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룡운 중국조선어정보학회장

2021년, 10월도 며칠 안 남은 어느 날 아침 나는 예전대로 운동을 끝내고 씩씩하게 연구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런데 연구실에 들어서 컴퓨터를 켜고 자료를 정리하려고 보니 호주머니에 소지하고 집과 연구실을 오가던 USB가 없다. 엄지 손가락 첫마디만 한 크기인데…….

가을옷이라 호주머니가 많아서 이리저리 샅샅이 뒤져도 없었다.

한 번 뒤져보고 없으면 더 뒤져 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손톱눈이 닳도록 뒤져 보았다.

급기야 택시를 잡아 타고 자택에 와서 여기저기 찾아봤으나 USB는 보이지 않았다.

나한테는 아이패드 하나, 손 전화 하나, 가정에서 쓰는 컴퓨터 한 대, 노트북 한 대, 연구실 컴퓨터 두 대(하나는 공용 서버용)가 있다. 혼자서 여러 유형의 전자기기 다섯 대를 운영하고 조작하고 있는 셈이다.

쉽게 말해서 승용차, 트럭, 경운기, 버스 등 기동차량을 때론 번갈아가며 때론 동시에  운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기마다 하드디스크 용량이 다르다. 요즘은 대용량 이동 가능한 저장기기들도 많다.

30여 년 동안 저장 기기들의 용량도 크게 발전하였다. 80년대 말 90년대의 3M짜리 저장용 디스크에서부터 지금은 테라급으로 발전하였다. 몇 천 , 몇 만 배로 저장 기능과 용량이 늘어났다.

바퀴는 없지만 온 세상과 통하는 고속 정보 통신 도로를 다섯 대의 “통신 차량”을 몰며 매일 숨 가쁘게 달려온 셈이다. 

기기마다 비밀번호를 기억하기도 벅차다.

거기에다 1TB, 3TB, 4TB짜리 대용량 외장 하드에 32GB, 64GB짜리 USB 등 이동 저장 기기를 지니고서…….

그런 저장 기기를 잃어버린 후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괜히 짜증만 났고 일주일 내내 혹시 출퇴근길에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매일 경유하는 부르하통하 강변도로를 구석구석 살폈으나 찾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소지한 물건이 인체와 분리되는 순간 모바일에서 경보음이 울리는 기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며칠 홀로 끙끙거리다가 다시 자료를 정리하는데 집중하였다. 창피해서 누구한테 말도 못 했다. 그냥 그저 자기를 꾸짖다가 말았다…….

근데 그 뒤로 2년 후, 제2차 분실 사고가 또 터질 줄이야.

2023년 11월 20일에 나는 또 한 번의 “불행”을 겪게 되었다.

눈이 내려 그런지 날씨가 매섭게 추운 겨울이어서 옷을 두툼히 입고 연구실에 갔다 왔는데 저녁에 자료를 정리하려고 보니 연구실에서 주머니에 넣어 소지한 대용량 저장 기기(64GB짜리 USB)를 또 분실했다.

잃어버렸다? 떨어뜨렸다? 도둑 맞혔다? 무의식 중에 버려졌다?…… 분실 사고에 대한 정의가 혼란스러웠다. 

분실된 지점은 알 길 없다. 몸에 걸쳤던 옷가지의 모든 주머니들을 거듭 수 십 번이나 뒤져도 분실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은 이상하다. 고질이 도져 뒤지고 또 뒤져 본다. 분하기가 짝이 없다. 분하디 분한 것은 3개월 동안 정리한 자료가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어떻게,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가령 바닷물에 떨어뜨렸다면 건지지는 못해도 오, 저 곳에 내 물건이…… 하고 자기를 안위라도 하겠는데…….

엄지 손가락 첫마디만 한 크기의 USB에 약 3만 여개 자료가 들어 있었고, 사진만 4천 여장이 들어 있었다. 내가 30년 동안 수집 정리한 역사 자료와 논문들도 거기에 저장되어 있었다. 많은 대담 원고, 강의 원고도 거기에 담겨 있었다. 결국 자기 자신을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추워진 겨울 날씨까지 원망했다.

맨 나중에는 나이를 원망했다. 근년에 와서 두 차례나 분실 사고를 저질렀으니 늙어 버린 선비가 기억이 쇠퇴하고 감각이 무디어졌다고…….

3년 사이에 “분실 사고”를 두 번 친 셈이니 기동차로 말하면 두 대의 기동차를 통째로 잃어버린 대형 사고를 저지른 셈이다. 

며칠 후, 마침 몇 동창 친구들을 만나서 가칭 연말 송년 모임이라면서 소주 한 잔씩 하는 자리에서 불현듯, 얼떨결에 흥분해서 소 잃어버린 주인처럼 분실 사고에 대해 하소연을 했더니 50년을 형제처럼 지낸 70 넘은 친구 녀석들의 소견들이 희한하고도 다양해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적어 본다.

은근히 바랐던 위로는커녕 각자의 지론만 설파했으니 성씨는 밝히지 않고  A, B, C, D로 지칭하여 그들의 지론을 적어두고 80세까지만 지내면서 두고두고 볼 심산이다.

A (군부대 전업 군인 출신)가 술 따르면서 말하였다.

“그래서 당의 정책이 영명한 거야, 60세만 넘으면 전부 공직에서 물러나야 돼. 너처럼 자꾸 이것저것 잃어버리면 어쩌노.”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고위급 간부들이야 비서들이 다 챙겨주니 너처럼 중요한 물건이 분실되는 경우가 없어 환갑이 지나서도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겠지만, 너는 이젠 70 넘은 노인네인데 비서가 있나, 전용 기사가 있나……유에스삐 (USB)고 뭐고, 아서라, 술이나 먹고 생각도 마, 강물에 빠져 죽은 애가 찾으면 살아 나올까? 쯧쯧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차, 내가 인제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하는 줄 모르고, 어떤 공식, 비공식 장소에도 가지 말아야 하는 줄 모르고 너펄거렸구나…….'

정부의 국장깨나 했었다는 B가 맥주병 마개를 따면서 한마디 던진다.

“야, 야, 지금 우리 이 나이에 무슨 연구고 나발이고 앓지나 마라, 다 걷어치우고 슬슬 등산이나 하고, 시내돌이나 하고 여행이나 다니고 그래야지, 무슨 머리 (대가리라 했음) 시허예가지고 컴퓨터요, 책이요 하냐. 그냥 놀아 놀아, 이제 누가 우리들 말이나 듣냐? 주장, 시장, 현장도 다 새파란 애들인데……연구고 나발이고 자, 한잔 받어라. 유에쓰삔지 뭔지 다 잃어버려, 참 내원…….”

C는 말문이 무겁기로 소문이 난 친구이다. 일본과 미국에 가서 몇 해 있다가 왔는데 딱 한마디를 하는데 “이거 뭐야, 일본에 가서 몇 해 살아보니 70대 는 애들 취급하더군, 택시 기사도 다 7,8학급생들이여, 120세 시대가 온다던데……오랜만인데 술이나 마이자, 잃어버린 자료는 다 날아갔다고 생각하고 하나 새로 사서 다시 시작하든지. 자, 한 잔 받어…….”

나는 반론 한마디 못하고 속으로는 '이 늙다리들아, 너네도 언젠가는 무얼 잃어버릴 때 있을 걸, 두고보자'하면서 끙끙거렸다.

술판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 갈 무렵, 상해 아들 집에 갔다가 몇 해만에 연길로 온 D (교수출신 )가 마른 명태를 우물우물 씹다가 총화 발언이랍시고 한바탕 잔소리 삼아 또 경종삼아 사설을 늘여 놓는다.

“이 봐, 친구들아, 내 말 좀 들어 봐. 장님 코끼리 만지 듯 말하지 말어. 적어도 앞으로 10년, 아니, 15년 쯤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겠는가를 고민하라고.

50년 전인 70년대에는 60살이면 백발 노인이었어, 근데 지금 세상은 달라, 상해나 광주에 가면 70대는 애들 맞잡이야. 모두들 공부를 다시 한단 말이야, 주식이요, 재테크요, 여행이요 하면서 멋지게 살더란 말이야. 야간 대학에 자리가 없어 들어 못 가거든…….

근데 연변에 와보니 광장무를 추는 노친들이 제일 폼나게 살더라. 도서관이나  서점에는 노인들이 거의 보이지 않고. 요즘 세월은 하룻밤 자고 눈 뜨면 새로운 게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도 현재 영어 공부하러 다녀. 재미 들려 3년을 했어. 새로운 세계가 보여. 세상을 따라 못 가겠으면 시골 가서 감자 농사나 짓든지. 변죽만 치면서 병신 취급 안 받으려면 나이 먹고서도 새로운 공부를 해야 돼. 주변을 들러봐. 노친네들 천하야…….”

그나마 D의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현룡운 중국조선어정보학회장

그날 우리들은 또 취했다. 물건 잃어버린 사람은 위로를 원했는데 중구난방식의 지탄만 받고 동네 소문만 난 셈이 되었다.

나는 이튿날 아침에 깨어나서 또 찾았다. 재차 뭘 잃어버린 건 없었지만 다시 전날 입었던 옷견지의 주머니를 다 뒤져 보았다. 혹시나 해서. 요행심리의 발작이다.

저녁에는 또 밤잠을 설치다가 자아 안위하였다. 누가 주웠다면 잘 활용해 사회에 유익한 공헌이라도 하면 좋겠다고.

돈 잃어버리고 주은 놈이 사회 공헌이라도 했으면 하는 식의 바람이었다.

2024년부터는 빈 몸에 핸드폰만 손에 쥐거나 목에 방울처럼 단단히 걸고 다녀야 하겠지만 그것도 언제 벗겨져 나갈지 몰라서 답답하긴 하다.

앞으로는 클라우드에 자료를 저장해 보련다. 늙은 몸이라 주저심도 든다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겠다.

돈보다 귀중한 걸 잃었지만 파출소나 어느 기관에 말할 곳도 없다. 그래서 두 차례의 분실 사고를 창피스럽지만 적어 본다.

오늘은 친분 깊은 후배 교수가 한 잔 사주면서 “늘그막에 아무것도 안하는 것은 북망산 통행증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형님의 머릿속에 걸 전부 토해내야 합니다.”라고 나한테 위로하면서 그래도 다시 자판을 두드려 보라고 한다.

잃어버린 것이 보통 물건이면 그저 지나가겠는데 먹지도 입지도 팔지도 못할 대량의 자료를 찾지도 못하면서 다시 혹여 찾을지도 몰라 넋두리하면서 지금도 외출 시 자꾸만 땅을 내려다보며 걷는다.

결론적으로 늙으면 빈 몸으로 가방도 없이 다니는 게 상책이다. 혹은 교통 체증이나 혼잡 때문에 늙으면 다니는 것을 삼가야 한다. 그렇다면 이동 기기는 필요 없게 된다. 글쎄,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늙었다는 생각은 버릴 예정이다. 물론 잃어버릴 일들이 또 있겠지만…….

문득 법정 스님의 어록이 생각난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찾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역시 명언이다.
하여간 잃어버린것은 
없어졌다는 것.
없어졌으니 생각을 말자, 미련을 버리자.

그래도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금후 15년 차 계획도 세울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대로 아모르 파티(네 운명을 사랑하라)를 웨치면서 더 씩씩해질 것이다. 누가 뭐라든 개의치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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