쯔쯔미 카즈나오(일반사단법인 동북아미래구상연구소 이사)

[동북아신문=지난 쯔쯔미 카즈나오 칼림니스트] 저번 에세이에서는 일본에 온 한국 젊은이들에게 응원가를 보냈는데, 이번에는 한국에서 일본에 온 한국인이나 조선족 분들, 즉 코리안 그리스도인에게 일본 생활 관련 조언을 드리고 싶다. 실은 십수 년 전에 저의 대학원 선배이자 그 때 한국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었던 어느 한국인이 저한테 책 중의 1장을 쓸 기회를 주셨어다. 그리고 출판된 책의 제목이 『일본선교 1%의 벽을 깨라』이었다.
'
1%…'밤이 되면 붉게 빛나는 십자가가 곳곳에서 눈에 띄고 국민 4명 중 1명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일본의 최신 "종교연감 2019년판"에서도 전국의 종교단체의 신자수에 차지하는 기독교계 신자의 비율은 1.10%이며, 이 수치도 종파끼리의 중복계산 때문에 실태보다 많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일본과 한국은 아주 비슷한 나라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십수년 전과 변함없이 그리스도인이 여전히 적다. 그래서 일본에서 "저 예스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새해에 절이나 신사에는 가지 못 해요." 라든가 "일요일은 예배가 있으니까 출근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면 대부분의 일본인은 "에…"라고 놀랄 것이다. 

일본에서는 왜 그리스도인이 적은건가?  세가지 이유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첫 번째, 16세기 말부터의 기독교 억압 정책 때문이다. 한민족에게는 침략자인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 秀吉)지만 일본에서는 선교사 추방을 명한 인물로서도  알려져 있다. 히데요시는 "일부 선교사들이 일본인을 노예로 매매하고 있다."는 정보와 "선교사들 배후에 숨은 포르투갈의 군사력을 우려했다."고 한다. 이 흐름이 에도시대가 되어도 계속되어 1612년 마침내 기독교는 금지되었다.

두 번째, 일본에서는 기독교가 권력에 대한 저항운동의 상징이 되지 못 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나 독립후의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에 있어서 기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해 왔지만, 일본에서 한국 정도의 규모로 기독교가 권력에 대한 저항운동을 전개한 역사는 없다.

그리고 셋 번째, 이것이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하나의 신만을 섬기는일신교에 대한 저항감이다. '팔백만(야오요로즈:八百万)의 신'이라고 듣자마자 무순 뜻인지 아는 젊은이는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2010년에 "화장실의 하나님(トイレの神様)" 이라는 노래가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유행했다.  

미야자키 하야오(宮崎 駿)감독의 애니메이션은 일본 이외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고 그의 작품 "천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し)"을 조금이라도 보면, 일본이 다신교의 전통을 가진 나라인 것을 잘 알수가 있다.

다신교인 불교의 영향도 크다. 한국에서 말하자면 불교가 성했던 고려완조가 근대까지 계속되었다고 가정하면 된다. 부드러운 사람이라도 인내에는 한계가 있다는 '부처의 얼굴도 세 번(仏の顔も三度)'이라는 속담이 대학입학시험으로 나온다. 입시가 끝나고 속담을 잊어버려도, 경찰 형사드라마의 '호토케쌍(仏さん)…'이라는 대사는 일본인에게는 친숙하다.  '호토케(ほとけ)'는  '불'의 한자가 아닌, 원래 일어에서 유래하는 읽는 방법이고 '쌍'은 사람의 호칭이다. 

이 '호토케쌍'은 유체나 죽은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사람은 죽으면 모두 다 불님이 된다는 사상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생전에 나쁜 일을 한 사람이라고 해도 죽으면 그 사람에 대한 욕을 하면 안된다는  '불님의 욕을 하면 안 돼' 라는 가르침을 필자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 가르쳐 받은 기억이 있다.

불교나 불님은 이렇게 일본인에게 있어서 친속하지만 이 불교, 실은 일본에 원래부터 있던 신토우(神道)와의 공존도 실현되었다. 수는 적지만, '진구우지(神宮寺)'라고 불리는 신과 불님이 함께 모셔져 있는 절이 그것이다.  또 한국에서 말하면 불국사나 조계사에서 단군도 모셔져 있다시피 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기독교는 한국에 비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코리안 그리스도인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일본의 한국계 교회를 보고 있으면 일본의 교회와 달리 전도활동을 열심히 했을 뿐만 아니라 예배 후에도 식사나 성경 공부회에서 적극적으로 주변과 교류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외로워지기 쉬운 일본인에게 도움이 된다. 도쿄에서 춤과 노래가 정말로 잘 하는 조선족 그리스도인을 본 적도 있다. 꽤 즐거웠다.

교회에 초대하고 싶은 일본인이 있으면, 그 일본인과 둘이서 가끔 놀러 갈 수 있을 정도의 관계를 구축한 뒤에 '교회의 행사에 오시지 않겠어요? ' 라고 말을 건내면 좋을 것이다.

이처럼 일본에서 전도활동이나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는 코리안 그리스도인은 한국과 달리 여러가지 배려해야 할 사항이 있는데, 여기에서 국민성의 차이가 보이는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하려고 한다.

코리안 그리스도인: '이번에 교회에서 크리스마스가 있구요. 한번 오시지 않겠어요? 식사나 노래나 즐거울거에요.'
일본인(그리스도인 아님): '아… 그렇습니까. 재미있는 것 같네요. 시간이 되면 연락드릴게요.'

회화문뿐이지만  이 경우 설사 일본인이 미소를 짓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일본인이
교회에 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의 독단으로 그 이외의 예상되는 대답도 들고 싶다.
① '미안해요… 난 종교나 관심이 없어서요.'
→ 분명한 거부지만 이런 답장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흥미가 없다' 라는 말이 상대방에게 실례라고 느끼는 일본인이 많아서 그렇다.

② '미안해요. 난 불교신자니까….'
→이것도 거부하지만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인 스스로에 '저는 뭐뭐신자'라는 자각이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자신을 비롯해서 가족이 불교신자라고 알고 있어도 그 불교가 무순 종파에 소속되어 인는지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③ '그래요…실은 이전부터 기독교에 관심이 있었어요. 예정 확인해 볼게요.'
→이렇게 대답을 했다면 맥이 있다.

네개의 예를 들었지만 과연 처음의 예가 가장 많고, 이어서  ②일 것이다. ①과 ③은 적다고 생각된다 . ①이 적은 이유는 모호함을 선호하는 국민성, 또 ③이 적은 이유는 위에서 말아는 바와 같이 일본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적기 때문이다. 

①과 같은 솔직한 대답이 기피되는 배경에는 '칼을 가진 무사 중심의 시대가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아군인지 적인지를 긴가민가하게 만드는 것, 즉 '기치선명(旗幟鮮明)을 피하는 태도'가 생존의 비결이었다' 는 역사적인 요인이 있다고 필자는 추측하지만, 이것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써보려고 한다.

어쨌든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싶은 사람에게는 일본의 교회가 맞을 것이고, 그 한편 '진심은 사람의 고리에 들어가고 싶지만 용기가 없다…'는 사람에게는 실은 코리안 그리스도인이 맞는 것이지 아닐까 싶다.

'애매한 대답'도 '독특한 미소'도 문화라고 이해하고, 코리안 그리스도인은 스스로의 장점을 발휘해주시면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쯔쯔미 카즈나오(堤 一直)

쯔쯔미 카즈나오(堤 一直) 프로필 

1980년 일본 토교 출생. 조치대학 법학부 졸업, 동대학원 글로벌스타디즈연구과
석사과정, 와세다대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박사(학술). 이후 일본, 한국에서 대학강사로 근무. 현재 행정사, 번역자, 연구자.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 일본학연구소 연구위원.

연구분야는 동아시아 국제관계.

번역서(한→일)로 복거일(2003)『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 : 21세기의 친일 문제』 북앤피플 및 허남정(2014)『박태준이 답이다 : 한일협정 50년 실종된 한일관계』
씽크스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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