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길 장편계렬 수필>

1,인천공항에서

무연고동포인 장인 장모가 고령 동포로, H-2비자를 받고 한국으로 돈 벌러 온단다. 힘들어서 못한다고 하니 그쪽에서 버럭 화를 낸다. 남들 다 하는 걸 왜 못한다고 하느냐고. 그 뒷말은 안 들어도 뻔할 뻔자다. “사위는 치사하게 한중수교 전부터 다녔으면서 남들 다 가는 한국을 왜 나오지 말라고 하느냐.”고.  

참으로 딱하다. 한국의 노동생활이 어디 중국의 중노동에 비할 수 있다더냐. 옛날 소학교교과서에서 보던 그대로 지주 자본가에게 ‘뼈 빠지게 일해 주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그런 노동환경은 날라리 중국노동환경과는 견줄 바가 못 되지만 그걸 모르고 무작정 한화만 바라보고 살같이 날아온다. 젊은 축들은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면 길들어지지만 노년이 문제다. 우리 사회와 가정의 자존심이고 뒷심인 노년들이 한국에 몰려와서는 한국인들에게 ‘체조’를 당하는 모습은 자존심 상해서 더는 볼 수 없다.

그런 젊은 층의 체면은 안중에도 없는 노인들도 마찬가지로 안쓰럽다. 하긴 그런 노인들이 편한 여생을 보내도록 두툼한 퇴직금과 용돈을 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와 가정도 문제다. 어르신들은 퇴직금으로 취미생활은 커녕 의식주해결도 곤란하니 어찌 한국행을 마다하겠는가. 장인장모의 한국행도 그런 차원이다. 얄팍한 퇴직금을 받으면서 가만히 앉아 있느니 차라리 힘자랄 때 돈 푼이나 번다는 노인층에 만연된 유행성감기 같은 징후다. 결국 그 ‘유행성감기’를 아무런 처방전도 없이 잡아보려는 것부터가 무리였다. 결국 나는 장인장모의 의사를 존중하고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주일날 리무진버스는 공항고속도로를 따라 영종도로 달렸다. 길 아래로는 푸른 바다가 출렁출렁 와 닿고 길 위로는 맑고 푸른 하늘이 와 닿는다. 그 푸름 사이로 갈매기들이 때론 큰 호를 긋다가도 때론 긴 타원을 그리며 자유로이 날아옌다. 햇볕 따스하여 오곡백과 무르익는 나라, 바다에 둘러 싸여 아름다운 풍치로 가득 찬 나라, 오늘 따라 이 강산이 가슴 짜릿하게 느껴온다. 이런 아름다운 강산에서 단순 고역을 치르는 사람들, 그들 스스로의 자성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우리도 10년 만 일찍이 ‘중국식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했다면 장인장모도 돈 벌러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또 수많은 조선족노인들이 궁색한 모습을 하고 고국 땅에서 품팔이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자존심도 나이도 팽개치고 눈을 찔끔 감고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또 새파란 젊은 애들한테 굽실거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또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몸을 끌고 다니면서 세월만 세차게 흘러 돈만 쌓여지기를 바라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인천국제공항 국제선 입국장에는 진작부터 마중을 나온 조선족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먼저 온 조선족들이 새로 나오는 조선족들을 마중하러 나온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공항만 바뀌었지 조선족들의 흐름은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다른 국제선출국장에서는 촌티를 벗고 얼마간 서울 물을 먹은 조선족들이 올 때와는 완연 다른 신사숙녀가 되어 중국행을 한다. 그렇게 사람과 함께 중국으로 흘러간 돈은 또 수많은 조선족가정의 의식주행을 해결하는데 쓰인다.

장인장모는 맨 나중에야 나타났다. 핸드카에 실린 짐에 가리어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할 번했다. 평생이라도 살 것처럼 집에 쓸 만한 물건은 다 챙겨온 느낌이다. 약 꾸러미로부터 작업복과 생활용품, 심지어 이불까지 보인다. 제일 묵직한 트렁크를 챙기려고 핸드카에서 내려놓는 순간 진작부터 엿 먹이려고 기다렸다는 듯 트렁크바퀴 하나가 분리되어 저만큼 굴러갔다. 모두들 어이없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나서 제멋대로 굴러가고 있는 트렁크바퀴를 쫓아갔다. (계속)

2007/7/15

 

려호길 (모래안,성주)

1963년 1월 3일 화룡시 토산진 출생.
1988년 연변대학 통신학부.
1988년 백두산실업 판매과 과장.
1992년 제1차 한국체류.
1995년 외상투자서비스센터 근무.
2001년 제2차 한국체류(<동북아신문>객원기자,기자)
2005년 수필집<<간도에서 온 사람들>>출간. 

이메일주소:moraean@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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