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환 수필가 

[동북아신문=전정환 수필가] 요즈음은 승용차가 옛날 자전거처럼 흔해 빠진 세상이 되었다.
시골의 농부도 승용차를 몰고 논밭을 오고 간다고 한다. 이제는 누가 비엠더블류를 타느냐 아니면 벤츠를 타느냐 하는 정도가 겨우 화젯거리에 걸릴가 말가 할뿐이며, 그나마도 김이 많이 빠져있는 것 같다. 고급승용차를 타고 한껏 가닥을 잡아도 본인 스스로만 잔뜩 기를 세우고 위세를 느끼는 데 비해서 외부의 주목도는 별로 신통치 않다. 기실 고급승용차를 끌고 다닌다고 해도 누가 뭐 딱히 선망어린 시선을 보내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다. 요즘 세상에서는 고품질 승용차보다도 한 접시에 200원을 호가하는 소고기 등심 불고기 여나문 접시를 해치웠는데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술좌석 마이딴(买单)하는 사람이 장땡이다. 

하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내가 청춘이었던 세월, 수백만 인구가 사는 중국 네 번째 대도시 심양시에도 승용차 몇 대 굴러다니지 않았다. 지금처럼 소소한 골목길까지 온통 승용차로 채워지고 심심하면 한번씩 정체를 만드는 일은 그때 꿈에서조차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승용차와 나 사이에 참 웃지 못할 유치찬란한 이야기 한 건이 얽혀 있다. 그건 내가 부귀영화와 개인적 영달을 꿈꾸며 한껏 들떠있던 지난 세기가 저물어가던 어느 해 가을날에 있은 일이다.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졸업하고 북경으로 배치되어 직장생활을 한지 반년도 못되는 시점이었는데 중앙의 어느 한 대회 문건 번역원으로 출전하는 기회가 생겼고, 그런 막중한 직책 때문에 직업상 편의용으로 승용차 한 대 배당 받았다.

가을 하늘이 파랗게 열리고 선들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다독여 주는 구월의 어느 날, 말끔하게 새차처럼 잘 닥달한 상해패 승용차가 내 앞에 멈춰섰다.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려 기립자세로 깍듯하게 “어디로 모실가요?” 하는 말이 떨어졌을 때 하늘로 붕 뜨는 희열이 나를 찾아왔다.
나를 모시는 전용차다!
26세 젊은 총각이 만나는 광영의 순간이었다. 
내가 ‘하이야’를 타고 다니다니! 
이런 생각이 찰나에 나를 휩쓸었다.

내가 사는 시골에서는 승용차를 ‘하이야’라고 불렀다. 그건 두말할 것 없이 한자리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당시에는 돈낟가리를 타고 앉아도 절대 향유할 수 없었던 물건이다. 그래서 벼슬 한자리 크게 하는 사람들을 ‘하이야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 내가 그 “하이야 타는 사람”이 된 것이다!

조상 팔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봐도 대체로 다 머슴꾼이나 농삿꾼들 뿐인 별 볼일 없었던 천안 전씨가문이 나 전아무개 대에 이르러 드디어 ‘하이야 타는 사람’이 하나 나타난 것일까! 

자기도 모르게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국장님이 출퇴근시에 집무용으로 승용차를 타고 오가는 풍경을 먼 곳에서 황홀하게 지켜보며 손가락만 빨았는데 지금은 내가 그 당사자가 된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격정이 상투끝까지 차올랐고 온몸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 마음은 한시도 차분해질 새가 없이 그냥 하늘위로 둥실 떠서 넘실거렸다.
이제 그 영광의 순간순간이 빛을 발하고 불꽃을 튕기게 할 차례이다.
이 물건 어떻게 굴리고 달릴가? 즐거운 고민은 지체없이 바로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전용차를 써먹은 곳은 씨쓰(西四)조선족랭면점이다. 당시 북경에서 유일한 조선족 음식점이다. 그래서 사흘이 멀다하고 드나들던 곳이다. 내가 사는 단위 숙소와는 약 시오리길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니군 했다. 
그런데 이날은 자전거가 아니다.
전용차의 조수석 뒷자리 간부좌석에 떡하니 앉아 고개를 있는 대로 내젖히고서 거들먹거리며 찾아가는 내 마음은 허공에 건뜻 들려있었다. 

하긴 랭면맛도 그렇다. 자전거 타고 가서 먹는 것과 승용차를 타고 가서 먹는 것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자전거를 타고 땀 뻘뻘 흘리며 시오리길을 달려가면 아무리 젊은 나이라고 해도 에너지가 거의 고갈된다. 그전 때식에 먹었던 음식물이 모두 발효되고 소진되어 배가죽이 등짝에 붙을 때이다. 그러면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본능이 먼저 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음식의 맛을 느끼며 새길 경황이 없이 걸신들린 듯이 빈 배를 채우데 집중한다. 그건 논밭에서 힘겨운 논갈이를 하다가 돌아온 허기지고 굶주린 황소가 여물을 먹는 격이다.
하지만 전용차에 몸을 싣고 차창밖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느라고 힘겨운 발길질을 하는 민초들을 자애롭고 따스한 련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가슴 벅차게 찾아오는 우월감을 새김질하며 찾아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식당에 들어서자 자기도 모르게 뒷목의 심줄들이 빳빳하게 당겨졌다. 위풍당당 한가닥이 전류처럼 나의 중심을 관통하며 순간순간을 존엄하고 숙연한 모습으로 다듬고 가꾸어주었다. 나는 식탁앞에 착석을 하고 나서부터 시종일관 우아하고 고상한 동작을 취하느라고 온 신경을 도사리었다. 평소처럼 랭면을 깨물지 않고 씹지 않고 후르륵 넘기지 않았다. 입안에 넣고 점잖게 천천히 조금씩 음미하며 새김질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난생 처음으로 랭면발의 쫄깃쫄깃한 맛과 육수물에 녹아든 여러 가지 산해진미의 묘미와 영양소까지 섬세하게 새기면서 조선족랭면의 중후하고 깊은 맛과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민족음식문화의 정수를 제대로 새길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랭면을 배불리 먹고 밖으로 나오는데 자기도 모르게 배가 앞으로 내밀어졌다. 그것은 절대 음식물로 배를 가득 채워서 생긴 일만은 아니었다. 아마도 전용차를 타본 사람만이 배가 내밀어지는 진짜 의미를 가려보고 인지할 수 있을 것이리라. 
그런데 랭면점 문밖을 나서는 순간 갑자기 허전한 생각이 찾아왔다. 이 황홀한 그림을, 그 달콤한 장면을 나 혼자 보기 아까웠던 것이다.

아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면식이 있는 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감동하는 장면을 만나고 싶었다. 
누군가 운전기사가 딸린 전용차를 타고 다니는 나를 발견하고 감탄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당연히 일순위는 그녀였다!
리별은 했지만 아직도 내 가슴에 늘 연분홍 그리움으로 물들어 있는 그 처녀! 그녀가 지금 내 앞에 나타나서 이 장면을 보았더라면 어떤 표정을 지을가? 안 봐도 비디오다. 나한테 시집오지 못한 걸 뼈저리게 후회하는 모습은 아마도 깊숙이 감추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 참느라고 안간힘을 쓰며 아무런 일도 없는 척 모대기는 그림은 절대 그녀의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을 것이다. 빨갛게 상기되었다가 하얗게 질리기도 하고... 그걸 잡으려고 실룩거리는 얼굴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불합리와 부조리... 그러면 나는 그런 그녀를 한없이 자비롭고 따스하게 내려다 볼 것이다! 서열의 꼭지점에서 존엄한 모습으로 가닥을 잡고, 까마득하게 하위지점에 있는 그녀를 련민과 배려에 찬 어른의 시선으로 내려다 볼 것이다! 
생각할수록 꿀항아리가 엎어지고 깨소금이 쏟아져나왔다. 그때 내가 군침을 얼마나 꼴딱꼴딱 삼켰을까? 그걸 저울에 달랐다면 몇근이나 될까? 하는 건 지금도 무척 궁금한 사안으로 남아있다.

그다음 순위는 대학교 동창님들이다.
대학교 동창님들 누구라도 하나 걸려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어서 금방 찾아왔다. 금방 졸업하고 헤어진 동창님 누군가 이 모습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는 도처에 다니며 소리를 지를 것이다.
“전아무개가 출세했어, 운전기사 딸린 전용차를 타고 찡찡 다니더라!”
이런 말들이 날개라도 돋친 듯 동창님들속으로 날아들어 무한감동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시면 그네들은 나와 동창이 된 것을 얼마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그 덕분에 그네들도 어깨가 들썩일 것이다. 뭐 연변대학이 변두리 대학이라고? 그따위 소리 싹 집어치우라고 일갈할 것이다. 그리고 그네들은 이렇게 소리높이 웨칠 것이다. 

소위 좋은 대학 나왔다는 금년도 졸업생들중 전용차 타고 다니는 넘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생각이 깊숙이 흐를수록 감동이 차올랐고 격정이 흘러넘쳤다. 
그래, 이런 걸 어찌 살맛 나는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리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휘둘러봐도 면식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기다려도 면식이 있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번역팀에 동원되어있던 한달여 세월동안 수도 없이 전용차에서 오르내리며 안타깝게 두리번 거렸지만 끝내 면식이 있는 사람은 한 마리도 뻥끗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하다못해 시골의 불알친구라도 하나 나타났으면!” 하고 바랬지만 그것마저도 그저 물거품처럼 되버렸다. 그때 허탈했던 심정은 아직도 똑같은 크기로 똑같은 강도로 나의 마음속 어느 한 구석에 남아서 나를 다시 한번 더 허탈하게 한다.
그후 아마도 한 10여년동안은 “그때 누구 하나라도 걸려들었으면 정말 여한이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무시로 한번씩 나를 찾아오군 하였던 것 같다.

어리석고 유치한 허영심이었을까, 아니면 즐겁고 상쾌한 에너지이었을까, 명예로운 추억이었을까?

그때로부터 또 유구한 세월이 흘렀다. 
나는 지금 그때보다 좀 더 철이 들었을까. 더 어른이 되었을까. 철이 들고 어른이 되어서 그 사안을 바라보는 마음과 생각에 세상 사람들에게 익숙한, 세상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무르익은 판단이 찾아왔을까? 답이 제꺼덕 안 나온다. 하지만 어쩌면 답은 벌써 있었을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시종일관 그걸 “자기과시”나 “허영에 들뜬 마음”과 같은 모자를 씌워서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부드럽게 바라보며 합리화하고 싶은 마음에 강력하게 지배당하고 있었다.

그닥 내세울 게 못 되는 “영광”이지만 거기에 대한 자부심 또는 긍지감은 어느 현자가 말한 것처럼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인정욕구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적당한 선까지는 부드럽고 너그럽게 봐줘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너무 선을 넘어서서, 너무 홀딱 드러나게 작동하면 좀 흉물스럽게 보이겠지만 적절하게 오간다면 ‘조본산(赵本山)코미디’ 정도로 세상 살아가는 재미를 돋우는 윤활유로 기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나의 내면에 빈틈없이 덮여있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떻게 시시각각 고상하고 거창하고 완벽한 일들만 골라서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세상의 일들 모두 양념 딱 맞게 조미료 딱 맞게 조리할 수 있겠는가? 신이 아닌 다음에야! 만들어놓은 영웅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데 이 정도 가볍고 옅은 론리로 어쩌면 본 사안에 이미 적나라하게 표면화되어 있는 껄끄럽고 겸연쩍은 색채를 걷어낼 수 있을가? 어쩌면 세간의 잣대로 이미 재량이 되어 있는 품평을 되돌려 놓을 수 있을가? 까놓고 말해서 상황에 관한 객관적인 인식으로 분별한다면 시비곡직은 사실 뻔할 “뻔”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 색채를 걷어내고 싶지 않았다. 세간의 관습적 품평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수십년전에 발생했던 그 소아급의 유치한 코미디 같은 서사가 이토록 오랜 세월 사라지지 않고 나를 감미롭게 감싸고 있으면서 때로는 웃기며 즐겁게 해주고, 때로는 아예 나를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 속으로 침몰하게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 뻔하고 도망갈 곳 없는 미숙함과 치기어린 소행이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뭐라고 딱히 이름할 수 없는 명랑하고 발랄한 에너지 한 올 상큼하게 건져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걸 굳이 “자기과시”나 “허영심”이라고 비하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것을 나의 내면에서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작은 영광이라고 하기로 했다. 어쩌면 이건 내가 만들어낸 나만의 편견이고 짧고 멍청한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핀잔을 해도 나는 그런 생각을 조금도 고쳐 쓰고 싶지 않다. 누가 뭐라고 나무라도 구구하게 무슨 해명 같은 걸 하고 싶지 않다.

약간 뭔가 모자라고, 뭔가 빠진 허술한 론제 같지만 거기에는 분명 거역할 수 없는 달콤하고 유쾌하고 고소한 맛이 치렬하게 스며있었다. 그건 살아가면서 딱 자기만 아는, 조금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어 내는 작고 소소하고 은밀한 영광이다.
그렇다! 그런 무수한 작은 영광들이 만들어낸 무수한 즐거움이 세상을 즐겁게 만들고 조화롭게 만드는데 보템이 될 수 있다면 그걸 굳이 나쁜 놈이라고 단정할 리유는 없는 게 아닌가. 

아마도 그래서였던 것 같다. 
나는 오늘 또다시 그 약간 씁쓰름하면서도 감미로운 추억을 떠올리며 지난날 나의 이 이야기를 귀에 굳은 살이 박히도록 들어봤던 주변의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다. 

전날의 그 사연이 유치하고 어쩌면 그닥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런 작은 움직임이 밝고 우렁차고 반짝이는 희망을 지향하는 나의 신조와 믿음에 신뢰할만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태주었다고.
나를 간지럽히고는 가볍게 살아지곤 했다고.
이 세상에다 잘 보이지 않는, 그닥 대단하지 않는 즐거움 한 건을 살짝 보태고 살풋이 사라지곤 했다고.
그리고 어쩌면 그건 세상사람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희미한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고...

(2023년 11월 6일, "문화시대" 2024년1호 수필코너 '조색판인생'에 발표됨)

전정환 작가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졸업
중앙민족어문번역국 번역원
료녕인민출판사 문예편집
료녕민족출판사 조선문편집실 주임 역임
현재 한서대학 전통문화연구소 연구원
중단편소설 및 수필 수십편 발표
아리랑소설문학상 등 수상
동방문화대관(공저), 삼조시선 등 저서 및 번역도서 다수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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