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환 수필가  
         전정환 수필가  

[동북아신문=전정환 수필가] 입추가 지난지도 한참 되었다. 
푸른빛이 선연했던, 푸른 초록이 눈부시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초여름의 어느 날, ‘봄이 벌써 가버렸나!’ 하고 탄식을 하던 기억이 아직도 따스한 온기를 품은 채 눈앞에서 가물거리는데, 벌써 가을의 빛이 완연하다. 이제 곧 여름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고 추풍락엽의 가을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낼 것이리니! 

야속한 세월은 제멋대로 앞으로만 굴러간다.
또 한 계절을 살아낸 내 모습은 해질녘의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을까. 아니, 중오에 작열하는 태양에서 얼마나 더 멀리 떨어져 나갔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치고 올라와 마음 한켠이 서늘해진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잘 수습하기로 했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맞이할 여름이 이제 얼마 더 남아 있을까? 하는 따위의 뼛속까지 슬퍼지는 상념은 아예 끼어들 틈새조차 주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머리털이 얼마나 더 빠져나갔는지, 주름의 고랑이 얼마나 더 깊어졌는지 하는 것도 굳이 확인하지 않기로 했다. 미간과 인중에 또 한 겹 더 스며들었을 고집은 아예 그저 모른 체 넘어가겠다. 

괜히 그런 무겁고 심각한 감정들을 만들어서 가뜩이나 섬약하고 물렁물렁해진 심경을 들볶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얼마나 더 저물어갔을까” 하는 본질적인 질문이 가볍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건 해가 바뀔 때거나 계절이 물러갈 때마다 기어코 몸살처럼 한번씩 침범하여 마음을 헤집어 놓곤 했다. 참 끈질기게 우울하고 슬픈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그런데 이번 가을맞이는 왕년과 좀 다른 풍경이 전개되고 있다. 그런 몸살이 지나가고 락담과 허탈감만 남아있던 자리에서 서서히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는 동력이 완만하게 기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는 희망의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글쓰기가 가져다 준 선물이다.
여름이 마지막 기염을 토하며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던 팔월 중순, 그동안 숨돌릴 틈 없이 전전했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그런데 이때 문득 문학이 나를 찾아왔다. 내가 억지로 소환했던 건 아니다. 나도 모르게 스며들었다. 소년문학도인 나에게 문학은 여전히 내가 동경하는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문학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갈망은 이미 오래전에 나의 일부가 되어 내 가슴 어디엔 가에서 얕은 잠을 자고 있다가 지금 슬며시 고개를 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나는 완전히 글쓰기에 삼매경에 사로잡혔다. 수필인지 칼럼인지 특정하지 않았다. 뭐 잡문 나부랭이라고 해도 괜찮을 그런 글들이 오히려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 맛이 땡겼다. 

그동안 꾹꾹 눌러놓았던 하많은 사연들, 수많은 생각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무언가를 불태워 버릴 것만 같은 강렬한 감정이 몸 안에 들어왔다. 
정체 모를 허무와 불안으로부터 어이없이 몸부림치던 젊은 날의 자화상도, 나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추억들도 거리낌 없이 얼굴을 내밀었다. 때로는 사소하고 보잘것 없고 가련한 것들이 아등바등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는데...뭐 별로 거부감없이 차분하게 들여다보며 색다른 의미를 새기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즐거운 체험을 돌이키면 즐거움이 배가 되어 넘쳐났지만, 슬픈 추억을 들먹이면서 별로 슬프지 않았다. 설사 그 슬픔이 완고하게 버티고 있는 다 하더라도 한결 가벼워지고 부드러워진 듯 했다. 그래서 슬펐지만 아프지 않았다. 후회하고 힘들었던 순간도 예쁘게 즐기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내가 완성도를 갖춘 우수한 작품을 써내야 한다는 사명감에 휘둘리거나 짓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개별적인 감정에 집중할 수 있었으며 그런 감정을 밝고 명랑하게 리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 그런 연고 때문이였으리라. 
나는 기성 작가들의 본새처럼 굳이 저 멀리 어딘가에 숨어있을 심후한 의미를 좇느라고 아글타글하지 않았다. 세상을 말하고 사랑을 말하고 우정을 말하는 얼굴 뒤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 너머의 의미를 제멋대로 후벼내고 파고들고 발효시키고 싶지 않았다. 정말 마음이 편했다. 그저 나의 일상을, 나의 체험을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나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의 본색으로 려과없이 드러내는데 집중했다. 있는 그대로 보고, 보이는 그대로 오롯이 녹여내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벅찼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분에 넘치는 감동이 시종일관 나를 동반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들먹이지 않았던 말들이 사품치며 튀어 오르는 날들도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 누구도 다치지 않은, 누구도 설렵하지 않은 소재를 다룰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심장이 두근거리는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하면 마치도 에둘러서 자기 자랑하는 것처럼 뒷맛이 조금 허전해지기는 하지만, 때로는 나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놀라운 문필의 정열이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써놓고 나서 이게 정말 내가 쓴 게 맞는지 의심이 들기도 한 적이 있었던 것! 

너무 마음에 와서 딱 꽂히는 말들이 부드럽고 따스한 리듬을 흠뻑 머금은 채, 적당하고 알맞춤한 자리에서 기왓장 맞물리듯 빈틈없이 맞물려서 광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정말 신비롭고 황홀한 체험이다.

하지만 이런 건 다 그저 부산물이다. 나를 더욱 자지러지게 흥분시키고 근원적으로 흔들리게 하는 것들이 있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벅찬 만족감이 밀려온다는 것, 살아가는 의미가 떠오르고 부각되고 확장된다는 것, 그건 해가 넘어가고 계절이 바뀌고 나이가 들어가는 슬픔을 깡그리 상쇄하고도 남을 에너지가 되어 다가온다는 것!

그렇다!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그래서 무언가에 빠져서 몰입하는 시간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참 멋진 일이다. 그곳에서는 자신을 생동감 넘치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치렬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건 나이와 관계없이 어느 단계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무언가에 꽂히면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어리석고 우둔한 내 성미가 어줍잖게 밝고 순연한 긍정을 만들어낸 것일까? 그런 품성이 그저 멀리서 동경하는 마음만으로 끝났을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소망을 실존으로, 내 것으로 만들어놓았을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경지는 추억과 감동과 끔찍하게 사실적인 마음이 서로 따뜻하게 맞물려 호흡하고 순환하고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마음이 헝클어지거나 절박하게 들고나더라도 크게 허둥거리는 일 없이 바람결 잘 통하는 잔잔하고 여유로운 마음 한자락을 딱 붙어잡고 있어야 한다. 때로는 밀폐하고 감추고 싶었던 마음속 쓰라린 파편 하나쯤, 조금은 추하고 볼품없는 옛일 한 건 정도 서슴없이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밑바닥까지 험악스럽게 죄다 드러내어 솔직담백한 진실로 접근해가는 투사의 정신이 필요하다.

이런 심성과 용기, 정신이 녹아들면 문장은 바로 꿈틀거린다. 온 육신에서 전류 같은 것이 내달린다. 부드럽고 온화하고 솔직하고 진실해진 자신의 모습에 자신이 먼저 푹 빠져버리는 수도 있다. 진실을 잘 녹여낸 열매에 마음이 마냥 푸근해진다. 즐거워진다. 

이쯤해서 글쓰기는 매력을 넘어서 마력을 느끼게 한다.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 하나가 하루를 즐겁게 해주고, 뜨겁게 공감했다는 누군가의 격려의 말 한마디가 한달 아니 반년을 행복하게 해준다. 그리고 푸른 봄의 이야기 한 자락이 나이 스무살 아니 서른살 정도는 팍 줄여준다. 
이건 정말 행복의 본질에 가닿게 하는 비법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나도 서서히 문학의 늪에 잠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소소한 감정을 넘어서는 시대의 사명감을 향해 씩씩하게 손짓 해보고 싶다. 내 내면의 깊은 감동으로, 내 령혼의 맑은 샘물로 한 떨기 농염한 꽃을 피우고 싶다.

그래, 이왕 시작한 거 열심히 한번 해보자!

2023년 8월 30일 심양교외의 루추한 처소에서 글초

전정환 작가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졸업
중앙민족어문번역국 번역원
료녕인민출판사 문예편집
료녕민족출판사 조선문편집실 주임 역임
현재 한서대학 전통문화연구소 연구원
중단편소설 및 수필 수십편 발표
아리랑소설문학상 등 수상
동방문화대관(공저), 삼조시선 등 저서 및 번역도서 다수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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