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9일 저녁, 박춘실 가수가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에서 개최한 세계조선족노래자랑대회 결승전에서 노래 부르고 있다. 
지난 11월 19일 저녁, 박춘실 가수가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에서 개최한 세계조선족노래자랑대회 결승전에서 노래 부르고 있다. 

[동북아신문, 이동렬 기자] 박춘실 가수가 마지막 무대에 등장했다. 지난 11월 19일 저녁, 도쿄 다키노가와회관(滝野川会館), 무대 조명은 장내 관중들의 시선을 꽉 잡으며 하단이 부푼 연한 보라빛  드레스의 움직임을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 50만엔(한화 약 500만원)의 상금이 걸려있는 ‘2023년 Astalive컵 세계조선족노래자랑대회’ 마지막 무대였다.  

이윽고 그녀의 열정적이고 감미로운 노래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아리랑 사랑>을 부른 그녀는 마치 그번 대회의 주제가를 부르고 있듯 관중들의 심금을 꽉 움켜 잡으며 무대의 정점을 찍는데 성공했다. 

그녀는 울음이 곧 터질 것 같은 심정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관중들에게 허려 굽혀 인사를 했다. <아리랑 사랑>, 이 한곡을 부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아마 누구도 모를 것이다. 

박춘실 가수가  ‘2023년 Astalive컵 세계조선족노래자랑대회’에서 대상의 영예를 따냈다. 
박춘실 가수가  ‘2023년 Astalive컵 세계조선족노래자랑대회’에서 대상의 영예를 따냈다. 

“이런 것입니다.” 기자의 취재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제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힘의 원천은 관객들이고, 이 무대를 만들어준 스텝분들입니다. 노래를 부를 때 저와 같이 호흡하고 마음과 마음을 열고 하나로 이으면서 함께 어떤 휘모리를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면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심장이 함께 고동치면서 인생의 어떠한 아리랑고개도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솟굿칩니다. 아마 그런 느낌이 무시로 저를 무대위에로 떠밀어 올리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 도착하던 날 그녀는 주최 측에서 공항까지 마중나와 “열렬히 환영한다”는 프랑카트를 들고 맞아주는 모습에 너무 감동했고, 그날 저녁 성대한 환영만찬에서 5만엔 보조금까지 받았다며 고마워했다.  

“그 분들이 수고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조선족은 비록 세계 방방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한마음으로 단합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며, “일본에서 멋지게 사시는 우리 동포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 뿌듯했고 씩씩하고 밝은 얼굴마다에 함박꽃처럼 활짝 핀 웃는 모습들이 정말 아름다웠다”라고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박국화”의 발성연습 “아-아-”가 만들어낸 기적  

박춘실은 1970년 12월 흑룡강성  벌리현 영항향 중강촌의 한 농민 가정에서 다섯 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촌의 산파(接生婆)를 40여년 하셨기에 마을 사람들의 존중을 받았다. 특히 노래를 부를 때면 목청이 아주 청아해서 ‘가수’로 동네의 인정을 받았으며, 아버지는 젊었을 때 손풍금 타기를 즐기겼기에 둘은 천상배필이라고 사람마다 칭찬을 했다. 아마도 부모님의 DNA를 물려 받아서인지 박춘실도 어려서부터 노래를 부르기 무척 즐겨했다. 고운 목청으로 쉴새없이 지저귀는 노래를 듣고 마을사람들은 그를 ‘박국화’라고 호칭했다. 당시 연변에서는 한국화 가수가 한창 뜨고 있었기에 그녀를 견준 별칭이었다. 

박춘실 가수가 2019년 연변TV '스승의 날 스페셜' 녹화에 참여해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박춘실 가수가 2019년 연변TV '스승의 날 스페셜' 녹화에 참여해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제가 어릴때 저의 오빠는 저더러  발성연습을 하라고 용돈을 자주 주군하셨지요.”하고 그는 명상에 잠겨 말을 이었다. “그땐 발성이란 어떤것인지도 모르고, 단지 그 용돈을 받기 위해 ‘아-아-…’ 하며 소리를 지르곤 했었지요. 그런데 그 ‘아-아-’가 바로 저의 새로은 인생의 시작점으로 될 줄 어떻게 상상이나 해봤겠어요?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인지….” 하고 그녀는 “오빠에게 감사를 드린다”라고 몇 번이고 곱씹었다. 오빠가 자신의 인생의 등불이 되어주었노란다.  

 

올바른 두성으로 발성하는 경지를 찾아  

박춘실은 1987년 벌리현조선족중학교를 졸업하고 당해에 오상시조선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그때 모두 네개 반이었는데 그는 음악반에 배정받았다. 비록 어릴 때부터 노래를 즐겨 불렀지만 박춘실은 음악이론은 빵점이었다. 
음악반 응시 시험을 치던 날 그는 “엄마의 키스(妈妈的吻)”란 당시 유행하던 노래를 불렀던 기억을 떠올렸다. “완전 악청이었지요. 지금 생각만 해도 얼굴이 뜨거워납니다.”

그래서 그는 음악이론, 성악, 무용, 건반 등 음악 지식을 열심히 배웠다. 특히 성악 공부를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2019년 3월 제2회 연변창작대회에 참가해 박춘실 가수가 처음으로 부른 노래 '또 만나 진달래'가 우수상을 수상했다. 
2019년 3월 제2회 연변창작대회에 참가해 박춘실 가수가 처음으로 부른 노래 '또 만나 진달래'가 우수상을 수상했다. 

동장용 성악 선생님은 “성악을 배우려면 성대근육을 잘 조절해야 한다. 올바른 소리의 성질은 소리의 성질이 부드럽고 말랑마랑하고 동글동글하다. 절대 소리 질감이 째지지 않는다.”며 “올바른 두성으로 발성을 하는 경지는 소리꾼이 죽을 때까지 추구해야 하는 대가의 영역이다.”고 가르쳤다. 특히 그의 목소리 특성을 분석해주며 “올바른 고음에서 만들어진 피치는 부드럽고 둥글둥글하다. 이런 느낌을 찾아 본인만의 발성법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섬세하게 가르쳤다. 

이에 그는 매일 빈 교실이나 건반 교실 등 타인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곳을 찾아다니며 연습을 해서 동 학급에서는 제일 빨리 자기 특유의 발성 감각을 찾는데 성공했다. 

 2016년 11월 18일 경동 조선족 동호회가 개최한 전국조선족노래자랑대회에서 박춘실 가수가 일등상을 수상하다. 
 2016년 11월 18일 경동 조선족 동호회가 개최한 전국조선족노래자랑대회에서 박춘실 가수가 일등상을 수상하다. 

동장용 성악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칠태하시 노래자랑대회>, <벌리현 노래자랑대회> 등 무대에 올라가 여러 번 일등상을 따냈다.  

2013년 선양영사관에서 열린 '한중노래자랑대회'에서 특등상을 수상한 박춘실 가수. 
2013년 선양영사관에서 열린 '한중노래자랑대회'에서 특등상을 수상한 박춘실 가수. 
박춘실 가수가 CCTV 문예채널의 '전쟁할수록 용감해진다'란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박춘실 가수가 CCTV 문예채널의 '전쟁할수록 용감해진다'란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그리고 2013년에 심양시 한국영사관에서 조직한 <한중노래자랑대회>에서 특등상을 받아 55촌짜리 칼라TV를 상품으로 받았고, 2016년에는 북경 경동 조선족협회에서 조직한 ‘전국조선족노래자랑대회’에서도 대상을 받아 현금 1만원의 상금을 받았으며, 또 2018년 청도에서 개최된 <전국노래자랑 중국편>에서도 대상을 받아 한국 KBS텔레비방송국의 요청을 받고 한국 추석특집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연변텔레비방송국에서 조직하는 공연에도 두 번 출연했다. 이렇게 그는 한발자국, 한발자국씩 자신의 음악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음악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쌓아올린 금자탑   

1991년에 박춘실씨는 사범을 졸업하고 벌리현 항태향에서 6년간 음악교사로 있다가 1999년에 벌리현 조선족 소학교로 조동되면서 줄곧 음악교사로 교직생활을 했다. 그는 제자 양성에도 일가견이 있어 손수 배워준 백옥설 학생이 “중앙민족대학 음악교육계”에 입학하는 기적도 연출했다. 백락처럼 제자의 끼를 발견하고 손을 꼭 잡고 열심히 가르쳐 준 덕분이었다. 때문에 제자의 부모님들은 그를 만나면 “우리 따님의 은사”라고 감지덕지하곤 했다. 

2012년 헤이룽장성 춘절 파티에 참석한 박춘실 가수. 
2012년 헤이룽장성 춘절 파티에 참석한 박춘실 가수. 

2007년에 2012년 헤이룽장성 춘절 파티에 참석하는 벌리현을 대표하여 흑룡강성 텔레비방송국에서 조직한 “우리 마을에도 문예인이 있어요(咱村也有文艺人)”라는 녹화 프로그램에 두 번이나 참가했고, 그후 2008년과 2012년 흑룡강성TV 춘절만회에 초대 가수로 초대받기도 했다. 또 칠태하시 민족사무위원회를 대표하여 흑룡강성 소수민족문예 경연에도 여러 번 참가하여 1등상을 수여 받았다. 그리하여 2007년에 흑룡강신문에서는 그를 취재해 ‘성악무대의 진달래’라는 제하의 인물기사를 싣기도 했다. 

“매번 무대에 나설 기회가 올 때마다 저는 새로 도전하는 마음으로 임합니다. 남들은 점심 휴식시간이 오면 오침도 하고 쇼핑도 하지만 저는 무대에 나서기 위해 그 시간을 몽땅 노래 연습에 씁니다. 집에서 청소를 하면서, 밥을 지으면서, 프로가수들의 테이프를 켜놓고 그들의 발성을 연구하고 모방하기도 하면서, 저만의 발성법을 찾고자 노력하지요. 언제 어디에서든 배울 기회만 있으면 절대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성질머리가 그렇게 생겨 먹어 끝을 봐야 시름이 놓입니다.”하고 그녀가 웃었다. 

 

일본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우여곡절 

박춘실 가수는 ‘세계조선족노래자랑’ 공모 소식을 딱친구 김영순을 통해 전해 받았다. 도전해 보고싶은 욕망에 가슴이 활랑거렸다. 이에 아무도 몰래 노래 동영상을 찍어 보냈더니 곧 예선에 합격돼 결승까지 오게 됐단다. 

그런데 일본노래자랑대회에 간다하니 평소 무뚝뚝한 남편이 버럭 성을 내며 심하게 반대할 줄이야. 심지어 그의 여권까지 꽁꽁 숨겨뒀노란다. 그래서 집 안 곳곳을 수 십번 이잡 듯이 뒤져서 겨우 여권을 찾아내 몰래 비자를 받았고, 비행기 티켓도 몰래 샀노란다. 

 2018년 8월 4일 청도에서 열린 중국인의 한국노래자랑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 KBS에서 '추석 프로그램 녹화'에 초대받았다. 사회자 송해와 함께. 
 2018년 8월 4일 청도에서 열린 중국인의 한국노래자랑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 KBS에서 '추석 프로그램 녹화'에 초대받았다. 사회자 송해와 함께. 

그랬더니 남편은 “그렇게 가고싶으면 가 돼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가라”는 최후 통첩까지 내렸다. 체면을 중히 여기는 남편이 아내가 망신당까봐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몇 해전에 한번은 서울에 가서 노래자랑대회에 출연했는데 등수에 못들었던 것, 대회 요구가 “한국 노래를 불러야 한다”로 되어 있어 준비를 제대로 못해온 탓이었다. “일가친척들이 일도 안 나가고 응원하러 왔는데 등수에도 못들었으니 정말 창피했어요.” 하고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평소 고부 간 오손도손 잘 지내는 현명한 시어머니가 “길고 짜른 건 대어봐야 한다. 난 우리 며느리의 노래 재능을 믿는다.”면서 며느리의 일본 출정을 지지했다. 

그녀는 남편과 가족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노래연습을 해야 했다.  

 2018년 KBS '추석 스페셜'에 출연한 박춘실 가수. 
 2018년 KBS '추석 스페셜'에 출연한 박춘실 가수. 

그녀는 노래연습 과정을 솔직하게 터놓았다. “저는 이번 노래자랑 결승전에 참가할 수 있다는 통지를 받고 연변 가무단 박경숙 가수님한테 두 시간의 수업을 받았었어요. 박경숙 언니는 저의 결점과 장점을 지적해주셨고 수업 녹음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연습을 많이 하라고 당부하셨지요. 저는 언니의 부탁대로 매일 연습을 하면서 꼭 대상의 영예를 따내려고 다짐했습니다. 우리 속담에 <공든탑이 무너지랴>란 말이 있지 않나요? 호호, 저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이 일을 통해 내가 노력한 만큼 좋은 성과를 따낼 수가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이제 2년만 근무하면 그녀는 퇴직을 하게 된다. 그녀는 심경이 자못 복잡하다고 말했다. 

 2018년 8월 4일 청도에서 열린 중국인의 한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을 수상, KBS에서 '추석 프로그램 녹화'에 초대받았다
 2018년 8월 4일 청도에서 열린 중국인의 한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을 수상, KBS에서 '추석 프로그램 녹화'에 초대받았다

“그냥 평소 하던데로 쭉 살아나가렵니다. 우리 민족의 노래를 즐기는 분들과 함께 <아리랑 사랑>을 부르며, 우리 민족의 노래와 춤을 전파하면서 나머지 인생을 의의있게 보내렵니다. 흑룡강성 벌리현 오지라고 가끔 외롭게 생각했는데 일본조선족노래자랑을 통해 저는 어딜가나 ‘우리 조선족은 하나이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우리 민족의 노래와 춤이 멈춰지지 않는 한 우리 민족은 살아있는 겁니다.”라고 감회에 젖어 말했다. 

그녀의 <아리랑 사랑>은 영원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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