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평론>

석화의 련작시 《연변 ‧ 12-아침에 부르는 처용갬역시 석화 시에서의 용전(用典)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베개 우에 떨어져있는 몇 오리의 머리카락을 발견한 것을 시적 계기로 하여 인생무상의 시적주제를 표현했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시들에서의 공동한 주제라고는 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리백의 《장진주(將進酒)》에서도 역시 “아침에 검은 실 같았던 머리털이 저녁이 되니 백설 같이 세였구나(朝如靑絲暮成雪)”라고 하면서 머리털이 세는 것을 통해 인생무상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석화는 이 시에서 신라 헌강왕 때의《처용가(處容歌)》에서 “원래는 내해인데/ 앗아가니 어찌하리오”라는 유머러스하게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무상한 인생에 대한 달관의 태도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역시 용전(用典)을 통해 묘한 시적인 경지를 창조한 사례이다.


《처용가(處容歌)》는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三國遺事)》중의 <처용랑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에 실려 있다. 처용은 헌강왕의 아들이었는데, 왕은 처용에게 미녀를 안해로 주고 그의 마음을 잡아두려고 급간(級干)이라는 벼슬을 주었다. 그런데 역신(疫神)이 처용의 처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밤에 처용의 집에 가서 몰래 같이 잤다. 처용이 밖에서 돌아와 잠자리를 보니 두 사람이 있으므로, 이에 <처용가>를 부르며 춤을 추며 물러나자, 역신이 모습을 나타내고 처용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노하지 않음에 감복하였으므로, 이후로는 처용의 얼굴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서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물러섰다. 그 <처용가>는 이러하다. 왕국유(王國維)의 말을 빈다면 역시 “불격지미(不隔之美)”를 갖고 있다.


서울 밝은 달에

밤 깊이 놀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갱이 넷이구나

둘은 내해이고

둘은 뉘해인고

본디 내해건마는

빼앗는걸 어찌하리오.


이 역시 조선민족의 고전중의 하나인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고 많은 교과서들과 책들에 많이 소개되였으므로 별로 생소한 것은 아니다.


석화의《강》은 조선민족시가사상의 제일 일찍 나타난 고조선의 서정가요 《공후인(箜篌引)》을 부연한 것이다.


내 기어이 이 강을 건너야만 하겠소


발아래 파도는 사납지 않은 적 없고

뒤설레는 물결은 멈추어선 적이 없으니

이렇게 강물에 들어선 이 몸을

《돌아오소서, 돌아오소서》부르지 말아주오


내 기어니 이 강을 건너야만 하겠소


미치지 않고서야 들어설 수 있냐지만

이 손에 쥐여 이 손에 쥐여 있는 청주 한 병이

흐르는 물결 우에 나를 띄워 실어주고

파도 딛고 춤춘다고 당신이 사설해도

그대가 언덕 우에 나를 보기 때문이오


내 기어니 이 강을 건너야만 하겠소


당신이 덥혀주는 아랫목이 따스해도

강 건너 푸른 잔디 이내 마음 손짓하오

천성이 나그네라 떠나가는 이 몸이

눈물을랑 거두고서 노래 한곡 불러주오

나 없고 당신 또한 이 강변에 없었더면

《공후인》 한 가락이 어찌 세상에 남았겠소


내 기어이 이 강을 건너야만 하겠소


     - 《강》전문

강은 우리민족 특히는 중국조선족과 너무나도 인연이 깊은 존재이다. 우리 중국조선족의 조상들은 쪽박을 차고 두만강을 건너온 이민들로서 석화의 말처럼 “천성이 나그네”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이민문화의 속성이 강한 우리 중국조선족은 또 다시 강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 세계의 방방곡곡에 나그네처럼 흘러 다닌다. 석화가 우리민족의 고전들 중에서도 고조선의 서정가요 《공후인(箜篌引)》을 개작하고 부연한 것은 사실은 오늘의 중국조선족의 삶의 현주소를 밝혀보려는데 그 진정한 의도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기에 이 시에는 우리중국조선족의 미래에 대한 시인의 우환의식이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우환의식은 석화의 근작시 《연변 ‧ 4-연변은 간다》에서 더욱 명료하게 보인다.


연변이 연길에 있다는 사람도 있고

구로공단이나 수원 쪽에 있다는 사람도 있다.

그건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연변은 원래 쪽바가지에 담겨

황소등짝에 실려 왔는데

문화혁명 때 주아바이랑 한번 덜컥 했다

후에 서시장바닥에서 달래랑 풋배추처럼

파릇파릇 다시 살아났다가

장춘역전 앞골목에서 무짠지랑 함께

약간 소문이 났다

다음에는 북경이고 상해고

랭면발처럼 쫙쫙 뻗어나갔는데

전국적으로 대도시에 없는 곳이 없는게

연변이였다

요즘은 배타고 비행기 타고 한국 가서

식당이나 공사판에서 기별이 조금 들리지만

그야 소규모이고

동쪽으로 도꾜, 북쪽으로 하바롭스크

그리고 싸이판, 샌프랜시스코에 빠리런던까지

이 지구상 어느 구석엔들 연변이 없을 소냐

그런데 근래 아폴로인지 신주(神舟)인지

뜬다는 소문에

가짜여권이든 위장결혼이든 가릴 것 없이

보따리 싸안고 떠날 준비만 단단히 하고 있으니

이젠 달나라 별나라에 가서 찾을 수밖에


연변이 연길인지 연길이 연변인지 헛갈리지만

연길공항 가는 택시요금이

10원에서 15원으로 올랐다는 말만은 확실하다


       - 《연변 ‧ 4-연변은 간다》전문



   3. 석화 시에서의 중국 고전과 용전의 묘미


석화의 시에서 중국 고전에서 인용한 전고들이 적지 않다 당시(唐詩), 송사나 《삼국연의》 같은 중국 고전에서부터 모택동의 시사(詩詞)에 이르기까지 그 포괄법위가 아주 넓다. 이런 중국고전에서 따온 전고들은 적재적소에 사용되여 시의 맛을 한결 돋구어주고 있다.


햅쌀 밥맛을 보라고

시골 사는 농부시인 김일량씨가

쌀 한주머니 보내왔다

알알이 윤기 흐르는 쌀알들

친구시인 구슬진 땀방울 아니랴

두 손 모아 쥐여보니 손바닥이 매끄럽다

앞벌에 펼쳐진 그 검은 흙에서

그 흙을 적시던 도랑물에서

이처럼 새하얀 입쌀 이뤄내다니

봄, 여름, 가으내 철철의 신고가

알알이 맺혀서 반짝이는가

쌀알 한 알 한 알 모두가 소중하다

친구가 보내온 쌀이 내게로 와서

한 그릇 밥이 되여 내게로 와서

이제 내 살이 될 것이지만

나의 무엇이 그대에게로 가서

쌀이 되고 살이 될 것인가

그저 송구하고 미안하고 또 그리고

고맙다


         - 《연변 ‧ 23- 쌀은 내게로 와서 살이 되는데》전문


석화 시인은 자기의 시에서의 “봄, 여름, 가으내 철철의 신고가 / 알알이 맺혀서 반짝이는갚 이 아주 중요한 시구는 당나라의 리신(李紳, 780-846)의 유명한 시 《농부를 가엾게 여겨(憫農)》에서 인용했음을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출처만 밝힌 것이 아니라 시 전체를 조선어로 번역해 놓기까지 했다.


밭김 매다 한낮 되니                鋤禾日當午,

땀방울 포기사이에 떨어지네         汗滴禾下土.

누가 알랴 소반의 쌀밥이            誰知盤中粲,

알알이 모두가 수고로움임을         粒粒皆辛苦.


이렇게 당당하게 인용하는 것을 어찌 표절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시의 주제 역시 당나라의 리신(李紳, 780-846)의 유명한 시 《농부를 가엾게 여겨(憫農)》에서 환골탈태(換骨奪胎)하기는 했지만 시인 자신이 현실생활에서 받은 감수와 밀접히 련결되여 있기에 생동감과 깊은 감동을 준다. 


물우엔 

제갈공명 같은 안개가 낮고

안개너머 대안에선

조승상 같은 배고동 소리 길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긴 강 - 장강

이강을 건너기 위해 우리는

관광뻐스 안에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있다

저기 한창 시공 중인 대교가

반공중에 신기루처럼 떠있고

문뜩 나타나서 입을 벌린 뚜룬(渡輪)

십여대의 관광뻐스를

차례차례 삼킨다

북방사람은 돌아가는 길

강남사람들은 떠나가는 길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버스는 배를 타고

이제 모두  저쪽 기슭으로 건너가려 한다

이게 무슨 인연일까

시간 전만 해도 동서남북 각지에서

그들은 저 각각의 방언으로 나는 또 조선말로

자기 삶을 사느라고 떠들었거니

지금 모두 입을 다물고 앉아있다

앞뒤 그리고 옆의 좌석에서 차례차례

적벽지전(赤壁之戰) 나가는 삼국군사들 얼굴을 하고 있다

안개는 사방에 짙게 깔리고

강물은 철썩철썩 배전을 두드리고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 《한 배를 타고》전문


이 시는 양자강을 건너는 대형 나룻배우에서의 시인의 감수를 중국의 사서《삼국지》나 력사소설《삼국연의》에서 나오는 력사인물이나 력사사건을 적재적소에 인용하면서 중국조선족과 중국의 한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은 《한 배를 탄》운명공동체임을 설파하고 있다. 이 시는 중국조선족의 특수한 아이덴티티를 보여준 수작이다. “적벽지전(赤壁之戰)”은 바로 양자강에서 일어난 유명한 싸움이였기에 “물우엔 / 제갈공명 같은 안개가 낮고 / 안개너머 대안에선 / 조승상 같은 배고동 소리 길다”와 같은 비유거나 나룻배에 앉은 사람들을 “적벽지전(赤壁之戰) 나가는 삼국군사들 얼굴을 하고 있다”는 비유는 아주 생동하고 그 분위기에 잘 들어맞는다.


그리고 《남국에 와서》의 마지막인 “-제발 백팔가지 온갖 벌 다 주시더라도 / 뜬 달을 건지려 물속에 풍덩하신 / 시 쓰던 그 량반만은 닮게 하지마소서, 아멘”에서는 밤중에 일엽편주를 타고 호수에서 소요하다가 수면에 비낀 달을 건지려다가 물속에 빠져죽었다는 시선 리태백의 일화를 아주 재치 있게 인용함으로써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4.  마무리

석화시인의 시창작에서의 용전의 묘미는 자연히 중국 고대시문학사에서의 강서시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의 “점철성금(点鐵成金)”의 시창작주장을 련상시킨다.


“스스로 시어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것이다. 두보가 시를 짓거나 한유가 글을 지음에 있어서 한 글자라도 출처가 없는 것이 없다. 후세의 사람들은 독서를 적게 했기에 두보나 한유가 스스로 그런 시구나 글귀를 만들어냈는가 여기는 것이다. 옛날의 글을 짓는 이들은 진정으로 만물을 도야하였는데, 비록 고대의 낡은 말들을 자기의 글에 인용했다고 하더라도 마치도 한 알의 령단과 같아서 그것으로 무쇠를 황금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석화시인은 남의 소재나 시적인 계기가 시구를 빌려오는 전제하에서 추진출신(推陳出新)하였다. 석화 시인의 시창작에서의 용전(用典)의 묘미를 음미해보면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였다. 시창작에서 시인의 풍부한 생활체험은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모자란다. 시인은 반드시 부지런히 독서를 통하여 연박한 지식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발랄한 감성과 풍부한 상상력에 리성의 힘을 실어주고 무궁무진한 창작적인 에너지를 공급해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는 “만리길을 걷고 만권의 책을 읽으라(行萬里路, 讀萬卷書)”는 말이 있다.


시인에게 있어서 풍부한 생활체험과 연박한 지식력은 마치도 새의 두 날개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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