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신문= 전정환수필가] 살아가면서 자기에게만은 절대 일어날 일이 아닌 것처럼 여기는 일(이를테면 치매나 신체마비 등)들이 있다. 이 말을 살짝 각도를 조금 바꾸어서 들여다보면 남들한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자기한테 일어나는 건 전혀 가당치 않다는 얘기로 들릴 수도 있다. 

그걸 굳이 비틀린 시선이라고 하지는 않겠다. 사람들 내면의 깊은 곳에서 자신의 건강을 기원하는 간절한 념원이 때로는 조금 왜곡된 방식으로 존재할 수도 있으니까. 주변의 사람들중 이런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이 결코 소수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마도.
나의 벗 심양 친구도 단연코 그중 한분이다.

그런데 세상일이라는 건 때로는 참으로 종잡을 수 없다.
바로 이런 “가당치 않은 일”이 심심하면 한번씩 눈앞에서 전개되군 한다.
너무 건강이 차고 넘쳐서 건강모델로 불리던 나의 벗 심양 친구가 휠체어를 타고 내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염병이야?”
나는 눈앞에 벌어진 장면이 너무도 놀라 소리를 질렀다.
“뭐 그렇게 되었네...”
친구의 얼굴은 슬픔으로 꽉 차 있었다. 그 슬픔은 억제되고 조여져서 차거운 돌멩이처럼 굳어져 있었다. 절대 풀리지 않을 것처럼.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숨이 헉 막혔다.

거동을 보아서 그가 몸을 움직이어서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얼마 남아있지 않는 듯싶다. 상황은 정말 이렇게 한여름 밤의 서늘한 바람처럼 기척도 없이 썰렁하게 찾아오는 것일까? 
얼마전까지만 해도 활어처럼 펄떡펄떡 뛰던 녀석이 어찌 이런 몰골을 하고 나타날 수 있으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눈앞의 정경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어쩌다 한번씩 우리네 인생은 정말 필연보다 우연에 의해 더 치명적으로 좌우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한동안 할 말을 잊었다. 

무슨 약을 잘못 먹어서 하지 신경계통이 마비가 되였고 그건 아무런 사전 징조도 없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들이닥쳤다고 한다. 심양시안의 유명하다는 병원, 용하다는 의사 이 잡듯이 찾아다녔지만 별무소용. 그래서 상해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병원이면 무슨 돌파구가 있겠지 하는 큰 희망을 품고서 상해 어느 한 대학병원 신경내과의 소문난 교수를 찾아갔더니, 이제 더 이상 여기저기 병원 찾아다니며 헛돈 쓰지 마시고 그저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게 버는 거라는 것이었다는 것. 그러니까 뭐 그렇게 좀 사시다가 돌아가시면 되는 겁니다, 하는 소리를 에둘러 말한 것이다. 마지막 희망까지 사그리 앗아가는 말이다. 친구가 주어섬기는 소리에 등골이 오싹해났다. 

후유! 세상만사 참으로 요지경이다, 하는 말이 나의 내면에서 들끓었다.

정말 너무 건강해서 늘 고민이 꽉 차 있던 친구다. 축구장에서 90분 동안 펄펄 날고도 거뿐하다는 말은 그가 입에 달고 사는 자랑거리였다. 탁구장에 가서 하루종일 승부를 겨루어도 조금도 지치지 않는 에너지는 젊은 사람들 뺨치는 수준이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의 선망에 찬 시선을 독차지 했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건강비결은 우리들 대화의 단골메뉴로 되었다.

“내가 여섯 살까지 엄마 젖을 먹을 수 있었던 게 아마도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이게 바로 친구가 입버릇처럼 떠올리던 건강비결중 하나이다.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여섯 살때까지 엄마젖을 빨아먹었다고 한다. 그건 어쩌면 막내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나처럼 맏이들은 동생이 생기면 엄마젖을 동생한테 물려줘야 한다. 세 살 터울인 동생이 내가 6세가 된 후에 태어나기만 했어도 내가 이렇게 골골거리며 살지는 않을 텐데, 하는 푸념은 친구를 만날 때마다 한번씩 내 여린 마음을 할퀴며 스쳐 간다. 훗날 어머니 말씀이 내가 동생이 태어난 후에도 엄마젖을 먹겠다고 갓난 한 살배기 동생을 밀쳐내며 덤벼들군 하여서 숱한 두들겨 맞았다고 한다. 어쩌면 그때 벌써 나는 친구의 말대로 모유를 많이 먹어야 건강장수한다는 비결을 터득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친구의 건강비결은 엄마젖에서 그치지 않는다.
뭐 빨간고기 적게 먹고 생선 많이 먹고, 토끼처럼 풀 많이 먹고... 그리고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는 충고는 늘 마지막 단계에서 특별히 강조된다. 많이 걸어라. 틈만 있으면 움직이어라, 하는 것들이다. 뭐 이제는 너무 들어서 식상한 얘기들이지만 건강스타가 된 친구의 입에서 흘러나오면 자자구구 진리의 말씀으로 또박또박 자리를 잡아준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이 되면 잊지 않고 내뱉는 롱담 한마디가 있다. 이 롱담은 내가 그한테 배워서 숱한 써먹기도 한 롱담이다.

“너희들이 건강하고 든든해야지 너희 다 떠나간 후에 나 혼자 살아남아서 무슨 재미로 살겠니?!”

친구는 롱담이지만 롱담 같지 않은 말을 하며 약간 아리숭하면서도 뻔한 표정을 짓군 하였다. 그 시각이면 녀석은 정말 주변 친구들 다 떠나가고 한 150살 쯤 된 자기 혼자만이 홀로 덩그러니 남아있는 세상을 실존으로 떠올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손가락을 빨며 녀석의 행복에 겨운 과시를 바라보던 그때, 마음속에서 부러움과 함께 약간 시샘 비슷한 게 움씰거렸던 기억은 아직 조금도 희미해지지 않은 채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은 휠체어와 신변 도우미의 신세를 지지 않으면 거동조차 어려운 장애인이다. 나는 자기도 모르게 나의 아랫도리를 내려다보았다. 아직은 멀쩡했다. 하지만 녀석과의 그 무슨 비교우위 같은 건 꼬물만치도 건져낼 수 없었다. 자신보다 더 외롭고 아픈 삶이 있었음에 위안을 느낀 것도 아니다. 남의 고통에 자신의 위로를 걸치고 알량한 우월감 한 가닥을 굳이 찾아내어 인생의 달콤함을 새긴 것도 아니었다. 녀석은 나의 절친이다. 네가 작아지면 내가 커지는 그런 치졸한 세속적 관계가 아니다.

하긴 그동안 녀석이 잘난 척 한껏 하고 돌아친 거 생각하면 이봐, 난 아직 씽씽거리며 나다닐 수 있거든! 하는 생각을 살짝 들먹이며 속으로라도 잠깐 우쭐댈 수도 있었으련만 도저히 그런 기분을 만들어낼 수가 없었다. 녀석이 현재 처한 상황이 너무 안타깝고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 
“뭐 이러다가 죽어야지 뭐...”
친구는 완전히 패닉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하고 있는 거야?”
나는 그의 말을 뚝 잘라버리며 버럭했다. 아니, 버럭하는 체 했다. 그 이상으로 내가 건넬 수 있는 위로의 방법이 없었다.

친구도 나에게서 무슨 위로 같은 것을 바라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왜 하필 자기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하는 원망과 피해의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무얼 그렇게 잘못했다구...”
친구는 하늘을 향해 원망을 퍼붓고 절규를 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설픈 위로의 말 같은 거 잘못 끄집어내었다가는 친구를 더욱 처절한 패배자로 만들어버릴 뿐이다. 
나는 그저 나의 말재주와 상상력이 너무 빈약한 것이 한스러웠고 그래서 미안하고 황송했다. 나는 그저 버벅거리기만 하였다.

락차가 너무 컸다.
너무 건강했고 너무 건강해서 너무 오래 살가봐 걱정을 했었는데 찰나의 순간에 운명이 바뀐 것이다. 친구는 그 락차를 부드럽게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완전히 체념하고 절망하고 있었다. 고통과 비애를 크게 부풀리고 확장하며 스스로 공포를 만들어내어 자학하고 있었다. 

친구의 비탄과 암울한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안절부절 못했다. 마치도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그의 이런 비극에 깊숙하게 관여된 것 같은 자책감이 들기도 하였다. 당장 쥐약이라도 한 사발 꿀꺽 들이마시고 친구의 옆에 너부러져서 같이 휠체어를 타고 있어야 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위로해주고 싶었다. 진심으로! 친구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희망이 아직 살아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생각만큼 쉽게 다독일 수 있는 사연이란 말인가!

살아가다가 생각지 않게 엄청나게 인생이 무너지는 시점을 만나면 원망과 넋두리, 한탄의 소리만 켜켜이 쌓이고 커진다. 이런저런 멋들어진 가치가 와닿을 수 있는 통로는 그가 넘어지는 순간에 막혀버린다. 여기저기 사방에 현란하게 진렬되어 있는 인생의 도리 따위로 얻을 수 있는 위로 같은 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건 항생제나 진통제 몇 알로 벌떡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놓은 달콤한 처방일 뿐이다. 
나는 앞을 가로 막는 소통과 설득의 벽이 이처럼 높고 거대한지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구를 위로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마음이 타들어갔다. 

나는 친구가 들어주거나 말거나 한소리 하고 싶었다.
이제 우리도 언젠가는 몸에서도 삐걱소리가 난다. 그저 네가 조금 먼저 그런 소리가 났을 뿐이야! 라고.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다.
더 무서운 재앙은 하지마비가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내면에 체념과 마비가 생기는 것이라고. 
이렇게 속으로 운을 떼고 나니 하고 싶은 말들이 물밀 듯이 절절하게 올라왔다...
이런 말들이 안 먹혀 들어가면, 그래도 요지부동이면 호통으로 한소리 질러버리고 싶었다.

낫살이나 처먹어가지고 왜 그렇게 고집불통이야? 자네가 얼마나 잘났게? 왜 자네에게는 하지마비와 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 되는 데? 왜 그렇게 거만하고 오만하고 자만에 빠져 있는 거야?
나는 친구가 듣건 말건 좋아하든 싫어하든 개의치 않고 이렇게 세상이 떠나갈 듯 소리소리 지르고 싶었다. 목에다 핏대를 세우고!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속으로 한껏 되뇌이던 눈물 겨운 대사들은 입안에서 우물우물하다가 말았다. 그런 말을 했다가는 내가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나도 나가 떨어질 것 같았다. 어느 쪽으로 치고 들어가도, 어느 각도에서 주물러도 결국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 같았으니까!

녀석은 나의 절친이다. 그동안 나의 삶의 반경 지근거리에서 그림자처럼 동행했다. 나머지 인생도 함께 보내고자 했던 친구중 한명이다. 그런 친구가 지금 원인 모를 마비와 통증을 껴안은 채 어둡고 습한 고통의 늪에서 휘청거리며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한시도 차분해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의 마음을 돌려세우고 싶은 것은 사실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방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느 쪽으로 바라봐도 어느 방향에서 뚫고 들어가도 절벽뿐이다. 막막했다. “무너지는 인생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우리 가볍게 흘러가요!” 하는 노랫말이 참 무심하게 들린다. 그건 멀쩡한 사람이 하릴없어 지어낸 노래다. 정말 붕괴라고 부를만한 그런 변화가 찾아온다면 ‘가볍게 흘러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얼어붙고 응고된다. 세상의 모든 물체에서 색채가 싹 사라진다.

그날 나는 쓸쓸하게 자리를 떴다. 친구의 하지마비만 확인한 채, 친구의 절망과 비애를 속절없이 쳐다만 보다가 안타깝게 자리를 떴다. 

그후 나의 마음은 조금도 내려가지 않았다. 중요한 뭔가를 잃어버린 듯 허전한 심정이 늘 나를 따라 다니며 무겁게 짓눌렀다. 나는 머리를 싸맸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는 생각으로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지혜를 쥐어짜도 뭔가 조리 있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쓸만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건 정말 깊고도 어두운 비밀이여서 내가 영원히 해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나는 어디에도 가닿지 못한 채 그저 공허하게 허우적거렸다.

정녕 그것은 누구도 무마할 수 없는, 어르고 달랠 수 없는 나의 심양 친구 일인분의 고통인 것일까, 하는 생각이 내 마음을 처연하게 채우고 있을 무렵, 희망의 신호는 뜻밖에도 먼 곳에 있는 다른 한 친구의 아픈 사연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화불단행이라는 섬뜩한 말을 떠올리게 하는 또 한 친구의 불상사가 심양 친구의 변고에 접한지 불과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를 엄습했다. 세상일이란 때로는 원하든 원하지 않던 기묘하게 반복되고 잔인하게 겹친다. 문학청춘을 함께 한 길림의 어느 친구가 치명적인 척추손상으로 사지마비에 로출되었다는 참담한 소식이 전해왔던 것이다. 무슨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리다가 순간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 

정말 툭하면 하나씩 쓰러진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또한번 온몸이 얼어붙으며 나의 온 육신에도 마비가 일어나는 것 같았다. 사지마비라면 눈만 깜빡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아닌가. 이건 도저히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심양친구와의 불상사와 거의 겹쳐서 이건 어느 누구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같이 느껴졌다. 다 낡아빠진 농기계처럼 덜컹거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 어느 날의 자화상 같기도 했다. 

이제 나는 또 사지마비에 걸리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걸까? 너무 마음이 쓰라렸다! 저물어가는 황혼의 길목에서 우리는 이제 또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경험해야 할까?

먼 곳에 있는 길림친구에게 뭐라고 위로를 건내고 싶었지만 자칫 자신의 슬픈 사정을 타인에게는 그저 모른 체하고 지내고 싶어할지도 모르는 일이라 서뿔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나는 길림친구가 겪고 있을 마음의 고충과 비애를 헤아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그 아픔도 사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마음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리니!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얼마나 가슴이 쓰라릴까. 
그런데 그건 나의 부질없는 기우였다.
어느 날 우리 단체방에 뜻밖에도 이 길림친구의 댓글이 올랐다. 댓글내용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길림친구는 롱담을 하고 있었다. 
밝게, 찬란하게 웃고 있었다.
거기에는 사지마비가 없었고 사지마비로 인한 슬픔과 비탄도 없었다. 단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리는 단꿀과도 같은 잔잔한 미소만 차고 넘칠 뿐이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길림친구는 사지가 마비되었어도 어떤 희망이 아직도 반짝이고 있다는 것을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에게 알려주려고 했던 것일까!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일까!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 찰나에 나의 내면에서 뢰성과도 같은 울림이 일어났다.

나의 심양 친구야! 이 녀석아!

그 울림과 거의 동시에 상실과 좌절, 체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나의 벗 심양친구에게 무수하게 할 말이 생겼다는 확신이 번쩍이는 섬광처럼 찾아왔다. 그게 무슨 말인지는 한마디도 떠오르지도 생각나지도 않았다. 아무런 맥락도 없고 아무런 갈래도 없고 아무런 형체도 없었다. 하지만 확신과 신념이 철석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단 1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랬었다. 한 인간이 가장 신뢰하는 확신이 생겼을 때 발생하는 그런 감동과 뜨거운 발열체가 나의 내면에서 치렬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건 심양 친구를 만나면 절절하게 터져나올 것 같았다. 그의 마음을 뿌리째로 흔들 것 같았다.

친구의 눈에서 촉촉이 차오르는 희망의 불빛이 어디에선가 반짝이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깨달음이 너울거리고 있는 듯 했다.

2023년 11월 6일

전정환 작가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졸업
중앙민족어문번역국 번역원
료녕인민출판사 문예편집
료녕민족출판사 조선문편집실 주임 역임
현재 한서대학 전통문화연구소 연구원
중단편소설 및 수필 수십 편 발표
아리랑소설문학상 등 수상
동방문화대관(공저), 삼조시선 등 저서 및 번역도서 다수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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