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Contents

머리말           
제1편  …… 유서깊은 도시 - 강릉           
제2편  …… 일제치하의 저항시인들 (1)            
제3편  …… 일제치하의 저항시인들 (2)           
제4편  …… 고려삼은          
제5편  …… 삼당시인            
제6편  …… 청록파시인            
제7편  …… 소설문학의 효시           
제8편  …… 조선시대 삼대시가인           
제9편  …… 지페로 본 유명시인학자            
제10편  …… 방랑시인과 천하기인(天下奇人)
제11편  …… 중국과 관련된 시인들
제12편  …… 경포대
맺는말

머리말

2023년5월, 나는 고희의 나이에 어려운 한국문학기행을 시작하였다. 
한번도 다녀보지 못한 오지들을 혼자 독자적인 탐방을 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산천경개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여유로운 관광유람이 아닌 문학이란 따분한 테마를 가지고 탐방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여행이 원래 있는 사물을 그대로 느끼기 위한 발자취라 한다면, 기행은 느끼고 싶은 대상을 미리 정하고 그것에 대한 조사와 준비를 거쳐 감흥을 보다 이상적인 단계에 이르도록 하는 하나의 작업이라 하겠다. 

일찍 문학사공부를 할 때 기억을 공고히 하려고 시인작가들의 출몰년대 ,대표작품 등을 도표화 하다가 문득 현지탐방을 해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지난 2018년 우연히 이 도표를 다시 꺼내보면서 신라후기의 최치원으로부터 근현대의 김소월,기형도에 이르기까지 시인、작가들을 선정하여 해당한 기념관, 문학관을 찿아서 원도표에 보충해 넣었다. 혹자의 자료가 구전하지 못할 때는 그들의 생가,  묘비, 유허지 않되면 묘소에 이르기까지 낱낱히 검색해 넣었다. 이렇게 되자 원래보다 작가 인수도 늘어나 무려 40여가에 달하였고 그에 따르는 탐방지도 훨씬 불어났다.뿐더러 굳이 기념관, 문학관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그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셈이였다. 

이렇게 하는 사이 맘속으로는 이미 현지탐방을 굳힌 상태에 이르렀다. 역사의 숨결을 몸소 체험하려는 욕구가 한층 박절히 다가왔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교과서로만 접했고 사회 나와서도 서책이나 도편에 지나지 않았던 옛성인들을 나의 눈과 피부로 직접 느끼고 싶었다.   

잇따라 시인들의 고향주소를 다시 성、도、시道,市,区,郡에 따라 깔끔히 구분하여 정리했다. 이제는 주소가 뚜렷할 뿐만아니라 어느 도 어느 시에 몇사람이 분포되였고 구체 누구인가도 일목요연하였다. 현지탐방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사실은 문학기행의 첫보를 이미 내디딘 셈이다. 

역사사건이 아닌 문인작가들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기행이다보니 장소는 한결같이 시골벽지에 위치해 있어 이번 탐방에 그만큼 교통의 불편을 자아냈다. 게다가 코로나가 풀린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시, 군 까지는 그래도 무난히 다닐 수 있었으나 면이나 면 이하의 지역은 마을버스 운영이 여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인지라 답사의 어려움을 한층 배가했다.

문학기행을 실제행동에 옮긴 나는 북쪽경계인 경기도 파주시로부터 제일 남쪽인 전라남도 해남군 땅끝까지, 한국의 제일 서쪽인 강화도에서 가장 동쪽인 강릉까지 동서남북을 종횡하다싶이 하였다.

 5월달은 서울시(5개구)를 중심으로 인천광역시(2개군), 경기(6개시), 강원(2개시) 하여, 북부지역의 답사를 마쳤고 동시에 남하탐방을 위해 카카오맵을 통하여 방문노선과 행동계획을 면밀히 작성하였다. 재충전을 마친 나는 6월초순부터 다시 남하南下기행을 실시했다. 충청(2군),경상 (3시 4군), 전라 (1시3군), 대구광역시(1시2군)을 전전하였다.

그 사이 시내버스、고속버스、지하철、전철、택시、무궁화、KTX고속렬차에 이르기까지 비행기를 제외한 대중교통을 거의  다 리용하였다. 

문학기행이 위주였지만 되도록이면 이곳의 인정세태를 살피고 일상 생활을 체험해 보자는 동기에서 최하층인이 자주 이용하는 가장 저렴한 숙박처소인 찜질방으로부터 일반여관, 모텔 그러나 혹외로 본의 아니게 부득히 ‘고급호텔’ 까지 ( 이육사문학관 )  투숙할 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꼬박 두시간 이상을 달리는 열차를 두차례나 입석立席표를 주저없이 끊었다. 이번 기행을 시작하면서 시간단축、효율제고、 비용절감이란 세가지 원칙을 스스로 실시하었기 때문이다. 

북부지역을 탐방할 때 되도록이면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 당일 치기를 견지했다. 하루 스케쥴을 완성하려면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야 했고 저녁 9시, 10시에야 돌아오기가 일쑤였다. 이런 상황인지라 언제 버젓이 밥상을 차려놓고 식사할 형편이 아니였다.지하철역 한구석에서 호떡으로 점심을 에우는 적도 있었고, 주변에 식당이 없는 벽지에서는 베낭에 넣고 다니던 계란과자로 때를 에운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번 기행에서 식사는 보통 칼국수、두부국、김밥에 비빔밥, 아니면 순대국밥이였으나 혹여 교수님들과 마추치면 결심을 내리고 주문한 것이 아구찜에 술한잔 곁드는 것이 최고였다. 

어렵스리 찾아가는 길에는 가지가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일단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올 때의 번거러움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눈앞에 펼쳐진 문학관 주인공의 문학정신과 고상한 품성에 감염되여 마음이 숙연해 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백번이고 찿아온 그 가치를 절실히 느끼었었다. 설령 주위에 누구하나 없는 산속의 조용한 묘비묘소였지만 양지쪽 아늑한 곳에 솔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싸이고 지은이들의 알심들여 세워진 묘터의 환경에 머리를 숙이군 했다. 

기념관, 문학관, 생가, 묘비 가는 곳마다 지역 정부가 주체가 되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떠나 너도나도 모금하여 어렵게 일떠세운 흔적을 역력히 찿아볼 수 있었다. 선인들이 남긴 소중한 문화재산을 후세 양성에 활성화하려는 그들의 아름다운 처사에 다시 한번 감복하게 되였다. 이상화시인의 고택이 대구 도심개발로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문화재를 당신의 눈처럼 소중히 여기는 대구시민 50만명이 일떠나 서명운동을 벌이고 성금하여 끝내 보석같은 문화재를 지켜냈다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그 일례이다. 

문화는 자체로 체험해야만이 자기 것으로 된다는 말이 있다.
이번 기행을 통해 옛성인들의 시비를 가림에 타협을 모르는 대쪽같은 성품, 나라의 흥망을 사명으로 하는 충절정신, 죽음을 초개처럼 간주하는 름름한 자태, 백성의 질고를 한가슴에 포용하는 경건한 마음을 고스란히 피부로 느끼며 그들과 자리를 함께하고 서로 입김을 나누고 조용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기에 그들의 묘소앞에 비록 나홀로 서있지만 계단을 내려오는 당신의 발자취 소리가 귀에 들렸고 당신과 서로 많고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마치 조상의 묘소를 찿은 후손처럼… 

한마디로 이번 기행은 문학사지식을 한층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새롭게 문학적교양을  업그레이드하는 좋은 기회로 되였다.

이제 내 인생의 문학기행은 비로소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향후 조선과 중국에서 만나게 될 문학인들의 발자취가 기대된다.

김창권 프로필 

1974_1977 연변대학조문학부
1989_2000 치치하얼시정부외사판공실
2000_2011 치치하얼대학외국어학원
2011 정년퇴직, 현재 대련시조선족문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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