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수 시인(향촌문학회 회장), 본지 칼럼니스트
정성수 시인(향촌문학회 회장), 본지 칼럼니스트

[동북아신문=정성수 칼럼니스트] 세배는 새해 첫날 부모님과 어른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예절이다. 본래는 하늘의 신에게 무사고를 기원하며 절하던 것에서 출발했다. 몸을 씻은 후 새 옷으로 갈아입고 경건한 마음으로 올리는 세배는 웃어른에 대한 새해 첫 예의이다. 또한 새해를 맞아 심신을 바로 하고 새 출발을 다짐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세배할 때 웃어른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또는 “더욱 건강히 지내십시오" 등 축원을 올리고 웃어른은 아랫사람에게 새 출발과 다짐을 격려하는 덕담으로 화답한다.

세배를 받는 사람이 세배하는 사람에게 주는 돈이 세뱃돈이다. 이때 복주머니에 넣어주는 풍습이 생겼다. 요즘은 한복을 잘 입지 않기 때문에 복주머니를 이용하지 않고 봉투나 포장지 넣은 돈을 준다.

세뱃돈은 어린이들에게 행운과 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믿어 왔다. 어른들은 어린이나 아랫사람에게 건강과 행운을 비는 마음을 갖는다. 이때 ‘학용품이나 책을 사는 데 써라’며 돈의 사용처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허튼 데 쓰지 말고 공부하는 데 쓰라는 말이다. 이런 말은 아이들 처지에서는 스트레스받는 일이지만, 주는 사람은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선조들은 세뱃돈을 줄 때 봉투에 '책값' 또는 '붓 값'이라고 용도를 지정해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경제 관념을 갖고 돈을 아껴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지혜가 있었다. 세뱃돈을 주고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직은 아이인 만큼 경제교육도 중요했다. 금액은 어른들의 재정 상황이나 친밀도에 따라 다르다. 보통 1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의 금액을 주었다.

설날은 그 자체로 즐겁고 설렌다. 특히 아이들은 들뜨기 마련이다. 한 해에 한 번 세뱃돈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용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날이 가까워지면 아이들은 세뱃돈을 받기 전부터 친척 수로 세뱃돈 액수를 가늠한다. 금액에 맞춰 사고 싶은 물건이나, 하고 싶은 것을 정하기도 했다.

세뱃돈으로 사는 것은 장난감, 만화책, 게임기 등 다양하다. 세뱃돈을 저금하는 아이들은 은행이나 저금통에 세뱃돈을 넣고, 나중에 큰돈이 필요할 때 쓰기도 했다. 세뱃돈을 기부하는 어린이는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의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에게 본인이 받은 세뱃돈을 보내주거나, 동물 보호나 환경 보호 등의 좋은 일에 쓰기도 한다.

세뱃돈의 유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몇 가지 설 중 하나는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 있다. 중국에서는 세배는 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은 자녀에게 훙바오(紅包)라는 붉은색 봉투에 돈을 넣어 나눠줬다. 붉은색은 행운과 발전을 뜻하는 것으로 빨리 성장해서 돈을 많이 모으라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의 경우는 세배에 대한 성의 표시로 곶감이나 대추 또는 과일이나 떡 등을 싸 주었다. 돈을 주고받는 것을 천한 짓으로 여긴 탓이다. 일제가 이 땅을 지배하면서 널리 퍼지게 된 세뱃돈은 요즘에는 당연한 것으로 굳어졌다.

세뱃돈의 역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였다. 문헌에 의하면 1900년을 전후해 세뱃돈, 절값이라며 돈 주는 풍습으로 바뀌었다. 1920~30년대에는 어린이들이 세뱃돈을 받지 못했다고 울면서 떼를 쓰기도 했다. 6·25전쟁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 1960~70년대에는 경제 사정이 빠듯했지만, 세뱃돈을 주는 풍습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1972년에 만 원권이 등장했다. 당시 만 원은 현재가치로 환산(물가상승률 감안)하면 20만 원 정도로 고액 논란이 있었다. 90년대, 경제 성장이 본격화하면서 세뱃돈은 만 원 단위로 껑충 뛰었다. 이후 5만 원권이 등장하면서 세뱃돈에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요즘은 중·고등학생 정도면 5만 원권 한두 장을 내밀어야 주는 사람의 체면이 선다. 하지만 세뱃돈을 주는 쪽에서는 경제적인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다. 최근 세뱃돈을 주는 규정을 ‘1·2·3·5·10’이라고 한다. 유치원생 이하는 1만 원, 초등학생은 1~2만 원, 중학생은 2~ 3만 원, 고등학생은 3~5만 원, 대학생은 10만 원이 적정선이 되었다. 특히 취직을 못 한 자식들이 많은 까닭으로 결혼 전까지 세뱃돈을 받는 실정이다. 여기에는 아직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어른들의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세뱃돈을 주는 부담을 줄이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한 방법으로 현금 대신 문화상품권을 주는 것도 고려할만하다. 문화상품권은 5천 원 단위로 되어있어 책을 사거나 영화를 볼 수 있어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하면서 모바일 상품권이 인기를 끌고 있다. 모바일 상품권은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고, 종이 상품권보다 5%가량 저렴해서 좋다. 부모들이 인터넷에서 사, 아이들 스마트폰으로 직접 전송해 줄 수 있는 잇점이 있다. 세뱃돈은 액수보다는 마음과 의미를 담아야 아이가 어른이 되어도 그 의미를 더 크게 생각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돈의 가치와 희소성' 원리를 알게 하는 것이다. 세뱃돈을 주신 할아버지에게는 어떤 돈이었는지, 아빠는 얼마나 힘들게 번 돈인지, 어른들이 수고한 대가를 알게 해야 한다. 경제는 돈의 흐름이다. 돈의 의미와 돈에 대한 감사함을 느낄 때, 세뱃돈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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