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안해 씨가 미국에 지도 벌써 반년이 넘었다. 그동안 그녀는 줄곧 식당에서 일했다. 비좁은 주방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분주하게 돌아쳤다. 부리는 종일토록 물기가 마를새 없었다. 어느새 버짐 꽃이 허옇게 피였다. 두다리는 고무풍선같이 퉁-퉁- 붓었다. 그래도 그녀는 매일매일 어김없이 출근길에 나섰다. 여태껏 일언반구의 타발도 없었다.

어느 그녀는 끝내 몸져누웠다. 쥐여짠 걸레 쪽같이 처연하게 늘어졌다. 미스타 박은 왈칵 설음이 북받쳤다. 괴괴한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그는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너도 알고 있지 않아. 중국서 하는 일 한국서는 무조건 사람이 뛴다면서. 근데 이곳 미국 사정은 더욱 험악한 거야. 한국서 사람 뛰는 일이면 이곳에선 우리 같은 조선족 무조건 한사람 몫으로 감당하고 있어.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기막힌 거야. 그런들 어디 뾰족한 수가 있어? 조선족이란 어눌한 딱지 때문에 작정 당하기만 하는 가련한 신세여.

내말 명심하고 정신 바싹 차려. 미국서 벌려면 어금니를 앙다물고 무조건 참고 넘어가야 해. 달리 용빼는 재주가 없어. 한고비 고비 넘다 보면 언젠가 목돈을 쥐는 날이 꼭 있을 거야. 그날까지 우리 딱 감구 이겨내야 해.”

 

미스타 박은 그녀의 다리를 주근주근 주물렀다.
“홍이 아빠. 나 괜찮아요.”
안해 씨가 맥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미스타 박은 으스러지게 그녀의 손을 틀어잡았다. 한줄기 섬뜩한 불길이 눈앞을 스쳤다. 그는 터지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물러설 없어. 여기서 무너지면 끝이야. 무슨 일을 당하든 절대 주저앉아선 안돼.”
그는 주먹을 불끈 쥐였다. 시퍼런 핏줄기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홍이 아빠.”
“왜? 다리가 또 아파?"
그녀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미스타 박을 쳐다보았다.
“인제 안 아파요."
그녀는 미스타 박의 손을 살며시 가슴 위로 끌어당겼다.
“홍이 아빠. 우리--- 우리 미국서 살아요.”
“아니, 너 지금 그거 말이라고 해? 몸이 이 지경으로 망가지고 성차지 않아. 또 그 잘난 미국 타령이여?”
“홍이 아빠. 나 미국서 살고 싶어요. 우리 영주권 신청해요.”
“아니, 또 그 빌어먹을 영주권 소리여.”

 

미스타 박은 버럭 역정이 났다. 울컥 치솟는 울화에 고래고래 소리라도 내질러야 성화가 풀릴 같았다. 그러나 병석에 누워있는 그녀에게 불벼락 같은 화풀이는 도저히 가당치 않았다. 안해 씨는 영주권을 신청하자고 매일같이 들볶았다. 그러나 그는 애초부터 단호하게 거절했다. 영주권 신청은 수만 달러의 거금이 소요되었다. 게다가 대기시간도 5~6년을 넘겼다.


그는 미국행을 하느라 목돈을 날렸다. 또 안해 씨의 한국행과 캐나다 밀입국에 뭉칫돈을 밀어 넣었다. 연로한 어머니는 해가 다르게 운신이 불편해졌다. 딸애 홍이는 하루가 다르게 숙성해갔다. 그러니 사고 가게 살 돈이라도 쥐여야 얼추 고향으로 돌아가려만. 그는 애간장이 터졌다. 그녀의 영주권 타령이 신물 나도록 야속했다.

 

지난 5년간 미스타 박은 천당과 지옥을 드나들었다. 이곳은 애오라지 돈타령뿐이었다. 부부간도 부자간도 형제간도 앞다투어 챙기려고 아둥다웅 앙탈을 썼다. 매정하게 등을 돌리고 남남으로 지냈다. 금슬상화의 부부의 정도, 돈독했던 형제간의 우애도 앞에서는 두부모 자르듯 깔끔하게 돈절되었다.

 

    뉴욕 연합국 청사 기념
    뉴욕 연합국 청사 기념

이곳은 사랑도 가짜요 인정도 가짜였다. 우정도 가짜요 양심고 가짜였다. 믿음도 가짜요 신앙도 가짜였다. 애오라지 달러 하나만은 진짜였다. 미스타 박은 이날 이때까지 그 달러당 하나에만 미치도록 집착했다.

안해 씨는 한동안 몸조리를 손님들의 서빙을 도맡는 웨추레스짬을 구했다. 미스타 박은 원래 그녀에게 웨추레스짬만은 한사코 허락하지 않았다. “익스큐즈미” 한마디도 변변히 번지는 그녀가 바보 취급을 당할 것을 생각하면 온몸이 오싹했다.

 

이곳의 손님들은 걸핏하면 팁이라며 장을 뽑아들고 치근덕거렸다. 그래도 무가내로 당해야 하는 그녀의 애처로운 모습에 종주먹이 떨렸다. 그러나 또다시 그녀를 거친 주방으로 내몰기에는 너무너무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요즈음 미스타 박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끙-끙- 속마음만 태웠다. 안해 씨가 전에 비해 거울 앞에 서있는 시간이 무척 길어졌다. 짛은 화장에 손톱눈도 수정 빛으로 물들었다. 옷차림도 점점 야하게 번졌다. 얼마 전부터 그녀는 허벅지 사이로 언듯 언듯 팬티가 드러나는 아찔한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집문을 나섰다.
“너 옷차림새 점점 말이 아니야."
“이 정도 챙기지 않으면 누가 팁 줘요? 홍이 아빠 줄래요.”

 

미국은 한때 “노팬티 ”에 열광했다. 지난 세기 90년대 초 할리 우두의 스타들이 “노팬티”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나와 인기를 끌었다. 이른바 미국식 대중문화였다.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제공하는 웨추레스들에게 “노팬티 ”은 손님들의 팁을 갈취하는 유혹적인 매너로 되였다.

“홍이 아빠. 나 돈 많이 벌어올게요. 호호호”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출근길에 나섰다.
어느 안해 씨는 퇴근 샤워도 하지 않고 싱글벙글 핸드백부터 뒤졌다.
“홍이 아빠. 나 오늘 달러 많이 벌었어요. 이봐요. 50불 장을 팁으로 챙켰어요. 기분 최고예요."

오늘 한국 손님 분이 식당으로 찾아왔다. 마침 그중 사람은 그녀가 캐나다에서 얼굴을 익혔던 브로커였다. 그와 함께 온 손님은 사장으로 호칭했다. 식사 사장은 그녀에게 타국에서 고생이 많다며 50달러를 팁으로 찔러주었다. 동반했던 브로커도 호주머니를 뒤져 50달러를 내밀었다.

 

"뭐라고? 사장이라고?"
“네 맞아요. 사장님 어마어마한 큰 사업가래요. 미끈한 체격에 두리두리 잘생긴 미남이고요. 씀씀이도 대범한 진짜 멋져 보였어요.”
“아니 너 돌았어? 까짓 50불 받고 혓바닥 마르게 떠들어. 조심해. 세상에 공짜밥 없어. 알아들었어?”
미스타 박은 퉁멩스레 내쏘았다.

“두고 봐요. 나 돈 많이 벌어 홍이를 꼭 미국으로 데려 . 왜 웃어요?”
“그래 맞아. 돈 많이 많이 벌어. 그래야 우리 빨리빨리 중국으로 돌아가지.”
“듣기 싫어요. 나 죽어도 중국 안 가요. 갈라면 홍이 아빠 혼자 가요.”
그녀는 아니꼬운 눈길로 미스타 박을 흘기며 앵돌아졌다.

 

어느 미스타 박이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니 미침 안해 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가게에서 외식이 있으니 기다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는 샤워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근래에 미스타 박은 가끔씩 안해 씨에게 성깔을 부리고 싶었다. 그녀의 입에서 가끔씩 사장이 튕겨 나올 때면 괜스레 신경이 칼날같이 곤두섰다. 곰곰이 따져보면 으깨진 자존심도 아니었다. 지저분한 질투심도 아니었다. 안해 씨는 사장이 찔러 주는 팁에 섣불리 마음이 동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까닥 없이 공연히 마음만 점점 불안해졌다.

 

““쫘르륵- 쫘르륵-”

요란한 샤워 소리가 들려왔다. 미스타 박은 어렴풋이 잠결에서 깨여났다. 머리맡에 놓인 전자시계는 벌써 새벽 2시를 가리켰다. 그는 의아쩍은 눈길로 화장실을 주시했다. 때마침 안해 씨가 타월로 젖은 몸을 감싸고 나왔다.
“아니 이게 신데--- 언제 돌아왔어?”
“오늘 외식하고 2차로 노래방 갔어요.”
“그럼 많이 피곤할 건데 빨리 자야지.”
그녀는 정겨운 눈길로 미스타 박을 응시했다.


“홍이 아빠. 우리 미국서 살아요.”

밤중에 소리여.

“우리 미국서 살수 있게 거예요.”
“그게 뭔 말이여?”
“두고 봐요. 멀지 않아 홍이가 미국으로 올수 있게 거예요.”
“됐어. 도깨비 씻나락 까먹는 소리 그만하고 잠이나 자.”
“홍이 아빠. 나- 나 - 좀 봐줄래요.”
“왜? 한밤중에 뭐 어쩌려고?"

 

그녀는 살포시 눈길을 아래로 깔았다. 갑자기 타월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순간 옥스런 여체가 눈을 아찔하게 자극했다. 탱탱한 무덤과 빵빵한 엉덩이는 예전같이 탐스러웠다. 어느 결에 사타구니가 찡- 하니 괴로웠다. 그녀는 대뜸 얼굴빛이 앵두 색으로 물들었다. 냉큼 이불 속으로 숨어들었다. 촉촉한 무덤이 뭉클 가슴에 와닿았다.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는 가쁜 숨을 토하며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5.

다음날 미스타 가게에서 한창 일손을 다그치고 있었다. 그때 정사장님이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왔다.
“미스타 박. 혹시 와이프 몰래 애인을 숨겨 아니야?"
"뭐라고요? 애인?”
“거봐 맞나 봐. 방금 어떤 여자가 미스타 박 찾는다고 전화 왔어. 아주 이쁘장한 목소리던데.”

미스타 박은 어리둥절했다. 이곳에서 그를 찾을 여자는 단지 안해 씨뿐이었다.
“사장님. 혹시 저의 와이프 아닌가요?”
"아니야. 와이프 목소리 나 알아."
“아저씨. 전화 왔어요.”
때마침 카운터에서 미스 홍이 다급하게 불렀다.
“거봐 내말 맞잖아.”
미스타 박은 부랴부랴 카운터로 향했다.

 

여보세요. 누구라고요?"
“아저씨. 저 미란이에요."
미란이는 안해 씨와 함께 식당 일을 하고 있는 조선족 친구였다. 그녀는 안해 씨보다 손아래였다. 여자 키로는 조금 작은 편이였다. 진주같이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와 꼭 다문 입술은 제법 야무졌다.
“미란이냐. 그래 뭔 일인데?”
“아저씨. 혹시 언니 전화 없었어요?”
“전화- 없었는데- 왜? 언니 식당 없어?”
“언니가 오후에 잠깐 볼일이 있다고 나갔어요. 근데 여태껏 돌아오지 않았어요. 사모님이 나한테 야단이세요.”

“그래 어디 간다는 말 없었어?”
“그냥 잠깐 다녀온다고 했어요.”
“알았어. 언니 전화 오면 곧 연락 줄게.”

미스타 박은 박힌 한자리에 굳어버렸다. 생각할수록 오리무중에 빠졌다. 한식경이 지나서 다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저 미스 윤 남편인데요. 사모님 부탁합니다.”
“미스타 박, 안 그래도 막 찾던 중이야.”
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이봐. 미스타 박. 당금 저녁 손님들이 쓸어들 건데 이따위로 일하면 어떻게 해. 남의 장사 망쳐먹어도 유분수지.”
인이 표독스레 내쏘았다.

“사모님. 진짜 죄송해요. 사실 와이프 오늘 딱한 사정 있어요.”

“뭐야? 사정 좋아하고 자빠졌네. 이봐 미스타 박. 여기 중국인 알아? 무슨 빌어먹을 사정 그리도 많아. 어제도 미스퇴근 가게를 빠져나갔어. 근데 오늘 또 제멋대루 싸잡아 나갔지 않아. 미스타 박. 내말 똑바로 들어. 여기 미국이야 미국. 알아들었어? 왜 대답이 없어? 와이프 당장 때려치우라고 해. 왜 대답을 못해? 보다보다 별꼴 다 보겠네. 싸가지 없는 중국 것들

-뚜- 통화가 끊겼다. "싸가지 없는 중국 것들 영악스레 욕사발을 퍼붓던 앙칼진 목소리가 귀전을 맴돌았다. 미스타 박은 문뜩 집이는 곳이 있었다. 그는 다시 미란이를 찾았다.

 

“아저씨세요. 언니 연락 왔어요.”
“아직 전화 없어. 어젯밤 혹시 언니랑 노래방 댔어?”
“노래방이요?”
"어젯밤 외식하고 노래방 안 갔어?”
“외식이요? 외식 없었어요. 아저씨. 혹시 언니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일은 무슨--- 언니 돌아오면 나한테 알려줘.”

미스타 박은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애타게 그녀의 소식을 기다렸다. 안해 씨는 여태껏 백지장같이 투명했다. 그러나 요즈음 분명히 뭔가를 애써 덮어 감추었다.
“이년이 도대체 짓을 하고 싸다녀? 도대체 뭘 숨겨?”

 

퇴근 미스타 박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집문을 열었다. 그러나 안해 씨는 집에도 없었다. 그는 다시 식당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식당에도 없었다.
“이년이 돌아버렸지 않아? 도대체 어디로 싸다니는 거여? . 돌아오면 끄덩이를 버려.”

안해 씨는 평소에 마냥 벙긋벙긋 웃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따금씩 옹고집을 부리며 앵돌아질 때도 있었다. 그래도 입을 씃고 오리발을 내민 적은 여태껏 없었다. 그녀는 자정이 넘도록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씹 파리. 이년이 환장했어? 아예 제멋대루 까불고 지랄이네.”

 

미스타 박은 으드득 종주먹을 틀어 쥐였다. 찬장에 놓인 소주병 눈에 띠였다. 다짜고짜 소주병을 거꾸로 치켜들었다. 쿨룩쿨 심장이 찢기는 아찔한 통증에 부르르 무서운 경련이 발작했. 꿀꺽꿀꺽 쿨룩쿨룩 소주병이 저만치에 데그르르 굴러갔다. 역겨운 내가 방안을 진동했다. 천정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갑자기 전신이 붕- 하니 공중으로 날아갔다.

딸애 홍이의 이쁘장한 모습이 또렷이 떠올랐다. 일전에 부쳐온 딸애의 사진이었다. 볼이 사과같이 발가우리 물든 것이 제법 처녀티를 뽐냈다. 엄마를 많이 닮아 초롱초롱 빛나는 눈이 볼수록 귀엽다. 안해 씨가 딸애의 사진을 들고 추연히 눈물을 흘렸다.
“이년아. 왜 울어? 네년도 홍이 불상한 알아? 그런 년이 왜 밤중까지 싸다니며 지랄이여.”

 

안해 씨가 50달러 지폐를 흔들며 생글생글 웃었다. 한편에 후리후리한 키꼴의 남자가 잡고 서있었다. 남자가 두툼한 돈뭉치를 넘겨주었다. 그녀는 나비같이 사뿐 사내의 품에 안겼다.
“안돼. 안돼. . 안돼.”
미스타 박은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가위에 눌려 가냘픈 미명 소리만 흘러나왔다. 그는 뒤숭숭한 꿈자리를 털고 어렴풋이 깨여났다. 어디선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나 어쩌면 좋아요? 나 진짜 무서워요. 나 오빠만 믿어요. 오늘 한 약속 꼭 지키는 거죠. 알겠어요. 그때까지 기다릴게요.
오빠도---"
말소리는 분명히 화장실에서 흘러나왔다. 미스타 박은 용수철같이 벌떡 튕겨 일어났다. 와락 화장실 문을 낙가 챘다.
“홍이 아빠---”

그녀는 아연실색했다.

 

미스타 박은 저승사자같이 느낫없이 나타났다.
“씹 파리. 이리 나와. 나오지 못해?”
그녀의 황황한 눈빛은 기를 듬뿍 먹었다.
“이년아. 오늘 죽고 싶지 않거든 바른 대로 놀려. . 말해봐. 그래 오빠란 대체 누구여?”
“나--- 나---”
“이년이. 갑자기 왜 벙어리가 됐어. 빨랑빨랑 말해.”

독기를 내뿝는 눈이 타닥타닥 불꽃을 튕겼다. 그녀는 비실비실 방구석으로 숨어들었다.
“씹 파리. 끝까지 주둥이 안 놀릴 거야?"
- 칼바람이 일었다. 철썩- 우악 손이 그녀의 기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순간 코쿠멍과 입귀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졌다. 또다시 후려치던 손이 주춤 허공에서 뭠췄다.

 

안해 씨와 통화 중이던 오빠는 다름 아닌 사장이었다. 그녀가 사장과 내왕 한지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그사이 가끔씩 외박도 하였다. 오늘 사장은 그녀에게 자기와 가짜 결혼을 하면 영락 없이 영주권을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니. 이년이 미쳤어? 오늘 너 죽고죽고 다 죽자.”
미스타 박은 솟구치는 분독을 주체 굶주린 승냥이처럼 울부짖었다. 다짜고짜 주방에 뛰어들어 식칼을 뽑아들었다. 시퍼런 섬광이 찬장을 덮쳤다. 우당탕 와당탕 식기가 풍비박산 났다. 성난 황소처럼 좌충우돌 닥치는 대로 까부셨다. 갑자기 쿵- 하는 둔중한 소리가 들렸다. 그는 믿둥 잘린 장대처럼 바닥에 나뒹굴었다. 부질부질 게거품을 흘렸다.

 

“홍이 아빠. 정신- 정신 차려요.”
그녀의 다급한 비명소리가 고요한 밤정적을 깨쳤다.

                               6.

 

벌써 이틀째 미스타 박은 자리에서 잃어나지 못했다. 지독한 신열이 화독같이 전신을 단근질했다. 정기를 잃은 눈은 하염없이 천정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목구멍은 카랑카랑 말라들었다. 바늘귀로 쿡-쿡- 찔렀다. 냉수 모금도 넘기지 못했다. 돈이고 마누라고 죄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당장 중국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굴뚝같이 일어났다. 하지만 다시 다시 마음을 정리하고 갈무리했다.

 

“아빠. 나 엄마 보고파.”
일전에 딸애 홍이가 전화에서 이렇게 졸랐다.
딸애의 앳된 목소리가 미스타 박의 아린 가슴을 긁었다. 안해 씨를 내치고 홀로 귀국할 용기가 없었다. 엄마를 찾는 딸애 앞에서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도무지 종잡지 못했다. 연로한 어머니에게는 또 어떻게 둘러대야 할지 막막했다.

“이놈아. 개도 먹는 돈이 그리도 중하냐? 애 어미 버리고 무슨 낯으로 집문에 들어섰어? 어이쿠 가슴이야. 보려고 여태 모질게 숨통이 끊기지 않은 원쑤여. 이놈아. 썩 꺼져버려. 다시는 내 눈앞에 얼씬도 하지 말아. 어이쿠 가슴이야---”

잃고 낙루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다.

미스타 박은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안해 씨도 이틀째 우두커니 방구석만 지켰다. 퉁퉁 부어오른 양볼은 질둔한 손자욱이 낙인 같이 또렷하게 찍혔다. 찢긴 입귀는 검붉은 딱지가 붙었다. 손길이 닿지 않은 봉두발은 마가을에 된서리를 맞은 쑥대밭 신세였다.
“안돼.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참어야 해. 세상만사 모두 가짜라도 줄만은 진짜여. 눈을 딱 감구 한고비 참고 넘어가야 해. 홍이와 어머니를 지키려면 애오라지 이길밖에 없어.”
미스타 박은 왈칵 치솟는 피눈물을 가까스로 삼켰다.

며칠 미스타 박이 나를 찾아왔다.

“형님. 나 술 줘요.”
그는 다짜고짜 술을 달라고 졸랐다.
“갑자기 술을 왜? 너 술 끊었다면서.”
“도대체 거요 거요?”
“자식 까불기는- 왜 맥주 생각이라고 거야?"
“맥주는 싫고소주 줘요.”
“갑자기 소주는 왜 찾어?”

“아따 무슨 놈의 잔소리 그리도 어요. 빨랑빨랑 소주나 줘요.”
불현듯 나는 적은 기미가 들었다. 그는 소두 두병을 냉수 마시듯 꿀꺽꿀꺽 삼겼다.
“형님. 나- 나-”
“못난 놈. 뭘 그렇게 꾸물거려. 사내자식이 하고픈 말 있으면 확 털어놔.”
“형님. 나 와이프 미국 잘 못 데려왔어요.”
그는 소주의 기운에 얼굴이 잔뜩 이지러졌다.

 

“자식 허튼소리 말아. 와이프 돈 잘 번다고 호통칠 땐 언제고
배부른 타령하고 지랄이네.”
“형님은 아무것도 몰라요.”
“그래 맞아. 와이프 팁 얼마 챙기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 말 아니고요. 형님 나 좀 도와줘요.”
“뭘 도와달라고 그래?”
나는 어리절한 생각에 미스타 박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형님. 나 새짬 구해줘요.”
“왜? 갑자기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어?”
“나, 와이프 식당 때려치우고 함께 새짬 구하려고요."
"뭐라고? 너 와이프랑 함께 새짬 뛰겠다 그 소리여?”
“그래요. 형님. 나 번만 도와줘요. 그럼 내 이렇게 절할게요.”
미스타 박은 당금 무릎을 꿇고 절이라도 하려는 비칠비칠 일섰다.

 

“그래 어떤 짬을 구하려고 그래?”
“그냥 와이프랑 함께 출근하고 함께 퇴근하는 짬이면 뭐든지 좋아요. 쉬는 날도 같이 지낼 있고."
미스타 박의 눈은 절절한 애원의 빛이 듬뿍 고였다.

나는 수소문 끝에 애난데일 한인회의 경원 회장이 경영하는 “동아식품”마트에 미스타 박을 소개했다. 일이 풀리려고 그는지 때마침 “동아식품”에서 부부팀을 구하던 중이었다. 미스타 박은 여전히 스탁맨으로 뛰었다. 안해 씨는 야채를 정리하고 김장을 담그는 뒷일을 도맡았다.

 

어느 아침 미스타 박은 잠결에 이상한 기미가 들어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안해 씨가 배를 부둥켜안고 끙-끙- 신음 소리를 토했다.
“왜 그래? 많이 아파?"
“홍이 아빠. 나 오늘 출근 못할 같아요. 복통이 터져서.”
“알았어. 얼른 약 챙겨 먹고 병원 가야지.”
“아니요. 약 먹고 한잠 푹 자면 괜찮을 같아요.”
“진짜 병원 가도 괜찮겠어?”
“걱정 말아요. 출근 늦겠어요. 어서 가봐요.”

때마침 전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미스타 박. 당장 가게로 나와. 빨리빨리---”
정사장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사장님이세요. 왜요? 뭔 일리라도 생겼어요?”
“그런 건 아니고. 오늘 손님이 갑자기 너무너무 많아. 일단 와이프랑 빨리빨리 가게 나와.”
“네 알겠어요. 곧바로 나갈게요.”

 

미스타 박은 부랴부랴 가게로 향했다. 아침나절부터 손님들이 가게 앞에 장사진을 이루었다.
“미스타 박. 와이프 왜 보여?”
정사장님이 다급하게 물었다. 미스타 박은 안해 씨가 별안간 복통이 심해 출근을 못했다고 이실직고했다.
“알았어. 얼른 선반부터 챙켜.”

미스타 박은 정오가 넘을 때까지 팽이처럼 맴돌았다. 물 모금 넘길 틈도 없었다. 철-철- 흐르는 똥이가 등줄기와 허리춤을 흥건히 젖혔다. 오전내 들볶던 가게는 오후 늦은 시간대에 차츰차츰 안정을 찾았다.

 

미스타 박은 그제야 다소 탕개가 풀려 도시락을 뒤졌다. 그때 문뜩 복통을 호소하던 안해 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얼른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뚜-뚜-뚜- 통화음이 한식경이나 울렸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응대도 없었다.
“어디 갔지? 혹시 병원으로 건가?”
그는 초조한 심정을 애써 다잡았다.
이날 하루 종일 폭염이 쏟아졌다. 녘에 갑자기 먹장구름이 덮쳤다. 미구에 천둥번개가 난동을 부렸다. 마침내 무시무시한 광풍 폭우를 몰아왔다.

어둠이 짛어지자 미스타 박은 또다시 안해 씨가 걱정되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도저히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마침내 사정 이야기를 했다. 뜻밖에 정사장님이 흔쾌히 대답했다.

 

퇴근길에 그는 가게에서 6병짜리 독일산 맥주 케스를 챙겼다. 안해 씨는 각별히 독일산 맥주를 즐겼다. 그는 퇴근 그녀와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고 싶었다. 그동안 다소 엉성했던 앙숙도 풀어 . 미스타 박은 장대같이 퍼붓는 폭우를 무릅쓰고 한달음에 집으로 향했다.

전등이 꺼져 있는 방안은 괴괴한 정막이 깔렸다. 섬뜩한 생각에 얼추 전등을 밝혔다. 방안은 평소보다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러나 복통을 호소하던 안해 씨는 보이지 않았다. 침대 머리에 견지가 차곡차곡 포개져 있었다. 위에 놓인 메모지가 눈에 띄었다.
“아니 장대비가 이렇게 퍼붓는데 어디로 갔지?”
그는 무심코 메모지를 집어 들었다.

 

홍이 아빠. 견지 사놓았어요. 이렇게 떠나서 죄송해요. 홍이--- 홍이를 부탁해요.”
“아니 이건 뭐야?”
그는 와락 옷장 문을 당겼다. 그녀의 외출복과 속옷이 자취를 감추었다. 한편에 두었던 여행용 트렁크도 살아졌다.
“뭐야? 가출? 이년이 미쳤어? 누구- 누구 맘대로- 안-돼-”
그는 아츠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오열했다. 와당탕- 독일산 맥주 산산이 부서졌다. 메모지가 갈기 갈지 찢겼다. 심장이 도륙을 당했다. 사나이가 지처참을 당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잃고 쓰러졌던 미스타 박은 기신기 일어나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미란이냐.”
“네. 아저씨세요.”
“너- 너-”
“아저씨. 왜 그러세요?”
“너- 혹시 우리 와이프 어디 갔는지 알아?"
“언니요? 언니 집에 있어요.”
"뭐라고? 너도속일 거야. 나 지금 집이여.”
“언니 집에 없어요? 이상하네. 분명 집에 간다고 했는데.”

 

오늘 미란이는 마침 휴식일이었다. 그는 약속대로 오전에 안해  씨와 함께 샤핑 몰로 갔다. 정심 참에 안해 씨는 시원한 웬남국수를 주문했다. 그리고 불쑥 미란이에게 뉴욕으로 갈 의향이 없는가고 물었다. 평소 알고 지내는 오빠가 뉴욕에서 큰 가게를 경영하고 있는데 따블 인컴(곱절 급여)을 챙기는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미란이는 당분간 타곳으로 떠날 의향이 없다고 거절했다.

 

오후 늦은 시간대에 그녀는 아는 오빠가 외식을 청했는데 함께 가자고 졸랐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미란이는 중도에서 먼저 하차했다.

 

“함께 식사한 남자 혹시 사장 아니야?"
“그건 잘 모르겠어요. 언니가 그냥 오빠라고만 불러서.”
“너 하차할 때 대충 시나 됐어?”
“이른 저녁때라 아마 일곱시쯤 됐을걸요.”
“너 집에 돌아간 혹시 언니 하구 통화 안 했어?”
“아니요. 통화 없었어요.”

미스타 박은 안해 씨가 뜻밖에 가출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진실로 와닿지 않았다. 스트레스에 찌든 그녀가 일시 이상하게 돌아버린 아닌가고 넘겨 집었다. 그러나 그녀가 남긴 메모지는 새삼스레 그녀의 가출을 확인했다. 바람결같이 종적도 없이 살아진 그녀의 소행이 떨리게 통분했다.

 

지난 수년간 미스타 박은 남부럽지 않게 살아보려고 억척스레 달러를 긁어모았다. 중국에 있을 때는 하루가 멀다 하게 술자를 즐겼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동전 닢도 귀중해 입을 싹- 닦고 술자리를 단념했다. 찬물을 벌컥벌컥 삼키며 담배도 끊었다.

그는 안해 씨의 미국행이 시행착오라고 절감되었다. 그녀가 웨추레스로 뛰면서 외간 남자들의 팁을 챙긴 것도 못내 후회되었다. 그녀의 따귀를 사정없이 후려친 것도 눈물겹도록 괴로웠다. 그러나 그녀는 메모지 장만 달랑 남겨놓았다. 철새같이 매정하게 떠나버렸다. 꿈속에서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악운이었다.

 

미스타 박은 부근의 마켓에서 소주 병을 사들고 어정어정 집으로 돌아왔다. - - 소주가 소주를 불렀다. 독주가 독주를 청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고 질농한 취기는 일말의 사유마저 묵살했다. 미구에 그는 재차 집문을 나섰다. 장대같이 쏟아지는 찬비를 뚫고 비칠비칠 가는 대로 내처 걸었다. 문뜩 낯익은 앞에서 발길을 뭠췄다. 더듬더듬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죽은 응대가 없었다.
“씹 파리. 형- 형- 술 줘. 술 달라고."

 

                              7.

안해 씨가 가출한지도 벌써 달이 넘었다. 그새 미스타 박의 가슴에는 어느새 허연 재가 수북이 쌓였다.
전날 그는 딸애 홍이와 통화했다. 뜻밖에 연로한 어머니가 치매 끼가 들어 무척 고생하고 있었다. 딸애는 할머니가 가끔씩 전기밥솥에 전기를 꽂지 않아 생쌀을 떠준다고 했다. 어느 할머니는 한밤중에 시렁에 놓인 식기를 죄다 끄집어 내여 날색녘까지 씻고 닦고 닦달했다.

미스타 박은 한바탕 통곡하고 싶었다. 미국으로 떠날 때 장차 돈 많이 벌어 어머니에게 지극정성을 다하려고 맹세했다. 근데 여태껏 효도는 어치도 못하고 병신같이 이국땅에서 마누라를 잃어버린 불효를 저질렀다. 딸애 홍이에게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절체절명의 죄를 지었다.

 

어느 미스타 박이 나를 찾아왔다. 피발이 선 눈은 피곤 - 쌓였다. 탕개가 풀린 다리는 휘청휘청 가누지 못했다.
“형님. 나 좀 도와줘요. 나 와이프 꼭 찾아야 해요.”
“못난 자식. 와이프 패듯 할 때는 언제고. 보기 좋네.”
“형님. 나 욕먹어 싸요. 나 와이프 찾으면 형님한테 절을 올릴게요.”
“싸가지 없는 소리 그만해. 일단 신문에 광고부터 싫어. 와이프 사진 똑바로 잡고. 사례금은 확실하게 밝혀. 돈밖에 모르는 이곳 사정 너도 알지 않아."

며칠 “한국일보”에 안해 씨의 사진과 함께 사례금 3천 달러를 지불한다는 광고 싫었다. 중국만큼 땅덩이가 큰 미국에서 그녀의 행적을 찾기란 실로 바다에서 바늘을 건지는 격이었다. 그러나 물에 빠진 놈 오라기 잡는다고 행여나 일말의 희망을 기대했다.

 

그녀를 찾는 광고를 배포한지도 달을 넘겼다. 그사이 미스타 박은 수십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번마다 사례금을 노린 얼간이 행각이라 헛물만 켰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상불 그녀가 영영 불귀객이 되였다는 불안감이 모질게 가슴을 긁었다.

어느 미란이가 갑자기 미스타 박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저씨. 빨리 오세요. 언니가---”
미란이는 울먹울먹하며 말끝을 흐렸다.
"뭐라고? 언니? 너 거기 어디여?”
미스타 박은 어마지 놀라 다급하게 물었다.
“아저씨. 여기 뉴욕인데요. 빨리 와요.”

 

미스타 박은 장거리 버스를 탑승하고 천방지축 뉴욕으로 달렸다. 플러싱에 위치한 코리아타운의 음침한 지압방에서 미란이를 만났다. 그러나 안해 씨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지압방 마담의 말에 따르면 새벽녘에 한국인 남자 셋이 느닷없이 지압 덮쳤다. 다짜고짜 미스 윤을 승용차에 집어 넣고 어디론가 살아졌다. 이미 경찰에 신고했는데 어떤 상황인지는 자기도 모른다고 하였다. 지압방 마담은 미스 윤이 남겨놓은 여행용 트렁크를 넘겨주었다.

미스타 박은 미란이와 함께 황급히 경찰서로 향했다. 두억시니 같은 흑인 경찰이 그들을 맞이했다. 경찰은 백안시안 눈길로 그들을 응시했다. 이미 사건 수사에 착수했는데 아직은 별다른 단
서를 잡지 못했다며 덤덤하게 말했다.

 

미국은 총기 난동으로 매일매일 수많은 목숨이 이슬같이 살아졌다.

그래도 경찰은 건너 불구경 식으로 팔짱을 끼고 굿이나 보았다. 하물며 도회지 뉴욕은 엄두도 없었다. 외간 실종된 유색인종 녀성을 추적하려고 신경을 도사릴 경찰은 눈뜨고 찾아볼 수도 없었다.

경찰서를 나선 미스타 박은 흡사 서리 맞은 호박잎처럼 주눅이 들었다. 엉거주춤 길가에 주저앉았다. 막연한 눈길로 실북 나들듯 분주하게 오가는 차량 행렬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미스타 박은 한달음에 뉴욕으로 달려왔다. 안해 씨와의 재회를 두고 일비일회로 마음이 부풀었다. 그러나 경찰서를 나선 그는 삭풍에 굴러가는 낙엽처럼 망연자실했다. 이윽고 그는 안해 윤씨가 남겨 놓은 여행용 트렁크를 끌고 터벅터벅 장거리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미란이는 안해 씨가 가출한 후의 자초지종을 실토정했다.
“어제 오후 언니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급한 용무가 있으니 속히 뉴욕으로 오라고 했어요. 그길로 뉴욕에 갔어요. 언니는 나를 보자 와락 끌어안고 엉-엉- 울었어요.”

언니는 가출했던 그날 사장을 따라 곧바로 뉴욕으로 갔어요. 사장은 다방 마담에게 언니를 맡겼어요. 며칠 다시 찾아 온다는 말을 남겨놓고 살아졌어요. 언니는 다방 마담의 일손을 거들며 이제나저제나 사장을 애타게 기다렸어요. 그러나 사장은 바다에 던진 격으로 감감무소식이었어요.

 

어느 다방 마담이 갑자기 언니한테 출장 서비스를 강요했어요. 뒤늦게 낌새를 챘지만 이미 늦었어요. 사장은 뉴욕에 도착한 당일 언니를 유흥업소에 넘겼어요. 언니는 한사코 출장 서비스를 거절했어요. 그러자 다방 마담은 표독스레 내쏘았어요.

“이년아. 출장 서비스 하면 내가 뭘 먹고 살아? 싸가지 없는 년. 이곳까지 굴러왔으면 고분고분 말을 들어. 네년이 도망치다가 덜미를 잡히면 뼈다귀도 못 추릴 알아. 알아들었어? 냉큼 갔다 . 파리 년.”

언니는 봉고차에 실려 호텔로 향했어요. 손님이 샤워하는 틈에 간신히 호텔을 빠져나와 지압방에 몸을 숨겼어요. 며칠 이상한 손님이 지압방에 찾아와 언니를 찾았어요. 다행히 그날 언니는 외출 중이었어요. 언니는 지압방을 떠나려고 작심했어요.

 

언니는 떠나기 전에 아저씨에게 전해줄 것이 있다면서 저를 찾았어요. 현찰 불을 내놓았어요. 그리고 편지 통도 맡겼어요. 아저씨에게 꼭 전해주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어요. 저는 아저씨가 애타게 찾고 있으니 함께 돌아가자고 졸랐어요. 언니는 꺼익꺼익 흐느끼며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어요.

이날 언니는 손을 부여잡고 새끼 잃은 어미 고양이처럼 밤새도록 슬피 슬피 울었어요.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오자 언니는 마침내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잠깐 지압방에 다녀오겠다고 했어요. 근데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언니는 버스터미널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하는 없이 다시 지압방으로 찾아갔어요. 그러나 언니는 이미 그림자도 없이 살아졌어요.

 

미스타 박은 떨리는 손으로 안해 씨가 남겨놓은 편지를 집어 들었다.
홍이 아빠. 아니- 인제는 홍이 아빠라고 부를 면목도 없어요. 저같이 못된 년은 영영 찾지 말아요. 깨끗이 잊어버려요.

한국에 있을 기어이 한국 국적을 따서 홍이랑 홍이 아빠랑 깨알이 쏟아지게 살고 싶었어요. 한국이 천당인 알았어요. 근데 미국에 와보니 와- 세상에 이렇게 별난 곳이 따로 있구나 하는 충격에 눈이 짚였어요. 이곳 미국 땅은 오매에도 그려왔던 속의 궁궐이었어요.

 

기왕 거면 이곳에 터를 잡고 보란 듯이 살고 싶었어요. 남들은 천당 같은 미국으로 오지 못해 아글타글하는데 부득부득 중국으로 돌아가려는 홍이 아빠가 원쑤처럼 미웠어요. 미국에서 살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도 달갑게 감내하고 싶었어요. 홍이를 천당 같은 미국에서 행복하게 키우고 싶었어요.

 

        뉴욕 ㅁ9ㄴ
        뉴욕 맨하탄 전경 (사진 자료)

어느 사장이 가짜 결혼을 하면 없이 영주권을 해결해 준다고 약속했어요. 영주권만 있으면 뭐든지 두렵지 않았어요. 우리도 신나게 자가용을 끌고 버젓하게 양옥에서 되였어요.동화 같고 꿈만 같은 행복감에 흥얼흥얼 콧노래가 나왔어요.

 

사장이 서류 신청을 하려면 뉴욕으로 가야 한다고 독촉했어요. 저는꿰운 송아지처럼 고분고분 따라갔어요. 영주권에 눈이 멀어 유흥업소에 넘겨질 때까지 전혀 낌새도 느끼지 못했어요.

“한국일보”를 보고 홍이 아빠가 애타게 찾고 있는 알았어요.
터지도록 손톱눈을 깨물었어요. 후회해도 이미 엎지른 물이었어요. 홍이 아빠한테 용서를 빌고 싶지 않아요. 영주권에 눈이 뒤집힌 미친년이 무슨 면목으로 용서를 빌겠어요. 차라리 시퍼런 칼을 가슴에 콱- 찔러주세요. 선지피가 -콸-쏟아지게 닥치는 대로 찌르세요. 홍이 아빠 가슴에 응어리를 활-활- 뽑아버리게 무작위로 난도질을 하세요.

 

홍이 아빠. 다시는 찾지 마세요. 죽는 그날까지 영영 홍이 아빠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게요. 미란이한테 현찰 불을 부탁했어요. 지금 홍이 아빠에게 있는 이것 뿐이에요. 중국으로 돌아가지 전까지 부디 몸조심하세요. 그리고- 홍이- 홍이를 부탁해요.

미스타 박은 뜨거운 눈물이 울컥 솟구쳤다. 얼른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멀리 아득하게 펼쳐진 푸른 전야가 가물가물 살아졌다.

2004년 늦은 봄철의 어느 , 미스타 박은 중국에서 걸려온 국제 장거리전화를 받았다. 뜻밖에 딸애 홍이의 담임선생님이었다. 홍이 할머니가 뇌출혈로 생명이 위독하니 속히 귀국하라고 독촉했다.

 

며칠 한밤중에 미스타 박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날색녘까지 묵묵히 소주병만 기울였다.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오자 느낮없이꺼익-꺼익- 울부짖었다. 안해 씨를 터지게 부르다가 마침 혼절했다.

이해 5월, 미스타 박은 뉴욕의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나에게 고향 주소와 전화번호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손을 부여잡고 안해 씨의 소식을 꼭 전해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했다. 그는 탑승구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다시 다시 뒤돌아 보았다. 나는 미스타 박의 모습이 살아질 가지 오래오래 손을 저었다.

 

                             8.

미스타 박의 본명은 박창길이었다. 그의 고향은 흑룡강성 아성 소속의 자그마한 시골이었다. 그는 오상 사범학원을 졸업하고 고향에서 소학교 교원으로 근무했다.

1994년 그의 부친이 지병으로 사망했다. 당시 달간 급여를 받지 못한 그는 부득불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장례비용을 선불해 것을 청들었다. 그러나 시골학교의 딱한 사정 때문에 별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결국 변리 돈을 대여해 부친의 후사를 치렀다.

 

그는 학교를 사직하고 안해 씨와 함께 북경시 초양구에서 자그마한 조선족 음식점을 경영했다. 년간 그들 부부는 아글타글 일하며 얼마간의 목돈을 챙겼다. 그러다 1997년 겨울, 설한풍이 몰아치던 어느 한밤중이었다. 갑자기 불어닥친 큰 화재로 음식점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당시 그들 부부는 손을 싹싹 비비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절박한 사경에 처했다. 박창길은 생각 끝에 북경에서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사촌 형에게 미국 비자를 신청해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당시 그는 미국행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1998년 봄에 박창길은 나보다 앞서 미국 땅에 발을 들여놓았다.

 

2001년 초여름 나는 대서양 연안의 버지니아주로 옮겨왔다. 넌데일 한인타운에서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어느 교회에서 우연하게 박창길과 면목을 익혔다. 그는 나보다 손아래였다. 고슴도치 깃털처럼 빳빳하게 치켜든 카카 머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중키에 겨릅대처럼 비쩍 마른 체구였다. 그러나 종아리만은 돌덩이같이 단단해 제법 다부져 보였다.

2002년 여름, 박창길은 한국에 체류 중이던 안해 씨를 브로커를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을 시켰다. 년이 지난 그녀는 갑자기 가출하여 종적을 감추었다. 2004년 5월 박창길이 귀국할 때까지 그녀는 바다에 던진 격으로 소식이 묘연했다.

 

박창길은 귀국 모친의 장례를 치렀다. 딸애 홍이를 이끌고 고향을 떠라 산둥성 청도시로 이주했다. 2008년 여름, 나는 청도로 출장 갔다가 자그마한 한식점에서 우연히 박창길과 상봉했다. 당시 40고개를 넘긴 그는 이미 머리에 백설이 하얗게 덮였다. 그는 금주 한지가 오래되였다며 소주잔을 극구 사양했다.

박창길은 (孔氏) 성을 가진 한국인 집사(执事)의 소개로 전부터 교회에 나갔다. 그는 천주님에게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 어느 날 문뜩 신기한 강령술을 체험했다. 그는 교회에 “십일조”를 상납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되였다.

 

나는 박창길보다 늦게 귀국하였다. 그때까지 그의 안해 씨는 의연히 종적이 묘연했다. 이날 박창길은 안해 씨에 대해 시종 함구무언이었다. 역시 그의 아픈 상처를 섣불리 건드릴까 걱정되었다. 한식점을 나설 때까지 끝내 그녀의 소식을 묻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그녀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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