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3년 여름 미국 동부의 버지니아주 애넌데일 지역에는 섭씨 40도를 웃도는 더위가 덮쳤다. 종일토록 땡볕이 지글지글 끓었다. 녘에 마침내 칠흑 같은 먹장구름이 뒤덮였다. 미구에 서리 발치는 섬광이 하늘 저편을 악착스레 찢었다.

우르릉- 꽈르릉- 야수의 괴성 같은 천둥이 울부짖었다. 하늘땅이 맞붙는 사납게 요동쳤다. 후드득- 후드득- 동전 같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매콤한 흙먼지가 휘날렸다. 뒤미처 쫘르륵- 쫘르륵- 창살 같은 빗줄기가 억수로 퍼부었다. 드디여 사나운 광풍 폭우가 닥쳤다.

 

이날따라 나는 밤늦게 퇴근길에 올랐다. 앞에 당도하니 뜻밖에 미스타 박이 눈에 띠였다. 장대같이 쏟아지는 찬비 속에서 잃은 사람처럼 우두망찰 서있었다. 나는 깝작 놀라 얼추 다가갔다. 순간 역한 냄새가 확- 풍겼다.
“아니… 뭔 술을 이렇게 마셨어?”
미스타 박은 아무런 응대도 없었다.
“언제 왔어? 옷 다 젖었는데… 빨리 집안으로 들어가야지…”
나는 다짜고짜 그를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갑자기 - 하는 둔중한 소리가 들렸다. 미스타 박은 흡사 잘린 대나무처럼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자식. 아예 고주망태가 되였는데. 전에는 이런 꼴 적이 없었는데…”

후드득후드득 옷깃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어느 결에 바닥에 흥건히 고였다. 나는 얼추 화장실로 달려가 타월을 챙겼다.
“이걸루 얼굴부터 닦아."

미스타 박은 꺼익꺼익 가쁜 숨을 토했다. 악취에 가까운 내가 방안을 진동했다. 카악- 카악- 창자를 긁어내는 아츠러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자식. 어디서 술 처먹고 여기와 난동을 부려… 너 미쳤어. 아여죽자구 작심한 거야?"
나는 버럭 역정이 나서 거칠게 쏘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미스타 박이 갑자기 감전을 당하듯 벌떡 일어났다. 우악 주먹으로 쿵쾅-쿵쾅- 미친 듯이 간벽을 두드렸다. 검붉은 핏자국 덕지덕지 간벽을 도색했다.

“그래요… 나… 죽어요, 나 죽는다고요. 파리, 미국이고 와이프구 다 죽어요… 죽는다고요…"
“자식 너 돌았어 갑자기 죽긴 뭐가 죽어?”

“형님. 나… 나… 와이프… 와이프 없어졌어요.”
"뭐라고? 너 와이프 어제도 가게 나갔지 않아 자식. 허튼소리 하려거든 당장 꺼져. 꺼지라고"
나는 왈칵 울화가 치밀어 소리 질렀다.
“형… 형님… 나… 여기… 여기가 아파요. 진짜 진짜 너무너무 아파요…"
미스타 박은 가슴팍을 치듯 사정없이 내리쳤다.

“형님, 나 술 줘요. 술 달라고요…"
“자식. 왼 지랄이여, 술 없어.”
파리. 형이라고 찾아왔는데없다고요 무슨 빌어먹을 개떡같은 형이여…”
"이 자식이… 얻다 대구 까불어.”
나는 다짜고짜 한대 쥐여 박도 싶었다. 그러나 입귀에 부글부글 괴여 오른 게춤을 보는 순간 치켜들었던 주먹이 스르륵 아래로 떨어졌다.

       조선족 친구와 함께 (버지니아주 애난데일 카운)
       조선족 친구와 함께 (버지니아주 애난데일 카운)

파리, 왜 안 때려. 때리라고 때려서 죽여… 나 맞아 죽어 싸다구…”
비스타 박은 바락바락 악을 쓰며 무가내로 나의 가슴에 머리를 틀어박았다. 후드득- 후드득- 장대 같은 빗줄기는 여전히 요란스레 창문을 후려졌다. 그는 밤새도록 냉가슴을 두드리며 난동을 부렸다.

오늘 아침 미스타 박은 잠결에 이상한 기미가 들어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안해 씨가 배를 부둥켜안고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부랴부랴 약보다리를 뒤졌다. 이윽고 그녀는 다소 진정되었다. 그러나 새우등처럼 휘여 허리를 좀처럼 펴지 못했다. 그는 다짜고짜 병원으로 가자고 졸랐다. 하지만 그녀는 도리여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그냥 한숨 푹- 자고 싶다고 억지를 썼다.

 

미스타 박은 홀로 출근길에 나섰다. 그는 정사장님에게 와이프
몸이 불편해 가게에 나오지 못했다고 사정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하루 종일 뒤숭숭한 마음을 걷잡지 못했다. 통증을 호소하던 그녀의 모습이 도무지 눈앞에서 살아지지 않았다.

그는 이제나저제나 안절부절 못하며 퇴근시간을 학수고대했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찾아들자 조마조마한 마음에 도저히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어느새 21시를 훌쩍 넘겼다. 그는 부랴부랴
사장님에게 인사말을 남기고 허둥지둥 집으로 향했다.

 

집문을 떼는 순간 미스타 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안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러나 복통을 호소하던 안해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견지도 없이 살아졌다. 침대 머리에는 견지가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다. 위에 메모지 장이 앙증맞게 놓였다.

“홍이 아빠. 견지를 사놓았어요. 이렇게… 이렇게 떠나서 죄송해요. 홍이를 부탁해요”

                             2.

5년 전 미스타 박은 혈혈단신으로 낯설고 물선 이국땅 미국에 조심조심 두발을 들여놓았다. 지난 5년간 그는 거칠고 포악한
이국 타향에서 갖은 멸시와 비리와 사기를 당했다. 그러나 애오라지 안해 씨와 어린 딸애 홍이를 위해 악착스레 달러벌이에 매달렸다. 시초에 그는 “미국 속의 한국”으로 알려진 로스앤젤레스에 자리를 잡았다. 미국계 한국인이 경영하는 봉제공장에서 매일 꼬박 12시간씩 공으로 일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잡아 뜯으며 열심히 일해도 방값과 생활비를 떼내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이 불과 수백 달러밖에 되였다. 미국으로 중국 16만 원을 변리 돈으로 댕겨쎴다. 그것이 불씨가 되여 매일매일 눈덩이처럼 부풀어갔다.



미스타 박은 푼이라도 더 벌려는 욕심에 울며 겨자 먹기로 부득부득 직포 공장에 취직했다. 그날부터 하루 종일 100여 근도 넘는 면단을 등이 휘도록 메여날랐다. 날이 갈수록 등줄기에 섬뜩한 칼날이 박히는 아찔한 통증이 발짝 했다.

“참어- 참어야지. 일단 이 고비만 넘겨. 어떻게 밟은 미국 땅인데.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져도 마음만 모질게 먹으면 어떻게든 버텨낼 있어---”
미스타 박은 달마다 목돈을 챙기는 욕심에 허리띠를 질끈 졸라맺다. 입술을 앙다문 억척스레 달을 지탱했다.

 

어느 면단을 나르다가 아차- 하는 찰나 눈앞에서 번쩍 불똥이 튕겼다. 뒤미처 쿵- 하고 바닥에 곤두박였다. 둔중한 면단에 짓눌려 가물가물 의식을 잃었다.
"싹수 없는 놈. 사내가 그렇게 허리가 부실하고 어디다 써먹겠어. 당장 꺼져버려. 내말 알아들었어?”
사장님은 돼지를 내쫓듯 다짜고짜 미스타 박을 해고시켰다.

그는 주일 내내 병석에 누워 꼼짝도 했다. 왝-왝- 쓰디쓴 담즙을 토했다. 닥치는 대로 페인트 일도 해보고 식당 일도 해보았다. 나중에는 건축현장에서 전기선을 가설하는 짬을 구했다.

 

요즈음 미스타 박은 안해 때문에 밤마다 뜬눈으로 지새웠다. 며칠 전 그는 한국으로 국제 장거리전화를 걸었다. 근데 뜻밖에 안해 씨와의 통화가 두절되었다. 그녀는 1년 전에 어린 딸애를 일흔이 넘은 시어머니에게 맡겨놓고 씽- 하니 한국으로 돈벌이를 떠났다.

애초에 그는 안해 씨의 한국행을 극구 만류했다. 하루하루 기력을 잃어가는 모친의 쇠진한 몸이 무척 걱정되었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햇병아리 딸애도 도무지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그는 안해 씨를 한바탕 호되게 훈계했다.
“너 가시고 내말 명심해 들어. 외국서 돈벌이하는 식은 먹긴 알아? 그따위 생각 싹 집어치워. 홍이는 누가 돌볼 건데? 어머니는 또 어떻게 건데? 집안에 한창 돌봐야 손이 필요할 때 훌쩍 떠나면 어떻게 해? 안된다면 되는 줄로 알아. 내 말 알아들었어?”
그러나 그녀는 미스타 박의 훈계를 마이동풍으로 흘러버렸다. 한사코 한국으로 바람결같이 떠나버렸다.

미스타 박은 부득불 매주 번씩 한국으로 국제 장거리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미스 윤 부탁하는데요…”
전화기에서 70대로 느껴지는 남자의 석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중국 아주마 그러세요?”
“네. 맞아요. 미스 윤이라고…"
“그 아주마 여기 없어요.”
"뭐라고요? 없다고요? 아니…”

 

안해 씨는 전에 가정부로 취직하였다. 그런데 주인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이틀 전에 급작스레 타곳으로 떠났다고 하였다.
“아저씨, 혹시 미스 윤 전화번호 없어요?”
“전화번호요? 몰라요. 그 아줌마 가타 불타 아무 말도 없었어요. 참 기가 막히네요. 말은 아니지만---”

철컥. 일방적으로 통화가 끊겼다. 미스타 박은 한식경이나 멍하니 전화기만 내려다보았다. 생각할수록 오리무중에 빠졌다. 일전에도 그녀는 종종 일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번마다 꼭꼭 연락처를 알려주군 하였다. 그는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섬뜩했다.

 

벌써 일째 안해 씨는 소식이 묘연했다. 이날도 미스타 박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루 종일 함구무언하고 수걱수걱 일손만 다그쳤다.
“미스타 박. 왜 그래? 요즈음 얼굴 기색 영 인데
정사장님이 측은한 눈길로 그를 지켜보았다.
“아니요. 괜찮아요. 간밤에 잠을 설쳐 피곤했나 봐요”
“정 힘들면 며칠 쉬여도 괜찮아."
“아니요. 정말 괜찮다니까요.”
“그래 견딜만한 거야? 아무튼 너무 무리하게 굴지는 말아."
“네. 알겠습니다.”

이날 10시가 넘어 가게 문을 닫았다. 그때까지 미스타 박은
등골이 후줄근하게 젖어있었다. 요즈음 물먹은 솜처럼 괜스레 육신이 게나른해졌다. 식은땀이 내처 철- 철- 흘렀다.

 

“미스타 박. 내일 쉬는 날 맞지?”
그가 가게 문을 나서려고 할 때 정사장님이 빙그레 웃으며 불러 세웠다.
“맞아요, 근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일은 무슨 일. 오늘 미스타 박 스트레스 한번 확 풀어줄까?"
“아니요. 전 집으로 건데요.”
“집에 가두 혼자지 않아. 잔말 말고 그냥 따라와.”

미스타 박은 정사장님을 따라 목포 횟집이란 수판이 걸린 한국인 식당에 들어섰다. 이곳 한국인 식당은 대개 하루 24시간 오픈했다. 자정이 다가오자 미스타 박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정사장님은 웃는 눈길로 눌러 앉혔다.

“미스타 박. 솔직히 말해봐. 미국 와서 도우미 구경 해봤어?”
“도우미요? 도우미가 뭔데요?”
“그 봐. 내말 맞네. 도우미 구경 아예 못했나 봐.”
정사장님이 한사코 도우미를 구경시켜 준다고 부득부득 애쓰는지 도무지 수가 없었다. 미스타 박은 뒤숭숭한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뭐라더라? 거 중국 있잖아. 베이징 쏘제.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
“사장님. 아가씨 그러세요?”
“아니 중국 아가씨 라로 불러? 세상에--- 도우미가 중국에서는 아가씨였나? 아무튼 오늘 밤 도우미 한번 불러줄까? 스트레스 확 날려버리게”
“사장님. 놀리지 마세요. 전 돈이 없어요.”
미스타 박은 자르듯 단칼에 썩둑 잘라 버렸.

때마침 40대로 보이는 화장기가 짛은 마담이 다가왔다.
“이 아저씨 중국 아저씨 맞죠. 어머. 근데 어쩌면 이렇게 한국말 잘하신대요. 세상에 너무너무 미남이시다. 아저씨, 새로 이쁜 도우미 불러줄게요”
미스타 박은 모닥불을 뒤집어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후득후득 심장이 방망이질을 하였다.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나 씽- 하니 밖으로 향했다.
“미스타 박. 어디 가?”
뒤에서 정사장님의 다급한 부름 소리가 들려왔다.

 

미스타 박은 한달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샤워도 하지 않고 곧바로 전화기를 집어 들고 중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누구시우? 나 홍이 할매유.”
귀에 익은 어머니의 정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그간 별일 없으셨어요?”
“아니… 이게 누구여? 홍이 아비 아니야?"

“그래요. 어머니 그간 잘 지내셨어요?”
“오늘 하루 종일 눈시울이 푸들푸들 떨리더디 그래 전화 기다리려고 그랬는 기여.”
“어머니, 요즈음 몸은 어떠세요?”
“나야 뭐 다 늙은 몸인 그냥 그런 기여. 가끔 눈앞이 침침하고 손발이 떨리고 그래 너는 몸이 성한 기여? 마누라 없이 이게 무슨 생고생이여? 아이코 가슴이야…”

 

“어머니, 왜 그러세요? 어디 많이 불편하세요?”
“홍이 어미 한국으로 떠난 가슴이 내내 이렇게 답답한 기여. 그래 너는 어디 아픈 데는 없는 기여?”
“어머니, 제 걱정은 마세요. 별로 아픈 없이 건강해요. 홍이 집에 있어요?”

“개 아직 학교서 안 돌아왔어.”
“홍이 공부 잘해요?”
“개 아비 어미 없어도 공부 하나만 잘해서 시름 싹 놓은 기여. 개도 여간 고생이 아니야. 이 할미가 돌봐주면 얼마나 돌봐준다고. 그래 너는 언제 돌아올 기여?”
“어머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나야 뭐 괜찮다만 저 어린 것이 불쌍해서 그러는 기여. 밤에 자다가도 엄마를 부르며 깨날 때면 내 가슴에 재가 싹- 들어앉는 기여. 그래 애 어미는있는 기여?”

 

“홍이 엄마 요즈음 집으로 전화 안 왔던가요?”
"며칠 전에 한번 전화가 왔긴 왔었는데…”
안해 씨는 얼마 전에 가정부 직을 그만두고 식당 일에 나섰다. 그런데 출근을 하였다. 밤일을 나가면 가정부보다 갑절이나 번다고 하였다. 어머니에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맛나는 음식을 많이 사드시라고 하였다.

“왜? 어미 너한테 전화 안 갔어?”
어머니의 근심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요. 요즈음 제가 좀 바빠서 한국으로 전화 했어요.”
“애 어미한테 전화해서 잘 좀 말해줘야 싸겠어. 아무리 밤일이 돈을 번다고 해도 여자가 홀몸으로 밤일을 다니는 영 마음이 안 놓이는 기여.”
“네. 알겠어요. 너무 걱정 마세요. 홍이 돌아오면 아빠 전화 왔다고 전해주세요.”
“그럴 기여. 너 아침밥 꼭꼭 챙겨 먹어야 기여. 이게 대체 무슨 놈의 세월이여? 집식구가 뿔뿔이 흟어진 꼴이 대체 언제면 끝을 볼기여?”

“어머니. 조금만 더 참으세요. 몸조심하고요. 그럼 전화 끊을게요.”

미스타 박은 전화기 옆에 비스듬히 누웠다. 어느 결에 혼곤히 잠들었다. 홀연 따르릉-따르릉- 요란 전화 소리가 귀전을 파고들었다.
“무슨 놈의 전화 이리도 시끄러워? 잠두 자게.”
그는 손더듬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홍이 아빠. 저예요.”
인의 명랑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는 안해 씨의 목소리에 대뜸 신경을 도사렸다.

“아니 왜 인제야 전화해? 남은 속이 재가 돼서 빠지게 기다렸는데.”
“왜요? 뭐가 그렇게 걱정돼요? 누가 나를 잡아가기라도 가봐서요? 어머머--- 그런 줄 알았으면 영 전화 할걸 그랬네.”
“까불지 말아. 너 새짬 구했다면서 왜 연락처두 남겨놓지 않았어?”
“그런 일 있어요…”
“그게 소리야?"
“그게… 그러니까 조금 시끄러운 일 있었어요.”

 

“너 무슨 짬 구했는데 출근만 하는 거야?"
“어머니한테서 들으셨어요.”
“ 너 혹시 포장마차서 일하는 아니야?"
“포장 마치는 아니고요. 단란 주점이라고…"
“그게 무슨 가게여? 왜 장사만 하는 거야?"
“술꾼들한테 해장국이랑 대접하는 가게예요. 난 그냥 주방에서 뒷일만 거들어요. 걱정 마세요.”
“뭐? 걱정 말라고? 그래 내가 걱정 걱정해 사람 따로 있어?”
“호호호. 걱정해 사람 따로 있어요. 어쩔 건데요…”
그녀의 귀맛 좋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허튼소리 말아."
“홍이 아빠. 나 돈 좀 부쳐줘요.”
"뭐라고? 돈. 갑자기 돈은 왜?”
“급히 요긴하게 쓸데가 있어서요.”
“도대체 어데다 건데?”
“홍이 아빠. 나 한국 국적 따려고요"
“뭐? 한국 국적? 그건 또 무슨 개나발 타령이여. 너 중국 안 돌아갈 거야?"

 

“중국 하려 돌아가요. 홍이 아빠. 우리 한국서 살아요. 한국 얼마나 좋은데요.”
"싹수 없는 소리 싹 집어치워. 안돼. 절대 .미국도 싫고 한국도 싫어. 우린 중국서 사는 제일 편해. 너 많이 힘들어? 그럼 당장 한국 때려 중국으로 돌아가. 나 혼자 벌어도 돼. 내말 들었어?”
“싫어요. 나 중국 가요.”
“너… 너 또 내말 안 들을 거야?"
“안 들으면 어쩔 건데요. 한국 와서 날 잡아가기라도 건가요. 차라리 미국으로 잡아가면 더 좋을 건데요. 호호호…”

"까불지 말아. 나 돈 없어.”
“정말 안 부쳐줄 건가요? 좋아요. 그럼 나 알아서 터니 그런 아세요.”
“쓸데없는 억지 쓰지 말아.된다면 되는 줄로 알아."
그녀는 한국 국적을 신청하는데 미화 5천 달러가 수요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미스타 박은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 가본 적이 없었다. 이곳 한인타운에서도 여태껏 단란 주점을 적이 없었다. 그러나 밤마다 술꾼들의 뒷시중을 들고 있는 그녀를 두고 괜스레 끙-끙- 속앓이를 하였다.

어느 미스타 박은 마음을 모질게 먹고 정사장님을 찾았다.
“사장님. 혹시 단란 주점 잘 아세요?”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정사장님은 의아한 눈길로 응시했다.
“한국 단란 주점 많아요? 그게 하는 가게인가요?”
“비스타 박. 진짜 단란 주점 몰라?”
“저는 한국 사정 전혀 몰라요?”
“근데 단란 주점 왜 궁금한데?”
“사실은---”

“아따 사람 답답해서 죽겠네. 사내가 뭘 그렇게 꾸물거려?”
그는 한국에 있는 와이프가 단란 주점에서 일한다고 이실직고했다. 정사장님은 대뜸 기색이 굳어졌다.

“나 미스타 박 생각해서 하는 말이여. 와이프 단란 주점 다니는 별로 안 좋아. 시간이 길수록 말이야. 아무튼 잘 생각해
“네. 알겠습니다.”
미스타 박은 어쩐지 휴지가 없어 뒤처리를 못한 끄름한 기분이었다. 뭔가 집히는 바가 있어 그예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미스 윤 부탁하는데요.”
“어머. 홍이 아빠. 여기 미스 윤은 없고요. 중국 아줌마 있는데 바꿔줘요.”
"까불지 말고 내말 잘 들어. 너 지금 당장 단란 주점 때려치우고 중국으로 들어가. 알아들었어?”
“또 그 소리세요. 그럼 나 전화 끊겠어요.”
"뭐라고? 너 지금 배짱부리는 거야?”
“어머머머. 배짱은 무슨 배짱. 홍이 아빠 무서워 가슴 떨리고 손도 막 떨러요..”

 

“나 농담 아니야."
“농담 아니 어쩔 건데요. 나 잡아갈래요. 홍이 아빠. 나 한국 국적 신청했어요. 인제 우리도 한국서 살수 있게 됐어요. 홍이 아빠도 한국으로 나오세요.”
“헛소리 말아. 나 한국 안가. 너 홍이 불쌍하지도 않아?"
“우리 홍이 불쌍해서라도 기어이 한국서 살아요. 중국 뭐가 좋아요. 홍이 아빠 한국 안 오면 나 홍이하고 한국서 살래요.”

“까불지 말아."
“홍이 아빠. 나 거짓말 아니에요."
“듣기 싫어. 잔말 말고 당장 단란 주점 때려치워.”
“안돼요. 단란 주점 그만두면 돈 어디서 생겨요. 홍이 아빠 돈 줄래요? 그럼 나 당장 그만둘게요. 그렇게 할래요?”
“나 돈 없어.”
“그럴 줄 알았어요. 나 일해야 하니까 그만 전화 끊을게요.”

 

미스타 박은 도록 창밖을 응시했다.
불현듯 연로하신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힘겹게 가마 목을 오르내리며 짓는 어머니. 햇병아리 같은 귀여운 딸애 홍이의 모습도 떠올랐다. 앵두알같이 빨갛게 상기된 얼굴에 구슬땀이 철-철- 흘렀다. 산토끼같이 깡충깡충 집으로 뛰여 가는 딸애 홍이. 야밤중에 이쁜 도우미 불러준다며 살갑게 굴던 목포 횟집의 마담도 떠올랐다.

“뭐? 한국 국적 신청했다고? 도깨비 나락 까먹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근데 한국 그냥 수도 없고. 어쩌면 좋지?”

                              3.

어느 미스타 박은 맥주 박스를 옮기느라 한창 분주하게 돌아쳤다. 그때 정사님이 가게에 들어서며 그를 불렀다.
“미스타 박 오늘 한국신문 봤어?”
“아직 못 ."
"잠깐 일손 놓고 이것 좀 봐.”
미스타 박은 어리둥절한 눈길로 정사장님을 지켜보았다.

 

“이 자식들 돈벌이에 아예 미쳤나 본데. 요즈음 변경 단속이 얼마나 험악한데 멋대루 설쳐?”
“사장님. 뭔 말씀이세요?”
“일단 이 기사부터 읽어 봐.”
정사장님이 “한국일보”를 내밀었다.
“연방 이민국 한국인 캐나다 밀입국 루트 집중 단속”
“9.11”테러 직후 한국인에 대한 연방 이민국의 단속이 돌연히 심각해졌다.

당시 한국인은 캐나다 입국이 의연히 무비자 상태였다. 같은 절호의 기회를 빌어 미국과 캐나다 현지의 한국인 브로커들은 불법이민을 대거 부추겨 때아닌 여득만금의 횡재를 누렸다. 근래에 캐나다 국경에 대한 경비가 전쟁터같이 살벌해졌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밀입국은 도리여 갈수록 창궐해졌다. 결국 며칠 한국인 12명이 캐나다 국경에서 집단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미국 경찰에 덥석 덜미를 잡혔다.

 

“거봐. 캐나다 밀입국 땡잡는 아니야. 일단 잡히면 돈이고 사람이고 싹 날려버려. 미친놈들이지. 미국 뭘로 알고 함부로 덤벼들어?”
“사장님 궁금한 있는데 물어봐도 괜찮겠어요?”
“뭐가 궁금한데?”
“혹시 캐나다 밀입국 비용이 얼마인지 아세요?”
"뭐라고? 미스타 박. 돌아버렸어? 여태껏 멀쩡한 친군줄 알았는
갑자기 그건 물어?”

“그냥 호기심도 나고 해서요.”
“왜? 한국 와이프 걱정돼서 그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따위 허튼 생각 싹 팽개치고 정신 똑바로 차려. 내말 알아들었어?”
“네. 알아들었어요. 그럼--- 하던 작업 마무리 질게요.”
미스타 박은 퇴근 무렵까지 궁리 궁리 실타래 같은 잡념을 주체 했다. 퇴근 그는 집문을 떼기 바쁘게 부랴부랴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피곤해 죽겠는데 잠두 자게 왜 또 전화했어요”
안해 씨는 잠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투정을 부렸다.
“너 정신 똑바루 차리고 내말 잘 들어.”
“네? 갑자기 그건 또 뭔 소리예요?”
“너… 미국 안 올래?”
“뭐요? 미국? 어머머머…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지 말아요. 인제 홍이 아빠도 농담 잘하네요?”
“나 농담 아니야. 진짜야. 너 귀 싹 가시고 내말 들어. 너 미국 올 생각 없어?”

          조선족 친구와 함께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
          조선족 친구와 함께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

“홍이 아빠. 진짜 나 미국 데려가요?”
“그래 맞아. 널 미국 데려오려고 맘먹었다.”
“진짜세요? 어머머머. 나 미국 가요? 언제 가요?”
"내일 오면 어때?”
“내일이요? 웃기지 마세요. 안 그래도 놀리는 알았는데… 괜히 마음만 들떴지 뭐예요.”
그녀는 급기야 서리 맞은 배춧잎처럼 풀이 죽었다.

 

달포가 지난 어느 미스타 박은 “양아치”로 불리는 30대 중반의 한국인 브로커 대니 김을 찾아갔다.
“와이프 한국 국적 따셨다면서요.”
“네. 맞아요.”
“그럼 캐나다까지는 직행일 거고--- 근데 요즈음 이민국 단속 장난 아닌 잘 아시지요.”
“네.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잘 좀 부탁드려요.”

브로커 대니 김은 단마디로 찍어 말했다. 캐나다 루트는 미상불 1만 달러의 거금을 요구했다. 현재 사정이 급박하니 이만큼 비용은 어쩔 없다고 털어놓았다.

미스타 박은 오로지 그녀가 무난히 미국으로 들어오기만을 갈망했다. 별수 없이 1만 달러를 거뜬히 지불하기로 작심했다. 그는 안해 씨와 손잡고 악착스레 달러를 벌고 싶었다. 하루속히 돈을 챙기려는 욕망이 불같이 타올랐다. 그는 선불금으로 5천 달러를 지불했다. 일이 성사되면 나머지 5천 달러를 지불하기로 낙착 지었다.

이날은 아침나절부터 지게차가 분주하게 맥주 박스를 하차했다. 미스타 박은 냉큼 작업복을 갈아입었다. 부랴부랴 일손을 놀렸다. 오전내 숨돌릴 겨늘도 없었다. 산더미같이 쌓인 맥주 박스와 씨름하느라 구슬땀을 오듯 흘렸다.

 

주일 안해 씨가 인천공항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홍이 아빠. 나 지금 공항이에요. 오늘 캐나다로 떠나요. 일행은 나까지 다섯이고요. 내일 오전쯤 캐나다에 도착할 같아요.”
“알았어. 캐나다 도착하면 곧바로 연락해 줘.”
“네. 알겠어요.”
“너 신경 바싹 도사려야 해. 그리고 매사 조심조심하고---"
“홍이 아빠. 나 아직도 까막눈인 아세요? 나도 인제 세상 물정 꽤나 먹었어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갈바람같이 시원스러운 그녀의 목소리가 귀맛 좋게 들려왔다. 그러나 미스타 박은 석연치 않은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벌써 닷새째 그녀와 소식이 단절되었다. 미스타 박은 바늘방석
앉은 좌불안석으로 맴돌았다. 전날 그는 브로커 대니 김을 호출했다. 근데 뜻밖에 통화가 두절되었다. 일순간 불길한 예감이 정수리를 후려쳤다.

이날 오후 그는 뒤늦게 적사 작업을 마무리 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휴게실에 들어섰다. 손님이 뜨직한 늦은 오후면 15분간의 푸드 타임(식사시간)이 주어졌다. 카운터의 미스 홍이 여느 때같이 컵라면과 막김치 접시를 챙겨놓았다. 순간 극심한 허기증이 덮쳤다. 그러나 섣불리 수저에 손이 닿지 않았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대니 김을 호출했다. 다행히 전화가 계되였다.

 

“여보세요. 저 미스타 박인데요.”
"누구라?"
“저 미스타 박인데요. 저의 와이프 어떻게 됐어요?”
“와이프요? 와이프 누군데요?”
“중국 아줌마 미스 윤이요.”
“그 아줌마 이미 캐나다에 도착했어요.”
“확실한 건가요?”
“걱정 마세요. 일단 그쪽 사정 체크인 되면 곧바로 연락드릴게요.”
뚜뚜뚜 일방적으로 통화가 끊겼다.

미스타 박은 불가마에 오른 개미 떼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안해 씨가 덥석 경찰에게 덜미를 잡혔다. 차디찬 쇠고랑이에 손목이 묶였다. 무나내로 이민국으로 끌려갔다. 절망에 빠진 그녀의 애처로운 모습이 삼삼하게 떠올랐다. 락을 준다던 브로커 대니 김은 퇴근 무렵까지 감감무소식이었다. 미스타 박은 돌덜이같이 무거운 다리를 끌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브로커 대니 김한테서 락이 왔다. 근데 추징금 1천 달러를 더 지불하라고 쐐기를 박았다. 국경 단속이 살벌한 분위기라 부득불 부과된 요금이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다음날 대니 김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내일 중국 아줌마와 만나게 되니 예약금을 잘 챙겨갔고 나오라고 독촉했다.

이날 미스타 박은 밤새도록 잠들지 못했다. 구름을 잡아탄 신선 같은 기분이었다. 안해 씨와 결혼한 지가 벌써 10년 철에 잡아들었다. 그러나 미국에 체류한 5년 세월을 삭감하면 그녀와 함께 오붓하게 지낸 세월이 별로 길지 않았다. 지난 5년간 그는 뜨내기 외톨이 신세로 마가을의 처량한 락옆같이 떠돌았다. 풍진 세월은 나그네의 허기진 배를 괴롭혔다. 안해 씨가 끓여주던 토장국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마냥 꿀샘 같던 그녀의 무덤도 사무치게 그리웠다.

 

다음날 미스타 박은 부랴부랴 집문을 나섰다. 미국으로 안해 씨가 챙겨주던 남색 양복에 넥타이까지 깔끔하게 챙겼다. 약속된 시간에 다방에 들어섰다. 구석진 곳에서 대니 김이 손을 저어 보였다. 근데 대니 김은 홀로 앉아 있었다. 학수고대하던 안해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왜 혼자 나왔지? 혹시 사기 치는 아니야?"
섬뜩한 불안감에 신경이 곤두섰다. 그는 독기 어린 눈길로 대니김을 쏘아보았다.
“저의 와이프는요?”
“예약금 불찰 없겠지요?”
“이 자식. 진짜 사기 치는 아니야? 아무튼 안해 씨의 얼굴을 보기 전에는 죽어도 결재할 없어.”
미스타 박은 밖으로 튕기려는 말을 애써 눌렀다.

 

그때 대니 김의 핸드폰에서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그는 다급히 핸드폰을 터치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곧바로 나가 대기할게요.”
대니 김이 부랴부랴 밖으로 향했다. 미스타 박도 총총히 따라
나섰다.

한식경이 지났다. 갑자기 우윳빛 칼라 봉고차 대가 다급하게 안으로 돌진했다. 뒤미처 가쁘게 제동을 걸었다. 40대로 보이는 남자 2명과 20대로 가늠되는 여자 4명이 하차했다. 그중에 붉은색 트렁크를 끌고 내린 20대 성이 유난히 돋보였다. 40대 남자 명과 20대 녀성 세명은 대기 중이던 자가용에 급급히 몸을 숨겼다. 연후 연기같이 표연히 살아졌다. 브로커 대니 김이 봉고차 기사로 보이는 40대 남자와 인사를 나누며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미스타 박은 붉은색 트렁크를 잡고 서있는 20대 성에게 눈길을 모았다. 짛은 칼라의 선글라스가 절반 얼굴을 가렸다. 소매가 없는 티셔츠가 젖가슴을 탱탱하게 감쌌다. 미니스커트가 박씨같이 허연 허벅지를 아슬아슬하게 가렸다. 그는 아무리 눈여겨보아도 그녀가 안해 씨라고 단정되지 않았다.

그녀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성큼 다가왔다.
“홍이 아빠.”
“아니? 너--- 진짜 맞아?"
미스타 박은 눈을 슴벅이며 다시 다시 눈빚 질했다. 그녀의 두눈에 구슬 같은 눈물이 고였다. 다짜고짜 와락 끌어안았다.
“됐어. 됐어. 이렇게 무탈하게 왔으면 됐어.”
미스타 박은 들먹이는 그녀의 어깨를 하염없이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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