는 사람처럼 똑똑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마존 열대어들의 이름들을 자주 외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피라니아”라는 식인어 이름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유는 없었습니다. 아무튼 동물만큼은 선생님보다 더 잘 알 자신이 있었습니다. 외우기를 잘해서 늘 금방 외웠고 첫 순서로 외웠습니다. 알콜람프와 같은 용어를 배운 적도 없이 알고 있었습니다. 전학을 자주 다녔습니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나 자신과 더 친했기에 친구들 또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을 모릅니다.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았지만 표현이 서툴렀습니다. 과묵하신 할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나는 늘 자신과 대화를 했습니다. 어른들이 말을 건네거나 무언가를 물을 때마다 늘 혼자 마음속으로 먼저 갖가지 대답을 한 뒤, 그 중 제일 괜찮다는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대답이 늘 늦었습니다. 타이밍 때문에 내 대답은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하는 데는 자신이 있었지만 생각한 그대로 대답을 하는 데는 자신이 별로 없었습니다. 내가 사람들 속에서 말이 제일 적고 제일 따분한 인간으로 되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책을 좋아했지만 집에는 책이 별로 없었습니다. 대신 할아버지가 악기를 좋아하셔서 악기가 많았습니다. 허구한 날, 할아버지의 연주 소리가 동네 먼 데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나는 건반이 싫었건만 할아버지는 열성적으로 나에게 그것만 가르쳤습니다. 학교에서 합창으로 반주가 필요할 때마다, 가끔 나를 찾기도 했습니다. 처음으로 훔친 물건은 별명이 “원숭이”라는 동급생 형아의 5학년 국어교과서였습니다. 무언가를 읽는 걸 좋아했고 무언가를 자주 끄적였습니다. 필기장 냄새가 좋아서 늘 그 위로 나만이 알 수 있는 그림이나 음표나 글을 쓰곤 했습니다. 모든 것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내가 제일 많이 했던 일,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일은 잠들기 전, 나의 상상을 마음속으로 써내려갔던 일입니다. 상상을 하다가 그것들을 머리에 받아 적다가 잠드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튿날 저녁은 그 상상들을 되감아 복습하며 상상들을 이어갔습니다.   

어릴 때 가족들에겐 해마다 한 번 씩 편지를 써드렸습니다. 중학교부터 가족 없이 혼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 뒤론 편지를 한 번도 쓴 일이 없었지만. 그 때부터 제 곁에는 친구들이 자리해 주었습니다. 사춘기가 심하게 와서 이 세상을 격렬하게 미워할 수 있었습니다. 많이 부딪쳐서 망가지는 일도 많았습니다. 게임을 즐겼고 학교 담을 넘는 일이 잦았습니다. 모든 걸 이해받고 싶어 했고 나의 많은 순간이 이해 받지 못해 세상이 그저 싫었던 나이였으니까. 
때 맞춰 사랑을 하게 되었고, 어린 나이에 사랑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또 다른 나로 되어가는 걸 보고 냉정하게 뒷걸음질 치거나 뒤돌아섰습니다. 내가 나에게서 애써 도망 다녔던 모습들이 나를 다시 찾아왔을 때, 그 때, 처음으로 인생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떤 삶을 원하고, 또 어떤 죽음을 원하며, 어떤 무리를 원했는지. 대답은 생각과 기분에 따라 여러 가지 버전이 존재했지만 항상 무언가가 답답하게 내 발목을 쥐어 잡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건 없이 불행한 인생 본 적 있습니까. 내가 꼭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불행하게도 내 추억 속에는 자신 말고 다른 존재가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늘 나의 중심이고 주변이었습니다. 나에게 타인이란…… 

더 이상 들어주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진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그녀가 버거워서 내뱉고 싶었던 인생의 무게를 삶이라는 이름으로 엿듣게 되는 순간, 그녀는 곧 하나의 이름 없는 얼굴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낯선 여자”가 아닌 그녀를 좀 더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기호를 듣게 될 것이고, 나도 그녀에게 내가 살아온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면서 ‘기밖’이라는 이름과 어울리는 사연들을 들려주어야 할 것 같았다. 또 그러다가 그녀의 모든 사건이 나의 사건으로, 그녀의 모든 감정들이 나의 감정으로 될 게 뻔했다. 그녀의 불행, 그녀의 사랑, 그녀의 상처, 그녀의 중심과 주변, 이 모든 것이 매일 나를 살고 싶게 만드는 욕망처럼 나를 죽고 싶게 만들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삶에서 내가 품을 수 없는 것이 더 많다는 걸 하나의 상식처럼 습득해 왔다. 무엇보다도 나는 누군가의 삶을 일일이 들어줄 마음도 여유도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유일한 대책으로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는 것. 빈틈을 내어주지 않는 것. 감정이입을 포기하고 하나의 냉랭한 뱀처럼 자아를 각성 시키며 생존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었다. 우리처럼 절망 밖에는 아무 것도 깨달아 갈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러니까. 이쯤에서 그만. 입술은 무료함을 신호로 벌려졌고, 무료하다고 생각하니 세상은 곧 다시 나의 기대만큼이나 위태롭고 따분해졌다. 타인을 내게서부터 중단시키는 일은 의외로 쉽고 간단했다. 이처럼 관심 없음을 뜻하는 직설화법으로는 하품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기였지만 이에 익숙해 있고 반응해야 한다는 듯이 눈가는 입술이 원상복귀 되는 순간 달아올랐다. 눈물도 찔끔 나왔다. 들어줄 자신도 없으면서. 단지 호기심 하나만으로, 아니, 그것은 동정심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앉아있었으니. 어쩌면 오늘의 얘기들은 그녀가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단 한 번의 마지막 진심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중심에서 또는 그 주변에서 추방시키려 했던 시도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용기 앞에서 나는 그만 쫄고 말았다. 세상은 우리들을 모두 비겁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녀도 나도. 하나의 인간으로서 끝까지 비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꼭 시도해보아야 했던, 시도하면 될지도 모른다는 믿음 때문에. 자기기만 속에서라도 잠시나마 맘 편할 수 있었던 21세기 무기력한 어른들.   
  
많이 심심했죠. 죄송해요. 당신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란 걸 알려줄 수 있었던 것은 일종의 자신에서였습니다…… 타인으로 될 자신, 타인에게서 타인으로 된 자신을 확인하면서 자신을 다른 세상으로 추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와는 많이 다르시겠지만, 혹시 당신 역시…… 한 번쯤은 살고 싶었던 적은 없었습니까.    

 

-2- 


사실은 그러고 싶은 순간이 한 번도 없었다. 내심 스스로 이유 없다면서 냉소에 찬 어조를 수도 없이 허공에 내뿜은 담배 연기와 함께 그 이유들을 흘려보냈지만, 그녀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사소한 거짓 또는 진실만으로도 나에게 다가오면 안 되는 낯선 사람이었다. 21세기 한  어중간한 청년에게 낯선 여자란 바로 기꺼이 하룻밤을 같이 보낼 수는 있지만 서로 저만의 영역 안으로 절대 들여보내서는 안 되는 존재였고, 누구나 있을 법한 비밀을, 그 비밀을 감싸고 있는 과거를 내어주지 않는 일, 그리고 그 사람의 외모, 몸매, 패션, 센스, 학벌 등 길들여진 사회 인간의 기준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일, 그러한 자격이 나에게 있다고 믿고, 뒤에 숨어 그 사람 몰래 등급을 매기는 일이었던 것이다. 낯선 사람은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정의라기보다 하나의 실존이 부재한 사건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다. 존재하지만 비어있는 어떤 것, 손으로 터치한다더라도 꼭 이야기가 되지 않는 어떤 것. 

최악은 아니네요. 말꼬리를 자르며 자리에서 일어선 내 모습이 나 자신마저도 끔찍했다. 가로등이 켜진 아파트 정자에 앉아 줄담배를 피우면서 오늘만큼은 자신을 미워하는 일에 집중 할 수 있었다. 나에게 우연이었던 오늘이, 나를 무작정 창가 테이블에 앉혀 5번 연색체로 운을 띠운 그녀의 삶의 테두리가 ‘좋았다’ ‘싫었다’ ‘예쁘다’ 이러한 말처럼 수식어도 붙어 보지 못하고 내게서 잘려 나갔다. 진실일까, 진심일까. 박하향을 허공으로 내뿜었다. 불편함이 모두 가라앉은 빈속으로 잠시 편안함이 찾아왔다. 날벌레들이 불빛을 에워싸며 자신들만이 알 수 있는 정보를 교환하며 서로의 몸짓과 간격을 둔 채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다 한만리가 불빛 밑으로 추락하고, 뒷이어 또 다른 한 마리가 불빛 밑으로 사라졌다. 무한반복. 삶에서의 마지막 장례식인가? 모두들 하나같이 소리 없고 조용했다. 차가운 밤, 저 불빛은 시선에게 따뜻함을 느끼도록 강요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다. 차가워…… 불빛도. 삶도. 

그 쪽도 짐작 하셨겠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뿐만 아니라, 자주 일어나는 일상적인 얘기라서 심심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우선, 왜 굳이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신건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얼마 남지 않는 저의 시간을 낭비했다는 점에서 한마디 말씀을 드리자면 그 쪽의 삶은 누군가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킬만큼 불행한 삶은 아니라는거죠. 전 지구 인구를 통틀어 피라미드로 쌓아본다면 그 쪽의 삶은 중간 지점에 위치한 안전한 삶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드는데…… 아니면 미안합니다. 

또 함부로 평가해버리고 말았다. 머리가 점점 무거워졌다. 메슥메슥하게 내장으로 들어간 담배연기들이 속을 박차고 나오려고 했다. 또 다시 불편해지기 시작한 마음. 왜 나는 어른이 되어 버렸을까? 왜 내 나이만큼 어른답게 따뜻하지 못한 걸까? 

암튼, 제 얘기는 그 쪽 얘기에 일도 공감해 드릴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럼, 이만.

못났다. 못났어. 어른이 아닌, 나는 차갑고 못난 뱀으로 태어난 게 분명했다. 저 불빛처럼. 덩그러니 아무 쓸모도 없는 삶을 지키느라 무진장 애썼구나. 저 불빛처럼, 나는 하나의 창백한 인간이다.

알람이 울렸다. 노크도 없이 머릿속을 박차고 들어온 생각에 온 밤을 뒤척일 줄 알았는데, 동이 트는 걸 보고나서야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다시 바쁘게 팽이 칠 것이다. 얼음 빙판 같은 대리석 바닥에 요를 깔아 놓고 몸을 작게 웅크렸다. 취기처럼 온전한 잠이 찾아왔다. 너무 차가워서는 안돼. 조금은 따뜻할 수 있게…… 모든 것이 멀어진다. 창밖의 인적 소리도. 매일 아침 찌개로 하루를 시작하는 옆집의 밥상 냄새도.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과거의 순간들도. 나와 상관없는 것들은 모두 멀어져간다. 조금씩. 어둠이 찾아왔다. 나는 어둠을 걷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어둠을 걷는 일은 의외로 두렵거나 불안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불빛은 필요하지 않았다. 어둠 그대로 나는 어둠을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얼마나 걸었는지,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몇 시일까.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지금, 이 곳은 우주일까. 블랙홀일까. 아니면 북극 또는 남극의 밤인가? 오로라가 없다. 은하도, 태양빛도, 행성들의 조각들도 없다. 더 걷자, 조금만 더 가보자. 멀리서 희미하게 블록보도가 보인다.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던 여자가 핸드백에서 무언가를 급하게 뒤적이고 있다. 가방에는 없는 모양이다. 주머니도 없는 블라우스를 훑다가 양복바지 주머니로 손이 간다. 카드 한 장이 나왔다. 그제야 당황했던 표정이 안심으로 풀렸다. 버스에 올라 카드를 찍는다. 삑 ― 처리 되었습니다.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버스가 시야에서 멀어진다. 나는 아마도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긴장했던 붉은 색이 풀려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나를 스쳐지나 앞으로 나아갔다가 나를 스쳐지나 다시 뒤로 밀려났다. 파도 위에서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멀미에 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천지가 뒤집혀질 것도 같았다. 하늘을 걷다 깊은 미지의 세계로 빠져들고 싶지는 않았다. 내 존재 위 아래로 항상 이와 같은 입구가 잠시 닫힌 구멍이 존재했다. 언젠가는 그것이 열릴 위험으로, 또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내 주위에 덫처럼 숨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반드시 찾아내야만 한다. 찾지 못하면 사는 게 또다시 흔들리고 불안해질테니. 나는 뒤돌아보았다. 얼굴 없는 무리들 속에서 낯익은 존재 하나가 나와의 거리를 점점 좁혀온다. 긴 생머리에 얼굴이 조금 긴 여자였다. 여자는 12볼트 전구처럼 따뜻하게 웃으며 내 팔을 앞으로 이끈다. 안가고 여기서 뭐해, 빨리 가자, 이러다 늦겠어. 주위가 점점 환해진다. 내 피부에 닿은 그녀의 손가락을 지그시 내려다본다. 작고 따뜻한 손바닥이 내 팔을 감싼다. 주위가 환해졌다. 그녀의 얼굴은 45볼트, 60볼트, 120볼트로 순식간에 눈부시게 하얘졌다. 뭐해, 부모님께서 기다리시겠어. 빨리 가자. 얼른! 얘도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여자였구나. 너무 환하고 따뜻해. 그래서 더 불안했지만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높아진다. 180도보다 더 따뜻하게 휘어진다. 블록보도를 달리려는 그녀가 문득 멈춰 서서 심각하게 나를 올려다본다. 너 때문에 빨간불이 들어왔잖아. 행복했다. 그녀가 내 앞에서 이토록 환하게 웃을 수 있다니, 이렇게 따뜻한 여자인줄 진작 알았어.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가자, 한번쯤은 괜찮아. 규칙? 그건 항상 동전의 양면이니까. 그녀가 내 팔을 잡고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한 차량 사이로 힘차게 달렸다. 차량들이 빵빵― 신경질을 내며 우리들을 향해 소리를 내지른다. 기사아저씨들은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면서, 죽으려고 환장했어? 목에 핏대를 새워가며 인상을 쓴다. 잡고 있던 내 팔을 놓아버리고 그녀가 뒤돌아서서 나를 보고 깔깔 웃는다. 우리들은 신나서 배를 끌어안고 바닥에 뒹굴 것처럼 웃었다. 누가 먼저 길 저편에 도착하는지 내기하도 한 듯, 경주를 시작했다. 빵빵― 굵은 클랙슨 소리를 요란하게 내는 트럭 한 대가 꾸욱하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 위로 지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시선에서 그 장면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펼쳐졌다. 나는 웃음 섞인 얼굴 그대로 울먹이며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그녀는 한 장의 얇은 종이처럼 얼음 위에 누워있었다. 도와주세요. 좀 도와주세요. 사람이 치였다고요! 발악하며 목이 나가도록 소리를 질렀지만 사람들은 제 갈 길만 가고 있다. 나는 얇은 종이로 된 그녀의 몸이 구겨지지 않게 조심스레 안으려고 했으나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몰라 손만 허둥지둥 댔다. 그러다 그녀의 몸이 점점 얼음 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나는 얼음 위로 몸을 바짝 붙였다. 안돼― 세림아! 안돼― 목소리가 얼음에게 먹혔다. 얼음을 녹이면 돼, 녹여야 해. 나는 옷을 벗어던지고 차디찬 얼음 위로 살갓을 붙였다. 얇은 종이가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얼음 아래로 뜨거운 눈물이 스며들었다. 내 몸은 얼음 한 장 녹이지 못해. 왜, 그깟 얼음 한 장도 녹이지 못하냐고. 얼음은 녹지 않았고 점점 차가워지는 몸에서 식은땀만 줄줄 흘러내렸다.  

식은땀이 요와 함께 대리석 바닥에 붙어 몸이 더 차가워졌다. 아마도 깊은 꿈을 꾸었던  모양이다. 깊고 복잡한 꿈. 깊고 복잡한. 꿈같은 현실일지도. 구체적으로 무슨 꿈인지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120볼트 환한 웃음과 행복에서 악몽으로 바닥 친 내 감정의 기복만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한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것이 가슴 속을 점점 빠져나갔다. 꿈속에서 시달렸던 지난 두 달이 방금 전 그 웃음 때문에 나를 또 다시 기억 속으로 감금시켰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그 여자 때문이야, 이 모든 게 그 여자 때문이야. 숨겨 온 분노의 씨앗이 서서히 빛과 온도를 느끼는 듯했다. 불안함, 죄책감, 발악, 치욕, 후회, 쓰라림…… 웃었잖아, 내가 보아온 세림이의 모든 웃음 중에서도 제일 환했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시계를 보았다. 오후 3시 34분에서 35분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나는 식은땀을 씻지도 않고 어제 입었던 하얀 셔츠를 걸쳐 입고 밖을 나섰다. 딱히 볼 일도 없는데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화가 났다. 모든 것에 화가 나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17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13층에서 문이 열리자 다시 이 세상에 걸어들어 온 걸 축하한다는 듯이 옆구리에 축구공을 낀 초등학생이 나에게 밝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아줌마…… 머리를 자른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시 한 번 내가 사람이란 것을 실감하는 순간. 또 언제 부턴가 나는 한 사람의 무기력한 어른으로 되어버린 걸까.
 
토요일 오후의 “초빙(草氷)”카페는 젊은 커플들의 안식처였다. 테이블 여기저기서 커플들이 작은 목소리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서로에게 빙수를 떠먹여주며 까르르 웃곤 하는 20대 초반의 청춘 남녀들은 방금 전에 SNS에 올린 오붓한 오후를 세상과 공유하며 좋아요 수를 확인하면서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들의 행복한 웃음에는 거짓이 없는 듯 했다. 가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우르르 모여들어와 예민한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볼륨으로 세상살이를 심심찮은 원두커피와 함께 풀어헤치고 있었다. 엄마들은 유모차를 끌고 육아얘기를 주고받으면서 호기심에 찬 눈으로 이 세상 동정을 살피다 지루함에 드디어 울음을 터뜨린 순수한 눈망울을 달래다 자리를 뜬다. 기대하지 마라, 아무것도. 너희들도 어른이 되면 …… 평화가 깨어지고 다시 찾아오는 사이, 맛집에 불빛이 요란하게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하루를 끝맺는데 바빠진다. 피곤한 신심으로 술이 들어가는 순간, 그들은 또다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할 것이다. 나처럼, 코카인 한 잔으로, 또는 알콜 한 모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감정들이 있지만. 매일 이러한 감정을 잠시 잊도록 살아가게 하는 고달픈 삶이 있으니, 우리들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가게 되어 있다. 삶이 고달프면 고달플수록 살아감에 대한 책임을 다하도록 올가미를 씌워주고 조금이라도 나은 삶의 순간이 찾아오면 살아있기 참 잘했다며 스스로 위안 할 수 있게 하는 이 세상은 하나의 거울처럼 불행을 반사해 행복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가 행복을 접사해 그것을 욕심으로, 그리고 하나의 욕망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니까, 나는 사는 게 아니라, 살아가게 되어 있다. 나는 하나의 사람은 될 수 있지만 결코 하나의 인간은 못된다. 숨을 들이고 뱉을 때마다 가슴 속에서 숨어 지내는 절망들이 김장 맛처럼 한 단계 더 절여진다. 거 참, 차라리…… 무미건조하게 먼지처럼 햇빛 속을 붕 떠다니고 싶다. 

올 줄 알았어요. 매일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멍만 때리다 가는 거 다 알고 왔어요. 

보조개 때문에 더 슬퍼 보이는 어제 그 낯선 여자다. 가을에나 어울릴 법한 긴 카디건을 걸치고 화장기 없는 얼굴 뒤로 내키는 대로 묶은 머리가 사람들의 묶였던 신경 끈이 풀릴 퇴근시간처럼 나른하게 풀려 있었다. 어딘가 이 계절과 어긋나는 차림새였지만 그녀의 우울한 분위기와는 잘 매칭되는 스타일이었다. 그녀는 이 커피숍의 모든 사람과 같은 계절에 조금 앞서 여름을 장례식 치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어제 나의 막말에도 전혀 껄꺼롭지 않았다는 듯이 지금 나와 잔잔하게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대체 이 여자는 어디까지가 비밀이고 어디까지가 포장인거야. 과연 …… 어제 그 쪽이 내뱉은 고백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고 있어요? 

그게 고백으로 들렸다면 제가 감사하지요. 실은 맞습니다. 고백은 매몰차게 차였다는 게 문제죠. 그것도 진행 도중에. 얼마나 무안하고 창피했는지 알아요?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 싸늘합니까. 마치 시체처럼.  

시체라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금방이라도 다시 삶의 의지를 잃어버릴 것 같은 여자에게서 이러한 유머를 아무렇지 않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차버리다니. 제가 언제 찼단 말입니까? 그냥 어제 얘기를 오늘, 모레, 또는 여럿 날로 나눠 듣자는 건데. 

밥은 아직이죠? 저도 아직인데. 

21세기 접근법인가……  어쩌면 수백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까. 사람이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다가가는 법은 유전자처럼 인간의 역사 속에서 자연스레 상속되어 갔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눈을 지나쳐 약간 넋이 나간 얼굴로 나의 왼쪽 뺨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수염을 깎지 않고 막 나온 길이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살아 있는 것은 늘 이렇게라도 존재를 알리지. 늘 죽어가는 파과, 그리고 그 파과를 파괴하는 것을 일삼는 나. 오늘은 내가 뱀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내가 그렇게 살아 있다는 증거를 자신에게 보여줘도 좋겠다 싶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지만 낯선 사람이랑 밥이라…… 나는 냉랭한 웃음을 입가로 내걸었지만 어제, 그렇게 모질고 까칠한 말로 자리에서 일어선 게 자꾸 가시처럼 목에서 내려가지 않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가벼운 분위기를 내며 농담형식으로 사과할 타이밍만 기다렸는데, 어쩌다 진짜 무언가를 크게 잘못한 사람으로 되어버린 기분이 들어 밥이라도 한 번 사야할 기세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어쩌죠. 저는 빈속이 더 편해서요. 남들은 삼시 세 끼지만 저는 한 끼로 모든 걸 해결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공통점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빈속이 더 편하거든요. 하루를 늘 한 끼로 해결하지요. 많이 먹으면 살기가 싫어집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 왼쪽 뺨에 깊은 우물이 패어 있네요. 천사들이 한번쯤은 빠져죽었을 매력의 늪, 그것도 선택할 고민이 필요 없이 한쪽에만.    

그녀의 말에 저도 모르게 왼쪽 뺨을 한번 쓸어내렸다. 세상은 천사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그 누구도 천사를 본 적이 없지 않는가. 천사는 ‘착하다’다는 말을 대변해 주는 단어에 불과하고 필요할 때 사람들이 그렇게 ‘착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붙여진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착했던 적이 있던가? 아마도? 어렸을 때, 엄마를 도와 내 몫인 작은 그릇을 까치발 들고 엉망으로 씻었을 때? 어른들을 보면 예의 바르게 머리 숙여 인사를 했을 때? 아파트 단지에 불쌍하게 쭈크리고 앉은 고양이에게 준비해둔 사료를 조심스럽게 먹였을 때?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나를 착하다고 말해주었다. 지금은?  다 큰 애가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해? 인사쯤은 당연한 거 아니야? 지금이 그럴 때야. 네 밥이나 잘 챙기지? 말꼬리는 하나같이 올라갔지만, 응, 못해, 응. 당연하지 않아. 응, 그러고 싶어. 이와 같은 대답을 기대하는 뉘앙스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정답처럼 고스란히 알아채야 하는 그들만의 엄연한 질책이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숫자를 더한 것에 불과 한다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똑같은 말이나 행동에도 착하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 나이만큼이나 착함도 레벨 업 되어야 했다. 살아가는 게임은 계정 하나로 경험치를 쌓아올리는 일이다. 일단 어른은 서툴거나 쭈뼛되면 타인의 심판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닐 뿐만 아니라, 착하다는 말을 더 이상 반가워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보니, 착하다는 말은 곧 바보 같다는 말과 더 가까워졌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사는 아무 늪에나 빠져 죽어도 마땅하다.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존재할 명분을 갖지 못한다. 그녀는 왜 내게 이런 말을 했을까. 내게서 어떤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나를 자기와 같은 과(科)로 여겨 위안을 얻으려고 한 걸까. 그것 또한 아니면 매일 이 시간에 창가에서 멍만 때리는 내 모습이 그녀에게는 하나의 위안거리로 되었던 걸까? 자기처럼 쓸모없고 허무하고 인생이 허망한 30대를 향해가는 사람이 여기 하나 더 있다는 사실에? 그렇다면 매력이라는 말에 집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매력의 늪이라. 왠지 모르게 칭찬으로 들리네요. 그런데 보통 이런 말은 성적으로 끌린다는 얘기 같은데.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그녀는 잔잔한 눈빛으로 내 입술을 훔치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뱉든 의아해하거나 화나거나 , 또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이. 나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나의 여러 가지 위장 패턴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마치 정수기에서 금방 뽑은 한 잔의 냉수처럼. 
      
 저랑 하룻밤. 어때요?                      

아주 한순간이지만. 그 어디서도 용해되지 못하는 분말가루 같은 나의 이야기들을 그녀가 그대로 감싸안고 어딘가를 휩쓸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스쳐지나갔다.   
           

-3-

 

물때가 점점이 박힌 거울 앞에서 오랫동안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거친 면도질 덕분에. 생채기에서 핏방울이 피어오르는 자신의 얼굴과 오래 마주하며. 고급 병동의 페인트색처럼 창백한 소년의 얼굴은 숙연한 자태로 피가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페인의 과다 흡입으로 벌렁거림을 멈추지 않는 심장이 곧 튀어나올 기세로 생리적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또는 이와 같은 소설을 쓰며. 과연 올까. 창백함이 가라앉아 점점 해빙처럼 파래져가는 얼굴을 터치하면서 소년이 되어본지도 참 오래 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소년과 아저씨는 단지 한 끗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과연 올까. 성희롱으로 ‘미투’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걱정은 따로 있었다. 그녀가 올까봐. 혹시라도 그녀가 온다면. 휴지 한 토막을 끊어 거울을 닦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소년의 마음처럼, 거울 닦는 습관을 버린 지도 오래되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잘 닦이지 않았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푸리글라스”만 있다면 언제든지 전문가로 되어볼 수 있듯이. 유감스럽지만 유리 닦는 전문가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전문가의 탄생을 허락한다면 틀림없이 이 세상에서 제일 권위 있는 전문가로 되어 있었을 텐데. 하긴 “푸리글라스”를 개발해서 판매하는 사람도 전문가로 인정받지 못하는데 유리 닦는 일이 무슨 깊은 연구와 결론이 필요하다고. 욕망의 절단은 시대의 탓도 자신의 탓도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 같은 인간 하나가 욕망 없이 살아간다고 해서 시간이 멈추고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누구보다 나는 시대를 믿고 있다. 21세기 과학적 성과물에 기생하고 있고 그 성과물 덕에 가끔은 ‘전문가’로 되어보는 기분도 느껴본다. 한 편, 그 때문에  어떤 무리 속에서 차단당할 위험을 감내해야 했다. 실제로 나는 무리들로부터 차단 당한지 꽤 오래 되었다. 내가 스스로 차단했다고 우길 거지만. 실은 이미 원 밖으로 밀려나 그 어떤 직경 위에서도 나 자신을 찾아 볼 수 없이, 그 어떤 중심도 나와 상관이 없어진지 오래다. 가볍지만 복잡한 나라는 존재. 그런 나에게 혹시라도 그녀가 찾아온다면. 나는 그녀에게서, 또는 그녀가 나에게서 무엇을 얻어 갈 수 있을까. 이 3분의 열기를 띤 만남의 의미와 의의는? 
그 누구도 나에게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의무와 의의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세상은 정답 같은 게 정해져 있지 않아. 답안지는 상황과 기분에 달려 있고. 개개인의 취사선택에 따라 참고인을 기준으로 가산점이 존재할 뿐이야. 종이처럼 얇은 세림가 남겼던 말. 언제 어디서 했던 말인지 이미 까마득해졌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세림이는 내 인생에서 틀린적 없이 늘 옳았다. 

생각 있으시면 내일 오후 같은 시간에 여기서 뵙죠. 

상대가 생각이 있든 없든, 분명한 것은 어제 그 말을 일종의 반항에서 내뱉었던 말이다. 나는 자신에게, 또는 세림이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 소년에서 어른으로 다시 된다는 것, 나도 하나의 인간일 수 있다는 것,  21세기말을 엄두 낸 21세기 초엽 청년들의 헛된 도전 같은 것. 나는 지금, 무엇을 도전하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길, 새로운 전문가로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아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웃었던 것 같다. 물때가 닦인 자리로 흔적 잡힌 휴지의 먼지들과 부스럼 속에서 내 왼 쪽 뺨이 아무 대책도 없이 패였기 때문이다. 거울을 통해 시간이 겨우 3시 30분이 되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난 뒤, 나는 밴드로 피가 멈춘 자리를 수습해 나갔다. 

나와는 많이 다르시겠지만, 혹시 당신 역시…… 한 번쯤은 살고 싶었던 적은 없었습니까.    
자꾸, 커피잔 속에 떠있던 그날의 실내조명이 아른거렸다. 딱히 살아가야만 했던 이유는 없었지만 나는 어쨌거나 살아가게 되어 있는 시스템 속에서 하나의 차가운 부품처럼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녀처럼 나도 한때는 죽음과 같은 추상적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존재적 의미와 의의를 찾아보려고 애썼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이 세상은 의미들이 의미 없을 정도로 수도 없이 널부러져 있는 하나의 현장이란 걸 깨닫고 나서야 아무렇지 않게 숨 쉴 수 있게 되었다. 그 의미들은 내가 원하지 않을 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오직 내가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 나를 인간답게 살아가게 했다. 아직은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런 것 없이도 지금, 잘 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던 나의 반항을 수습하러 가고 있지 않은가? 

태풍이 휩쓸고 갔던 거리는 축축하고 차가웠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기를 접고 다시 태연하게 거리를 걷고 있었다. “초빙”은 한적한 분위기로 나를 받아들였다. “초빙”된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이 나를 조금 슬프게 했다. 나는 단지 나와 이 자리를 함께할 누군가를 초대한 “손님”에 불과했다. 나는 언제든지 지워질 하나의 흔적이리라. 창가 테이블은 노을의 그림자 대신 흔들리는 어두운 조명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흔들리는 그림자와 함께 시간은 4시를 넘어갈까 말까 하다가, 4시를 스쳐 5분으로 금방 가버렸다. 어제 그 낯선 여자는 아직이다. 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어느새 그녀가 오지 않을 거라는 추측이 점점 확신으로 변하면서, 나는 그 속에서 아쉬움 비슷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확신을 깨어버린 것은 카페 알바생의 힘없는 목소리였다. 어서오세요. 초빙 카페입니다. 몇 초의 정적 끝에, 주문을 도와드릴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이즈 업 해주세요, 잔잔한 기계톤을 한 목소리 사이에서 주문내역이 오가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씨, 참. 누굴 만나도 행복할 것 같은 날씨네요. 

검은 그림자가 테이블에 정착했다. 다행이네요. 오늘이 흐린 날이라서. 맑은 날이었으면 또 저 혼자 여기서 멍 때릴 뻔 했으니까. 그녀도 나도 눈빛으로 웃고 있었다. 어떤 속도로 정착했을지 모르는 빛들이 서로의 눈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진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공허한 서로를 찾아주고 그것으로 존재를 채워주는 허무함 가득한 소위 진실한 이야기를. 

사실, 저도 “동물의 왕국” 좋아합니다. 지금도. 그 쪽은 그걸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세계 속에서 촬영자들이 하나의 무기력한 사람으로서 먹이 사슬에 참여해 동물에게 처참하게 사냥 당하는 장면을 기다렸습니다. 그런 장면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사례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건 사실의 은폐라고 볼 수 있지요. 마치, 진실한 동물의 세계 속에는 사람이 단 한 번도 존재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이 동물에 대한 상식적 이해와 깊은 연구, 카메라의 촬영, 해설자의 해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대변적이지요. 동물들은 그저 하나의 실루엣에 불과하고요. 동물들은 그 자체로 진실해 본 적이 없이 사람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대신 저는 그 속에서 아주 상식적인 우리 어른들의 세계를 발견했습니다. 동물들 사이에도 절대적 권력 같은 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서로 다른 집단과 무리가 존재하고 있을 때나, 같은 집단이나 무리 속에서나 모두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과연 동물들이 사람을 닮은 걸까요. 아니면 사람이 동물을 닮은 걸까요. 

누가 누굴 닮았다고 하기보다는, 때론 인간 역시 ‘동물’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동물의 왕국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왕국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지요.       
  
인간이라. 인간이라는 표현을 조금 신중하게 사용하는 건 어떨까요? 우리 모두 인간일 수 없잖습니까. 

우리 서로 인간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 같네요. 당신은 왜 그토록 인간을 혐오하고 있는 걸까요.  

그녀의 질문은 예상 밖이라고 할 수 없었다. 넋을 놓고 나를 보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그 말은 나에게 던진 질문이라기보다 그녀 자신에게 던진 질문 같아 보였다. 무슨 생각에 사로잡힌 걸까. 나에게서 어떤 과거가 떠오른 듯, 그녀의 눈빛은 먼 과거를 향해 조용히 걷고 있는 듯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문득 누군가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인간을 혐오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저…… 제 자신이 싫었을 뿐입니다. 사람은 원래 자신밖에는 다른 것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잖습니까. 모든 것을 이해하는 공식은 자신이죠. 자신의 경험, 또는 자신을 대입해서 펼치는 상상 같은 것. 우리 모두 상징계에 살고 있다고, 종종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상징계…… 참 센티멘탈 하네요. 만약 당신이 나고, 내가 당신이라면, 우리 조금 상식적으로 만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당신에게 한 번 쯤은 반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 서로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데, 그런 당신이 조금 안쓰럽고 또는 그런 당신을 묘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해봅니다. 지금.  

침묵이 밤을 켜는 불빛과 함께 나와 그녀 사이로 내려앉았다. 거친 바람이 나뭇잎을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도 나뭇잎도 서로를 확인시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하나는 움직임으로, 다른 하나는 움직여주는 것으로. 무슨 말로 또 대화를 이어가야 하나. 나는 커피잔에 비친 그녀의 입술만 가만히 보고 있었다. 어색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지금 여기서 이게 무슨 짓이지 후회하며 내가 왜 이 낯선 여자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지  후회하기 시작했다. 거듭되는 후회는 나의 처참한 과거처럼 나 자신을 괴롭히는 하나의 사건으로 정착해 가는 듯싶더니, 그녀가 어색한 입꼬리로 침묵을 삭혀나갔다.  

 인간이란 말은 우리처럼 아무나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간이 무엇인지 하나도 중요하지 않지요. 그것을 어떤 식으로 어떻게 정의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당신이 말하고 있는 인간은 인간답지 못하는 무언가와 구별을 하기 위해 약간 신중함이 담긴 정의라면, 제가 말하는 인간이란, 많은 모습을 포섭하고 있는 아주 보편적이고 아무렇지 않은 정의지요. 육체적으로, 우리들은 장례를 치르는 그날까지 늘 존재하니까. 어떤 탈을 쓰고 존재하든 그 여러 가지 존재 방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건 늘 “나”라는 단 하나의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당신은 존재를 원하고 그것을 찾아 헤매고 있다기보다 지금, 당신의 존재방식에 대하여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비록 그 웃음 속에서 어떠한 온기도 느낄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가 웃었다는 사실이고 나는 그녀의 웃음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어느 구석으로 겨우 욱여넣은 허물 같은 것을 그녀가 들춰낸 기분이 들었다. 하이데거를 좋아하시나 봐요. 내가 쌀쌀한 투로 날카롭게 묻자.  

아니요. 전혀요. 저는 당신의 그 한마디가 좋았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 상징계에 살고 있다. 그렇죠. 우리 모두 상징계에 살고 있지만 상징적이지는 않죠. 왜 그럴까 하고 잠깐 생각해 보았습니다. 분명 인간이란 추상적인 영역에 속한데, 늘 현실에 좌절하고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의 추상이 현실로 되기 위해서는 당신과 나처럼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내용이 담긴 패배감을 감수해야 하니까, 그것은 인간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존재방식이 아닐까요. 

나는 불편함을 자초하고 있었다. 아무 사이도 아닌 나와 그녀의 대화는 사계가 분명한 북국의 나라로 다가올 하나의 계절처럼 자연스럽게 경계를 찾아가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왜곡할 수는 있지만 되돌릴 수는 없는 과거들처럼 우리는 서로에게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걷고 있었다. 어떤 생각을 어떤 말로 표현하든 우리는 늘 상식적으로 타인과 세계를 파악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세상에 대한 이해는 모두 평균적이고 막연함에 놓여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나서 더욱 화가 나고 후회했던 것 같다. 술 잔 없이 이런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 그녀나 나나 모두 21세기 미친 연놈들이다. 이 세상 그 어떤 중심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믿어 있어 자신을 자신에게서 타인에게로 애써 추방하려 노력하는 어쩔 수 없는 인간들. 서로가 서로에게서 확인하는 자신이라는 낯선 존재.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힘없는 알바생의 목소리를 응징하듯, 감사합니다 인사를 건네는 그녀의 목소리는 정확히 미 톤이었다.   

혹시 느끼셨습니까?

그녀의 웃음이 일도, 이도, 조금씩 절대적 영도에서 벗어나 기온을 입기 시작했다. 북극곰들과 펭귄들은 지금 쯤 괜찮을까? 해빙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상상 속에서 사라질 빙연을 무심코 걷고 싶었다.       

지금, 우리. 아무렇지 않게 진지하다는 것을. 

차가운 세계, 오래전 꿈속에서 그녀의 한 숨 때문에 죄책감으로 무너져 갔던 하루하루. 그 하루하루가 미래에서 숨 죽여 걸어오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그리고 진지하게. 
       
그래서 말인데, 우리 서로에게 조금 더 진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4- 

 

오스카 와일드 버전의 나르키소스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나르키소스는 어떤 버전 속에서도 꼭 죽어줘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타인의 죽음을 확인하고 삶을 확신하게 될 때까지 우리는 자신의 이기주의적 성향을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 한다. 그녀는 이기적이다. 나보다 더. 그녀는 나의 영역을 침범했고 나에게 사소한 사건을 남겨주기로 결심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  
내가 나르키소스라면 그녀는 나 자신의 목소리를 반복하는 저주 걸린 에코가 기꺼이 되어주겠다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진지한 선언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하룻밤, 이 하룻밤의 초대로 그녀가 제 발로 스스로 걸어 들어왔다. 

13층에서 보는 풍경은 옥탑방에서 보는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네요. 하지만 뭔가 기분이 달라요.           

베일에 싸인 미지 속에서 결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를 등진 채 창턱에 턱을 걸치고 바깥세상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뒷모습이 꿈처럼 멀어졌다 다시 눈앞에서 선명해졌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녀는 나를 뒤돌아보았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살아가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거지같습니다. 

거지같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옥탑방 또는 반지하에서 살아보신 적 없죠.  

네. 아직까지는.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반지하였고, 또 방금 전까지는 옥탑방을 잠깐 다녀왔다. 13층과 반지하, 옥탑방 사이는 기분의 문제였지 높이나 거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창밖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뱉고 다시 나를 뒤돌아 본  그녀의 차갑게 식어 있는 얼굴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선 계절이 늘 선명하게 찾아오지요.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바뀔 때마다 여기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은 시간이 간다는 것을 느끼고 초조해지죠. 초조하다는 것은 살고 싶다는 증거고. 하지만 나 같은 인간은 옥탑방이나 반지하에서 가만히 있으면 죽고 싶어집니다.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볕이 드는지 별이 뜨는지, 계절 없이, 변함없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방치하지요. 곰팡이들과 함께 살아 숨 쉬는 건 더 이상 비참한 일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옥탑방도 계절을 느끼는데 적합한 곳일텐데.                

옥탑방요? 그렇죠. 그럴듯한데 그곳에 서면 가난밖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요. 낮고 음침하고 곰팡이 핀 골목 같은 가난 말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 골목에서는 다툼 소리가 더 많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취한들의 노랫소리도 많이 들려오고. 가끔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그 웃음을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뿐인가요? 그 곳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들의 사연에 동참하지 못해 저는 그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어떤 소리든 그 곳에서 들으면 목이 메어오곤 합니다. 그렇다고 눈물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게 이유 없이 무겁게 목에 걸려 있어 답답합니다. 

그 누구도 가난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끼리 일수록 될 수 있는 한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죠. 그치만 때론 목소리를 들어도 그 사람들의 얼굴이 상상 가지 않을까요? 사정이 달라 모르시겠지만 13층 이 곳은 사람들의 목소리도 얼굴도 없습니다. 바탕 없는 상상 뿐이죠.  

반이나 남은 담뱃불을 창턱에서 꺼버리고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나는 빗방울이 부딪쳐 흘러내리는 유리창에서 말 없는 그녀의 옆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또다시 꿈처럼 멀어졌다 꿈 속에서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마도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녀와의 하룻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준비 될 때까지, 그녀의 말을 들어주면서. 

다른 여자랑 이런 만남 가진 적 있습니까. 

창문을 닫고 그녀는 온도 없는 얼굴로 침대 쪽을 향해 걸어왔다. 

어떤 만남 말입니까? 하룻밤? 그야 소설에서 뭐, 늘 있을 법 하지 않는가요?  

현실에서 말입니다.  

소설도 나름 저에게 하나의 현실 피난처니까. 상상 속 현실이라 할 수 있지요.

소설을 자주 읽으시나 봐요. 

남의 얘기를 읽어서 뭐합니까. 저에게 1도 도움이 되지 않는 얘기들을. 

그럼 직접 쓰신다는 말인가요? 

네. 가끔 씁니다. 생각날 때마다. 그 쪽도 언젠가 제 소설 속에 등장할 겁니다. 

무료한 듯 그녀는 침대 책상머리에 얌전하게 누워 있는 약병에 관심을 보였다. 그것을 장난감처럼 집어들고 위 아래로 흔들어 보이면서 불빛을 빌어 갈색 유리병에 담긴 알약의 정체를 물었다.

작가들은 보통 불면증에 자주 시달린다고 하던데, 혹시 수면제예요? 아니면 안정제? 

아무 대꾸 없이 나는 그녀의 손에서 약병을 빼앗았다. 비밀이 담긴 판도라 상자가 아직 열려서는 안 된다는 듯,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다는 듯이. 냉큼. 그녀는 의아에 찬 눈길로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조금 과격한 반응을 보인 모양이다. 비밀을 들킨 아이마냥. 이런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나는 그녀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차가운 입술은 아무 감정 없이 나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나의 이런 행동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그녀의 입술 온도에서 알아챘지만 내가 눈을 떴을 때, 그녀가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입술이 입술을 떠난 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하루 밤은 단지 섹스를 의미했던 건가요?    

순간, 치욕감이 들어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치욕감은 곧 화로 뜨겁게 번졌고 이윽고 분노로 치닫고 있었다. 아니야. 난 원하지 않는다고. 눈꺼풀이 나뭇잎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불안에서였을까. 억울함에서였을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삐뚤어지고 있었다.    

다 큰 어른들끼리, 왜 혼자서 순수한 척 해요.  

당신 참 웃긴 거 알아요? 순수한 척 한 건 당신이라고요. 저의 얘기를 내일, 모레로 듣자는 사람도 당신이었고, 그래서 하루 밤을 보내자는 것도 당신인데, 어떻게 하루 밤의 의미가 이렇게 외설스럽게 왜곡될 수 있죠? 

그녀는 목 멘 소리고 울먹이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 때문에, 순간 짐승으로 되어버린 나는 인간의 왕국에서 하나의 포식자가 되어 작고 여리고 순수한 노루 같은 그녀의 목덜미를 물어서 질식시킬 자세를 취하고 있는 구렁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르릉 대며 스스로도 느낄 수 있는 사나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끝끝내 고개를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눈 속에서 그녀가 나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 없었다. 분노는 그녀가 무릎 사이로 파묻은 흐느낌 속에서 점점 침잔 되어갔을까. 나는 짐승 같은 소리를 닫고 인간다운 목소리를 열었다.

영원히 어른으로 되지 않는 법을 가르쳐 드릴까요? 

그녀가 울음을 어깨로 들썩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울음 때문에 달아오른 눈빛과 바람 때문에 무너져 내린 부빙 같은 쓸쓸한 눈빛이 공중에서 천천히 만났다. 나는 녹지 않았고, 그녀는 식지 않았다. 상처 받은 그녀의 입술을 보고도 나는 끝끝내 사과를 건네지 못했다. 아마도 얼음처럼 얼어버린 진심 섞인 목소리를 해동할 방법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 어떤 확률로도 태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도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엄마의 자궁 안에서 말입니다. 영원이 자라지 않는 피터 팬이 왜 네버랜드란 곳에서만 존재해야 했는지 알아요? 그것은 배리가 마약에 취해 환상 속에서 아무렇게나 끄적이다 나온 피터 팬의 세계가 아니라 피터 팬이 원하고 그래서 존재 가능했던 그만의 유토피아였기 때문입니다. 나를 포함한, 또는 배리 그 자신마자도 이 세상 그 어떤 어른도 네버랜드 같은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확신했기 때문에 피터 팬만이 가질 수 있는 세계였죠. 그 때문에 동화인 것입니다. 네버랜드에서는 피터 팬이 진실이지만, 우리에게는 더 이상 어떻게든 왜곡 할 수도 없는 거짓입니다. 종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태어날 때부터 어른의 운명으로 태어나지 않았나요. 왜 당신의 어른은 꼭 이처럼 망가져야만 하는 거죠? 맞습니다. 당신 말처럼 나도 당신도 다 같은 어른이에요. 그렇지만 우리 서로 다른 하루 밤을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당신을 제가 못 된 어른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인간이니까. 우리 모두 상처만큼 치유의 길을 걷게 될 인간이니까. 

흐릿해져 가는 시야로 그녀는 바람에 나부끼는 한 장의 얇은 종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딱히 눈물을 흘려야 속이 시원했던 부분은 없었으나 지금쯤 나는 조금 울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울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잃은 소년처럼. 눈물을 펑펑 쏟아내어도 어른이라는 올가미를 씌워주는 사람 없이 나를 품속으로 꼬옥 껴안아줄 사람. 그 사람이 지금 내 앞에 있으니. 따뜻해. 나는 마음 놓고 삶에 고여 왔던 온갖 울음을 이 순간을 비롯해 쏟아내고 싶었다. 고마웠어. 그리고 미안하고. 점점 시야 밖으로 그녀가 밀려나간다. 파도에 출렁이다 다시 파도에 잠긴 그녀는 모습도 없이 나의 손을 잡고 빙연을 걷기 시작했다. 사라지기 전에.  하얀 알약들이 갈색 병에서 입 속으로 들어가는 잠깐 인생이 진정되는 듯 했다. 불안함이 가라앉고 하늘 위로 열린 구멍들이 하나 둘씩 깊게 열렸다. 담배처럼 끊어버리고 싶었던 세상을 향한 불안을 내 안으로 다시 정착시켰다가 그것을 다시 쫓아내기 위해 약을 삼켰을 때, 그녀는 얇은 세림이로 되었다. 그리고 내 시야 속에서도 몸속에서도 서서히 유리하다가 이탈하기 시작했다. 누구든 좋으니, 내 앞에 세워두고 용서를 빌고 싶었다. 잘못한 게 없이 모든 것이 잘못이고 엉망인 내가 더 이상 인간도 뱀도, 구렁이도 아니었다. 나는 소년에서 눈물을 머금은 어린애로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쉽게 용서 되는.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못 된 어른으로 자라나서…… 모든 게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내말은……    

그녀는 떼를 쓰는 어린 아이를 달래듯 내 등을 토닥거렸다. 무개를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가볍게, 그녀의 따뜻함이 내 등에 머물렀던 것 같다. 그것은 마지막으로 내가 마음속에서 지켜내려 했던 따뜻한 윗목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그녀는 지금도 내 몸 안에 있을 것이다. 점점 깊어지는 어둠 속에서 나는 나 스스로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그녀와 한 몸으로 될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는 이런 말도 흘러나왔던 것 같다. 조금씩 나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제야 우리, 좀 닮은 것 같네요. 

나는 암울한 갈색 약병 위에 비춰진 그녀의 모습을 본 것 같다. 어린 아이가 된 나르키소스 라며 아마도 내가 희미하게 웃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왼쪽 뺨이 희미하게 패였기 때문이다. 45볼트, 60볼트, 120볼트로 내가 환해지면서 어렴풋이 내 대답이 이랬던 것 같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또 이렇게 도망가려고? 

짙은 어둠이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5- 
          

8월이다. 해빙이 없는 이 곳은 해빙이 녹지 않을 것이고 나는 이번에도 빙연을 걸어볼 수 없을 것이다. 북극곰과 펭귄들은 무사할까. 아마도 무사할 것이다.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왔으니까. 
어서 오세요. 초빙 카페입니다. 알바생의 목소리는 늘 이와 같이 저톤으로 힘이 없다. 카운터에서 목소리들이 속삭인다.   

그 분, 오늘 또 오셨네. 

그러게 말이에요. 참 이상한 분이에요. 올 때마다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는 것처럼, 꼭 커피 두 잔을 시켜놓고 두 잔을 다 마실 때까지 앉아 있어요. 가끔은 신호등만 보면서 혼자말로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아마도 정신이 좀 이상한 아가씨 같습니다. 그냥 이대로 둬도 될까요? 

그냥 둬. 그건 그 사람의 인생이잖아.  

정희정 프로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2013년 《연변일보》가 주최한 <해란강문학상>에 수필 <한번 쯤 사랑했다>로 등단했고, 2017년 연변작가협회 소설분과에 가입했다. 그 사이 《연변일보》, 《연변문학》, 《송화강》, 《길림신문》, 《흑룡강신문》 등 매체에 시, 수필, 소설을 발표하며 문필활동을 적극 펼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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