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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多事多難)한 일생이다.  92세 고령의 어머니 말씀처럼 남의 나이를 먹고 사는 삶이라서 인지 별로 아픈곳을 모르셨다.

눈이 녹기 시작하는 냇가로 뒤짐을 쥐시고 산책하시던 어머니가 며칠 사이 폴싹 꺼져 내리시였다 얼마나 아픔을 참았으면 검은 머리가락이 밤사이 눈에 띄이게 희긋희긋 쇠였으랴!
“의원을 부릅시다.”
“의사?! 의산 뮐하니! 아픈 곳도 없는데 누구도 부르지마라. 늙어 그런데, 인젠 때가 되였다.” 의사소리만 하면 펄쩍 뛰신다. 며칠 전 어머니의 뜻을 기이고 의사를 불렀다.
“의사가 늙는 병도 고치우?”들어서는 의사에게 무참을 주고 주사맞기를 딱 거절하셨다. 진땀을 빼며 신음소리를 삼키시면서도 병원에 가기를 거절하였다. 자식들의 안타까움을 아랑곳하지 않아 가슴을 저민다.

그러나 하루 세 때 누구 먼저 차려 놓은 밥상 앞에 나앉아 숟가락을 든다.
“일어나려면 이걸 다 먹어야겠는데 넘어가지 않는다.” 구역질을 톱으며 숟가락을 힘없이 놓는다. 밥상에 둘러 앉았던 자식들은 머리를 탈고 돌아 앉는다.
“억지로라도 드셔야죠.”안해가 숟가락으로 미음을 입에 떠넣어 준다.
“한 숟가락 더---한 숟가락만.” 아내는 어린 아기 달래듯하여 그릇을 퍼그나 비운다.
변변히 음식을 못드신지 며칠 째인데 진창길을 더듬어 태여 난지 사흘 된 증손자를 보려갔다.


                                                 2
“나 죽거든 회갑 때 옷 있으니 돈 팔아 천 사지마라.” 어머니와 단둘이 남았을 때 내 손목을 잡고 신신당부이시다.
“뭘, 그런 부탁을 다하우, 따뜨한 봄이 멀지 않았는데 빨리 일어나 증손자도 키워줘야죠. 그래야 손자가 기뻐하지.”

“그러면 오죽 좋겠니, 그 놈을 안아만 봐도 원이 없겠는데 오금이 말들어야지, 삭신이 물러나는 모양이다.” 쪼글쪼글한 얼굴에 서글픈 웃음이 희미하게 비껴지났다. 어머니는 주머니를 뒤져 노끈으로 챙챙 동인 돈지갑을 풀더니 종이 돈 2원56전과 비닐로 꽁꽁 싸던 55전 납전을 넘겨주는 것이다. 요즘 애들은 방구들에 굴러 다녀도 줍지 않는 각전들을 한닙한닙 모아 건사하였던 것이다.

“내 손으로 그 놈에게 얼음꼬챙이 과잘 사 먹여보려 했는데 자네가 대신 이 돈으로 꼭 사 먹여.” 각전으로 모아진 3원 11전이 내 가슴을 뭉클하게 때렸다. 목구멍이 꺽 메여나 아무 소리도 낼수 없었다. 어느 해였던가 친구들이 다녀가면서 준 액수 큰 돈을 잃고도 한마디 안타까움이 없으시던 어머니가 건늬여 주는 각전이 세상에 이렇게 무거울줄은 몰랐다. 겨릅대 같이 매마른 어머니 몸에서 솟는 끝없는 사랑에 헤여 날수 없었다.

나는 각전을 웅켜쥐고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해 밖으로 뛰쳐나왔다. 나는 뒤울안 처마밑에 서서 눈등이 붓도록 눈물을 쏟았다. 새빨간 저녁 해가 서산을 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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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전 초겨울 부상만 아니 당하였어도 몹시 건강하실 것이다.
모친과 부친의 년차가18년인 옛혼인이라 무조건 순종을 미덕으로 신봉하여 남편앞에 숨 한 번 크게 못 쉬여 보았다. 하얗게 머리가 벗겨진 령감이 목침을 베고 누우면 세상이 오락가락 하여도 모르고 “공자 왈 가로사대”나 뽑으며 해를 저물 키우기 일수라 살림살이는 몽땅 어머니 차례가 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누님마저 정신 분열증에 걸려 살림살이를 하여 주어야 하였으니 그 심저 고생이 얼마였으랴!
섬약한 어깨에 두 가정을 떠메고 이악스럽게 살아온 어머니이시다.

그 해 초겨울 외손자를 데리고 하동에 갔다돌아 오는 길에 마의하 옛나무다리에 오른 어머니는 서로 마주 오는 네필 말이 끄는 고무바퀴차 사이에 들게 되였다. 어머니는 외손자를 구하기 위해 손자를 덥썩 안고 넘어졌다. 모래를 가득 실은 차는 어머니왼쪽 팔을 짓뭉게며 끌고 갔다. 천만다행으로 외조카놈은 털끝 한오리 다친 곳이 없었지만 언땅에 넘어져 차바퀴에 감겨 끌려간 어머니는 이빨이 몽땅 빠졌고 팔뼈가 하얗게 드러나도록 살가죽이 벗겨져 어깨에 가 덮히였고 온 몸은 피멍이 시꺼멓게 들었다.

퇴근하여 사연을 듣고 병원에 달려간 나는 깜짝 놀랐다. 2중 교장 허근선생님과 김태연선생님이 둘러선 침대에 누운 사람이 어머니가 옳은가? 눈을 뜨지 못하도록 얼굴이 뚱뚱 붓고 온통 피칠갑아여서 도무지 얼아 볼수 없었다. 
“어머니, 몹시 아프지요?”
“네 왔니! 광호가 일 없다니 맘 놓인다.”
“김선생님 학교 모래차에 치여 죄송하오.”허근교장이 침울한 소리로 자초지종 사연을 아뢰며 량해를 빌었다.
“나라 돈 이렇게 써되니? 학교도 돈이 없을 텐데!” 어머니는 학교측에서 그렇게 만류하는 것도 마다하고 사흘만에 퇴원하여 집에서 다니며 치료하였다.
어머니는 바로 이런 분이시다.

1976년 초겨울 내가 엽총 사고로 두 번째 상처를 입고 밤중에 현 병원에 호송되여 수술을 받고 이튿날 막냉이 동생에게만 알려 침구용품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는지 뒤늦게 안 어머니는 아침이 훨씬 지나서야 병원으로 달려왔다. 어머니는 2층 계단을 다 오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사신(辭神)에게 이 자식을 빼앗기는 환각에 물러 앉은 것이다. 호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병실에 들어선 어머니는 살아있는 자식을 확인하고서야 와락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다.
“살았으니 됐다. 너까지 갔으면 에민 어떻게 살라니?”어머니는 몇날며칠 병실을 떠나지 않고 이 자식과 아픔을 나누었다.
“집을 비우지 마라. 사람있니? 눈도 보이지 않지, 사람이 그립구나.”
강직한 어머니는 자식들의 뒤바라지에 쇠진하여 졌다. 벌써 오래 전부터 골수에 병마가 야금야금 파고 들었으련만 눈치무딘 자식이 몰랐던 것이다. 헛구역질에 음식을 못드시는 어머니는 미음 몇술을 드시고는 잠간씩 누웠다가는 바깥을 한 고패 돌고 들어온다.
“술 한잔다구 콱 취해보고싶구나. 시원히 토해도 정신 나겠는데---” 단숨에 잔을 비우고는 밖으로 나돈다. 안질이 어두워 더듬더듬 집 주변을 돌며 답답한 가슴을 달래시는 모양이다. 저러시다 넘어지면 어찌랴 걱정하여도 막무가내다. 자식들게 괴로움을 보여주지 안으려는 속샘이다. 정 괴로우면 지실에 서서 잠간씩 엎드려 아픔을 달래였다.
어머니 아픔을 들어 내새요. 저와 아픔을 같이 나눕시다.

봄이 벌써 산 넘어까지 닿았는데 해바라기 하시는 어머니는 신심을 잃어 가 답답하여 난다. 증손에게 얼음과자를 먹이며 환히 웃으시는 어머니가 보고싶다. 어머니를 부축하여 이 꽃샘추위를 넘어 꽃이 피고 가지 뻗는 무성한 계절을 맞고싶다. 
어머니는 굶고도 사시는 묘방이 있는가? 증손을 한번만이라도 더 보겠다며 강낭대 지팽이를 집고 몰래 더듬더듬 손자네 집을 찾아갔다. 한 발을 죽음의 문턱을 넘겨 디딘 굶은 어머니께서 피덩이 증손을 더듬는다. 자신의 아픔은 잊고 사랑을 몽땅 쏟아 놓으며 죽음을 맞아 태연히 걷고 있다.

억척스럽게 살아온 어머니께서 죽음을 곱게 빚는 것이 눈물겹다.


                                        4
4월22일 밤이다.
“어디 가지 말아, 적적하구나.”
“가긴 이 밤중에---”
“맹물만 먹고도 이렇게 살수 있니?”어머니는 곡식을 놓은지도 오래다. 우유를 조금씩 받아 마시고 연명하신다.
“혀가 벅쩍 말라 물이나 조금 떠 넣어다우.”
“보고 싶은 사람 부릅시다.”
“바쁜사람들 뭘 할려 부르겠니 자네만 옆에 있으면 되지.”
벽시계의 찰깍거림속에 밤은 깊어 갔다. 몹시 가슴이 답답한 모양이다. 몇술 물을 받아 마시더니 더듬더듬 내 손을 당겨다 가슴을 누르신다. 전에 없는 거동이였다.
“가슴이 아프우?”
“아프기야 하니, 가슴이 무거워나지---꼭 누러다우.”
나는 점점 차지는 어머니 손발을 부지런히 주물렀다. 살가죽만 남은 젖가슴을 지긋이 눌러 드렸다. 혈기가 도는지 몸이 따뜻해지었다.
“아, 시원하구나, 인젠 눈을 좀 부쳐라! 너희들 고생이 말이 아니구나.” 11시30분 나는 안해와 자리를 바꾸어 굳잠에 빠졌다.
이튿날 새벽 아침 지으려 나올 때까지도 어머니는 고르롭게 잠드셨다. 6시30분 안해가 재차 들어서 보니 어머니는 숨결을 거두시였다.
“여_여보, 어머니 숨진것 같아요?”
“엉?!” 나는 잠결에 안해의 놀란 더듬거림에 화들짝 놀라 맨발바람으로 어머니방으로 뛰여 들어갔다. 화로속의 불티가 사그라지듯 아무런 미동도 없이 반즛이 누운 어머니 모습은 깊이 잠든 안온한 자세였다. 허트러짐이 없는 어머니시신 앞에 최후를 바래드리지 못한 죄책감에 머리를 떨구고 말앗다. “시각을 다투는 어머니인줄 알면서도 눈을 붙이다니, 불효를 용서하세요.”
소식듣기 빠쁘게 득도한 김춘근씨가 사색이되어 떨고 있는 아내와 수의를 입힌다 뒷거두매를 맞쳤다. 그 때까지도 상실의 아픔에 이지를 추스리지 못한 나는 망연자실하여 죄책감에 벗어나지 못하였다. 김길수(현임촌장)씨가 와서여 초상집 모양새를 갖추었고 전화선에 불이 붙었다.

92세, 어머니는 조용히 가시였다. 늦게 귀가할 때마다 삽작문 밖에서 조바심 치시던 어머님의 사랑을 영원히 잃었다. 지난세기 50년대 군속 로동모범으로 상장 한 장에 낫 한가락을 받아본 것이 고작인 이 땅의 평범한 농촌 녀인인 어머니는 별찌마냥 긴 포물선 궤적을 이 가슴에 그려놓고 가셨다. 추억속에 어머니를 떠올리는 안타까움에 모대기게 되였다. 나는 생전의 어머니사진을 확대하여 작업실에 모셔놓았다. 어머니는 구천에서도 이 세상을 깨끗이 조용하게 남의 부담이 되지 않게 살도록 나를 부축하여 줄 것이다. 
                        2012년3.8절을 맞으며 4차수개

 


                        전원풍경
 


입추(立秋)가 지나서도 잘 모르겠더니 처서(處暑)가 지나자 귀뚜라미소리가 한결 높다. 여름내 어디에서 베를 짰는지 가을 한기가 돌자 집안구석에 숨어들어 귀뜰귀뜰 귀맛을 당겨 추억에 잠기게 한다. 웬일인지 단벌 치마에 딸을 시집보낸 어머니들의 가슴 아픈 한숨이 서렸다는 귀뚜라미소린 풍요로움보다 애달픈 어머니 넋두리로 들린다. 불을 끄고 누웠노라면 더욱 기승스럽게 울어대는 귀뚜라미소리에 잠을 설치고 고향집문고리를 잡고 베틀에 앉아  베를 짜시는 어머니를 불러본다.
“엄마, 인젠 쉬세요!”
“여보, 웬 잠꼬대요.” 아내가 이불깃을 제끼며 깨운다.
“응, 꿈이였나? 어머닐 뵙였는데.”

푸름히 먼동이 트는 들로 나선다. 골짜기를 따라 새벽 안개가 뭉개뭉개 산꼭대기로 오른다. 정상에 오른 안개가 실오리되여 하늘에 펴져나간다. 솜뭉치에 쌓인 산봉우리가 륜곽이 선명하게 안겨온다. 잠을 깬 멧새가 삐죠롱 울음을 토하며 머리우로 솟아오른다. 이슬에 아래도리가 푹 젖어나도 하루가 다르게  더 머릴 숙이는  벼가우거진 논뚝길을 걷노라니 가슴이 탁 트인다. 벌써 나락을 훓어 먹은  떼무리 물오리들이 걀 걀 거리며 호수에서 자맥질에 분주하다. 뚝에 사람만 얼씬 하면 파다닥  물을 치며 오리무리는 하늘로 날아오르며  항의를 한다.
“곽 곽 “
“놀이터를 빼앗아 미안하이”

초모자를 눌러 쓴  고기잡이군의 낙시질이 시작된다. 한초한초 낚시질군의 인내력을 시험한다. 숨을 죽이고 쫑대를 도정신해 쳐다본다. 햇내기 붕어딱지가 낚시를 건드리는지 쫑대가 가볍게 흔들린다.  붕어새끼가 아침부터 성화를 부려 낚시군은 조급해 난다. 낚시대를 번쩍 들어  풀숲이 우거진 곳으로 옮겨 낚시를 던진다. 웬 굶주린 놈이 낚시를 덮썩 문다.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던 메기놈이다.낚시군은 쨉싸게 낚시대가 휘도록  천천히 당긴다.
“이크, 마수거리 좋군.”

왈카닥 물이 뒤번진다. 팔뚝같은 검은 메게가 물을 헤가르며 요동친다. 싱갱이질 끝에  맥이 진한 놈이 순순히 딸려 나온다. 봄물을 따라 올라와 여름내 몸울 내던  놈이 갇힌 신세에 새콩알만한 눈을 해가지고도  제법 수염을  흐느적이며  여유작작 하게 헤염질이다.

어쩐지 지구라는  작은 땅덩이에 갇려 오구작작  맴돌며  제노라 흰소리치는 인간이 떠올라 서글픈 웃음이 났다. 아마 그래서  제멋에 산다는 말이 생겼나보다.

해가 서너발 떠올랐다. 서늘한 바람에  잔파도가 인다. 호수면은 수만쪽 거울을 펼쳐놓은듯 반짝인다. 해를 따 먹으련듯 물을 차고 솟구치던  물고기도 즘즘 해졌다. 때가 되였나 보다. 이슬맞은  풀을 먹이려  새벽에 내여 맨 어미소가 산비탈 송림사이 풀밭에 누워 새김질하며 송아지 재롱질을 본다. 한폭의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다. 전기줄에 여름내 잘 띄이지 않던 수백마리 제비들이 회의가 한창이다. 휘익 수십마리가 날아올라 깃을 치며  나란히 앉아 있는 한 가족 복판 제비에게 덮친다. 그놈은 성화에 못이겨 무리에 떨어져 가장자리에 옮겨앉아 수줍게 고개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지저귄다.

“제가 뭘 했나요! 새끼들을 키운것 뿐인데”고기잡이군은 낚시대를 멘체 멀직히 서서  제비무리에 눈길을 판다. 봄내 진흙덩이를 물어다 둥지를 틀고 새끼를 깨우더니 어느새 실팍한. 새끼들을 거느리고 강남갈 꿈을 익히는 것이 대견스러웠다. 무리를 지어 수만리를 날아갈 제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 났다. 미물들도 여린날개의 새끼들을 이끌고 만리장정에 오르는데 서성거릴 때가 아니다.

황금 파도를 탈 차비를 해야겠다. 뙈기뙈기 콩밭에 단풍이 노랗게 들었고 어떤 뙈기는 콩잎이 다떨어지고 콩꼬투리만 다닥다닥 맺혀 가슴을 간지럽힌다. 마음은 가을바람에 넘실대는 논벌에 딩군다.흘린 땀 뒤끝의 웃음집이 벌써부터 흔들린다. 늙은 아이가 된 기분에 발끝이 가벼워 난다. 다문다문 끼인 빈집을 지나 귀맛당기는 음향기 즐거운 노래소리넘치는 삽작문을 들어선다. 
“여보 받소.”
고기다래끼를 받아든  아내는 입이 함박만 해진다.
“아이구, 큰 고기 훈아, 할베 꼬기.” 

팔을 휘젔는 아장걸음에 물드는 천륜지락이 집안 구석구석을 채운다. 성큼 다가온 가을에 천만사가 여물어 간다. 온 하늘 땅에 웃음이 굴러 다닌다. 한폭의 그림속  농부의 삶이 하냥 즐겁다. 여름내 비워낸 가슴에 만석 낟가리를 쌓아 가야겠다.

김상봉 프로필 

1941년 중국 흑룡강성 연수현 북개성 출생
연변대학조선어문계함수부졸업
연변작가협회및 흑룡강조선족작가협회,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퇴직 교사.
시집 <별은 내 가슴에>, <별에 눈물이 있다>, <별이 반짝인다> 출간
동포문학 시부문 최우수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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