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신축년이 서서히 저물어가고 2022 임인년 양력설이 바야흐로 래일모레이다.
한해동안 사용해오던 탁상력 따위들을 새 력서로 갈아주고 새해 첫 스타트부터 계획들도 알차게 세우면서 새로운 한해를 즐겁게 멋지게 행복하게 보낼 꿈과 희망으로 부풀어오르는 갈림목이기도 하다. 낡은 해와 새해를 가름하는 양력설은 그래서 언제봐도 새롭다.

그러나 우리한테 양력설은 새해 첫날 정도로만 각인될 뿐 설이 아니다. 본격적인 설은 음력 정월 초하루인 음력설을 설로 알고 있다.

하긴 설빔 같은 우리말이 무색하리만치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새옷도 척척 사입을 수 있고 색다른 음식도 가격에 크게 제한받지 않으면서 마음대로 사먹을 수 있는 요즘이다. 그러니 음력설이라 해도 오랜만에 온집 식구가 모여서 얼굴을 확인하는 날 정도라고나 할가. 거기에 친척이라도 오는 경우면 그야말로 설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예전에는 음력설을 맞으면 벌써 일주일에서 열흘 아니, 부지런한 살림군들은 아예 한달 정도 시간을 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설음식들부터 준비해왔다. 눈발을 헤치며 장을 봐오는데 간혹 산토끼나 꿩 같은 것을 만나게 되면 값을 크게 흥정하지도 않고 사버린다. 또 집에서 직접 해야 하는 음식들도 미리미리 식재료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어릴 때 집에서 순대도 만들고 엿도 달였었다.

방학이라지만 소조공부를 해야 하므로 낮에 친구네 집에 가서 소조공부를 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어느새 가마에서 엿이 푹푹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다. 내가 돌아온 것을 본 할머니는 주걱으로 엿을 스윽 긁어서는 내앞에 쑥 내민다. 나는 냉큼 입을 가져다대다가 너무 따가워서 그만 뒤로 벌렁 자빠진다. 할머니는 그것이 또 우습다고 허리를 부여잡으신다.

엿이 다 달여지면 그것을 둥근 모양으로 식혀준다. 엿이 굳어진 것을 우리는 판대기엿이라 불렀고 그것을 창고의 독에 넣어두었다. 그러다가 설에 오락을 한바탕 벌리고 난 다음 군입질거리가 생각날 때면 그 판대기엿을 가져다가 칼등으로 툭툭 쳐 깨부수어서는 먹군 했다.

그런데 누가 그 추운 겨울밤에 어두운 창고에 가서 엿을 가져오느냐가 항상 문제였다. 원칙만 내세우는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화투놀이나 윷놀이에서 진 팀이 엿을 가져와야 한다고 우기셨다. 팀을 잘 만나야지 지는 날이면 개고생이다.
어린 나이에 우둡고 음습하며 랭기만 감도는 창고는 썩 우호적인 장소가 아니였다. 게다가 눈보라가 왱왱 몰아치는 겨울밤에 엿 가지러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벌칙이였다.

나는 누나 때문에 졌다고 투덜거리며 커다란 아버지의 외투를 머리꼭대기부터 눌러쓰고는 손전지를 켜들고 앞장을 선다. 나보다 세살 이상인 누나는 여유롭게 뒤따르지만 정작 창고앞에 이르면 나는 걸음이 자꾸 느려지고 그렇게 되면 누나가 내 손에서 열쇠를 나꿔채고는 앞장서서 창고로 들어간다. 시커먼 구석에서 당장 무슨 괴물이라도 나올 것 같은 그런 느낌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억지로 참는데 그때따라 누나를 한번 놀래울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다.

나는 갑자기 손전등을 꺼버리며 우왁- 소리를 질러버린다. 그 바람에 가뜩이나 긴장해서 손더듬을 하던 누나는 그만 와- 울음보를 터뜨린다. 나는 누나가 울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터라 그만 더럭 겁이 나서 같이 울어버린다.
우리의 울음소리에 깜짝 놀란 식구들이 다투어 창고로 돌진해온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애두 참 하고 혀를 끌끌 차고 아버지는 너 이노옴 어디 보자 하는 투가 력력하시다.

막상 장난을 하고나니 후폭풍이 예감되면서 더럭 후회가 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렇게 가져간 엿을 입 가득 물고 먹을 때면 온갖 시름과 걱정도 다 사라지고 만다. 방학숙제를 잔뜩 미루고 하지 않은 그 엄청난 걱정까지도…
엿은 그렇다치고 순대는 우리집의 전통명절음식이다. 제정때 순대장사, 국밥장사, 랭면장사를 하셨던 할머니의 호령에 따라 순대만들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순대를 만들려면 밸을 깨끗이 씻는 것이 우선이다. 돼지밸을 씻는 임무는 나와 아버지의 몫이고 속을 만드는 것은 할머니, 어머니, 누나와 녀동생의 몫이다. 물론 할머니의 레시피대로 어머니가 만드셨지만 누나와 녀동생은 기어이 자기네도 순대속을 만들었다고 우긴다.

             한영남 시인
             한영남 시인

밸은 먼저 물에 몇번 헹구어 대충 험한 것들을 제거한 다음 냄새를 잡는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주로 된장과 밀가루로 빨래하듯이 주물러서 냄새를 제거했다. 요즘 식당들에서는 세탁기에 돌려낸다고도 하는데 그렇게 하면 맛이 순수하지 않다. 밸 손질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때론 오전 내내 그 일만 하기도 한다.
순대속은 대체로 선지와 찹쌀과 멥쌀을 적당히 섞어주고 거기에 시래기를 넣어준다. 일단 그 정도만 해도 순대속 모양새가 나지만 거기에 조미료들을 곁들여야 한다. 소금 적당량, 후추 적당량, 아지나모도 적당량 등을 한데 넣고 잘 섞어주면 된다.
이제 밸도 손질이 끝나고 속도 다 되였으니 넣어야 한다. 아버지는 빈 병을 가져다가 실에 휘발유를 적셔 병아가리에서 우리 손으로 한뼘 정도 되는 데를 한고패 둘러서 매준다. 그리고 거기에 불을 붙이고 밀대로 톡톡 치면 신기하게도 병아가리가 뎅겅 잘라진다.

밸의 한끝을 실로 잘 매고 다른 한 끝에 금방 잘라낸 병아가리를 거꾸로 집어넣으면 그게 깔대기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작은 사발로 순대속을 떠서 넣는데 할머니는 눈짐작으로도 고루 섞어서 넣어줘야지 너무 되게 들어가고 너무 묽게 들어가면 이제 삶을 때 터진다고 훈계가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그럭저럭 순대속을 다 넣으면 앞마당에 땅가마를 걸고 불을 지핀다. 가마에서 김이 실실 피여오르고 물이 벌렁벌렁 끓기 시작하면 순대를 넣어주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끓는 물이 튕겨 손을 데기 쉽다.
그렇게 한참을 끓이다가 아버지가 느닷없이 싸리꼬챙이를 가져오라고 하신다.
순대를 삶는데 장작을 때면 되지 갑자기 불 피울 때나 쓰는 싸리는 왜?
그래도 군말 못하고 다소곳이 가져다드리면 아버지는 그 선뜩거리는 손칼로 싸리꼬챙이를 연필처럼 잘 깎아준다. 뭔가 일이 생길 것 같은 조짐이지만 재미있고 신기하다.

가마뚜껑을 열면 물이 사품치고 그 사품치는 물속에서 순대들이 빙글빙글 돌아눕는다.

그때면 아버지는 금방 깎은 싸리연필로 순대의 몸통을 쑤욱 찔러준다. 그러면 때론 김이 새여나오고 때론 물총을 냅다쏘기도 한다. 순대속을 넣을 때 공기가 같이 들어가기에 이렇게 삶을 때 찔러주지 않으면 순대가 다 터져 먹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넣은 순대를 잘 알아보게 하려고 일부러 파란 색실로 끝을 묶어두었었다. 그런데 그건 참 어리석은 짓이였다.
내가 넣은 순대는 잘 저어서 고루 넣지 않았기에 순대가 고르지 않고 가늘고 실하고 울룩불룩 아주 가관이였다. 근데 파란실로 묶어놓아서 금방 들통이 나버렸다. 이런 참 괜한 짓을 했잖아?

순대는 아무리 열심히 만들고 삶아도 혹시 터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순대가 터지면 국가마 밑굽에 순대밥이 갈앉게 되는데 그것을 순대국이라고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빨이 부실해서 순대껍질을 씹는게 참 고역이라 그 순대국을 잘 먹었다.
엿도 되였고 순대도 되였으면 이제 폭죽이나 사가지고 설이 오기만 기다리면 되였다.
드디여 그 대망의 그믐날이 된다.
그때는 텔레비죤이 없던 시절이라 라지오를 틀어놓고 온집식구가 모여앉아 만두를 빚는다. 어머니는 솜씨가 잽싸서 아버지, 누나, 녀동생, 나 넷이 싸는 만두피를 혼자서 거뜬히 담당하신다.

만두속은 두부를 보자기로 싸서 꾸욱 짜 물기를 제거한 다음 으깨놓는다. 그리고 배추김치를 역시 물기를 꾹 짜서 제거한 다음 그대로 잘게 다져서 한데 섞어준다. 거기에 고기를 발라낸 꿩의 뼈를 다져서 같이 섞어준다. 꿩의 뼈는 잘 다져야지 아니면 먹기 어렵다. 이 만두속에는 후추가루가 상상 이상으로 많이 들어가서 아주 진한 후추냄새가 풍겨야 만두가 제맛을 낸다.
물론 만두를 삶을 때는 꿩고기로 끓인 꿩탕이 제격이다.

그믐밤이 깊어지면 폭죽소리가 점점 요란해지고 그러면 어서 나가서 터치우지 못해 속이 바질바질 탄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고서는 누구도 감히 나가서 폭죽을 터칠 궁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드디여 열한시가 넘어 자정을 향해 시계가 바쁜 걸음을 재촉하면 아버지가 이제 폭축 터치울가 하신다.

야호!

만세 삼창이 나오기도 전에 신을 꿰고 밖으로 내달린다. 뒤에서는 옷을 더 입으라는둥 모자를 쓰라는둥 어머니의 잔소리가 잔등을 매섭게 갈겨댄다.
그렇게 폭죽을 터치고 집에 들어오면 만두가 다 되여서 우리는 그것을 먹으며 새날을 맞았다.

그믐밤에 자면 눈섭이 하얗게 된다고 해서 잠이 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버텨보려고 하다가 결국 쓰러져 자버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는 환경오염이다 방화다 해서 폭죽도 터치지 못하게 하고 새옷을 입어도 기뻐서 입이 귀에 걸리는 일이 생기지도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다 같은 설인데 이제는 설풍속도 많이 달라져서 설 쇠는 재미는 많이 적어졌다. 그리고 설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는 말을 하면 요즘 애들은 픽픽 웃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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