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한동포문인협회 迪卡詩 분과 [제53호]

 

왼다리 오른다리
왼발 오른발, 참 잘 맞는 궁합

어디로 가느냐 묻지도 않고
척척 따라주며
끊임없이 나누는 흙 묻은 이야기

 


 

<시작노트>

박계옥 프로필: 1955년 3월 15일 길림성 룡정시 개산툰진 출생. 연변조선족자치주가사협회 부회장,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협회 중국동포디카시연구회(지부) 회원.
박계옥 프로필: 1955년 3월 15일 길림성 룡정시 개산툰진 출생. 연변조선족자치주가사협회 부회장,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협회 중국동포디카시연구회(지부) 회원.

어느 일요일 산책하다가 공원의 한 모퉁이에서 끝없이 뻗은 길 하나를 만났다. 징검다리 같으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게 멀리 뻗어 나간 모습에서 지친 다리를 끌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의 흙 묻은 발을 보았다. 

농부 한 생은 무한 일이라고 했던가. 이른봄부터 늦가을 수확철까지 그 흙길을 수없이 오가며 쌓아가는 낟가리, 거기에는 농부들의 흙 범벅이 된 인생사가 또렷이 적혀 있다.  

순간, 저도 몰래 찰칵 셔터를 눌렀다.  

 


 

<평설>

이준실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협회 중국동포디카시연구회(지부) 회원.
이준실 프로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협회 중국동포디카시연구회(지부) 회원.

보도블록으로 반 포장된 길에 농부의 인생사를 담아낸 <길>. 작자의 기발하고도 풍부한 상상력과 평범한 사물로부터 감성을 낚아채는 순발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단군 건국 신화에 보면 환웅이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큰 뜻을 품고 바람을 다스리는 풍백, 비를 다스리는 우사, 구름을 다스리는 운사와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에 도착하여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며 인간 세상을 다스리기 시작했다고 나옵니다. 신화이지만 한민족의 역사는 농경 문화에 깊숙이 뿌리 두고 있음을 반영합니다.

농사일은 번다하고 고된 노동으로서 아무나 감농군이 될 수 없고 감농군은 아무나가 아닙니다. 그 연고로 오랜 기간의 농경 문화는 한민족에게 근면 정직 강인 등 품질을 바탕으로 하는, 세계가 주목할만한 긍정적인 의식구조들을 형성시켜 주어 그들로 하여금 그 어떤 공동체 안에서도 온건히 자리 잡고 꿋꿋이 살아나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중 하나가 고된 노동 속에서 발현된 낙천성으로부터 풍겨 나오는 흥과 끼라고 생각됩니다. 그 흥과 끼가 풍악, 농무, 민요, 민화 등을 탄생시켜 현대 문학과 예술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왼다리 오른다리/ 왼발 오른발, 참 잘 맞는 궁합// 어디로 가느냐 묻지도 않고/ 척척 따라주며/ 끊임없이 나누는 흙 묻은 이야기” 

보폭에 맞게 엇으로 보도블록이 깔려 있는 산책길을 보면서 펼쳐낸 “흙 묻은 이야기”에서 노동의 고단함만이 아닌 농부의 즐거움 내지 더 나은 삶에 대한 동경이 느껴집니다. 

중국에서 조선족을 대표하는 가장 핫한 음악을 꼽으라 하면 아마도 “붉은 해 변강 비추네”일 것입니다. 농경 민족으로서 동3성에서 벼농사를 보급시키는 것으로부터 비롯하여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중화민족 대가정 속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성장하며 걸어온 조선족들의 “흙 묻은 이야기”를 예술화한 이 노래는 조선족들에게 세세대대 불리리라 믿어마지 않습니다. 

끝으로 너무나 익숙한, 부르고 불러도 질리지 않는 이 노래를 또 한 번 흥얼거려 보면 어떨까요.

붉은 해 솟았네
천리변강 비추네
장백산 아래 사과배 열리고
해란강반 벼꽃 피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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