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온지 30여년이 되는데 매번 음력설을 맞이할때는 착잡한 생각이 난다. 
고향에서는 부모형제 친구들이 모여서 먹고 마이고 놀지만 일본에 온후에는 그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음력을 페지하고 양력만 사용하기 때문 말이다. 

그래도 주말이나 공휴일이 겹치면 친구나 가족이 모여서 설을 쇠는것이 가능한데 평일이 겹치면 모이기가 힘들다. 금년에는 그래도 토요일이 설날이였기 때문에 고향친구 가족들이 모여서 설명절을 즐겁게 보낼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양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두번씨나 설을 쇠는 셈이다. 첨음에는 고향친구들이 자주 만나서 좋다고 생각했지만 매년 두 번씩이나 설을 보내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모임이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왜서 일본에서는 음력을 페지했을가?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동아시아에서는 역사적으로 태음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근대에 들어와서 일본이 1872년(明治5년)처음으로 태음력을 페지하고 태양력을 쓰기 시작했으며 조선왕조는 갑신개혁 후인 1895년에 태양력을 도입하고 중국은 신해혁명 후인 1911년에 도입하여 각각 이듬해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 후 아시아의 나라들이 태양력을 도입하여 세계적인 표준이 되였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조선, 중국, 몽골,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의 나라에서는 여전히 음력설을 쇠고 있다고 한다. 가족들이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어린이들에게 세뱃돈을 주는것은 거의 비슷하지만 명칭은 조금씩 다르다. 
   한국이나 조선에서는 설날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춘절이라고 하고 몽골에서는 차강사르 라고 하고 베트남에서는 뗏 이라고 한다.

력서는 중국에서 조선(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해졌다고 한다. 야마토조정 (大和朝廷)은 역서를 만들기 위해 백제로부터 승려를 초빙하여 604년에 처음으로  력서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1872년까지 약 1천300년 이용되여 왔으니 일본문화 속에는 음력의 전통이 있는것이다. 태양력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태음력과 병용해서 사용했으며 1910년에 태음력을 완전히 페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1945년에 GHQ(유엔 원동군 사령부)가 일본을 점령했을 때도 음력을 사용하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의 오키나와 현이나 미야기 현의 일부 지역에는 음력설을 쇠는 습관이 남아 있고 신사(神社)나 사당의 행사에도 남아있다고 한다. 

일본이 태음력을 페지하고 태양력을 채용한것은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당시 일본은 서양의 선진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서양화를 추진하는 시대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국가 재정문제였다고 한다.
   태음력은 1년에 13달(윤달)이 되는 해가 있기에 1872년에 태양력을 도입하면서 이듬해에는 13개월째 공무원의 월급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어 재정 문제가 많이 완화되였다고 한다.  

탈아입구(脱亜入欧)를 주장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도 태양력의 도입에 찬성하고 책을 써서 그것을 보급하는데 힘썼다고 한다.
 일본이 명치유신을 추진하고 탈아입유(脱亜入欧)를 제창하여 15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래서 일본은 동아시아 나라들과 조금 다른 문화가 형성되여 있으며  동아시아 인이지만 마음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섞인 상태다.

한국인이나 중국인이 일본인과 소통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원인이 바로 일본인의 서양화가 한국이나 중국보다 더 심각하게 진행되였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일본인은 바나나족]이라는 말이 있다. 바나나는 껍질은 노란색이지만 속은 하얀 색이라는 말이다. 상당수의 일본인은 백인을 숭배하고 영어나 프랑스어나 독일어나 스페인어를 배우는것이 우월한 인간이 되는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어에는 서양에서 도입한 외래어가 많은데 이는 서양숭배 사상과 연관이 있다.
   물론 일본사람들 중에는 서양사람을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중국문화나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본은 유일하게 근대에서 러시아와 전쟁하고 미국과 전쟁하고 유럽열강들과 전쟁한 나라이다. 그 바탕에는 동아시아에서 서구열강이나 백인을 쫓아내고 동아시아를 해방한다는 사상이 있었고 [대동아공영권]을 제창한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수 있다.
  전후에 일본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고 선진국이 되였으니 동아시아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2년에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이 세계은행의 보고서에서 기적이라고 평가받고 세계경제의 엔진이 되여 세계화의30여년간 동아시아가 다시는 백인의 지배를 받지않고 세계에 우뚝 서게 되니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시대에 들어가고 있다. 

필자도 30여년간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일본은 진정 동아시아로 회기할수 있을가? 회의적일 때도 있다.
 일본의 정치가나 지성인과 여론들이 망설이고 있는 듯하다. 

일본이라는 큰 배가 동아시아를 향하는가? 아니면 미국이나 서구를 향하는가?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강철 李 鋼哲 .

1959년 길림성연길현출생. 1985년 중앙민족대학 철학전공 졸업, 1987년  중국 북경시위당교 연구생 졸업. 1987-1991년 중화전국총공회 중국공운학원 강사.

1991년일본유학, 립교대학원 경제학연구과 석사 박사과정 수료, 2001- 2006년 일본도쿄재단 연구원,내각부정책연구소 연구원, 2006년부텨 호쿠리쿠대학교 교수 , 일본조선족연구학회 회장 역임(현재 명예회장).

2020년 일반사단법인 동북아미래구상연구소 설립하고 소장을 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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