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 프로필 
중국 왕청현 출생 
수필 등 수십 편 발표.
동포문학 우수상, KBS한민족방송 우수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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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계묘년 토끼해가 가고 푸른 청룡의 해라고 부르는 2024 갑진년 용띠 해가 왔다. 푸른 희망과 성공을 의미하는 용띠 해라 어쩐지 새해에는 상서로운 일들만 생길 것 같아서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갑진’, 듣기에도 값지어 보이는 아주 좋은 간지이다. 사실 60간지야 순환하는 것이니까 좋고 나쁨을 가리기도 힘들다. 그냥 흘러가는 세월중의 한해이고 60간지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하늘의 기운을 대표하는 천간(天干) 10개와 땅의 기운을 대표하는 지지(地支) 12개를 짝 맞추면 60개의 천간지지가 되어, 그 60년에 이름이 붙여지고 또 60년에 한 번씩 순환한다. 그 60년을 한 갑자(甲子)라고 한다. 갑진(甲辰)은 그 41번째 천간지지이다. 갑진에서 갑은 오행(五行)에서 나무 목(木)을 대표하고 색상으로 치면 파랑을 대표한다. 진은 방위로는 동남(東南), 열두 띠에서는 용에 속한다. 그래서 갑진년은 ‘푸른 용’띠 해인 것이다. 

사람의 평균 수명이 엄청나게 길어진, 백세시대라고 떠드는 요즘에도 한사람이 두 갑자를 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오래 살아봤자 60간지 하나하고 반 정도 더 살 수 있으니까 실은 같은 간지의 해를 두 번 살기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올해 갑진년만 값지게 살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삶, 살아가는 한해 한해를 소중하고도 뜻 깊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1968 무신년(戊申年)에 태어난 내가 갑진년을 다시 한번 만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116년을 살아야 하니깐. 내 인생에 단 한번 뿐이니까 더더욱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마치 내 인생에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단 한분이었고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어 더더욱 그립고 보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소중한 것은 있을 때에 느끼지 못하다가 없어져야 비로소 그 소중함을 알게 되어 땅 치며 통곡하면서 후회하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라고 한다. 

지천명(知天命), 성현군자 공자님은 나이 50세를 지천명나이라고 했다. 하늘의 명을 아는 나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세상을 보는 눈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저절로 달라지게 됐다. 이전에는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면서 신처럼 여기고 오직 돈만을 많이 벌려고 모든 것을 버리고 노동개미처럼 힘들게 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고 그가 살아왔던 인생을 회상하니 인생이 참 덧없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세상,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떠나는 이승인데 돈 때문에 단 한번 뿐인 소중한 인생을 힘들게 살아서야 되겠는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대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하면서 살며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사는 게 멋진 인생이라고 생각된다. 늘 원망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탓하고 조상을 탓하며 부모님을 탓하면서 불평, 불만을 밥 먹듯이 하면 있던 복(福)도 달아 날것이다. 

가정(家庭)과 가장(家長), 가장은 가정의 기둥이다. 기둥이 무너지면 가정도 파탄된다. 현명하고 훌륭한 가장이 있는 가정은 행복하고 웃음꽃이 피어나지만 패가망신한 타락된 가장이 있는 가정은 초상집 분위기이고 가족들이 서로 미워하고 티격태격 싸우는 콩가루 집안이 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고 좋은 일은 없고 나쁜 일만 생긴다. 나와 아버지의 경우도 그랬다. 나는 아버지가 미련하고 어리석어서 가산을 탕진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집안을 망하게 했다고 원망했고 아버지는 내가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까지 나오고도 출세를 못했다고 미워했다. 

우리 박가네 가문은 원래 백초구에서 이름 있는 집안이었다. 큰아버지는 구장을 지내다가 현정부 판공실주임으로 승진했고 둘째 큰아버지는 현사 차대 대장으로 사업했고 아버지는 촌에서 오랜 당지부서기를 했었다. 외삼촌들도 현에서 은행행장, 모국의 국장으로 있으면서 인간성이 좋아서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이 실행되면서 소수 사람이 먼저 부유해지는 길이 열리었다. 사회배경이 좋고 관계망이 넓은 우리 집은 각종 부업도 하고 아버지는 무역장사도 하여 떼돈을 벌었다. 욕심이 과하면 망하는 법이다. 워낙 1940 경진년 용띠인 아버지는 일확천금 환상에 빠져 사기꾼들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아 전 재산을 날려버리고 은행의 빚도 못 물어 외삼촌을 엄청 고생시켰다. 각자도생인 요즘 세상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어머니는 아직까지도 그때 그 일을 외우면서 마음이 아파서 낙루하신다. 

망부성용(望父成龍), 아버지 덕분에 용이 된다는 신조성어이다. 망자성용(望子成龍)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사자성어인데 자식이 출세하면 그 덕에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뜻이다. 한조고 유방, 명 태조라 불리는 홍무제 주원장처럼 난세에 영웅이 되어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고 황제가 되면 부모만 용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한사람이 득도하면, 그가 기르던 닭과 개도 승천한다.(一人得道, 鷄犬昇天) 요즘 세상은 망자성용보다 망부성용의 시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빈익빈, 부익부’, 권력과 재부가 세습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속담은 천방야담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대통령과 영부인의 비리로 세상이 시끄러운데 제발 용산과 용에 관한 사자성어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지 말기를 바랄뿐이다. 

망자성용을 바랐던 아버지와 망부성용을 원했던 나, 사람은 누군가에게서 대가를 바라거나 바라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원망과 미움도 그만큼 커지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서 바라는 것이 하나도 없다. 내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지천명나이, 땅의 도리도 알고 하늘의 도리도 알며 인간세상 사람의 도리도 아는 성숙되고 철이 든 나이를 먹은 지도 한참 되는 나는 이제는 인생의 참된 가치와 보람이 무엇인가를 알 것 같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세상에 공짜가 없고 비밀이 없으며 정답이 없다는 철리도, 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것은 때가 되면 바뀌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자연과 인간세상의 섭리도 뼈저리게 피부로 느끼게 된다. 

복중의 복, 복중의 최고 복도 인복(인연복)이라고 하며 인연은 하늘만이 그걸 알고 때가 되면 저절로 만나게 되고 때가 되면 헤어지는 법이다. 이를 불교에서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고 한다. 나는 용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가본다. 아버지와 내 아들은 모두 경진년 용띠로 백룡이고 하나뿐인 매형과 어려서 역병에 걸려 요절한 형님은 갑진년 용띠로 청룡이다. 이상하게도 우리 집은 나만 빼고는 남자들 모두다 용띠이다. 
세상에 재난을 몰고 온다는 검은 용이라고 부르는 임진년은 나와 악연인 것 같다. 우리 민족을 멸망시킬 뻔했던 임진왜란, 7년 동안 국토가 초토화되고 1200만 인구에서 300만을 손실 본 한민족의 대재앙이었다. 그리고 2012년 임진년 또한 나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주었다. 어질고 착하신 백룡인 아버지가 잔인무도한 흑룡의 공격을 받아 싸움에서 패하여 죽음을 맞이하였다. 전라북도 익산시 원광대학병원에서 급성폐렴으로 허망하게 돌아가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하늘을 원망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람의 명은 하늘이 정하고 사주팔자도 타고난 것이니깐.

2024년은 희망과 청춘, 생기가 넘치는 성공의 해, 푸른 용이 복을 가져 오는 갑진년이다. 용이 여의주를 얻어 입에 물고 승천하듯이, 백룡인 내 아들과 청룡인 매형을 비롯한 내가 사랑하는 모든 분들과 나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 성취하시며 행운이 가득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고마운 나의 고국인 대한민국과 사랑하는 내 조국- 중화인민공화국에도 청룡의 기운이 차고 넘쳐 용처럼 비상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2024 01 01 전북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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