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웅 교수 시조] 류은종 교수를 곡하노라

[부록] 조선족 대표학자 류은종 교수

류은종 교수 
류은종 교수 

연변대학의 우수한 교수이고 절강월수외국어대학 종신교수이시며 우리 민족의 저명한 언어학자인 류은종 교수님은 병마로 모진 아픔을 겪다가 2024년 3월 14일 새날 0시 15분에 위해 석도에서 향년 83세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3월 15일 오전 위해 석도조선족로인협회에서는 소속 위해시 영성시 장의관에서 근 100명이 참가한 장중한 장례식을 가지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바래였습니다. 

장례식에는 류은종교수님의 가족과 중국한국어교육연구회, 연변대학 외국어학원 조선문학학부, 중앙민족대학 자제 강용택, 절강월수외국어대학 동방언어학원, 상해복단대학 조선어학부, 상해외국어대학 한국어학부, 산동 청도대학 한국어학부, 산동대학 한국어학부 등에서 마련한 화환이 놓이고, 연변대학 김호웅교수와 김강박사, 상해외국어대학 리춘호교수, 산동대학 윤윤진 교수부부, 절강월수외국어대학 림선옥 전임 교수부부가 모처럼 참가하였습니다.

장례식에서 석도조선족로인협회와 더불어 연변대학 김강박사가 추도사를 드리고, 김호웅교수가 연변대학 전임총장 김병민교수의 추모글을 대독하였습니다. 아래는 연변대 김강박사가 연변대학 외국어학원을 대표하여 드린 추도사를 원문 그대로 보여 드립니다.

<이광인 편집자의 말> 

 

<추모사> 

류은종 선생님을 추모하여

여러분:

오늘 우리는 더없이 비통한 심정으로 연변대학의 우수한 교수이고 절강월수외국어대학 종신교수이시며 우리민족의 저명한 언어학자인 류은종 선생님을 추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선생님은 만년에 모진 병마로 아픔을 겪다가 2024년 3월 14일, 새벽 0시15분경에 향년 83세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러 연변대학 외국어학원과 조선언어문학학부 전체 교직공과 학생들을 대표하여 깊은 추모의 마음을 전함과 아울러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선생은 음력으로 1942년 3월 8일 길림성 안도현 명월진의 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여나셨습니다. 일제치하라 선생님네 가족은 아주 어렵게 살았습니다. 선생님은 철이 들기 전부터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강철같은 의지와 황소 같은 힘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모진 고생을 겪으며 자랐으나 남다른 총명과 노력으로 열심히 공부해 연변대학교 조문학부에 입학하여 고금중외 언어, 문학 작품들을 널리 독파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습니다. 

선생님은 1967년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하고, 1982년 7월에 연변대학교에서 첫 석사로 졸업하였으며 1989년 4월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종합대학 1호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일찍 연변모택동저작번역실에서 모택동시사와 로작 번역에 종사하였고 연변언어연구소에서 사전편찬사업 책임자로 일하셨으며 <조선말규범집>과 <규범집해설>을 집필하고 어휘규범화사업에 종사하였습니다. 1986년부터 연변대학 조문학부 부학부장, 학부장, 연구생지도교수로 종사하였으며 길림성조선어학회 비서장, 중국조선어학회 부비서장, 상무리사, 중국조선어사정위원회 상무리사,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겸직연구원으로 일하셨습니다. 

연변대학 교수시절에 풍부한 학식을 가지고 교수활동과 연구활동을 하셨습니다. 

《현대조선어문법》,《수사학》,《어휘론》,《의미론》등 학과목을 강의하고 중국에서 조선어의미론 분야의 최고학술저서인《조선어의미론연구》등 저서를 펴내셨습니다. 선생님의 학술활동은 정년 후 여든에도 줄기차게 지속되였는데 2023년 부인 량복선녀사와 함께 《중영한경제무역사전》과 《조중올림픽체육사전》을 펴내셨습니다. 

선생님은 행정사업, 교직종사 기간 및 퇴직 후 우리민족 기초교육과 규범화 사업 그리고 우리 민족 언어, 문화의 보급과 발전을 위해 그야말로 소 갈 데 말 갈 데 가리지 않고 뛰여다니면서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선생님은 1989년 길림성 로력모범을 시작으로 선후로 연변대학 과학연구상, 길림성 사회과학우수성과상, 2014년 연변대학 ‘와룡학술상’,  ‘현대조선어’ 과정안 건설 우수교수성과 국가급 2등상, 중국민족도서 1등상, 국가도서 2등상, 동북3성 조선문도서 1등상 2차, 2등상 2차, 더욱이는 2006년 10월에 한글발전유공자로 한국 노무현대통령이 직접 수여한 문화포장을 받았고, 그 공적으로 2007년 8월의《인민일보》환구인물(环球人物)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또한 선생은 언제 어디서나 학자의 신조를 지키면서 열심히 학문을 연찬했기에 그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연변대학의 유능한 행정가요, 저명한 교수로 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선생은 연변대학을 뜨겁게 사랑했고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위해 모든 정열과 재능을 다 바쳤습니다. 우리는 이 시각에도 허름한 자전거를 타고 덜커덩거리면서 동북 여러 지역을 답사하고 동료, 제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언어조사를 하고 면담을 하던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선생님은 어질고 정직한 성품을 지닌 선비입니다. 선생은 동료들의 롱담을 잘 받고 주변의 인간들에게 언제나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쏟았으며 언제 어디에서나 다른 분들의 학술성과를 높이 찬양하고 누가 자신을 뭐라고 말해도 다른 사람의 뒷말을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평생 세속의 권세와 리익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일편단심 안빈락도의 신념으로 교육자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하지만 원리원칙이나 시시비비에는 언제나 자기의 소신을 가지고 진리를 견지하고 비정과 비리와 싸우면서 자신의 인격적 매력을 남김없이 보여주셨습니다. 

선생님은 학술성과를 많이 쌓고 평생 여러 가지 행정직책을 맡았지만 학문을 사랑하고 평생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부지런히 글을 쓰셨습니다. 선생은 글재주도, 말재주도 뛰여난 분으로서 언제나 제자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지니고 교수에 림하고 심오한 미학과 언어문학의 원리들을 언제나 부드럽고 생동하고 조리정연하게 강의해서 제자들의 깊은 신뢰와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정년을 하신 후에는 물론, 병환에 계시는 동안에도 사회 여러 문학인들과 손을 잡고 주옥같은 시, 시조, 가사를 펴내면서 자신의 문학적 기량을 과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선생님은 우리 곁을 떠나셨으나 선생이 남긴 고매한 인격과 빛나는 업적은 우리 모두의 귀감으로 될 것이며 우리 조문학부 내지 중국 조선족의 언어문화 발전의 귀중한 밑거름으로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선생님이 가꾸어놓은 터전에서 선생의 뜻을 받들고 우리민족의 말과 글을 비롯한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반석 우에 놓기 위해 대를 이어 노력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류은종 선생님 유가족에게 깊은 조의(弔意)를 표하면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류은종 선생님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2024년4월 14일

연변대학교 외국어학원

 

 바다가에서 리춘호, 리광인, 김강 선생과 함께 
 바다가에서 리춘호, 리광인, 김강 선생과 함께 

 

시조 

        
류은종 교수를 곡하노라

김호웅 연변대학교 교수 


                            
연변의 상씨름군 저작등신 석학인데
한꺼번에 두 깡패를 파출소에 잡아갔네 
오호라 꼬리 없는 소 하늘나라 가는가

길 잃은 선비들을 越秀에 불러다가
학문을 가르치고 학자로 키웠으니
멋지다 로신의 고향에서 종신교수 되였네

만년에 石岛에다 우리 마을 만드시고
큰 잔치 벌리면서 학문의 탑 쌓았구나 
아무렴 사모님의 내조로 辞典王도 되셨지

의욕도 강하지만 열정 또한 높았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은종교수 타계했네
오호라 광수박사 추도사 조문객을 울리네

저 멀리 지평선에 화물선이 떠있구나
이제는 우리들이 큰 바다로 나가리니
좋구나 석도의 바다에 꽃물결이 이누나

 

* 2024. 3.16일, 류은종교수가 위암 수술을 받은 후 2년 가까이 병상에 누워 고생하시다가 14일 0시 15분 타계하셨다. 연변대학 외국어학원의 위촉을 받고 김강박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2박 3일 일정으로 석도에 날아가서 류은종교수의 장례에 참가하고 오늘 저녁편에 돌아왔다. 

 

<부록> 

[인물] 조선족 대표학자 류은종 교수


[아래 글은 2020년 9월 중국조선말방송넷과 조글로에 실린 인물 기사이다. 류은종 선생님을 추모하며 이 글을 싣는다. - 편집자- ]    

조선 김일성종합대학 첫 조선족 박사생, 
'조선어 의미론 연구'로 김일성종합대학 박사학위 취득. 
"중국 내 우리말 교육, 조선-한국 언어통일사업에 기여" 공로로 한국 노무현 전 대통령상 받아.     

“중-한 성구속담대사전”은 현재 시중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한-조 대조 성구속담사전으로 류은종 교수 부부가 5년간의 시간을 들여 엮은 사전이다. 류은종 교수가 집필하고 안해 량복선 교수가 종심을 본 뒤 세상에 내놓았다.

10여 평방메터 되는 류은종교수의 사무실은 사면이 책으로 장식돼 있다.  책들속에 유난히 빛나는 “국제학술문화대상” 상장, 이는 국제학사원 세계학술문화심의회가 “중-한 성구속담대사전”이 중한문화 교류에서 발휘한 특출한 기여를 표창하여 류은종 교수에게 발급한 상이다. 

“중-한 성구속담대사전”에는 3만여개 성구속담의 중한 뜻풀이와 동의어, 반의어, 류사어가 수록돼 있다. 1400페지로 된 “중-한 성구속담 대사전”은 지금까지 중-한 언어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사전으로 꼽힌다. 사전은 한국 박이정출판사에서 2011년 11월 25일 출판됐다. 전자판 사전도 높은 다운수를 기록하며 중국인의 한국어 학습, 한국인의 중국어 학습의 “필수도구”가 되였다. 중국과 한국 여러 유명 대학교 도서관에서도 류은종, 량복선 부부가 집필한 서적이 학생들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중급 한국어”, “국제 비즈니스 한국어”, “문법 통일 교재”, “최신 조선어사전” 등 서적은 “제11차 5개년 계획”, “제12차 5개년 계획”내 국가 중점 도서출판 계획 항목에 포함됐다.

 2010년 초 류은종 교수가 만든 한국어 교재 '비즈니스 한국어'가 프랑스어, 독일어 등 선진국 언어들을 제치고 영어, 로씨야어, 일어에 이어 네번째로 우리나라의 국가표준을 얻었다. 

류은종 교수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 출신이다. 연변대학 조문학부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87년에 조선 김일성종합대학 박사 과정에 등록했고 1997년 '조선어 의미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5년 연변대학에서 퇴임한 뒤 월수(越秀)외국어대학의 '퇴직 석학 영입' 방침에 따라 월수외국어대학에 재직하게 됐다. 

그 동안 류은종 교수는 조선말맞춤법사전을 비롯해 조선족문화유산을 발굴 정리해 언어사, 예술사 등을 발간해 왔으며 조선과 한국간 언어통일사업에도 적극 나서서 `컴퓨터 통일사전' 편찬에 참가하기도 했다. 특히 1만2,000여개의 조선과 한국 체육용어를 수집하고 보급해 2008년 북경올림픽에 사용될 ‘우리말 체육용어사전’ 편찬의 기초 작업을 완성하는 등 우리말 지키기에 기여해 왔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류은종 교수는 청와대 단상에 올라 당시 한국 로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중국 내 우리말 교육과 조선-한국 언어통일사업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 발전 공로 대상”- 한국어 발전 유공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당시 한국 로무현 전 대통령은 수상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로무현 전 대통령은 류은종 교수와 악수를 나누면서 “한국의 문화 발전에 거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순간 현장에서 터져나오는 박수소리와 함께 류은종 교수도 눈가가 뜨거워졌단다. 당시 류은종 교수는 64세였다.

올해 희수를 맞은 류은종 교수는 벌써 52년의 시간을 우리말 교육, 연구와 함께 했다. 1997년에는 한중수교 15주년을 맞아 인민일보가 선정한 '중한교류 기여 인물 15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15년사이 이 상을 받은 중국인과 한국인은 통틀어 15명뿐이다. 현재에도 류은종 교수는 소흥의 방언과 우리말 성조 비교 연구에 정력을 쏟고 있다.

/중국조선어방송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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