쯔쯔미 카즈나오(일반사단법인 동북아미래구상연구소 이사)

(日) 쯔쯔미 카즈나오 칼럼니스트 
(日) 쯔쯔미 카즈나오 칼럼니스트 

일본에서의 상실과 치유 이야기

3월이라고 말하면 일본에서는, 2011년 이후의 동북지방이 큰 피해를 입은 동일본 대지진의 달로서도 기억되게 되었다. 올해 십세 번째인 3월 11일을 맞이했고 필자는 "갑작스러운 상실과 그 치유"에 대해 마음을 쓰게 됐다. 

원래 필자는 2020년 여름에 가족의 일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귀국했다. 그 쯤에는 코로나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불귀의 객이 되거나,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슬픔과 불안이 세계 어디에서든 스물스물 일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에 돌아온 뒤 필자는 이와 같은 '그리프 케어(유가족 심리 회복)'의 모임에 참석해서 그 실상을 깊이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어느 모임에서 그런 사람이 당신의 옆에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한 참가자는 “나라면 소중한 사람을 잃은 분의 어깨에 살짝 손을 놓을게요."라고 대답했었다. 그 대답이 아주 인상이 깊었다.

이 글리프 케어라는 말이 일본에서 널리 알리게 된 계기는 2005년 4월에 발생했던 JR 후쿠치야마(福知山) 선의 탈선 사고였다. 사고를 일으킨 JR 서일본(西日本)은 이 사고의 교훈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재단을 설립했고, 그 재단의 기부에 의해 그리프 케어를 전문적으로 교육・연구 하는 기관을 죠오치(上智)대학에 설치되었던 것이다.

“' '힘 내세요' 라고 말하지 않는 편이 좋다. 당사자도 그렇게 해야 된 것을 물론 알고 있고, 이미 기력을 다하고 쓰러졌기 때문에…” 라고 하든가 격려보다도 달라붙기를 중시한 마음의 치유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에도 “우린 모두 당신 곁에 있어요! ”, “힘 내.동북! ” 라는 광고를 마음의 부담으로 느낀 유족이 있었다고 들었다. 

이 일본에서의 글리프 케어를 미국의 정신 의학에  게재한 치유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소중한 사람을 잃은 뒤 사람은 아래의 5단계를 거쳐 치유된다고 한다. 
①부정 ("믿을 수 없다"등 현실을 부정하는 상태) 
②분노( "왜 나만 남겨서 돌아갔냐"등 고인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는 상태) 
③거래( "하나님, 나 뭐든지 하겠습니다…제발 그 사람을 돌려주세요"등 인간을 초월한 존재에 애걸복걸하는 상태) 
④우울(기력이 없는 상태) 
⑤수용(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무리없이 일상생활을 보낼 수 있는 등). 
상실의 슬픔에 시달리는 사람은 이 여섯단계를 알면 잘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머리로 생각하지도 않고, 말을 건내지도 않고

하지만 이 5단계에 대해서도 “그렇게  5단계라든가 머리로 생각해서 설명받고도 난 … ”이라고 어느 사람이 말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이전에 갑작스런 사고로 아이를 잃었다. 오랫동안 자책감과 슬픔의 바닥에 가라앉고 있었지만, 어느 날 문득 빛나는 거리의 불빛을 보았다. 그 때 돌아간 아이가 스스로한테 “살아줘…” 라고 말을 건내는 것처럼 느꼈다고 한다.

그 밖에도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잃은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수다를 떠는 것에 따라 마음이 치유가 되는데, 그것은 바로 상실을 알고 있는 친한 친구와 수다를 떨 때였다…아이를 잃은 것에 대해서는 서로 전히 언급하지 않고 그냥 소소한 이야기를 한다고 들었다. 비극을 이해해주고 있는 그 친구와 그것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함께 있기만 해도 마음이 치유된다고 한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 사람은 마음이 깊다고 생각했다. 

어깨에 손을 잠깐 얹어놓거나 아이를 잃은 두 사람의 수다떨기, 예가 다수에 적용되는지 모른다. 오이려 매체에서 자주 나오는 것은 “스스로의 슬픔을 극복했다” 라든가 “앞을 향해 걸어가기로 했다”라는, 과거 극복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가 힘든 유족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약하다고나 비판할 수는 없다. 그만큼 인간의 감수성이 강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 극복의 이야기에 그리 많이 나오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곁에 묵묵히 있어 주거나, 또 만약에 그 사람이 상실을 말하기 시작하면 그대로 받아들여 주거나 하면 좋지 아닐까 싶다. 

상실의 치유와 인간의 가능성

최근에는 인공지능기술 개발의  발전에 따라 디지털 고인 등 인공지능에 의한 치유방법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고인과 가상공간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기술이 실용화되었다고 한다. 인공지능 덕분에 지금까지 치유되지 못했던 사람이 치유되는 것은 대단히 다행이다.

그 다행을 강조하면서도 필자가 생각하는 것은 “침묵”이라는 치유에서의 인간의 강점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따뜻함이나 치유를 느낀다는 것이다.

인간은 머리로 생각해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어깨에 묵묵히 손을 얹을게요. ” 라든가 “머리로 생각해서 설명받고도 난 …” 라는 말로부터 엿볼 수 있는 것은 그런 사고나 언어의 한계다. 의료 관계자가 환자의 몸에 손을 넣기만 해도 환자가 그 따뜻함으로 몸이 나아졌다는 일화가 떠올린다.

2045년경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초월한다는, 즉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원래 인간의 사고나 언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들을 바당으로 개발되는 인공지능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침묵”과 “따뜻함”에 의한 치유는 인간 밖에 할 수 없다. 인공지능의 진보는 커다란 가능성이 있겠지만, "인간에는 인간밖에 할 수 없는 사고나 언어를 초월한 능력이 있다" 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글쓴이 프로필 

쯔쯔미 카즈나오(堤 一直)

1980년 일본 토교 출생. 조치대학 법학부 졸업, 동대학원 글로벌스타디즈연구과
석사과정, 와세다대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박사(학술). 이후 일본, 한국에서 대학강사로 근무. 현재 행정사, 번역자, 연구자. 
그 타 경희대학교 국제지역연구원 일본학연구소 연구위원.

연구분야는 동아시아 국제관계.

번역서(한→일)로 복거일(2003)『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 : 21세기의 친일 문제』 북앤피플 및 허남정(2014)『박태준이 답이다 : 한일협정 50년 실종된 한일관계』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