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자 문학평론가, 본지 일본지사 대표  
 엄정자 문학평론가, 본지 일본지사 대표  

[동북아신문=엄정자 문학평론가] 이 세상의 천지만물은 거의 모두가 음양(陰陽)의 원리에 의해 둘로 나뉘어진다. 하늘과 땅, 해와 달, 낮과 밤, 지어 사람이나 동물도 여자와 남자, 암컷과 수컷으로, 식물인 꽃마저 암꽃, 수꽃 그렇게 자웅(雌雄)으로 나뉜다. 

만물이 이같이 대립되면서도 의존하고 서로 전화하는 음양의 원리는 세상 만물을 생성시키고 존재하고 변화하게 만드는 우주와 자연의 법칙이다.  그런데 만물의 생성 변화의 원리가 되는 이 음양 논리가 인간에게 이르면서 언젠가부터 흑백논리로 변하였다. 나와 나의 이익에 맞지 않은 것은 다 ‘적’이 되었고 그래서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폐허가 된 가자
폐허가 된 가자

요즘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톱뉴스로 자주 오르는 것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에서의 이스라엘 하마스의 전쟁이다. 그 외에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국가간 전쟁과 내전같은 전쟁 뉴스도 늘 들려온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생활하고 아이들이 뛰어놀던 집, 학교, 병원이 하루 아침에 모두 폐허가 되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파괴되고 있다. 몇 만명의 무고한 생명이 허무하게 전쟁의 희생자가 되었다.  

가자지구에서만 해도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4개월간에 숨진 어린이 수는 1만2300명 이상에 이르는데 이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세계 분쟁지에서 사망한 어린이 수 1만2193명을 웃도는 수이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제 사업 기구 라잘리니 사무국장은 이 전쟁은 어린이들에 대한 전쟁이며 그들의 미래에 대한 전쟁으로서 가자의 아이들을 위해 지금 당장 휴전이 필요하다고 호소하였다.( NHK 2024년 3월 13일 뉴스에서) 경계선으로 인한 비극이다.

세계 정세만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도 그렇게 흑백논리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많다. 어제까지만 해도 친구이고 동지이던 사람에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적’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내가 아무리 화해의 손을 내밀어도 상대방이 그것을 잡지 않는 한 ‘나’는 그대로 그에게 무너뜨려야 할 ‘대상’이 되어버려 공격을 받는다. 그때로부터 인생 지옥이 열리며 협박 공갈이 날아들고 삶이 불안해지고 ‘나’마저 방어 대세에 들어가야 한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은데 상대방에게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때부터 인생은 피로해 지게 된다. 쓸데없이 에너지가 낭비되고 심한 경우에는 생명의 위험까지 생긴다. 학교나 직장에서 내가 왜 그들의 ‘적’이 되었는지 원인도 모르고 왕따 당하거나 괴롭힘 받다가 가혹한 모욕 중상을 견디지 못하고 대인기피증에 걸리고 지어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안토니 가우디
안토니 가우디

작년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세계유산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2023~가우디 100년의 수수께끼에 접근하다>는 NHK 스페셜 프로그램을 보았다. 위대한 예술가이고 건축가인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140년 이상 계속 건설되고 있는 이 불가사의한 건축물은 가우디 시대부터 지금까지 8개의 탑이 완성되었고 앞으로 10개의 탑이 가우디의 구상을 바탕으로 세워질 예정이다. 그 가운데 어느 탑보다 높이 솟은 것이 '예수의 탑'인데 그 내부 디자인을 맡은 사람이 일본인 건축가 소토오 에츠로(外尾悦郎)이다.

26세 때부터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조각을 제작하여  45년 동안300개가 넘는 조각작품을 만든 그는 ‘예수의 탑’ 내부장식을 맡으면서 격차와 분단이 없는 세상을 바라며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설에 평생을 바친 안토니 가우디가 이 탑에 담은 소원은 뭐였을까 하는 고민을 계속 해왔다. 

‘예수의 탑’ 내부 이미지
‘예수의 탑’ 내부 이미지

그는 그동안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피를 표현한 타일도 만들어보았고 신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을 '씨앗'으로 여겨 유리로 만든 「씨」의 오브제로 탑 내부를 장식해보기도 했지만 다 맞지 않다고 느꼈다.

소토오(外尾)가 주목한 것은 가우디(ガディが)의 '색깔 연구'였는데 마누엘 메달데 박사가 보여준 가우디가 남긴 자료에서 마침내 찾고 있던 단서를 발견했다. “가우디가 새롭게 만들어 내려고 한 것은, 색의 그러데이션이었군요.” 하는 소토오 에츠로의 말에 마누엘 메달데 박사는 “원래 자연계는 천연 그러데이션으로 물들었지요.”고 답하였다. 

“자연에는 경계선이 없다. 여러 가지 색깔은 있지만 경계는 없다. 하늘의 색도 바다의 색도, 색은 무한히 그러데이션에 의해 변해간다. 그런데 인간이 만드는 것은 모두 경계선이 있다. 그걸 가우디가 슬프게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자기 생각을 말하며 그는 새로운 구상을 설명하였다. “예수의 탑에 들어가면 그곳에는 색깔 뿐인 세계가 펼쳐지게 됩니다. 탑의 맨 위는 하얀 벽. 성경의 기술(記術)을 바탕으로 ‘신의 세계’를 나타내고… 그 흰색이 먼저 옅은 보라색으로 바뀌어 인간 세계에 내려감에 따라 다양한 색의 그러데이션이 됩니다. 하늘이나 바다를 느끼게 하는 파랑, 숲이나 빛을 느끼게 하는 녹색이나 황색, 삼라만상을 타일로 표현합니다.”(2018년 시점의 구상)

가우디가 남긴 그러데이션 재료

이 스페셜을 보면서 나는 빈부의 차이와 사회의 분단이 확산되는 고통스러운 인간세상에서 인간이 만드는 그 경계선을 자연의 그러데이션으로 뛰어넘으려는 가우디와 소토오 에츠로의 생각에 공감이 갔다. 

며칠 전에 한국 부경대학교 예동근 교수의 칼럼 <경계에 대하여>를 읽었다. 2027년부터 개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는 법안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는데 ‘개와 사람의 경계’ 문제에 대한 우려를 표하였다. “개를 도축하고 개고기를 팔고 먹을 수 있는 자유가 법적으로 사라진 순간부터, 개는 더는 그저 개가 아니다. 개는 이름을 가진, 영혼을 가진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먹을 수 있는 개(狗)’와 ‘인간의 반려동물로서의 견(犬)’으로 이해하는 두 가지 경계 사이에서 완벽하게 교차하”던 ‘존재’가 법적인 경계선이 생기면서 ‘사람’의 경계선 안으로 들어와버렸다. 결국 사람이 만든 경계선이 사회적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냥 흐름에 맡겨 두었다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민감한 사회적 문제가 되어버렸다.

이 세상이 비록 음양의 원리에 의해서 만들어졌지만 자연의 모든 것은 경계가 확연하지 않다. 사람 역시 ‘남자’와 ‘여자’로 나눠져 있기는 하지만  칼 융이 말하다시피 남성의 마음속에는 여성적 심리 경향이 인격화한 ‘아니마’가 있고 여성에게는 무의식이 인격화한 남성상인 ‘아니무스’가 있지 않은가. ‘아니마’나 ‘아니무스’가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때도 있지만, 남성이 올바른 결혼 상대를 찾으려면 “심원한 내적 깊이로 향하는 길을 열어 주는 ‘아니마’의 힘을 입어야 하고” 여성의 자기 아니무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현실을 직시한다면 “아니무스는 둘도 없는 내적 반려자로 작용하면서 당사자에게 능동성, 용기, 객관성, 영적 지혜 등의 남성적 자질을 부여하고는 한다.”( 인간과 상징 : 제3부 개성화 과정. 칼 구스타브 융) 결론은 남자와 여자에게도 절대적인 경계선은 없으며 ‘아니마’나 ‘아니무스’도 상황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 법칙을 나타내는 사계절도 그렇지 않은가.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 사이에 그 완충 계절인 따뜻한 봄이 있고 여름과 겨울 사이에 서늘한 가을이 있다. 사계절의 경계선도 분명하지 않아서 살다 보면 어느덧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지나간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

소토오 에츠로는 ‘신의 세계’를 상징하는 하얀 색과 자연을 나타내는 색들 사이에 옅은 보라색을 넣어 경계를 없애는 그러데이션을 넣었다. 까만 어둠이 걷히며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기 직전의 ‘새벽 하늘의 보라색’, 그는 그 색이 ‘희망’을 느끼게 한다고 하였다. 밤과 낮, 어둠과 빛, 그 경계선을 없애주는 희망의 빛이 그려주는 아름다운 그러데이션, 그것이야 말로 우리의  ‘희망의 빛’이 아니겠는가. 인간이 자연의 그러데이션 효과를 이해하고 느끼고 제대로 볼 수 있다면 경계선은 사라질 것이고 분쟁도 전쟁도 사라질 것이다. 

경계선이 없이 그러데이션으로 그려진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꿔본다.

엄정자(厳貞子) 프로필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길림시조선족중학교 교사, 길림신문사 기자 역임, 현재 일본 ECC외국어학원에 재직 중,

동북아신문 일본지사 대표, 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회장, 연변작가협회 이사, 일본조선학회 회원.

제9회 『도라지』 장락주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제10회 同胞文學 평론부문 대상,
제40회 『연변문학』 문학상 평론상 등 다수 수상.

수필집 『금 밖에 나가기』(연변인민출판사. 2011년 ). 평론집 『조선민족의 디아스포라와 새로운 엑소더스』(연변인민출판사,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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